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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와 머리아픈 프로듀서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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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30, 2021 02:07에 작성됨.

프로듀서는 햇살을 받고 눈을 떴다. 사람이 깨고 싶을 때나, 깨고 싶지 않을 때나, 사람이 눈을 떴을 때나, 감았을 때나, 아침은 언제든지 규칙적인 동시에 또 불식간에 찾아온다. 아침햇살은 늘 지독하고, 불쾌하면서도, 환희롭고, 따뜻하다.


어제 종일 울다가 제대로 자세도 안 잡고 잔 탓인지 눈이 좀 피로했고, 몸도 좀 뻐근한 느낌이 들었지만ㅡ 그래도 실컷 술을 퍼마시다가 잠에 든 탓에 머리 한쪽이 시큰거리는 것보다는 나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방도 다 치웠겠다, 오랜만에 아침밥을 차릴까 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냉장고를 여니 안이 정말 휑하니 비어있었다. 냉장고가 왜 비어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냉장고에 무언가를 집어넣어도 손을 대지 않아서 전부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갔던 기억이 났다.


그걸 자각하고 난 이후에 냉장고에는 아예 반찬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안 들이고 편의점 도시락 같은 것으로 끼니를 때우고는 했었고, 그러다 그냥 아침을 굶고 살기로 했다.


시즈카가 이걸 알면 얼마나 성화를 부릴까. 얼마나 또 속이 타가지고 잔소리를 할까.


어제 펑펑 우느라 냉장고에 넣어두고선 안 마신 초코우유의 포장을 깐 다음 쭉 들이키고, 프로듀서는 문 밖을 나섰다.


"프로듀서씨!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사무소에 오니 오늘은 가장 먼저 미사키가 프로듀서를 맞이해줬다. 시즈카도 아직 안 왔고, 평소에 가장 먼저 오고는 하는 사요코 같은 아이들도 없었다. 문 너머로 왁자지껄한 소녀들의 수다를 들으며 사무실에 혼자서 남아있는건 익숙한 일이었고, 떠들썩하던 온기가 다 사라진 사무소에서 떠나지 않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하지만, 온기가 오기 전에 사무소에 있던 적은 적어도 근래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이 평소보다 좀 차게 느껴지는 것은 날씨가 쌀쌀해서는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고독. 고독이라. 참 익숙한 단어인데, 오늘은 그 두 글자가 더 시리다.


프로듀서는 늘 앉고 있었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머릿속에 있던 안개가 조금씩이나마 떨쳐지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자의 홍수 너머에서 찾고자 했던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무엇을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나 생각해보니, 적어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아닌게 확실했다.


술자리에서 만난 수많은 꼰대들처럼 자리에 있다고 떵떵거리며 아이들의 치마나 몸매 따위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하고, 이 자리까지 온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될 대로 되라는 마음가짐으로 여기까지 온 걸까. 그렇다기에는 너무나도 열심히 했고, 돌아가지 못할 만큼 멀리 왔다.


시즈카는 꿈을 위해서 아이돌을 하고 있었다. 프로듀서는 파란 눈동자와 찰랑이는 머릿결을 떠올린다. 꿈을 위해서라. 프로듀서는 자신이 추구하던 꿈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생각이 안 났다.


그럼 지금이라도 가져야 할까 싶었지만, 이제와서 꿈을 가지기에는 꿈이라는 단어는 너무나도 빛나는 단어였다. 늘상 햇빛을 갈구했지만, 이제 와서 해를 두 눈으로 바라보면 눈이 멀고 말겠지.


이제 와서 생각하기에는 지금까지 안 보이던 것. 지금까지 못 보고 지나치던 것. 그리고 알고는 있었음에도 안 보고 지나간 것들이 너무 많았다.


도저히 무엇을 보아야 할지 몰라서 밑도 끝도 없는 바다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둘 다 결국 어디로 가야 할 지는 모르는 상태지만, 볼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느껴지는 감정은 앞이 안보이던 때 느껴지는 감정과는 달랐다.


바다의 푸른 숨결. 프로듀서의 마음 속은 이런저런 색이 섞여 푸른 빛을 내는 법이 뭔지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몰랐을 수도 있었다. 수채화이 물감이 다 섞여있는 물통 속의 물은 오묘한 색깔이 난다.


아직 고여있는 물은 흰색이라고도 검은색이라고도 회색이라고도 하기 뭣한 탁한 색이지만,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마다 결코 쉬지 않고 멈추지도 않을 짙고도 푸른 숨결이 몸 안팎을 오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웅크려만 있던 마음이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프로듀서는 잠시 하던 작업을 멈춘 다음 새로운 공기가 머리끝까지 가도록 허리를 피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잠시 뒤 이번에는 발끝까지 가도록 한번 더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프로듀서, 안녕하세요!"


그렇게 프로듀서가 스스로를 갈무리하고 있을 적, 시즈카가 사무실로 찾아왔다. 늘 그렇듯이 일찍 도착한 시즈카는 프로듀서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탁하지 않은 눈빛이었다.


"아, 안녕. 시즈카."


"프로듀서. 밥은 먹었어요?"


"응."


시즈카가 프로듀서에게 아침밥을 먹었냐고 묻는 것은 일종의 의례적인 일과가 되었다.


프로듀서는 처음에는 늘 밥을 먹고 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굳이 아침밥을 먹을 의지가 생가지 않았었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시즈카는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았었다.


얼마 안 가서 프로듀서는 밥을 먹고 왔다고 대답했다. 싫어하는 표정을 보기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자존심때문에 시즈카에게 우동을 얻어먹는 것이 싫어서였는지, 아니면 1분도 안 갈 거짓말을 해서라도 적어도 시즈카 앞에서는 소위 괜찮은 사람으로 있고 싶어서였는지.


그리고 늘 그랬듯이, 프로듀서의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시즈카가 프로듀서가 굶었다는 사실을 간파했고, 둘은 우동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밥 먹고 왔어요?"


"...아니."


시즈카가 자신이 우동값을 내고 싶다고 했어도, 우동값은 대부분 프로듀서가 냈다. 대부분은. 그래. 대부분. 그 말은 가끔씩은 시즈카가 냈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시즈카는 꽤나 서운한 듯이 보였으니까.


시즈카가 굳이 그러는 것은 역시 시즈카의 어른스러운 면이라고 생각하면서 넘어가고 싶었지만, 정말로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마음이 캥겨왔다. 자신보다 반 뼘은 넘게 키가 작은 아이한테 그러는 게 맞는 건지.


이번에 프로듀서는 늘 선호하던 유부우동을, 시즈카는 카레우동을 주문했다.


...애초에 언제 프로듀서와 아이돌 이상으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지금의 관계는 맞는 걸까.


시즈카의 손을 잡고 나면 무언가가 좀 더 보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두려워만 하는 자신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국물을 마시니,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우동국물이 따뜻했다. 너무나도 따뜻해서 어째서인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나와서 온 세상을 뒤덮을 것 같았다.


울려면 혼자 울면 되는데. 프로듀서는 자신이 우는 것이 시즈카의 눈에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이해심이 깊은 시즈카는, 틀림없이 속상해할 테니까.


그럴 때마다 프로듀서는 최대한 참았다. 최대한 모든 것을 참고 삼켰다.


"...음, 프로듀서?"


"으응..."


"안 좋은 일 있었어요?"


"갑자기 왜?"


"그야.. 그... 갑자기 우니까..."


"어?"


이번엔 그러지 못한 모양이었다.


시즈카에게 무엇이라고 말을 걸어야 할까. 빛나는 눈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향하고 있는 시즈카에게는.


사실대로 말해야 할까.


어젯밤에 메시지를 받고 울었다고. 지금만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젯밤부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왜 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고맙다는 말과 잘했다는 말을 들은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까지 울 일은 맞았던 걸까. 맞았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운 것일까. 슬퍼서 운 것일까, 아니면 기뻐서 운 것일까.


시즈카는 들어주겠지. 무슨 말을 해도 다 들어주겠지.


도저히 쏟아지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말하면 들어줄 거야?"


"당연하죠."


"고마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온 당연하다는 말. 프로듀서는 그런 말을 듣고 웅크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그게... 어제 메세지 보내줬잖아."


"어, 방 정리한 거요?"


"응. 그거 받고 어제부터 계속 울었어."


"네?"


"...왜 운 건지 모르겠어. 그런데 메세지를 받고 나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해서 안 멈췄어. 우느라 답장도 못했고 밥도 못 먹었어. 나한테 잘했다고 해 주니까. 고맙다고 해 주니까. 그래가지고... 난..."


"프로듀서..."


"난... 모르겠어. 기쁜 건지 슬픈 건지도 모르겠고, 그렇게까지 울 일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그냥 눈물이 계속 나와. 지금도 계속 멈추지가 않아서... 그게.. 그래서..."


프로듀서의 말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더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네. 미안해. 갑자기 밥 먹다가 울어서."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폐암걸렸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무것도 안되는데 그냥 손이 가는게 이거밖에 없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상상을 하는것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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