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한입거리 티타임)2. The highest Place in the world

댓글: 2 / 조회: 158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6-27, 2022 01:10에 작성됨.

"헉…. 헉...너무 힘들다…. 프로듀서, 언제까지 올라가야 해?"


"반만큼 왔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힘내, 스바루!"


"반밖에 안 된 거야? 아니, 반이나 온 건가? 너무 힘들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


"자, 자! 나머지도 어서 힘내서 올라가자!"


"으아아아~"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왜 나는 산을 오르고 있는 걸까.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극장에 있었는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여기 산에 와서 힘들게 오르고 있는 걸까.



때는 하루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캐치볼이 하고 싶었어. 사실 내가 야구를 안 하고 싶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기 이전에 내가 아닌 거잖아? 나는 언제나 야구가 하고 싶어.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여하튼, 그래서 같이 캐치볼을 해줄 전우인 우미를 데리고 극장 로비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 알다시피 코토하의 제재가 너무 심해서 내가 캐치볼을 하기가 좀 어렵잖아? 그래서 비교적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자리를 잡은 거야. 게다가 이 자리는 딱히 공이 맞는다고 깨지거나 망가질 것도 없어. 여기라면 코토하가 내려온대도 못 볼 거고, 설령 발견한대도 제재 안 하지 않을까?


"간다! 우미!"


"와라, 스바루!"


신나게 공을 주고받았어. 역시 우미랑 하면 파이팅 넘쳐서 좋단 말이지! 공도 시원시원하게 오가고!

이렇게 재미있게 캐치볼 하는 게 정말 얼마 만이야!


그렇게 즐겁게 캐치볼을 하고 있었어. 이제 내가 던질 차례가 되었기에 글러브 속에서 공을 집어 들려는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딱 잡는 게 느껴지더라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 같네, 스바루 쨩."


낮은 톤의, 그러나 한기가 단단히 서린 이 목소리를 듣자, 나는 모든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어. 지금까지 나의 야구를 막아온, 바로 그 사람의 목소리였으니까.


"코토하…?"


"맞아. 코토하야. 안녕, 스.바.루.쨩."


도움을 청하려 고개를 들고 보니, 우미는 이미 도망가고 없었어.


"엣?! 우미?!"


치사하게 혼자 도망가기냐! 그렇게 가버리면 코토하에게 잡힌 나는 어떡하라는 거야!


"이제 스바루 쨩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일이 이렇게 되니, 이제는 코토하에게 잡힌 것에 대한 공포보다는 `야구라는 게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막아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암만 그래도 이렇게 악을 써가면서까지 잡을 필요는 없잖아!


"여기라면 부서질 것도 없고 들킬 염려도 없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걸리다니!"

"...그래, 다른 곳에서는 잘못되면 뭔가가 부서질 수도 있고, 누군가 맞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 그건 인정해. 그래서 코토하가 여기저기에 야구 금지 포스터를 붙이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여긴 괜찮잖아. 극장 내에서도 어느 정도 구석져서 사람들도 없고, 딱히 부서질 만한 물건도 없어. 다른 곳에 비하면 아무 문제 없다고!"

"그런데도, 그런데도 나를 잡아야 하는 거야?"


반쯤 떼쓰듯이, 반쯤 토해내듯이 말했지.

평소에 이 건으로 서럽긴 했어. 조금 정도는 하게 해 줄 수 있잖아! 나도 누군가 맞지 않게, 무언가가 부서지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고 있는데.


"..."

"그렇게 야구가 하고 싶은 거야?"


"말이라고! 진짜 한 번 정도는 좀 봐주라! 사고 안 칠게!"


"...좋아."


"응?!"


코토하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어. 너무나 쉽고 빠르게.

물론 허락을 받기 위해서 했던 말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단숨에 허락이 떨어져서 오히려 놀랐을 정도라고.


"대신, 조건이 있어."


"조건?"


"스바루 쨩의 프로듀서님께서 가져오시는 첫 번째 스케줄을 군말 없이 해내야 해."


"뭐야, 그거? 너무 쉽잖아!"


아이돌 활동하면서 스케줄 한두 번 받아보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야 껌이지!

이렇게까지 쉬운 조건을 내주는 거 보니까, 그냥 거저 허락받는 거구먼!



곧장 사무소로 달려갔어. 가니까 거기 딱 프로듀서가 있었지.


"프로듀서! 프로듀서!"


"무슨 일이야, 스바루? 무슨 일 있어?"


"나 오늘 스케줄 없어? 뭐든 줘!"


"웬일이야? 갑자기 스케줄을 다 달라고 하고."


"내 야구가 걸린 일이야! 코토하가 말하길, 프로듀서가 주는 첫 번째 스케줄을 잘 해내면 극장에서 야구를 할 수 있게 허락해주겠대!"


"그래? 그럼 정말 어떤 일이든 할 거야?"


"말이라고! 진짜로 다 할 거야!"


"그래. 그러면 마침 스바루에게 들어온 스케줄이 하나 있어. 산악 Vlog를 찍는 건데."


...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산악 Vlog?"


"제대로 들은 게 맞아. 등산 브이로그지. 말 그대로 등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는 거야."


"아, 아니…. 어떤 일인지는 잘 알지만…. 어째서 내가 그런 일을…?"


"사실 스바루가 건강미로는 우리 프로덕션 내에서도 TOP3 안에 들잖아? 그래서 사장님께서 이에 주목하셨고, 한 번 등산을 시켜보면 어떻겠느냐 하셨어."

"게다가 우리 아이돌들 사이에서도 브이로그를 찍는 게 유행이기도 하잖아. 그래서 스바루도 그런 걸 한번 찍어보면 어떨까 싶은데."


"...난 내가 건강미로 유명하다는 얘기를 난생처음 들어봐. 대체 언제 그런 말이 나온 거야?"


물론 내가 야구를 좋아하긴 하니까, 활동적이라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라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게다가 건강미에 주목해서 등산시킨다면 보통은 우미를 뽑지 않아?"


우미라든가 사요코, 타마키가 있는데 왜 굳이 나여야 하는 걸까.


"꼭 등산해야 해? 야구 하는 거 찍으면 안 되는 거야?"


도대체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 아무것도 이해하질 못하겠어.


"사장님께서 직접 지목하신 거라 어쩔 수가 없어. 대신 나도 같이 갈게."


"아니…. 같이 가주는 건 고맙지만, 그래도…."


"그리고, 야구를 위해서는 첫 번째 스케줄을 충실히 이행해내겠다고 약속했다며."


"...혹시 코토하랑 짰어?"


이 정도면 코토하랑 짜고 일부러 이런 스케줄 잡아 온 것 같은데.


"이거, 언제 시작하는 거야?"


"아, 응.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야. 대략 오전 7시쯤?"


"가는 건 어디로 가는데? 준비 정도는 해놓아야겠지."


"후지산에 올라가 볼까 싶은데."


"미쳤어?! 후지산이 어딘 줄 알고 올라가?!"


애초에 우리 같은 아마추어, 아니, 아마추어조차 아니지. 등산 경험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인 사람들이 쉽게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아니라고!


"농담이야. 우리가 후지산에 올라갈 수 있을 리가 없지."


프로듀서의 평소 모습을 생각해보면 농담 아닌 것 같지만 말이지.


"그럼, 어디로 갈 거야?"


"음, 일단 도치기의 스카이산을 가볼 예정이야."


"스카이산이구나…. 이름만 들으면 뭔가 하늘에 닿게 될 것 같단 말이지."


"뭐, 정상에 오르면 하늘에 가까워지긴 할 테니까."


등산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힘든 일이라 그런지, 내 표정에서는 괴로움과 한탄이 한껏 묻어나왔어.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등산인데.


"너무 부담 느끼지 않아도 괜찮아."


프로듀서가 격려의 말을 건넸어. 격려를 들었는데 격려가 전혀 안 되는 건 또 처음이야.


"안 가질 수가 없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등산인데."


"등산한다기보다는 산책한다고 생각해."


"되겠냐! 스카이산은 프로덕션 뒷산이 아니란 말이야!"


그렇게 말해도 어쩔 수는 없지. 이왕 잡힌 스케줄이고, 야구 할 권리를 보장 받기 위해서라도 갈 수밖에.

그리고 뭐…. 힘들면 중간중간 쉬어가면 되겠지. 암만 그래도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등산로인데 벤치 하나 없을까.



집에 와서도 등산 일 때문에 마음이 심란했어.

그, 팝팀에픽에서 포푸코가 온종일 넋이 나가 있는 장면 있잖아. 그게 나한테도 적용되는 느낌이었지.

내가 이번 등산 스케줄에 대해서 얘기하면, 아빠랑 엄마는 아마도


"잘 됐구나! 등산 한 번 다녀와. 건강에도 좋아! 게다가 스카이산이면 일본 100대 명산에 속한다지 않아?"


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그건 어른들의 속 편한 소리일 뿐이야. 일본의 100대 명산인지 뭔지 하는 그거, 오늘 및 내일 같은 일이 아니었으면 나랑은 영원히 아무 관계도 없었을 거라고.


`산에 올라가야 한다니…. 아무리 야구 때문이라고 해도….`


한껏 낙담한 표정을 지으며 방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데, 누군가 내 방 문을 두드렸어.


"들어와."


그러자 문이 열리고, 소우타 오빠가 들어오더라고.


"소우타 오빠?"


"얘기는 들었어. 내일 스카이산에 오르게 됐다며?"


"응."


"자세한 경위 좀 들려줄래? 너무 뜬금없이 등산 다녀온다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서 말이야."


그러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모든 경위를 다 설명했어.

야구를 하려다가 코토하에게 걸렸던 일, 코토하가 걸었던 공약, 그 후 프로듀서와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들까지 전부 다.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소우타 오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어 대답했어.


"등산 스케줄을 네 프로듀서님이 줬다고 했지? 그렇다면 코토하 씨에게 감사해야겠는걸."


"그게 무슨 말이야?"


"스케줄을 하는 건 아이돌의 업무잖아? 그렇다면 등산 스케줄 또한 결국에는 너에게 주어졌을 일이야. 설령 장난처럼 운명이 바뀐다든가 하는 일이 없다면 말이지."

"난 코토하 씨가 너에게 동기를 유발하였다고 생각해. 만약에 말이야, 코토하 씨가 그런 약속을 하지 않은 상태로 네가 등산 스케줄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너는 지금보다 더 괴로운 마음으로 등산을 가야 했을지도 몰라."

"그런 시간을 보내며 불안을 키우는 것보다, 오늘처럼 차라리 `올라야 할 이유`가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


". . ."


소우타 오빠 말이 틀린 건 아니야. 그 말이 맞아. 적어도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는가`를 알고서 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는 채 억지로 하는 건 차이가 크니까.

그래도, 난 등산이라는 힘든 그 일을 하는 게, 크지는 않아도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인걸.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 어차피 힘든 거, `내가 이 산 정복하고 야구를 할 거다!` 하는 결심이라도 지니고 가는 게 더 나아."


"쉽게 말하면 `가오라도 잡아라.` 는 거네."


"뭐, 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말하기도 했지만, 등산로에 벤치 하나 없겠어? 힘들면 쉬어갈 수도 있을 거야."


소우타 오빠 말을 들으니까, 왠지 마음이 편해졌어.

그래. 뭐, 이렇게 걱정한다고 있는 일이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나저나, 내일은 언제쯤 출발해?"


"아침 7시에 프로듀서가 데리러 온다고 했어."


"그럼 지금 미리 짐을 챙기는 게 낫지 않아? 내일 아침에 챙기려면 힘들 텐데."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대략적으로나마 챙겨야지."


침대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어.

내 비록 등산은 처음이긴 하지만, 대충이나마 뭘 가져가야 할지는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일단 내일 입을 옷은 여기다 두고, 물이랑…. 약이랑, 밴드, 식량, 선크림, 핫팩. 또 챙겨야 할 거 있나? 아, 맞아. 모기약도."

"일단 내가 챙길 건 이 정도인 것 같은데. 나머지는 프로듀서가 가져오겠지?"


대략 짐을 챙긴 뒤에,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어. 일찍 자야 내일의 등산이 피곤하지 않겠지.

불 꺼진 방 안의 침대 위에서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는다. 내일이라는 날을 외면하는 것처럼.



길고 달콤한 잠에서 깨어났을 땐, 야속하게도 내일이 와 있었어. 아니, 이젠 오늘이 됐지.

그렇게도 외면하고 싶었는데, 피하고 싶었는데, 결국에 와 버렸네.


"몇 시지…."


핸드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했어. 지금은 아침 6시 반, 프로듀서가 데리러 온다고 했던 시간으로부터 30분 전이야.


`프로듀서가 아무런 연락도 안 했었네….`


나 있지, 방금까지 프로듀서한테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일정이 취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비록 오늘이 되었어도, 야구를 할 수 있는 권리가 며칠 더 미루어진다고 해도 좋으니, 등산은 정말 싫다고 생각했었고.

하지만 일어나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집을 나설 때까지, 운명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아침 7시, 프로듀서의 차가 우리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느꼈지. 운명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운명은 정해져 있고 나는 그냥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걸.


"하아…."


이젠 정말로 어쩔 수 없어. 가야만 해. 하늘의 이름이 걸려있는 곳으로, 별의 바다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이윽고 프로듀서의 차가 집 앞에 도착했어.


"안녕, 프로듀서."


"좋은 아침이야, 스바루."


전혀 좋은 기분이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출발하고 싶으니까 더 말하지 않았어.


"짐은 뒷자리에 두면 돼?"


"응. 트렁크는 다른 짐들로 가득 차서 자리가 없을 거야."


대체 뭘 준비했길래 그 큰 트렁크가 가득 차? MTB라도 들어있나? 아니, 하다못해 그걸 산으로 다 가져갈 수는 있는 거야? 

하여튼 프로듀서의 생각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예전부터도 그랬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려나?


뒷자리 좌석에 내 가방을 놓고, 앞 조수석에 앉았어.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마음이 심란하네.


"지금도 부담돼?"


"안 될 수가 없잖아. 동네 뒷산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엄연히 일본의 100대 명산 중 하나를 올라가는 건데."

"...사실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어째서 사장님은 나한테 등산시킬 생각을 하셨대? 그런 건 사장님 혼자 해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게…."


"...뭐, 그래도 어제 소우타 오빠한테 여러 가지 얘기를 들었으니까, 조금은 가볍게 나갈 수도 있을 것 같긴 해."


"오빠가 무슨 얘기 해줬어?"


"이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얘기해줬었지. 등산 스케줄이 어차피 주어질 일이었다면 코토하와의 약속을 동기부여로 생각하라고도 했었고, 그 기나긴 등산로에 벤치 하나 없겠느냐며 힘들 때는 좀 쉬어가라고도 했었고, 어차피 힘들 거 어딘가에서 가오잡고 자랑할 수라도 있게 힘내라고도 했었지. 그런 얘기를 나눴었어."


"그래서, 지금은 힘이나 의욕이 좀 나는 것 같아?"


"의욕이 막 엄청나게 난다고는 못 하겠지만, 코토하에게서 야구를 할 권리를 돌려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절대로 물러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 부디 힘내서 스바루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기를 바랄게."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야구하는 게 기본권이냐구w` 했을 테지만, 나한테는 기본권이나 마찬가지야. 예를 들어 누가 `너 숨 쉬지 마`라고 하면 숨 안 쉬고 살 수 있겠어? 못 살잖아. 비유가 이상한 거 아니냐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 야구란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일인걸.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하뉴 시를 지나고 도네강을 건너는 중이야. 그 의미는 스카이산까지 가는 길이 반 정도 더 남았다는 의미지.

야구할 권리를 위해서라도 오르겠다고 다짐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거웠던 마음이 갑자기 가벼워지지는 않았어. 기호지세라고 하던가? 호랑이 등에 업혀서 지옥으로 가는 기분인걸. 보통대로라면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피곤해서 잠 좀 잘 법도 한데, 전혀 잠이 안 와.


"..."


차는 씽씽 달리는데 우리 둘의 공간은 무척이나 조용해.


"심심하네. 프로듀서, 무슨 얘기라도 한 번 해봐."


"그럴까…."


프로듀서는 무언가를 고심한 듯 침을 삼킨 뒤, 다시 입을 열었어.


"스바루, 넌 정말 나쁜 사람이야."


"갑자기 뭔 소리야?"


"SSR을 주지 않았잖아. 쥬얼을 그렇게 쏟아부었는데도 말이야!"


아, 난 또 뭔 소린가 했네. 이거 완전 전형적인 가챠 중독자의 말이잖아.

SSR이라면 아마 내 세컨헤어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걸 끝내 얻지 못했다고 푸념하던 걸 들은 것 같네.


"더 노력해. 그거 모두에게 나오는 게 아니니까. 내 세컨헤어를 영접하고 싶다면 프로듀서가 지금껏 했던 것보다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해야 할 거야."

"그리고, 내 쓰알 못 얻었다고 너무 낙담하지 마. 나도 못 뽑았으니까."

"언젠가는 나오겠지. 원래 가챠는 목표를 가지고 돌릴 때보다 아무 생각 없이 돌릴 때 더 잘 나오더라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가챠 도부났을 때의 그 기분은 무슨 말을 해도 표현이 안 돼.

내 생각에 가챠 도부의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백 마디 위로보다는 한 번의 픽업 당첨이야. 백날 위로해줘 봐야 아무 쓸데 없지. 원하던 걸 내줘야 그동안의 노고가 보답받았다고 생각하게 될 거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한바탕 가챠 도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나니, 다시 조용해졌어. 마치 웅장했던 음악이 다 끝난 느낌인걸.


"프로듀서, 우리가 산에 오르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등산을 할 수 있지."


"그런 말이 아니잖아."


"뭐,주변 경치도 보고, 산의 기운도 받을 수 있겠지."


"어른들은 등산하면서 항상 말해. 산의 기운을 받으라고."

"난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 산의 기운이란 게 대체 뭐고, 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잖아."


"스바루처럼 아직 연륜이 많지 않은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르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프로듀서는 이해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나도 산의 기운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 산신이라도 나타나서 기력을 충전해준다는 건가?"


"등산 좋아하는 어른들의 세계는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지…."


생각해보면 어른 중에서도 등산이 취미인 사람들은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란 말이지. 건강을 위해서 하는 거라는 건 알겠지만, 도대체 산의 기운은 뭔지 모르겠어.

게다가 프로듀서도 산의 기운이 뭔지 모를 만 해. 나처럼 연륜이 많지 않은 아이들은 산의 기운 같은 게 뭔지 모른다고 하지만, 정작 프로듀서도 어른이라고 불릴 정도로 나이 차가 크게 나는 건 아니니까. 우리 둘째 오빠랑 나이가 엇비슷할걸.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산의 기운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는 편이 좋은 걸까, 아니면 어른이 되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좋은 걸까.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달리고 달린 끝에, 마침내 스카이산에 도착했어.


"와버렸네…."


이젠 정말로 시작이야. 물러서고 싶어도 물러설 수 없어.

야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스카이산 정상을 정복하고 말 테다.


뒷좌석에서 짐을 꺼내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려는데, 프로듀서가 나에게 지팡이를 주었어.


"이게 뭐야? 웬 지팡이?"


"`트레킹폴`이라고 하는 거야. 본 적 있지?"


"아, 이걸 트레킹폴이라고 불러? 등산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들고 다니는 걸 자주 보긴 했는데."


"일종의 세 번째 다리 역할을 하는 거야."

"이 트레킹폴은 잡는 법이 있지. 여기 달린 손목걸이에 손을 넣되 아래에서 위로 넣는 거야."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 손잡이를 잡아. 손목 아랫부분이 손목걸이에 무게가 실려야 해."


프로듀서가 말해준 대로 잡았어. 아직은 딱히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안 드네.

뭐, 자세한 건 등산을 하면 알 수 있겠지만. 다만 맹수가 나오기라도 하면 휘둘러서 쫓아낼 수는 있을 것 같아.


프로듀서가 짐을 꺼낸 뒤, 본격적으로 등산길을 오르기 시작했어.

주차장을 벗어나고도 얼마 동안은 평지라, 크게 힘들지 않아.


"스바루, 괜찮아? 안 힘들어?"


"아무렇지도 않아! 평지를 걷고 있어서 그런지 뛰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초반에 너무 기력 낭비하지는 마. 곧 있으면 경사진 고개가 시작되니까."


"걱정하지 마! 내 체력은 수년간 야구로 다져진 덕분에 튼튼하니까!"


자신 있게 말한 뒤, 조금 빠른 속도로 앞서가기 시작했어. 그러면서도 넘어지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지.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경사진 산길 앞에 다다랐어.


'...꿀꺽.'


침을 한 번 삼켰지.


'이제부터 진짜 산길이구나.'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그러나 야구라는 목표 하나를 위해서 정복해야만 하는, 고지로 향하는 길이 저 머나먼 산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어.


"...스바루."


"프로듀서."


"준비됐어?"


"...물론."


비장하게, 말했어.


"...좋아. 가자."


"가자! 정상으로!"


한바탕 기합을 넣은 뒤, 첫발을 내디뎠어. 그러자 단박에 느껴지는, 진정한 자연의 기운이 우리 둘을 덮쳐왔지.

이제 겨우 한두 발 정도 내디뎠을 뿐인데, 절반 정도까지 갔을 때는 그야말로 난리도 아닐 것 같네.


올라가려는데, 문득 이 등산의 취지가 생각이 나더라고.


"아, 맞다. 내 등산 브이로그를 찍는 게 이번 스케줄이었지?"


해서 핸드폰을 켜고 셀카봉에 장착한 뒤, 본격적으로 방송을 켰어.

그러니까 1분도 안 되어서 갑자기 시청자들이 몰려들더라고! 미리 공지가 올라갔던 건가? 난 못 본 것 같은데.


"모두 안녕! 나가요시 스바루야! 어, 사전에 공지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은 등산하려 해."


말한 뒤, 셀카봉의 버튼으로 카메라를 전환해 등산로와 그 끝의 고지를 비추었어.


"여긴 도치기와 군마의 경계선에 있는 스카이산이야. 오늘 여기를 오를 거야."


내 이야기를 들은 시청자들은 대체로 `너무 무리하지 말아라.`, `힘들지 않겠느냐`, `스카이산은 꽤 높아서 스바루가 오르긴 힘들지도 모른다.` 하는 반응을 내보였어.

확실히 힘들지도 모르고, 어쩌면 무리하는 걸 수도 있어. 하지만 올라야 해.


"다들 걱정해줘서 고마워! 하지만 나는 오늘 여기를 올라야만 해."

"사실은 말이지. 극장의 사악한 악당 K가 야구할 권리를 빼앗아 갔지 뭐야! 내가 여기를 올라야만 야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을 수 있대. K가 그렇게 말했어."

"그러니까, 난 오늘 여기 스카이산을 오름으로서 야구할 권리를 되찾고 말겠어!"


그렇게 선포한 뒤, 한 손에는 트레킹폴을 짚고, 다른 손에는 브이로그를 찍는 셀카봉을 들고, 본격적으로 걸음을 옮겼어.


"그럼, 출발할게! 레츠 고!"


한 걸음, 한 걸음. 거칠게 바스러지는 흙과 채여 굴러가는 돌멩이를 넘어, 길고 높은 등산로를 걸어 올라갔어.

다른 건 다 좋은데, 길이 거칠어서인지 걸을 때마다 화면이 꽤 많이 흔들리는 것 같아. 게다가 앞길 살피랴, 촬영 화면 신경 쓰랴. 정신이 계속 분산되는 느낌이기도 하고.

시청자들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내가 등산 방송을 하는 것을 보고 있겠지. 그들도 화면이 많이 흔들리는 게 신경 쓰이려나? 근데 흔들리는 건 어쩔 수가 없어. 등산로가 다 그렇듯 자연 그대로의 비포장도로 수준이라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스바루, 안 힘들어?]


[조금 쉬었다 가,]


[너무 무리하지 마]


브이로그 채팅창에는 나더러 휴식하라는 채팅들이 빗발치고 있어.


"다들 쉬라고 말하네. 그러면 저기 앞까지만 좀 갈게. 저기에 벤치가 있으니까, 거기 앉아서 물이라도 마셔야겠다."


사실 안 그래도 아까에 비해서 체력이 좀 달리긴 해.

체감상으로는 엄청 많이 걸은 것 같은데, 막상 표지판에 적힌 걸 보면, 실제로는 그다지 많이 온 건 아니더라고.


10m쯤 더 가서 있는 벤치에 앉아 첫 번째 휴식을 취했어.


"이야~너무 힘들다! 이제 고작 270m 남짓 온 것 같은데 벌써 체력이 달려!"


사실 270m 정도면 크게 먼 거리는 아니지. 나름대로 힘내긴 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벤치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작은 주전부리로 배를 채우는 동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아마 말을 꺼낼 힘도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스바루?]


[오디오가 비는데.]


[엄청 힘든가 보다wwww]


채팅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지만, 난 신경 쓰지 않았어. 아니, 신경을 못 썼지. 쉬면서 체력 충전하는 데에 정신이 다 팔려서 다른 게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

왜 그런 거 있잖아. 한 번에 너무 힘을 많이 쓰면 시야가 흐려지면서 눈앞이 뱅글뱅글 도는 그 느낌. 지금 딱 그런 느낌이야. 힘들어서 브이로그고 채팅이고 뭐고 전혀 눈에 안 들어와. 심지어는 곁에 프로듀서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식되지 않았을 정도니 말 다했지.


그렇게 10분 정도 휴식한 뒤, 짐을 정리하고 일어났어.


"잘 쉬었다~! 그럼 다시 출발할게!"


그렇게 말하면서 화면을 보는데, 채팅창에는 온통 `오디오가 비었다`라느니 나더러 `무슨 말이든 해달라`느니 하는 채팅들로 가득 차 있었어.


"아, 뭐야. 다들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네! 미안! 너무 힘들어서! 이제부터는 아까의 분량까지 말하는 걸로!"


막상 그렇게 말하니까 이번에는 많이 말하지 말라네. 말할 힘으로 산 올라가래. 이런 변덕쟁이들.



지금 그야말로 스카이산을 올라가고 있어. 야구할 권리의 쟁취를 위해 올라가고 있지.

이렇게 말하니까 단애절벽을 오르는 추파카브라의 심정이 이해가 갈 것 같네. 모르긴 몰라도 추파카브라도 엄청 힘들었을 거야…. 솔직히 난 아직도 단애절벽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생각하니, 입에서 자연스럽게 단애절벽 추파카브라 노래가 흘러나왔어.


"단애절벽 시련의 만남~단결 단단히 불가능은 없어!"


처음엔 몰랐는데, 이 단애절벽 추파카브라 가사가 지금의 나랑 은근히 비슷하지 않아? 지금 난 시련의 산을 오르고 있고, 프로듀서와 함께 단결하면 무서운 건 전혀 없지. 그리고 정열적으로 팬들과 코토하의 기대를 뛰어넘어주겠어. 그것이 아이돌이니까.


사실 말이야. 난 100대 명산이라는 카테고리를 이해할 수가 없어. 무슨 기준으로 선정한 건지도 모르겠고. 아무리 자연환경이 좋고, 나무가 어떠니 풀이 어떠니 해도 결국엔 그냥 흔한 산 중 하나일 뿐이잖아. 그런 특성들은 다른 산들도 다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정상의 풍경이 멋진 건 그 주변 환경의 조형이 잘 되어서 멋진 거지 산이 뭘 해줘서 멋진 게 아니란 말이야.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대체 무슨 기준으로 명산인지 뭔지를 선정한 거야? 산이라는 존재 속에는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걸 찾으러 오는 거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산을 올랐어.

10m, 20m, 50m, 100m, 200m. 올라가면서 중간중간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브이로그로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


"만약에 본인이 등산을 좋아한다면 한 번쯤 올라와도 좋다고 생각해. 건강해지는 느낌인걸!"

"만약에 본인이 등산을 즐기지 않는 편이라면…. 그냥 오지 말고 집에서 쉬거나 다른 일을 해. 여기 너무 힘들다."


진짜야. 등산 애호가들에게는 사랑받는 산일 테지만, 그렇지 않으면 굳이 와야 할 이유는 없는 곳이니까.



휴식과 등산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벤치가 있는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어.


"여기가 마지막 벤치래. 여기를 지나면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쉴 수 없어."

"어떻게 할래, 스바루? 그냥 갈래, 아니면 쉬었다 갈래?"


"음…. 쉬었다 가는 게 좋겠지. 앞으로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모르고, 또 이게 마지막 휴식 기회라는데 걷어찰 수는 없잖아."


말한 뒤, 벤치에 앉아 마지막 휴식을 즐겼어. 휴식이라고는 해도 아까까지 주전부리도 충분히 먹어뒀고 물도 많이 마셔둬서 뭔가를 더 먹지는 않았지만.


그냥 앉아서 멍때리고 있었어. 그 순간만큼은 야구가 뭔지, 아이돌이 뭔지, 명산이 뭔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지. 그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경지에 이르는 거야. 극한의 정신적 단순함을 추구한달까?


[스바루 살아있어?]


[눈뜨고 자는 거 아니냐 저 녀석]


[완전히 정신줄을 놓았구만w]


시청자들이 뭐라고 그랬었던 것 같긴 한데, 멍때리느라 못 봤어.

그나저나 고도가 높아지니까 공기도 달라진 느낌이야. 산 밑의 공기는 기계적인 연기가 많이 남아있어서 인공적이고 익숙한 반면, 지금 여기는 그런 기계 향이 전부 사라지고 오직 자연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바람을 타고 내 주변을 돌고 있어. 익숙한 느낌은 아니지만, 오히려 익숙하지 않아서 더 기분이 좋아.


20분 정도 쉬다가, 다시 일어나 짐을 챙겼어. 사실 이렇게까지 오래 쉴 생각은 없었는데, 하염없이 멍때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


"다 쉰 거야?"


"응. 왠지 너무 오래 쉰 느낌인데. 진작에 체력이 다 회복되고도 남았을 수준이야!"


"좋네! 그럼 마지막을 향해 힘차게 가자고!"


"오오!!!"


요란하게 기합을 넣고 발걸음을 옮겼어. 우리가 내지른 기합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왔지. 이런 청량한 메아리를 실제로 들어보는 건 처음인데.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에코구나.


"방금 메아리 들었어? 엄청났지?!?!"


[아, 미안. 못 들었어. 소리가 너무 작아서.]


[방송 음질이 메아리까지 잡지는 못하나 봐.]


"아, 진짜? 그럼 한 번 더 외쳐볼까?"


[됐네요~빨리 올라가세요.]


[그렇게 메아리를 잡으려고 하다가는 목 다 상한다?]


[방송상의 한계 때문에 못 잡는 것뿐이야. 우리가 스바루 곁에서 직접 듣지 않는 이상은 영원히 듣지 못할걸.]


시청자들은 메아리를 잡으려는 나를 말렸고, 하는 수 없이 나는 프로듀서와 함께 마지막 휴식처를 떠나 정상을 향한 여정에 남겨진 등산로를 계속해서 걸어 올라갔어.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옆에 프로듀서가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야. 만약에 나 혼자 올라갔으면 너무 힘들어서 중간 벤치에서 적당히 뭐 먹고 그냥 내려왔을 것 같은데 말이야. 설령 야구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포기했을 거라고. 근데 프로듀서가 옆에 있어 주니까 힘들기는 할지언정 계속 올라가야 한다는, 아니…. 올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멈추지 않아. 뭐 때문인지 모르겠네. 야구할 권리에 대한 욕망 때문인 걸까, 아니면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단애절벽과도 같은 산을 오르는 게 좋았던 걸까.


더욱 힘내서 산길을 올라갔어. 프로듀서 말에 따르면 반복되는 등반과 휴식 속에서 마침내 2000m가량 올라왔고, 이제 150m 정도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하네!

그 말을 듣자, 고지가 얼마 안 남았다는 기쁨에 더욱 힘이 났어. 딱히 지치지도 않았는데도 더 힘이 났지. 비유하자면 밀리시타에서 스태미나가 바닥나지도 않았는데 생일용 롤케이크 먹고 게이지 오버하는 거랑 같아. 그 정도로 난 지금 에너지가 넘치고 있어!


"어~이, 스바루! 같이 가!"


"빨리 와, 프로듀서! 고지가 코앞이야!"


"나 참, 스바루 쟤는 갑자기 왜 저리 활기가 넘친대."


그런 뒤 브이로그 화면을 전환해서, 시청자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고지를 보여주며 외쳤지.


"모두 저기 봐봐! 고지가 보여! 곧 있으면 도착할 것 같아!"


[신났구만w 힘내, 스바루!]


[파이팅! 파이팅!]


[엄청 기운차네w]


시청자들도 채팅으로 나를 응원해주었고, 더욱 힘을 받아 힘차게 올라갔어.

내가 그렇게 올라가는 동안, 프로듀서도 딱히 지친 기색 없이 나를 따라 뛰어 올라오고 있더라고.


"프로듀서! 여기야! 여기!"


"가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가벼운 뜀박질로 단숨에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어.


"이제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50m 정도만 더 가면 될 것 같아."

"네에, 프로듀서. 나 말이지, 이런 데 오면 한 번쯤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그래?"


"잘 봐봐. 히얏!"


말한 뒤, 그 자리에서 폴짝 점프했어. 그리고 착지했지.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


"뭘 한 거야, 스바루?"


"왜 그런 거 있잖아. 방송에서 이렇게 점프하면 목적지로 순간이동 되는 거."

"만약에 지금 내가 브이로그로 찍고 있는 이 방송을 편집할 수 있다면, 난 아마 지금쯤 정상에 올라가 있을 거야."


"...이거 생방송인 거 알고 있지?"


"물론 알지. 그래서 더 아쉽단 말이야. 녹화방송이면 적당히 편집할 수도 있을 텐데."


물론 녹화방송이면 중간중간 잘라가며 적당히 편집할 수야 있긴 하겠지.

하지만, 생방송이기에 오히려 더 값진 게 아닐까 싶어. 코토하로부터 야구할 권리를 되찾을 때 이 영상을 보여주면 아무 반박도 못 할 테니까.


마지막 남은 길은 프로듀서와 팔짱을 끼고 올라가려 해. 혼자 가는 것보다는 옆에 누군가가 꼭 붙어서 지탱해주는 게, 넘어질 확률도 낮고 좋잖아?



그렇게 프로듀서와 손에 손잡고, 아니지. 팔에 팔 잡고 마지막 길을 오른 끝에, 마침내 우리는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어.

처음 이 산에 발을 내디뎠을 때가 아침 9시 반이었는데, 가다가 쉬다가, 가다가 쉬다가 하면서 올라오니, 오후 2시를 막 지나던 참에 정상에 도착하게 되었어. 5시간 동안, 이 높디높은 산을 오른 거야.


"모두 여기를 봐줘! 드디어 정상에 올랐어!!!"


나와 프로듀서, 그리고 브이로그 화면 너머에 있는 시청자들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스카이산을 둘러싼 광활한 숲과 대지였어.

아까까지는 나도 '고작 이걸 보기 위해 등산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라고 했었지만, 지금 내가 정상에 올라 이 풍경을 보니까,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경치가 주는 광활하고도 조금은 위압적인 분위기를. 그리고 이 때문에 사람들이 고된 고생을 해가면서까지 산에 오른다는 걸.

뭐, 그것만으로는 등산의 진정한 의미를 내가 이해했을 리는 없지만 말이지!



어쨌거나, 정상까지 올라왔으니까 그냥 갈 수는 없겠지. 기념으로 뭐라도 하고 싶어.


"프로듀서."


"왜 그래, 스바루?"


"프로듀서 가방에 먹을 거 남았어?"


"아직 몇 개 정도 남긴 했어. 왜 그래?"


"정상에 올라온 기념으로 가벼운 만찬이라도 벌이고 싶은데, 어때?"


"좋아. 그러면 여기에 돗자리를 깔자."

"스바루, 주변에서 큰 돌멩이를 4개 정도 주워 와줄래?"


"오케이! 잠깐만 기다려줘!"


재빠르게 내려가 돌멩이들을 주워 왔어. 사실 아까 올라올 때 몇 개의 커다란 돌멩이를 봐두었기 때문에, 괜히 돌을 찾느라 이리저리 헤맬 필요 없었지!


가져온 돌멩이들을 돗자리의 네 모서리에 하나씩 놓아두었어. 이 정도면 바람이 불어와도 끄떡없을 거야.


돗자리에 앉아서, 프로듀서가 꺼낸 간식 위에 나의 간식들을 두었어.

사실 여기 올라오면서 중간중간 휴식을 취할 때 먹기 위해 주전부리들을 챙겨오긴 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어. 배가 고프단 느낌보다는 목이 마른다는 느낌이 강하게 나를 흔들었거든. 그래서 먹을거리보다는 마실 거리를 더 많이 먹었지. 1L짜리 물통 3개를 다 비웠을 정도로. 그런데도 땀을 무척 많이 흘려서 그런 건지 꽃 따러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들더라.

지금도 그래. 전혀 볼일 보러 가고 싶다는 느낌이 안 들어.


자리에 앉아 주전부리 봉지를 뜯었고, 프로듀서는 차를 따라줬어. 차라고 해도 막 거창한 느낌의 그런 건 아니고 보리차 같은 거지만.


"잘 먹겠습니다~"


차를 받아 들고 한 모금 마셨어. 그런 뒤에 주변을 둘러보니까,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더라.

왜 보통 무념무상을 표현할 때 그런 말 하잖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지금 딱 그런 느낌이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하늘은 하늘이고, 돌은 돌이다.' 하는 생각만 들더라고. 내가 지금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어. 단지 이렇게 차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니 저절로 아무 생각이 없어져.


"스바루."


"왜 그래, 프로듀서?"


"정상에 올라오니까 기분이 어때?"


"...아무 생각이 없어. 정말로 아무 생각이 안 들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만감이 교차한다거나 엄청나게 기쁘다거나 성취감을 얻었다던가 하진 않았어. 오히려, '드디어 올라왔구나' 하는, 그런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

"지금도 그래. 여기 이렇게 앉아서 만찬을 즐기고 있지만, 그건 정상등반에 대한 기념인 느낌이지 정말 기쁘다던가 해서 그런 건 아냐."

"...프로듀서는 어때? 같이 정상에 올라왔는데. 프로듀서는 나와는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 같아."


"사실, 나도 크게 성취감을 느끼진 않았어. 이 산에 온 건 사장님 명이 있어서도 있지만, 스바루 너를 에스코트해주기 위해 온 거야. 이 산속에서 길을 잃거나 다치면 안 되잖아."

"하지만 내가 제일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던 건, 스바루 네가 성취감을 못 느꼈기 때문이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유명한 문구가 있지.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는 말. 만약 스바루 네가 정상을 오른 것에 성취감을 느꼈다면, 나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네가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으니, 나도 느끼지 못한 거지."

"스바루를 탓하는 건 아니야. 스바루는 스바루 나름대로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나도 특별한 성취감은 없었어."


프로듀서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고 있어. 내가 성취감을 못 느꼈으니 프로듀서도 느낄 수가 없었다는, 그런 원망이 아니라는 거지.

하지만 별수 없잖아. 정말로 정상 등반에 대한 성취감은커녕 오히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는데.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니고.


아, 참. 내가 이렇게 말한 게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기껏 오랜 시간 동안 올라왔더니 한다는 대화가 '힘들게 정상까지 올라왔지만 딱히 보람은 없다.' 하는 뉘앙스의 말들이니까.

사실 방송은 아까 종료했어. 일부러 생략해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대로 헤어지는 인사랑 방송 봐줘서 고맙다는 말까지 다 했다고?



차를 마시면서 높새바람을 즐기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어.


"아, 그러고 보니까. 나는 야구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 이 산에 올라왔잖아."

"분명 코토하는 '프로듀서가 가져온 첫 번째 스케줄'을 이행하면 그 권리를 돌려주겠다고 했었어."

"프로듀서, 이게 첫 번째가 맞는 거지?"


"글쎄…. 여러 개의 스케줄을 정리하다 보니 뭘 가장 먼저 받았는지는 잘 기억나질 않아."


이 말에,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어. 그럴 수가! 기억을 못 할 수가! 어떻게 그럴 수가!


"하지만,"

"이게 첫 번째가 아니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이게 첫 번째여야 해! 이게 첫 번째가 아니면…. 그러면 이 산에 올라온 의미가 없다고!


"비록 코토하가 네게 '첫 번째 스케줄'을 이행하고 오면 야구의 권리를 주겠다고 말했다지만, 이 등산 스케줄이 첫 번째인지 두 번째인지 코토하가 어떻게 알겠어? 쉽게 말해 스바루 네가 '이게 첫 번째 스케줄이 맞다' 라고 잡아떼도 전혀 반박할 수 없을걸."


생각해보니 프로듀서의 말이 타당한 것 같아. 코토하가 신도 아니고 나의 모든 것을 코토하가 알 수는 없겠지. 게다가 이 스케줄의 순서는 나도 모르고 프로듀서도 몰라. 그냥 보였으니까 내게 주어졌고, 주어졌으니까 했을 뿐이야. 우리 당사자들도 모르는 걸 코토하가 알 리가 있겠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게다가 코토하가 약속을 안 지키는 애도 아니잖아? 분명 돌아오면 스바루에게 야구할 권리를 줄 거야."


그럴 거야. 나한테 야구할 권리를 돌려줄 거야. 여기 입사해서 아이돌 활동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코토하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 그러니까, 분명히 야구할 권리를 내게 돌려줄 거야.



짧은 정상 등반 기념 만찬을 마치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정리한 뒤 다시 길을 내려갔어. 올라갈 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내려갈 때는 정말로 쉬워. 너무 쉬워서 자칫 미끄러지기 쉬우니 조심해야지.

내려가는데, 어째 프로듀서가 더 서두르는 것 같았어. 왜 그러지? 급한 일 있나?


"프로듀서, 왜 그리 서두르는 거야? 화장실 가고 싶어?"


"그런 게 아니야. 다만 급한 업무가 있어서 그래. 빨리 내려가야 할 수 있어."


"급한 업무?! 그런 걸 내팽개쳐두고 여기 온 거야?! 아니면 지금 막 주어진 거야?"


"3시에는 반드시 업무를 봐야 해!"


"대체 무슨 업무길래 그래?"


"가챠가 갱신돼!"


가챠 갱신은 중대사지. 그걸 위해 우리를 프로듀스하는 프로듀서도 있다고 하니까.


"가챠 갱신은 3시잖아. 지금 아직 2시 40분도 안 됐어. 여유롭게 내려가도 괜찮을 거야. 어차피 이 산은 20분 안에 내려갈 수도 없어."

"중간중간에 벤치도 있고, 휴게소도 있으니 여차하면 거기서 쉬면서 확인해도 되고."

"그리고, 조급함에 뛰었다가 넘어지면 위험하거든. 그러니까 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을 편하게 해!"


내 말에,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어. 그리고 나도 트레킹 폴을 짚고 조심스럽게 산길을 내려갔어.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에 비해 몇 배는 더 편하지만, 그만큼 위험해. 넘어지기 쉬우니까.


그렇게 하산하고, 중간에 3시가 되어서 근처 벤치에 앉아 가챠 갱신 확인하고(에밀리랑 히나타의 세컨헤어 가챠더라고), 다시 일어나서 산길을 내려가기를 반복했어.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4시 반에 가까워졌고, 우리도 산어귀에 거의 다 와가. 산어귀가 가까워진다는 건 곧 주차장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지. 곧 있으면 집에 갈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무척 기쁜걸.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


"프로듀서."


"왜 그래, 스바루?"


"생각해보니까 이 기획, 사장님이 하셨다 그랬던가?"

"그럼 사장님도 여기 스카이산 올라 보신 적 있으실까?"


"글쎄, 사장님이 '등산은 좋은 일이다' 라고 강조하신 적은 있지만, 정작 등산 가시는 걸 본 적이 없네."


프로듀서가 대답하자, 나는 한순간 살짝 사악한 미소를 지었어.


"그런가. 그럼 어쩔 수 없지. 사장님께도 스카이산 공기 맛 한 번 보여드리자고!"

"일명 '산타 프로젝트' ! 어때, 프로듀서!"


"그거 좋은 생각인데, 스바루! 돌아가면 당장 기획서 써야겠어!"


나만 힘들 수 없지. 사장님, 사장님도 여기 스카이산에 올라와 보라고!


사장님 등산시키는 기획이 구상되자, 우리는 곧바로 차로 달려갔고, 돌아가는 내내 사장님을 등산시킬 생각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어. 어째서냐고? 그야 당연하잖아! 이런 좋은 기획은 빨리 완성될수록 좋은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작에 방송 끄길 잘했어. 만약에 방송 중에 이 기획이 구상됐다면 사장님이 먼저 선수를 쳐버려서 시작도 못 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스바루는 어떻게 할 거야?"


"뭐를 어떻게 해?"


"곧바로 집에 데려다줄까, 아니면 사무소에 들를 거야?"


"음, 집으로 데려다줘. 야구할 권리를 돌려받는 건 내일쯤에 해도 괜찮으니까."

"프로듀서는 어떻게 할 거야? 바로 사무소 갈 거야?"


"사무소로 가야지. 사장님 등산 기획서 때문에라도."


"아하핫! 맞네! 그게 있네!"


"스바루도 기대돼?"


"안 될 수가 없지! 원래 좋은 건 나눈다잖아!"

"기획서 쓸 때 미사키나 코토리가 동조해줬으면 좋겠다. 3인의 법칙이라고 있잖아. 사람들은 한두 명이 할 땐 신경 쓰지 않지만 3명이 하면 그때부터 신경을 쓴다는 사회적 효과."

"코토리랑 미사키가 옆에서 바람 좀 넣어주면 사장님도 하지 않을까?"


"그거 좋은 생각인데? 한 번 코토리 씨와 미사키 씨를 꼬드겨봐야겠다."


그렇게 말하는 프로듀서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어. 프로듀서도 이 기획 때문에 신났나봐! 아하핫!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어.


"집에 왔네."


"잘 가, 스바루.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들어가서 푹 쉬어."


"고마워, 프로듀서! 프로듀서도 오늘 하루 같이 등산해줘서 고마워! 프로듀서도 너무 늦지 않게 들어가! 아, 기획서는 잘 쓰고!"


이 말을 하고서 한바탕 웃은 뒤, 프로듀서의 차는 떠나고 나는 집으로 들어갔어.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라, 스바루! 등산 잘 다녀왔어?"


"힘들긴 했는데, 그래도 잘 다녀온 것 같아!"


"그래. 어서 씻고 푹 쉬거라."


욕조에 담긴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나도 모르게 몸이 축 늘어지고 노곤해졌어.


'여기서 잠들면 안 되겠지…. 잠든다 해도 침대에서 자자.'


다 씻은 후 침대에 누웠는데, 눈이 저절로 감기더라. 피곤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따뜻함과 푹신함의 환상적인 콜라보가 내 몸의 긴장을 순식간에 풀어준 걸까.

결국 난 감겨오는 눈을 뜨지 못하고...순식간에 잠들어버렸어.



길다면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땐 밤 10시. 내 기억이 맞다면 잠들었을 때는 5시 20분경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이런 시간이야. 꽤 오래 잤네, 나.

핸드폰을 켜니 프로듀서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어. 발신 시간이 7시 13분. 내가 한창 자고 있었을 시간이네. 어쨌든 전화가 왔었으니 콜백하지 않을 수 없겠지.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몇 번 가더니, 곧이어 프로듀서가 전화를 받았어.


"여보세요, 스바루?"


"전화했었더라, 프로듀서. 자고 있어서 못 받았어."


"아, 자고 있었구나. 잘 잤어?"


"엄청 깊게 잔 것 같아. 5시간 정도."

"그나저나, 왜 전화했었어?"


"아, 다름이 아니고, 사장님이 등산 기획서를 받아주셨어."


"아 진짜?! 아하하핫!!!"


등산 기획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웃음부터 터져 나왔어. 결국에 성공했구나!


"처음에는 잠깐 생각하시는 듯한 눈치였는데, 사장님 옆에서 코토리 씨랑 미사키 씨께서 한번 해보시라고 바람을 계속 넣으시니까 그제야 받아주셨지!"


"둘 다 나이스 어시스트네! 아주 좋아!"

"그래서, 산에는 언제 간대?"


"기획서에 따르면 내일 바로 가시게 될 거야!"


"내일 바로?! 완전히 내가 하던 거랑 똑같네!"


"좋은 건 빨리 나누는 게 좋을 테니까!"


"아하하핫! 맞지! 그거지!"


10시 정도면 이렇게 크게 웃어도 되는 시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장님의 등산기획서 이야기를 들으면 웃지 않을 수가 없는걸!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프로듀서가 내게 말했어.


"아, 맞다. 스바루. 아까 코토하를 만났어."

"코토하가 이렇게 전해 달래."


'스바루, 네가 등산 스케줄을 해낸 모습을 보았어. 어려운 일인데도 크게 불평하지 않고 올라갔더라. 정말 수고 많았어. 약속한 대로 야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줄게. 대신 안전한 곳에서만 해야 한다?'


코토하로부터의 전언을 전해 듣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이 솟아올랐어.


'이거야…. 이걸 위해서 내가 이 산을 올랐던 거야. 야구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그 높은 스카이산을 올랐어. 그리고 드디어….'

"그런데, 어째서 프로듀서를 통해 전해준 거야? 내일 내가 극장 갔을 때 직접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코토하가 오늘 저녁부터 사흘간 해외 로케를 가게 된대. 그래서 나를 통해서 미리 전해주려 한 거지."


"그렇구나. 어쨌거나 나의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어서 무척 기쁘네!"


"모두라는 건 사장님 등산시키는 것도 포함되는 거야?"


"아하핫! 그렇지! 그걸 못 해내면 밤에 잠도 못 잘 테니!"


사장님을 등산시키는 기획서 얘기는 아까부터 한 10번은 넘게 한 것 같은데, 할 때마다 너무 웃기단 말이지ㅋㅋㅋㅋㅋ.


"여하튼 알겠어! 시간도 늦었으니 프로듀서도 편히 쉬어야지. 내일 다시 만나자!"


"알았어. 내일 만나자, 스바루! 좋은 밤 되길 바라!"


전화는 끊어졌고, 나는 다시 어둠 속의 침대에 누웠어.


오늘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지. 군마와 도치기 사이의 스카이산에 올라가는 동안 무척 힘들었던 것부터, 쉬어가는 동안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던 티없이 맑은 산공기와 바람들, 스카이산 정상에서 보았던 자연의 경치들, 그리고 사장님 등산 기획과 야구할 권리 쟁취까지.

비록 스카이산 등산은 정말 힘든 여정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웃을 일이 있었다는 점에서 오늘이란 날은 결코 헛되지 않았어.

=========================

써보았습니다.

이 글은 Weissmann항께서 만드신 스레드 '티타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두 번째 티타임의 주인공은 나가요시 스바루이고, 카테고리는 '고산'+'산책'입니다. 딱히 산책은 아니었고 차 마시는 내용도 별로 없었지만요.

이 글을 쓰면서 '창작의 고통이란 게 이런 거구나'를 처절하게 실감했습니다. 누구를 주제로 써야 할지도 몰랐고, 카테고리도 뭘로 하면 좋을지 도통 생각이 안 났으니까요. 다행히도 3편과 4편은 아이돌과 카테고리 모두 정해놓았습니다. 무려 1편 쓸 때부터 기획되어 있었죠.

지난 번에는 A4용지 15장 분량을 썼었는데, 이번엔 4장 더 많은 19장 분량을 쓰게 됐네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꽤 많이 쓰게 됐습니다.

미나미도령 앞으로도 간바리마스하겠습니다.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