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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해서 쓴 메구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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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0, 2022 17:55에 작성됨.

"아."




창밖이 눈을 뜰 때면 환하게 빛이 나다가 감을 때면 불이 다 꺼지고 형광등 빛만 남는 것이, 도시는 오늘도 잘만 깜박대는 모양이다. 눈 앞에는 메모가 남겨져 있다.




[미안. 오늘도 나가봐야 해서 말이야. 언제 들어올지는 잘 모르겠어.]




메모. 그리고 그리고 메모 밑에 지폐 한 장. 애인의 사랑을 담은 지폐 한장. 그 사랑이 바다같다. 지폐 한장.




분명 내가 있는 이 단칸방도 내 돈으로 마련했고, 수도세도 전기새도 분명 내 돈으로 마련했던 것 같은데, 언젠가 애인이 주는 종이 한 장에 연명하고 있다. 그나마 동전은 차곡차곡 모여 있건만. 




기둥서방... 그래. 내가 기둥서방이다 씨빨. 박제가 된 백수새끼를 아시오?




이제 그쪽 방향에다 침 뱉으라고 해도 못 뱉는 엿 같은 회사에서 잘린지도 몇 달이나 지났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본사도 아닌 지사에 미래고 나발이고 없단거 알고 들어갔다. 언젠간 버려질 거라는 사실도 알고 들어갔다. 




머리에 먹물도 안 찼고, 기술도 없고, 경력도 없고, 학연 지연 혈연도 없고, 악도 깡도 이미 스러진 이를 누가 돈 주고 쓰리오.




이제 나에게 남아 있는 건 눈물바다로 차 있는 방 한칸과 아주 과분한 애인 한 명이다.




텔레비전 놓을 돈도 없어서 난 핸드폰에 깔아놓은 공중파 채널 앱으로 들어갔다. 아마 슬슬 라이브 무대에 올라올 텐데.




"자! 다음 분은! 아~ 요새도 계속 화제를 몰고 다니는 주인공인데요! 바로 토코로 메구미 양! 모시겠습니다!"




나는 조금이나마 팔을 맨 공기에 휘휘 휘두르며 소소한 응원을 보낸다.




무대 위에 선 메구미는, 춤도, 보컬도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메구미는 내가 없어도 잘 하고 있었다.




무대는 잘 끝났다. 나는 핸드폰을 잠그고 바닥에 뉘였다. 사람이 외로우면 삶이라는 것이 참 길게 느껴진다. 할 일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이리 될 줄 알았는데 왜 그랬을까. 메구미가 눈물을 흘리며 절절하게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똑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때 뒤를 돌아봤어야 했다.




눈물을 보이지 않았으면, 얽힌 서로가 찢어지며 상처가 났겠지. 못 메울 만큼. 그럼 거기서 끝일 텐데.




나와 메구미는 언젠가 바들바들 떨면서 손도 잡고, 눈도 딱 감고 입도 맞추고, 서로 독립해서 새 터전을 잡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메구미를 얽어가며 상처를 계속 주고 있다.




메구미가 나도 가슴 속에 눈물이 들어찬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고, 그냥 덜덜 떨다가 혼자 있으면 언젠가 넘어져버릴 것임을 알아버린 이상, 절대 날 내버려두지도 않고 떨어지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메구미는 그런 사람이다.




메구미는 참 심지가 굳은 사람이다. 사람이 정도 많고 싫은 소리도 못해서 그렇지. 자기 입장에서 그른 것이 있으면 그것은 절대 두고보지 못한다.




아마 지금에 있어서 메구미에게 그른 것은, 나와의 관계가 좀 더 '비뚤어져' 가는 거겠지.




메구미한테 얼마 전에 헤어지자고 한 적이 있었으니까.




'어, 무슨 말이야? 갑자기 헤어지자니?'




메구미가 친구들이랑 놀고 온 날 밤이었다. 코토하랑 엘레나였을까, 아니면 다른 애들이었을까나. 학교 친구들이었을까나. 친구들이랑 놀고 온 메구미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문득 내가 없더라도 그 행복은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너한텐... 너한텐 내가 이제 필요가 없어.'




'프로듀서... 프로듀서한테 있어서는... 내가 쉽게 헤어지자고 말 꺼낼 만한... 그정도 가치밖에 안 돼?'




'아니.'




메구미는, 메구미는... 메구미는 언젠가부터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확실한 것은 그 시점은 고백하기 전이었다.




사람끼리 연을 맺고 사랑을 하면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은 더이상 그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메구미의 반쪽이 내 안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뜯어내려 했다.




'그렇지 않아서 헤어지자고 하는 거야.'




'무슨 의미?'




'내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잖아.'




'......'




'나는 지금 아무것도 없어. 너한테 빌붙어먹어서 살고 있다고. 너한테 용돈 받으면서 살고 있어.'




'상관 없잖아. 프로듀서는 능력도 있고, 힘도 있다고. 일이야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아니야. 난 이제 너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어. 메구미. 난 너의 앞길을 밝혀주던 그 사람이 아니야.'




'상관없어.'




'...그리고, 난 겁쟁이야. 바보 등신이야.'




'왜 그래? 자꾸 왜 그러는 거야?'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은 계속 있었어. 말 못했을 뿐이지.'




'무슨 생각 말이야?'




'내가 널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메구미를 바라보며, 다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의 무게는 너무나도 달라서, 눈거풀이 뜯겨질 것만 같았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내가 싫어져. 내가 싫어지면서 자꾸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 그러면 싫어할 거란 거,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면 뭔가 용서받는 느낌이 들어.'




'바보.'




'있잖아. 나는 이제 구제불능이다? 딱히 해줄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늘 곁에 기대면서 힘들게만 하고, 옛날 일에만 얽메ㅇ...'




그때쯤, 메구미는 나에게 따귀를 날렸었다.




그 따귀가 아팠던가, 볼이 따가웠었나, 아니면 뜨거웠었나.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기억나는 거라곤 눈물이 계속 나와서 메구미를 도저히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는 것 뿐이다.




'미안해.'




'...한대 더 맞을래? 아니면 또 계속 그럴래?'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그렇게 함부로 하지 말란 말이야!'




'싫어. 내가 기대면 힘들잖아.'




'훌쩍, 부탁이야... 응? 나는, 나는 프로듀서가 아직도 정말 좋단 말이야...'




'흑, 메구미...'




'나는, 나는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프로듀서를 좋아한단 말이야. 프로듀서도, 훌쩍, 프로듀서도 내가 좋잖아?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응. 나도, 나도 좋아해...'




'그럼 됐잖아... 나는 프로듀서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건 상관없어. 그것보다도 프로듀서를 볼때마다 기쁜게 더 커서, 그정도는 다 잊혀진단 말이야.'




'......'




'프로듀서도 마찬가지잖아?'




'......'




나는 끝내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창 밖을 다시 보니 해가 지고 있다. 메구미는 오늘 일찍 올까. 일찍 오면 좋겠는데.




메구미의 물건들이 이곳저곳에 있다. 메구미가 평소에 뿌리는 향수나, 평소에 쓰는 샴푸 브랜드 같은 것들은 이미 외워두고 있었지만, 다시 살펴보자니 참 신기했다. 웬만한 것들은 다 써보고 고른 거겠지.




그러다가 화장대 앞에 가면 문득 행복해진다. 화장대 거울 구석에에는 나와 메구미가 같이 찍힌 사진이 붙어 있고, 거기 메구미가 립스틱으로 하트 모양을 그려놓았으니까.




그 하트 모양만 보면 문득 행복해진다.




그냥 너무나도 행복하다.




죽고 싶다.




만약 죽는다면 그냥 이 행복에 계속 멈춰있는 채로 죽고 싶다.




이 사진만 보면 나는 이 시대 최고의 애인을 둔 참 행복한 사람이 되는데. 돌아서기만 하면 나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는 형편없는 사람이 된다.




살짝 사진 앞에서 훌쩍거리고픈 기분이 되었을 때,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야호.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어?"




일을 마치고 돌아온 메구미에게선 향수 냄새와 충만함의 냄새가 잔뜩 난다. 나에게서 풍기는 고독한 냄새와는 다른 냄새가.




"밥은 먹었어?"




"......"




"또 굶었어?"




"자."




나는 메구미가 메모 밑에 뒀던 지폐 한 장을 그대로 돌려줬다.




"...지금 당장 그 돈으로 뭐라도 시켜먹어. 안 그럼 나 화낼 거야?"




"아무것도 먹기가 싫어."




"또 무슨 이상한 생각 같은거 한 건 아니지?"




"......"




"또 무슨 일 있었어?"




"그냥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어."




"왜?"




"몰라. 그냥 혼자 있을 때면 그런 기분이 들어."




"그랬구나. 프로듀서, 기억 나?"




"무슨 기억?"




"나랑 처음으로 키스했던 거."




"당연히 나지."




"냐하하. 그때, 나 막 엄청 울었잖아?"




"나도 살짝 울었는데."




"그랬어? 난 안보여서 몰랐지~"




"그런데, 그 이야긴 왜?"




"거기, 우리 다시 같이 가보자."




"지금?"




"같이 안 갈 거야?"




"......"




메구미는 내 손을 잡고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에 이렇게 메구미랑 같이 나가는 건 얼마만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굳이 기억할 만큼 특별한 일이 아니었어서였을까. 가는 길에 익숙한 광경이 많이도 보였다.




나는 이렇게 햇살을 받으며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두 발로 걸어다니는 사람이었는데.




문득 다 져가는 햇살을 받아서 비쳐보이는 메구미의 빛나는 모습을 보고 바닥을 바라보니, 메구미의 그림자가 예전보다 더 길어져 있었다.




메구미, 키 살짝 컸구나. 메구미도 변했구나.




왜 나는 메구미는 늘 그대로 내가 알던 그대로의 메구미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메구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한다고 했는데. 나는...




나는. 나는...




"아, 흑... 훌쩍... 흑..."




"프로듀서..."




"메구미... 흑... 훌쩍... 메구미..."




"괜찮아?"




"미안... 흑... 집으로 돌아가도 돼?"




나는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은 메구미의 곁에 안겨서 하루종일 울기만 했다.




살짝 머리가 띵한 채로 눈을 뜨니 또다시 창밖은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이번에도 메모가 남겨져 있었고, 지폐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어제 내가 잔뜩 운 게 메구미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을 텐데.




나는 어제 몸에 쌓인 눈물을 정리하며,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천장을 바라보니 아무것도 바뀐 게 없다. 그래. 아무것도. 바뀐게 너무나도 없어서, 나는 고개를 젓고 화장대를 바라보았다.




햇빛을 받은 메구미의 사진이 오늘따라 더 반짝이는 것 같아서 좀 더 가까이 가서 바라보니, 큰 하트 옆에 작은 하트가 하나 더 그려져 있었다.




나는 조잡한 솜씨로, 삐뚤빼둘하게나마 그 하트 옆에 작은 하트를 하나 더 그리고는. 전화를 꺼내서 메구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메구미. 오늘 바빠?"




"아니?"




"어제 못 간 거... 오늘 다시 가도 될까?"




"응! 당연하지!"




"고마워."




"고맙기는! 오랜만에 어디 놀러가는거, 되게 두근거리지 않아?"




"...그러게."




"냐하핫! 프로듀서, 오늘은 일찍 들어갈게!"




"응. 그럼 끊을게."




그렇게 내가 먼저 끊고 통화는 끝났지만, 나는 전화를 붙잠고 있었다.




메구미한테 전화를 걸 때 그대로, 계속 그렇게 붙잡고 있었다.








요즘 그냥 속이 많이 상해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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