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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할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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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1-03, 2021 02:50에 작성됨.

*프로듀서 성별은 여성입니다.



집 밖에는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외제차가 세워져있었다.

치아키는 굳이 조수석의 문을 열어주고는 에스코트하듯이

내 손을 잡고 천천히 앉혀주었다.

난 얼굴을 꾸기면서 잡혀있던 손을 잡아 빼냈다.

치아키가 날 만질때 마다 악몽이 되살아나 버리는 것 같았다.

이제 난 어디로 끌려가는 걸까.




차가 지나갈때 마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난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지갑은 챙겨왔고 신분증도 거기에 있어.

위험하다 싶으면 차에서 나와서 택시를 잡으면 될 거야.

그래.. 그러면 괜찮을 거야.



"오늘은 정장이 아닌 사복이구나."



대뜸 운전하고 있던 치아키가 말을 걸어왔다.



"정말로 어울려. 여느 아이돌보다도 아름다워."



"...."



"치히로 씨가 요즘 프로듀서를 걱정하는 거 있지.

확실히 프로듀서 최근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나도 정말로 걱정이야 쓰러지면 어떡하나 싶을 정도로."



네가 걱정하길 누굴 걱정해. 전부 너 때문이잖아.

그럼 처음부터 그딴 짓 하지 말았어야지.

치아키가 말하는 모든 게 다 가식처럼 느껴진다.



"노이로제라도 걸린 거 아닌가 하고 얼마나 걱정하시던지.

그래서 오늘 내가 프로듀서랑 같이 어디 갈 약속해놨다고 얘기했더니

치히로 씨가 안심했었어. 그러면 프로듀서 기분이 좀 낫겠다고."



그래서 치히로 씨가 쉽게 문을 열어주신 거구나.

그리고 치아키는 그런 치히로 씨를 이용해 버린 거고.




".... 그 뒤로 몸은 좀 어때?"



가슴이 철렁거리고 손에 땀이 쥐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대답이 없자 치아키는 알아듣기 쉽게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가 갑자기 기절해버려서 깜짝 놀랐어.

처음이었는데도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봐. 미안해."



치아키가 말하고 있는 건 내가 제일 떠오르고 싶지 않은 것들.

굳이 이 얘기를 하는 건 날 방심하게 위해서겠지.

나는 나대로 벗어날 방법을 계속해서 생각해나가면 돼.

흔들리지만 않으면 괜찮아.



"그렇게 열심히 일한다는 건 어떤 목적이 있다는 건데.

아, 요즘 지방에 관한 책을 많이 읽던데 여행 목적으로?"



"..."



치아키는 치히로 씨가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계획적으로 치히로 씨를 불러 내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지.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말고 지금은 도망갈 생각만 하자.



"계속 불러도 대답을 안 해주네. 너무 경계하지 마.

오늘은 프로듀서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것뿐이야.

그리고 프로듀서랑 대화도 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것? 



"프로듀서 쪽에서 내 쪽으로 반경 1M 들어오지 않는다면

난 절대로 프로듀서를 건들지 않아. 약속할게."



내가 너한테 가까이 갈 리가 없잖아.



"내가 약속은 평생 지키는 거 프로듀서도 알고 있지?"



그럼 반대로 부탁인데 약속할 때마다 불리한 조건은 없애줄래?

힐긋 본 창밖에는 기찻길이 보였다.

다행이다 근처에 역이 있으면 자력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치아키가 어떤 버튼을 누르자 처음에는 잡음이 가득했지만

이내 함성소리와 함께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마음에 한순간 여유가 생겼음에도 그걸 순식간에 짓밟는 음이 들려왔다.

음악이 기억을 끄집어내고 닫혀야 할 입이 너무 간단히 열려버렸다.



"그거 꺼."



"드디어 목소리를 들려줬구나.

최근 대화하려 해도 피해 다니니까 프로듀서 목소리를 잊어버릴 뻔했어.

이 곡 정말로 좋아하지?"



망했다. 남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이런 유형은 반응하면 할수록 좋아해.



"그럼 이 노래 부른 건 누군지 알아?"



당장 알 수 있었다. 잡음이 들어간 라이브 음원.

직접 보고 들을 수가 없어서 조금 씁쓸해진다.

K씨.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K씨의 라이브.

그런데 그걸 가지고 있는 치아키는 정말로 K씨가 마음에 들었던 거다.

그때 전무님에게 제안을 한 것도 K씨가 목적이었을지도.



"조금 짐작이긴 한데 프로듀서는 일 그만두려고 하는 거지?

아까 여행 얘기한 것도 농담이었는데 긍정하지도 않았고.

어째서 그만두려고 하는 거야?"



말을 하려 했으나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K씨의 노래와 목소리가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휘저어버린다.

모든 것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몇 분 동안 있었다가 치아키의 목소리가 날 현실로 데리고 왔다.



"도착했어."



밖을 보니 한 채의 목조로 지어진 건물이 보였다.

관리가 잘 되었는지 마당은 깨끗했고 건물 자체도 낡아보이지 않았다.



"가끔 가는 별장 중 하나야. 주변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아해."



치아키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인 작고 아담한 목조건물.

좀 더 음습한 곳으로 끌려가는 줄 알았단 내 예상은 완벽하게 빗나갔다.

치아키는 시동을 끄고는 차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프로듀서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여기 있어. 어서 들어와."



사람 집에 들어간다는 게 무서운 건 처음 느꼈다.

반경 1M 같은 약속 같은 거 치아키가 지킨다는 보장 같은 건 없어.

난 안전벨트를 풀며 밖으로 나가고는 결심이 앞섰다.

이대로 그냥 돌아가자.



차 문을 닫고 말없이 역 쪽으로 걸어가자 치아키가 날 멈춰세웠다.



"프로듀서, 잠깐 기다려봐. 지금 볼륨 올려두고 있으니까."



난 치아키의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처음에는 못 알아보았다.

직사각형 모양의 한 손에 들어올법한 사이즈. 녹음기다.

볼륨을 올려? 또 아까처럼 K씨의 노래겠지.

질릴 대로 질린 나는 무시하고 벗어나려 했었다.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면.




[.... 그... 해..]



[프로듀서...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 파...]




치아키가 들고있는 녹음기에서 들려온 소리.

경악과 구토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어째서... 언제부터 녹음한 거지..?



슬로모션처럼 치아키는 들고 있던 녹음기를 운전석으로 넣고는 차 문을 닫았다.

난 급하게 달려가 차 문을 열려고 했지만 삑 소리와 함께 굳세게 닫혀버렸다.

창문을 깨려고 했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열어. 그리고 지금 당장 없애."



왜. 내가 이런 짓을 당해야 하는 거지.



"걱정하지 마. 돌아갈 때 그 녹음기는 프로듀서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치아키가 찰랑거리는 자동차 키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미 난 이때부터 계획이건 뭐건 저 녹음기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여기서 도망친다는 생각 따위 들지도 않을 정도로.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그렇지만 소리가 차 밖에서는 새지 않았다.

난 너무 이를 앙다물어서 입술이 찢어지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흐르는 피를 손으로 대충 쓸면서 치아키가 흔들고 있는 열쇠를 노려보았다.



받는 순간 눈앞에서 부셔주겠어.

내가 건물로 들어가려고 하자 치아키가 기쁜 듯이 말했다.

치아키는 콧노래를 부르며 현관을 열쇠로 열고는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알아들은 것 같네. 그럼 갈까."



슬슬 막바지로 가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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