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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사는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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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18, 2022 00:36에 작성됨.

붉은색으로 점멸하는 신호등 앞에서 서 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서 있다.

마음 속에서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을 본 것처럼 서 있다.

아니, 잊었을 리가 없다.

잊었다고 생각해야만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잊었을 리가 없다.

그 누구보다도 잊어야만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잊을 리가 없다.


「카오리...」


사쿠라모리 카오리.

내 입에서는 몇 번이고 불렀던 이름이, 하지만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나지막하고 의미없는 소리가 되어 맴돌았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 짤막한 소리가 되어 맴돌았다.

신호등만큼 붉은 석양은 차가운 빌딩의 사이에 숨어 사라져 간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래서였을까, 나의 저주받은 육신은 축복받은 이름을 가진 육체에게 이끌리듯이 향한다.

안된다고 수없이 되뇌이면서도 그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다행히도 그 사람은 뒤를 밟히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했다.

그야 당연했다.

그녀의 옆에는 그녀를 꼭 닮은 딸아이 하나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환한 미소와 함께 같이 걷고 있었으니까.


「카오리...」


대원죄.

허락받을 수 없는 에덴의 꿈을 꾸었던 못난 남자는 그 이름을 작은 목소리로 불러 본다.

옛날에 잠시 허락받았던 호칭을 스스럼없이 불러 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대답이 있을 리가 만무.

부르는 소리는 너무나도 작아 하늘과 땅 사이에 맴돌다 흩어진다.

그 소리가 흩어질 때쯤이었다.

아무런 의미없이 부서질 때쯤이었다.


「여긴...」


내 입장이 허락되지 않은 황금빛 둥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와 이름 모를 남자와 이름 모를 딸이 웃으면서 지낼 사랑의 보금자리가 수줍게 자신을 드러냈다.

그녀와 혹자는 단촐하다고 말할 붉은색 벽돌집.

하지만 그 어떤 집보다도 아름답고 섬세한 이층짜리 저택.

창문은 짙푸른색 유리로 마감되어있고, 작은 정원은 여자의 손길이 닿았는지 깔끔하고 정연한 모습이다. 

나라면 이런 집에 그녀를 살게 할 수 있었을까.

고민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자, 그럼 들어갈까요?」


「네, 마마!」


사이 좋은 모녀간의 대화가 차가운 바람을 타고 귓속을 간질인다.

내 딸아이였을 수도 있는 소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슬프게 마음을 파고든다.

슬퍼선 안 되는데, 어느샌가 슬픔의 바다에서 하릴없이 허우적대고 있는 나 자신이 있다.

아마 저 아이는 나라는 사람은 모른 채 따뜻한 어머니의 품 속에서 어리광부리겠지.

그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나는, 따스한 벽돌집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남긴 채 돌아섰다.

돌아서서 내가 가야할 곳으로 향한다.

내게는 허락되지 않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을 더 이상 괴롭힐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언제까지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뿐.

붉은색 신호등이 교차하는 교차로에 섰다.

나는 그 신호를 받아 잠시 멈추곤 눈을 감는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차가운 빌딩숲 사이에 모습을 감춘 작고 허름한 남의 나라.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슬픈 몸짓을 하며 신호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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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만에 써서 조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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