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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즈카와 머리아픈 프로듀서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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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3, 2021 09:59에 작성됨.

"이런 나지만. 흑, 그냥 좋아, 좋아한단 말이야..."


"흑, 히끅, 흑... 아, 아아아아아아아아...!"


시즈카의 진심은 더이상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으... 시즈카. 시즈카아, 흑..."


프로듀서도 마찬가지였다. 더이상은 묻어둘 수 없는 마음이 밖으로 한번 밖으로 밀려나온 이상 멈추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서웠어요... 훌쩍, 무서웠단 말이에요... 프로듀서한테 나쁜 일이라도 생기면, 히끅, 저는... 저는...!"


"미안해... 흑, 시즈카... 미안해..."


"흑, 흐어어어어어엉...."


그렇게 둘은 계속 울먹이며 끌어안고 있었다.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온기를, 세기나 색깔은 달랐지만서도 결국엔 똑같은 온기를 마주한다.


늘상 곁에서 쬐고 있던 온기였지만, 직접 마주하는 것은 달랐다. 한 사람이 온 정신으로 내뱉는 온정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일이었다. 거추장스러운 대화나 몸짓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그제서야 프로듀서는 깨달았다. 둘이 가진 온기의 색과 세기는 달라도, 온기의 방향만큼은 늘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는 걸. 시즈카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에게 이다지도 신경을 써줬다는 걸. 공감은 그렇게나 무섭고 두려워할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방은 아직 멀끔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고, 둘의 밤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이젠 땅에 슬슬 가로등이 아닌 해가 만든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둘은 더이상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서로를 껴안고 훌쩍이고, 울먹이다가, 그대로 부둥켜안은 채 잠이 들었다.


새벽에 길고양이들이 야옹대는 소리도, 골목길의 불량아들이 내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도, 그들을 깨우지 못했다.


"으, 으으어어..."


시즈카가 아직 눈을 감고 새근대고 있을 적, 프로듀서는 먼저 알람소리를 듣고 반사적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아침이야... 일어나, 시즈카."


"우으으... 나 그림 그릴래..."


시즈카는 아직 잠꼬대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지금 안 일어나면 늦어..."


"아빠... 싫어..."


"아빠?"


"...!"


잠꼬대라고는 해도 방금 전에 한 말로 시즈카도 정신이 팍 들었다.


"저... 못 들은걸로 해 줄래요?"


"응. 그것보다 어서 머리라도 빗어. 아이돌이 그런 모양으로 가면 안되잖아."


"프로듀서는요?"


"난 이만 닦고 갈거야. 씻는건 출근해서 씻으면 돼."


"어, 수염은..."


"사무실에 일회용 면도기 있어서 그걸로 깎을려고."


"저, 보통 남자는 면도할 때 크림 같은거 묻히고 하지 않나요?"


"예전에는 그랬는데, 요샌 그냥 비누거품 묻혀서 하는데."


분명 어제 마음 속에 있는 것은 다 털어냈을텐데, 어제보다 더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시즈카는 발걸음을 옮겼다. 방 안에는 쓰레기가 아직 남아있기도 했고.


"빗이 적당한게 있을지 모르겠네."


"걱정해주시는건 고마운데..." 


왜 또 자기 걱정은 안 하고 내 걱정부터 하냐, 방 청소는 어떻게 할 거냐, 이런 꼴로 어떻게 살고 다닌 거냐, 밥은 계속 안먹고 다닐 거냐... 등의 여러 질문이 시즈카의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지금만큼은 빗질에 신경써야 하기에 자제하기로 했다.


시즈카가 화장실을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화장실에 발걸음을 하기엔 좀 그랬기에 프로듀서는 별로 쓰지도 않던 계수대에 서서 멍하니 칫솔이 움직이는 둥 마는 둥 이를 닦고는 익숙한 솜씨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와이셔츠도 반듯하게 고치고, 어딘가에 풀어놓았던 넥타이도 다시 매고, 가방도 제대로 챙겼다. 이대로 자기 페이스대로 가면 적어도 늦지는 않았다.


"......"


"저, 시즈카. 조금만 천천히 갈까?"


시즈카는 프로듀서의 페이스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금 쉬엄쉬엄 가도 괜찮아. 다음 차 타면 되니까."


"진짜요?"


"그럼 조금 늦겠지만."


"읏...!"


이때가 아니면 치하야 선배와 함께한 조깅과 매일매일 참가한 댄스 레슨이 빛을 발할 순간이 어디 있나. 시즈카는 프로듀서의 보폭을 잰걸음으로 따라가서 프로듀서의 손을 잡고 열차속 사람 사이에 끼는 데 성공했다.


아침 전철은 말 그대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 제 갈길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프로듀서는 늘 그랬듯이 창문 너머의 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즈카가 프로듀서에게 말을 붙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알죠?"


"응..."


"오늘 일 끝나면 꼭 방 치워주세요. 방 안 치우시면... 엄청 슬플 것 같으니까요."


시즈카는 프로듀서에게 방을 치워달라고 했다. 부탁도 아니었다. 애원이었다.


"다 치우면 문자로 찍어서 보낼까?"


"그럴... 필요까진 없지만요."


말을 살짝 흐리며 시작된 시즈카의 답에 대화는 끊겨버렸다. 프로듀서는 시즈카와 뭐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좀만 더 하고 싶어서 자질구레한 잡담 소재를 생각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결국 그런 것들을 생각해내지 못했고, 둘은 그렇게 사무소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프로듀서씨~ 좋은 아침~ 시즈카~"


"아, 안녕, 츠바사."


"츠바사! 안녕!"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츠바사는 프로듀서보다 일찍 도착해서 사무소 입구에서 서 있었다.


프로듀서는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늘 그랬듯이 사무실로 먼저 올라가서 자기 일을 보기 시작했고, 입구에는 시즈카와 츠바사 둘 밖에 안 남았다.


"있잖아, 시즈카! 오늘 프로듀서씨가 인사하는 것도 뭔가 힘차고, 인사하면서 웃는게 엄청 밝아 보였던거 있지?"


"어, 그, 그래?"


"뭔가 무지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것 같단 말이지~  프로듀서씨가 인사하는 것도, 웃는 것도, 언제부턴가 계속 어두칙칙하고 구름만 낀 느낌이었는데."


"다, 다행이네."


"헤에~ 정말로 그게 다야?"


"그게 다라니!?"


"매일같이 프로듀서씨랑 같이 아침 먹으러 간거 내가 모를 줄 알고?"


"...!?"


갑작스러운 츠바사의 말에 시즈카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야 오늘 새벽에 펑펑 울면서 좋아한다고까지 말했으니까.


"어디까지 나갔어?"


"......"


"아무 말도 안 하시겠다? 미라이~!"


"잠깐!? 말할게! 말하면 되잖아! 아직 손 잡은거 빼고 아무것도 안 했다고!"


술 마시고 길에서 헤메던 걸 집에 데려다주고, 방도 치워주고, 펑펑 울면서 껴안고 고백했지만... 그 뒤로 애정행각이라고 할 만한 것은 손 잡은거 빼곤 없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이면서 시즈카는 적당히 답을 했다.


"아하하! 그걸 속네! 나 빼고 아직 아무도 안왔는데!"


"츠바사 너!!!"


"우와아아아~ 우동 귀신이다~ 잡히면 코로 우동 들어간다~"


"진짜로 코에 우동 집어넣기 전에 거기 서!"


그렇게 츠바사와 시즈카가 서로 추격전을 벌일 적, 프로듀서는 우선 대충 씻고 난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제 펑펑 울고 나니까 화면을 켜니 보이는 문자의 파도도 살짝은 쓸려내려간 건지, 어디가 길이라는 것을 좀 더 선명히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술자리 일정도 없었다. 야근도 없었다. 원래라면 있었겠지만, 그냥 오늘만큼은 마음껏 일하고,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듀서는 퇴근길에 멍하니 기쁜 마음에 편의점에 들어가서 주류 코너를 멀뚱멀뚱히 바라보았다. 바라보았다.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저, 손님?"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바라보고, 허공에 손을 뻗다가 프로듀서는 고개를 홱 돌리고는 초코우유를 두 팩 사갔다. 술을 마시면 좋은 기분이 계속될 것 같았지만, 일어났을땐 그것이 구역감으로 돌아올 테니까. 그 대신 술 다음으로 마시는 거라도 사가야 할 것 같았다.


집은 여전히 더럽고 엉망진창이었지만, 시즈카가 어느정도 기본적인 정리를 해줬기에 의외로 청소는 빨리 끝났다. 쓰레기를 다 치우고, 바닥까지 물티슈로 말끔히 닦고, 프로듀서는 방 사진을 찍어서 아무 내용 없이 시즈카에게 보냈다.


[진짜 보내주셨네요.]


시즈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답장을 해주었다.


[진짜로 보내주셔서 고마워요. 수고하셨어요. 너무 늦게 주무시지 말고요.]


시즈카의 답장은 간단했다. 잘했다는 말. 고맙다는 말.


시즈카의 잘했다는 말에, 고맙다는 말에, 프로듀서는 갑작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시즈카의 잘 했다는 말을 곱씹으며 어떤 대답을 할까 고민하던 도중, 갑자기 마음 속이 울렁거리고, 눈물이 나와서 훌쩍거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프로듀서는 답장을 하지 못한 채 어쩌면 처음으로, 우울감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눈물 속에서 잠에 들었다.






이 글이 원래는 5편에서 끝날라고 했는데

이게 계속 쓰게되네요 이렇게 달달하게 계속 쓸것같아요

쓰다보니 제가 시즈카를 아낀다는걸 실감하게 됐어요 담당만큼은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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