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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와 머리아픈 프로듀서 - 8(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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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6, 2022 05:51에 작성됨.

기대달라. 시즈카는 프로듀서에게 말했다.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기대달라.


프로듀서는 잠시 시즈카를 바라보았다. 좀전까지 그렇게 훌쩍거렸는데, 어느정도 진정된 후 생각해보니 참 웃기는 일이었다.


이미 진작부터 기대고 있었는데.


어쩌면, 처음 오디션에서 만난 이후로 서로 연이 생긴 이후로부터는 전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손에 손을 맞잡고 있는 관게였을 텐데.


다시 생각해보니, 한 명이 조금이라도 더 흔들린다면 둘 다 넘어져버릴만큼 서로가 기대고 있는데도, 그런 말을 들을 지경이라니.


그리고 어째서 자신이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행동했는지도 이미 스스로는 가늠하고 있었다. 지레짐작. 곡해에 가까운 지레짐작 때문이다.


"시즈카. 나는 너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니?"


"어떤 존재냐뇨. 이미 전부터 계속 말했잖아요."


"그래. 그럼 좀 다르게 물어볼게. 넌 내가 너에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존재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


"아뇨."


단박에 답이 나왔다. 아니요.


"그래. 그런데, 이제 알 것 같아서... 아니. 지금까지 알고 있었는데 눈을 돌리고, 도망치고 있었단 걸 알았어."


프로듀서는 시즈카의 손을 잡았다.


"내가 왜 무서웠는지 말해볼게."


"네."


"나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비틀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어.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 손 내밀면 그 사람마저도 비틀릴 만큼."


"...제가 겨우 그 정도로 꺾일 거라고 생각한 거에요?"


"어쩌면."


"정말, 제가 그렇게 꺾이지 않게 해준 사람이 누군데... 말 안했으면 저 정말 서운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무서웠는걸. 넌 지금까지 많은 짐을 지고 있는데, 그동안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이 또다른 짐으로 다가온다면 버티지 못할 것만 같았어."


"전 소중한 사람을 짐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프로듀서도 그렇잖아요."


"그렇지만... 나를 너무 못 믿어서, 어쩌면 겉으로만 그렇게 행동하고 속으론 짐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참... 진짜 그랬으면 힘들다고 절 무턱대고 찾아댔겠냐고요."


"......"


"제가... 그동안 솔직하지 못해서 화도 내고, 아이돌 활동을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걸, 프로듀서는 짐으로 여기지 않았다고요."


적어도 제가 보기앤 그랬어요. 하고 덧붙이며. 시즈카는 프로듀서의 어깨에 살짝 기대왔다. 


"프로듀서. 자기 자신을 못 믿겠다면 제가 하는 말은 믿을 수 있죠? 프로듀서는 그런 사람 아니에요."


"고마워."


"그리고, 있잖아요. 프로듀서. 저도 사실 말 안한게 하나 있어요."


"뭔데?"


"엄마랑 청소 하면서 봤어요. 안방에, 제가 아이돌 인터뷰 코너에 나온 잡지가 있었어요."


그 말에, 프로듀서는 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시즈카를 바라았다.


"나름 숨긴다고 숨긴 것 같았는데, 제가 나온 부분만 좀 더 손이 탔어요."


"...다행이네."


"정말! 그냥 다행이네로 끝날 게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다른 말이 생각이 안 나."


서로가 마음의 응어리도 털어내고, 하고싶은 말도 많이 헀다. 그러고 나서 응어리가, 그리고 그 응어리의 여파가 가신 뒤 밑바닥에 있던 것을 좀 긁어내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뭐라고 답할지 생각이 안 났다.


프로듀서는 갑자기 술이 마시고 싶었다.


술이, 정말로 몹시 쳐 뒈지게도 마시고 싶었다. 


"술 마시고 싶네."


"생각난 답이 그거에요?"


정말로 생각난 답이 그거였다는 사실에, 프로듀서는 속으로 쓰게 웃어보였다. 웃기기도 해라.


"맨날 술마신다고 아침에 정신도 못 차리고. 자기 방도 그렇게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미안."


"마시지 말라곤 안 했잖아요. 마셔도 좋아요. 전 프로듀서를 믿는걸요."


살짝 기대며, 시즈카는 목소리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말해보였다.


그 말 이후, 프로듀서와 시즈카는 아무 말 없이 서로 기대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며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은 오래 가는 것 같으면서도 참 짧았다.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으니까.


프로듀서는 다시 자신의 일을 하러 가야 했고, 시즈카는 다시 아이돌의 일을 하러 가야 했다.


"...곧 레슨인데. 진짜 가기 싫어요. 어떤 면으로는 미라이나 츠바사가 이해가 될 것 같아요."


"나도 일하러 가기 싫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렇죠. 그럼. 잠깐만요."


시즈카는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한 굳은 눈으로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하고 프로듀서도 시즈카를 바라보고 있을 때, 시즈카는 프로듀서가 움직일 틈도 주지 않고 프로듀서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잠깐 맞추고 바로 뗐다.


"지, 지금건 빨리 잊고 넘겨요! 그럼! 전 가볼게요!"


프로듀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달콤한 순간은 정말 잠시뿐이었던 것처럼 금새 사라졌지만, 입술에 남아있는 따스함은 떠나가지 않았다.


홀로 앉아 화면을 보며 키보드를 타닥타닥 거릴때도, 시즈카 없이 홀로 점심밥을 먹는 순간에도, 시즈카를 바래다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순간에도 떠나가지 않았다.


하늘이 노란색으로 물들 쯤 레슨이 끝난 시즈카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실 앞에 쭈뼛쭈뼛 서있기만 했다.


프로듀서는 시즈카를 바래다주기 위해서 사무실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시즈카가 계속 오지 않자 문을 열었다. 


"...!"


"저, 시즈카?"


프로듀서가 문을 열자 본 것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벽에 계속 등을 기대고 있었던 시즈카다.


"그, 데려다줄까?"


"......"


시즈카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고개를 푹 숙이면서 살짝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프로듀서가 시즈카를 데려다주러 가는 동안, 시즈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프로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그렇게나 많은 말과 몸짓이 오고갔는데, 차 안에서는 아무것도 오고가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시즈카가 아무 말도 못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자기 자신도 아무런 말을 못 할 지경인데, 시즈카는 오죽할까 싶어서였다.


차가 시즈카네 집 앞에 서자마자 시즈카는 프로듀서가 작별인사를 할 틈도 없이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시즈카가 집 안에 들어가고 나서도 한창이나 차는 움직이지 않다가, 조금씩 비척비척 움직여서 사무소로 돌아갔다.


프로듀서는 사무소로 돌아간 다음 사무실 문 앞에 기대서 잔업을 할까 고민하다가 고개를 젓고는 사무실 안에 있던 짐들을 챙기고 다시 차에 탔다.


차에 탄 프로듀서는 프로듀서가 사는 집 근처 편의점에 내렸다. 프로듀서는 편의점 안에 들어서자마자 술이란 술은 다 쓸어담을 기세로 술병들이 담긴 냉장고와 계속 눈싸움을 하다가 고심하고 고심하여 몇 병을 골랐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야심차게 집에 돌아와서는 술병들 중 하나를 고르고는 컵라면에 물을 올렸다. 불투명한 술병을 바라보자니, 유리병 너머로 프로듀서의 얼굴이 비춰왔다.


프로듀서는 한 번 피식 웃으며 술병을 따고는 안주도 없이, 잔도 없이 깡으로 병에 입을 대고 술을 한 모금 했다.


일단 한 모금. 그리고 컵라면이 다 익었을 때 면발을 후후 불고 한 젓가락 하기 전에 또 한 모금. 그리고 한 젓가락 하고 한 모금.


그렇게 샀던 술 중에서 가장 도수가 약한 술을 딱 한 병 비웠을 때. 프로듀서는 남은 술병들을 계속 바라보기만 했다.


프로듀서는 술이 더 이상은 안 들어가는 듯이, 몸에서 안 받는 듯이.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듯이, 그렇게 자신을 빨아들이고 잡아먹고는 했던 술병을 더는 들지 않았다.


정말 몸이 받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신다면 얼마든지 더 마실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번 더 병에 손을 댄다면 몸을 더이상 못 가눌만큼 마시게 된다는 생각도 들고, 다시 전처럼 돌아가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서움과는 달랐다. 프로듀서는 문득 시즈카의 아버지가 생각났다. 시즈카는 그의 아버지를 꽤나 불신했지만, 사회인 이전에, 한명의 사람과 사람으로서 대담을 했었던 시즈카의 아버지는 나름대로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연예계 일이라는 것은, 지금까지 사회인으로서 자신이 지금까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시즈카가 자신의 앞에서 스스로가 얼마나 힘든지 고백하며 울 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서웠다고.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까지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막중한 부담감도, 책임감도 전부 짊어진 채. 아니, 오히려 딛고 일어선 채로 큰 무대에 서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시즈카의 아버지는자신의 생각은 변치 않았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하지만, 시즈카의 무대에서는 눈을 뗄 수 없었다며,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건넸다.


진짜로 달라지려고 하는 사람은 말만 다르게 하지도 않는다. 진짜로 달라지려고 하는 사람은 행동을 다르게 하지도 않는다. 진짜로 달라지려고 하는 사람은 생활을 다르게 한다고 했었다.


프로듀서는 술병 하나를 들었다. 술병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술병의 뚜껑을 열고는 내용물을 전부 하수구에 흘려보냈다.


참 더럽게도 아까웠다. 하수구 안으로 쏟아지는 술이 아까웠고, 바로 집에 가지 않고 괜히 편의점을 경유해서 간 시간도 아까웠고, 그리고 거기 기서 낸 돈도 아깝다. 


하지만, 그 아까움이 저 술을 입에 대고 싶다는 감정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프로듀서는 남은 술병들도 전부 가져다가 하수구에 따라버렸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평소에 자기 전에 먹던 약도 먹지 않고 그대로 자리에 누워 잠에 들었다.


"...으으."


약을 먹지 않느라 깊게 잠들지 못한 것인지, 프로듀서는 검푸른색인 하늘 밑에서 깨어났다. 어제까지만 해도 눈을 뜨면 짙게도 내리쬐는 아침 햇살은 참 잔인하게도 느껴졌지만, 오늘만큼은 상황 역전이다.


아침 햇살이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침 햇살을 기다리는 상황. 프로듀서는 창문을 열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공기가 참 시원했다.


프로듀서는 아직은 술기운이 남아있는 듯한 숨을 검푸른 하늘 밑에 계속 내쉬었다. 하늘이 점차 옅은 푸른색으로 물들고, 하늘과 땅의 틈새 사이로 샛노란 빛이 나올때까지.


아직 해는 뜨지 않았지만, 하늘을 바라보며 프로듀서는 활짝 웃어보였다.


언제 이런 웃음을 지어보였나 싶었던 웃음을 그저 환하게 웃어보였다.








몇달만에 온 8편입니다. 예전에 쓴 7편의 글들을 다시 안 읽고 쓰느라 안 맞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글을 쓸 때의 그당시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안 읽고 썼습니다.


거의 몇달전 글을 왜 이제 꺼내느냐 하면은 이제는 마무리를 지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냥 묻어버리지 말고 꺼내고 끝내기로 했어요.


왜냐면 알콜에 의존하고 살던게 이젠 어느정도 해결되었기 때문에.


물론 술을 아예 안하는건 아니지만 맹장으로 입원한 후로 맨날 소주까고 살던게 어느정돈 고쳐졌습니다.


안 좋았던 일들이 해결되고 나면 그 뒤로 또다른 안 좋은 일들이 생기지만 안 좋은 일들이 생긴다고 내가 달라진게 사라지지는 않는단걸 알았어요.


다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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