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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3L Y5UR B5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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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15, 2022 16:51에 작성됨.

나의 방은 자그마한 육첩방. 이곳은 작고 허름한 남의 나라. 낮이 되면 무인지대가 되는 곳. 겨우내 들어오는 햇빛 한 줄기에 물기가 마르는 곳. 총구의 화염만이 없는 참호와도 같은 곳.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오렌지색 가로등의 광선이 물줄기처럼 창문을 통과해 차가운 입자가 되는 곳. 이곳이 바로 남의 나라. 적어도 나의 나라는 아닌 나라. 도심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삼 층짜리 맨션의 꼭대기에 위치한, 방 하나에 욕실 하나가 딸린 단촐한 방. 남자 홀로 사는 방. 여자의 손길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는 방. 그런 방.


그런 곳에 자그마한 고양이가 한 사람 방문한다. 그 어떤 때보다도 귀여운 목소리와 함께 두 발을 들여놓는다. 따스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는 이 나라에 작게 발을 딛는다. 이 발자국은 그녀에게는 작은 자취겠으나 한 인류에게는 커다란 족적이리라. 예상치 못한 내방에 멍하니 서 있던 세입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소녀의 호들갑에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안내한다. 특별할 것 없는 방이다.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고양이는 자기 내키는 대로 움직이는 생물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행위다. 그러니 분명 가는 대로 오다가 들렀으리라. 소녀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활짝 미소짓고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침대에 작은 몸을 뉘였다.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어~ 라고 말하며 무방비한 모습으로 그르렁거린다. 인류는 처음 기르기 시작한 생물을 어떻게 대접해야 할 지 몰라 허우적댄다. 소녀는 그 모습을 보며 더 환하게 골골거린다.


저녁은 먹었느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했다. 그럼 냉동실에 있는 오래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겠느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럼 달리 대접해줄 것이 없는데. 바보는 천재를 난감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무엇을 해야 좋아해줄 지 몰라 어리둥절해 한다. 소녀는 그 모습에 말 대신 침대를 작은 손으로 두드린다. 자신의 회색 속내를 여과 없이 보여주겠다는 듯이 손을 내민다. 바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등불을 밝힐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에 작은 손을 내미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소녀의 손을 잡고 침대에 앉았다. 사람보다도 따뜻한 체온이 손을 타고 천천히 온 몸을 적셔 간다. 온기가 천천히 혈관을 타고 흐른다. 작은 시내가 되어 번진다.


그와 함께 소녀의 미소에서 달콤한 풋내가 확산한다. 아직 덜 여물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아찔한 향기가 난다. 정열의 수립자가 대기압과 만나 이루어진 이치노세 시키라는 존재를 방정식으로 풀어낸다. PV=NRT. 그녀의 존재는 이상적인 것으로 증명되었다. 이치노세 시키는 자신의 향기를 알고 있을까. 소녀의 얼굴에는 장난기 섞인 미소만이 떠올랐을 뿐이다.


나의 방은 자그마한 육첩방. 이곳은 작고 허름한 남의 나라. 그러나 이치노세 시키가 있다면, 이곳에 그녀가 있다면.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이 순간의 공기 또한 체온처럼 따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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