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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의 추억을 넘어-1-

댓글: 2 / 조회: 658 / 추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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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6, 2021 23:47에 작성됨.

어둡고 쓸쓸한 어느 건물의 바(Bar)로 보이는 풍경.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그 살풍경한 배경에서 유일하게 촛불이 켜진 구석탱이의 피아노를 외로이 지키던 사내가 이내 뒤돌아보고 관객들이 있음을 눈치챈 듯 입을 열었다.



[음? 아,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처음으로 뵙습니다. 저는 한때 이 시어터의 관리인이었던 사람 이올시다.]



늙은 사내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멋들어지게 인사를 전했다.



[저는 이곳에 많은 추억을 쌓아두었지요. 처음 이 낡은 건물을 사들이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한 애틋한 곳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들 중 가장 마지막에 있던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아,그럼 이야길 시작해볼까요?]



사내가 다시금 허리를 굽혀 크게 인사하자 의례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져 들어왔다.





---





[죽겠다.]



서류 봉투를 열고 안을 보고 나온 단 한마디.

그 이상 내 상황을 표현하기 좋은 건 없다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라던가 '다음 기회에'같은 흔해빠진 상투적인 위로로 시작하는 불합격의 메시지는 이미 지겹도록 보았다.

그리고 그걸 반복하며 생활고에 쫓기다 이젠 월세 조차 낼 수 없는 비참한 상황까지 오게 됐다.

다음 주까지 방을 빼라는데 모든 지원서가 불합격이라니...



[...진짜 죽을까?]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고 지칠 대로 지쳐 도망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지 말라느니 희망을 잃지 말라느니 하겠지만 나는 그런 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이 '그럼 니가 먹고살 집 제공해줄 거냐?'다.

당장에 눈앞에 놓인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뭘 하라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쓸 만한 물건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뭐,곧 있으면 내 집도 아니게 될 곳이지만.





---





[그래서 나오긴 했는데...]



막상 나오니 미쳐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어디서 죽지?]



죽을 장소를 생각 못했다.

뭐 마음먹는다면 빌딩 위에서 떨어지느니 지하철에 몸을 던지느니 하는 흔해 빠진 방법으로 자살할 수도있다.



[근데 그러면 죽어서도 비참하잖아?]



어디 뉴스에 나와서 '또 인생의 패배자가 어디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구나'라거나 '왜 죽어서까지 민폐냐'소리 들어가며 부끄럽게 길이 남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게 대체 무슨 민폐인가 지나가던 사람들 놀래키고 지하철은 기관사는 무슨 죄고..

결국 조용히 어디 으슥한대서 홀로 목을 매다는 게 최고란 소리인데 어디 으슥한 숲으로 갈 돈 조차도 없는 이상 이 주변이 최고였다.



[그냥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갈...그랬다 야쿠자나 동네 양아치라도 만나면 어쩌지 험한꼴 당하고 죽긴 싫은데 아.]



시시콜콜한 헛소리나 중얼거리던 도중 마치 신이 정해주기라도 한 양,건물 한 채가 딱 눈에 들어왔다.

쇼와시대에 지었을 법한 낡은 그 건물은 한때는 웅장한 면모를 뿜었을듯했고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었지만 지금은 그저 이끼와 매연을 세월의 풍파 삼아 온몸으로 받아 내 군데군데 얼룩지고 쇠락한 폐건물일 뿐이었다.



[곧 철거할 건물 같은데...저기로 할까.]



무언가에 이끌리듯 나는 담장을 넘어 자그마한 뒷문을 찾아 문을 열었다.




---




[안 잠겨 있어...]



보통 이런 건물은 완전 잠가 버리고 폐쇄하는 거 아닌가? 하면서도 나는 주변을 살펴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보아하니 이쪽은 뒷문으로 본래 무슨 역할을 하던 건물인진 몰라도-아마 오페라 극장이라던가 대전기 정부 건물이라던가 그런 거 아닐까 생각했다-창고따위의 자질구레한 방들과 이어진 복도로 보이는 통로가 나왔고 

통로 양옆으로 늘어진 문들 외에도 그 복도 끝에도 역시 문이 있었다. 당장에 죽으려 하면서도 호기심이 발동한 난 그 문 끝엔 뭐가 있을까 하며 다가가 문을 열었고 그러자



[우와 넓다 근데 어둡네.]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은 칠흑 같이 어두웠다.

핸드폰 라이트에 의존해 주변을 살피자 무슨 방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무슨 술집 같은 거였던 건가?]



중앙에 놓인 커다란 술진열대와 배리어 그리고 테이블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바의 구성을 보고 쉽게 이곳이 술집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 같이 먼지가 쌓이긴 했지만 제법 멀쩡한 모양새였다.



[버려진곳 치곤 되게 멀쩡한 거 같은데,어라? 피아노?]



방 안 구석탱이에 바닥을 높여 따로 마련해 둔 장소엔 천을 덮어씌운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이거 아직 작동하려ㄴ...히익?!]



쾅! 하고 갑자기 열어둔 문이 닫혀 버리면서 요란한 소릴 내자 화들짝 놀라버리고 말았다.



[뭐야? 왜 스스로 닫히는 건데? 기압차? 라고 하기엔..?!]



잠깐 방금 라이트에 사람 다리가 잡혔던 거 같은데?



[자,장난이지? 아하하하...]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난 어서 빨리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자살하고 싶다고 하기야 했지. 근데 귀신 손에 죽는다거나 하는 걸 바란 건 아니라고!

그런데 바로 그때.



[자네,길을 잃었나?]



[꺄아아아아아아악?!?!?!]



등 뒤에서 대뜸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그대로 비명을 질러버리고 말았다.



[어이 젊은이,진정하라구 진정.]



[오지 마 죽기시러어어!]



[무,무슨 일인가?!]



[엣..?]



패닉에 빠져 꼴사납게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주저앉아 있던 나는 전등이 들어오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나이 든 신사 두 명이 각각 내 앞과 내가 들어온 문 반대편 쪽-전기가 들어온단건 둘째치고-문 옆의 스위치를 누른 채 서 있었다.



[이제 좀 진정이 됐나? 젊은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자넨 짐작 가는 거 있나 타카기?]



[허허허,모를 일이지 하지만 이 또한 인연이지 않겠나?]



[인연? 무슨 인연?]



[따지고 보면 시어터 재개장 전이기야 하지만 일단 첫 손님이잖나.]



[아아 그리 따지면 그렇기야 하지 으허허허!]



[저기이...]



[음?]



[길을 잃어서 여기까지 온 거라 그런데 나가는 길 좀 알려주실 순 없나요?]



차마 여기 자살하러 들어왔었는데 죄송합니다 하고 튀어버릴 순 없는 노릇이니 적당히 얼버무려서 질문을 던졌다.



[알려줄 수야 있지. 하지만 타카기 말대로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니 잠시 우리 시어터 구경이나 하는 게 어떻겠나?]



[시어터...?]



[내 시어터지. 뭐,얼마 전까지는 폐건물이었지만. 참내 무슨 동경 한복판에 있는 사연 있는 폐건물이니,귀신이 나온다느니 젊은 것들이 답사를 오는 통에 맨날 쫓아내느라 고생이었다니까? 

 그래서 말인데,자네도 혹시...?]



[네,넷?!]



뭐지,설마 자살하려고 흘러들어온 한심한 놈팽이인 게 들켰나?



[자네도...무슨 유튜브인지 뭐시깽이인지에 올리겠다고 폐건물 답사 온겐가?]



[ㄷ...들켰네요! 아하하하! 정답이랍니다! 원랜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는데 척보니까 뭔가 으스스한 게 알아서 몸이 이끌리더라구요! 폐허 마니아의 감이랄까?!]



[에잉,다음부턴 그러지말어! 참내 말짱히 건물주도 안에 살고 있구만..어쨌든 타카기랑 나랑 같이 가지. 타카기가 인연이라 하니까 기분으로 봐주는 거야! 모처럼의 재개장이기도 하니까.]



[넵!]



[하핫,역시 내 예상은 틀리질 않는다니까 팅하고 왔다고 방금!]



됐어 어떻게든 속여넘겼나...근데,무얼 보러 가는 거지?





---





[...해서 다시 여길 열게 된 거지. 다 자네 덕이니 이걸 어떻게 갚아야될지 모르겠어 준이치로.]



[하핫,자네가 프로젝트 39를 맡아준 거면 충분허이.]



둘은 나를 데리고 가면서 간단히 이 건물에 대한 사연과 자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선 잘빠진 양복 차림의 잘생긴 중년 아저씨쪽의 이름은 타카기 준이치로. 그 유명한 765프로덕션-이건 나도 크게 놀랐다-의 사장으로 이전부터 추진중이던 프로젝트 39이라는 기존 765올스타즈의 후배들을 양성하는 기획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꼭 80년대 버블시대에서 튀어나온 듯한 차림새에 중절모를 쓰고 시가까지 입에 문 한번 보면 절대 잊기 힘든 인상의 아저씨는 이 시어터의 건물주 겸 관리인이자 프로젝트 39의 현직 프로듀서-이름을 안가르쳐 주었다-



이 둘은 오래전부터 친구로 과거,타카기 사장이 프로듀서였던 시절 담당 아이돌을 이 시어터 무대에 올리면서 알게 된 인연이었다 한다.

아이돌이 이 시어터에서 공연을 했단 것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시어터는 과거 번지르르한 앤틱풍 시어터로 유명했고 젊은 나이에 이 시어터를 사들였던 현재의 관리인은 버블시대를 겪으며 이곳을 총리나 외국 귀빈들도 방문할 정도의 랜드마크로까지 키워냈었다고 한다.

하지만 버블은 붕괴해 버렸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이먹은 자식들과의 불화까지 겹치면서 시어터의 수익은 나락으로 추락,모든 직원들을 떠나보내고 고집스럽게 여태까지 시어터 건물을 관리하며 홀로 이곳을 지켜왔던 것이었다.



때 마침 타카기 사장이 후속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그 단촐하기로 유명한 기존 765 사무소가 아닌 훨씬 큰 시설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옛 의리로 둘이 의기투합해 이 시어터에 살림을 차리게 하고 이 은혜를 갚을 겸,금쪽같은 이 건물을 남에게 맡길 순 없는 점도 있을 겸 프로듀서로 

일하고자 관리인인 그가 부탁을 해 지금의 상황이 됐단 것이었다.



[다사다난한 사연이네요.]



[뭐,그렇지. 하지만 이제 모두 안녕이다! 아까 말했다시피 내일부터 재개장이니까.]



[근데,재개장이면 오늘 행사가 있단 소린가요?]



[물론이지. 그리고 여기가...]



찰칵 소리를 내며 레버가 달린 두껍고 커다란 문을 시어터 프로듀서가 열었다.



[역사적인 오늘의 주인공들이 기다리는 장소지!]



[아! 프로듀서랑 사장님이다!]



문을 열자 귀여운 차림의 아이들이 와르르 몰려와 서로 프로듀서와 타카기 사장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준비실? 같은 거인 모양이었다.



[자아자아,제군들 라이브 준비는 어떻게들 하고 있지?]



[네! 카스가 미라이! 준비 만전이예요! 지금 당장에라도 한다 해도 오케이!]



자신을 카스가 미라이라 지칭한 갈색 머리의 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손을 치켜들었다.



[정말 미라이,아까 댄스 레슨 잔뜩 틀려먹은 거 잊었어?]



[에에! 시즈카쨔앙 그렇지만 노력 만큼은 합격이라고 들었는데~]



이번엔 그 카스가에게 시즈카라 불린 아이가 엄하게 카스가를 꾸짖었다.



다들 이런 식이었다 왁자지껄한 여자아이의 집합이랄까.



[하하하하! 역시 다들 언제나 기운이 넘치는구만!]



[타카기 자네가 고른 사람끼리 모아두면 이상하게 꼭 이리 되더구먼. 얌전한 성격인 처자들이 있어도 말이지.]



[저기 프로듀서,그리고 사장님.]



[왜 그러니 세리카?]



[두 분 뒤에 계신분,처음 뵙는데 누구신가요?]



양 갈래머리를 한 귀여운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 대해 물었다.

기세에 눌려서 멍때렸는데 진짜 여긴 왜 데려온 거지 정말?



[흠흠,사실 지금 여기 온 이유도 그걸 알려주기 위해서지. 자아 소개하마 너희의 라이브를 봐줄 관객 1호란다!]



[예?]



참고로 이건 내 경악이다



[네에에에에에에?!]



이건 방금 관리인 말을 들은 765 아이돌들의 경악.



[이 처자는 조금이라도 너희를 일찍 보고 싶어서 시어터로 숨어들어온 모양이야. 뭐 나랑 너희 사장이 발견해서 기왕 이렇게 된 거,오늘 마지막 리허설이기도 하니 여기로 데려왔지.]



관리인 아저씨의 그 말에 기겁한 나는 뭐라도 해주길 바라며 타카기 사장을 바라봤지만 그는 그저 약간 당황한듯하면서도 헤실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765의 아이돌 몇 명이 신이 난 듯 내앞으로 몰려들었다.



[안녕하세요! 카스가 미라이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헤에,첫팬인 건가요~시어터로 옮겨 오고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첫팬이라니 제 인기 만점 해피라이프가 정말 코앞일지도? 헤헤,이부키 츠바사예요 잘 부탁 드립니닷~]



[자자,자세한 이야긴 있다가 리허설 공연하고 나서 하도록 하자고. 내일을 위해서 다들 이미 준비는 끝마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루미너스에 참여했던 5명. 너희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경험해 본 멤버들이야

누누이 강조했듯 앞서 나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을 따라 나아가는 길은 훨씬 쉬운 법이지. 부디 너희가 길을 개척해주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착실히 따라갔음 하고. 내 말 알아 들었지?]



[네!]



모두의 힘찬 목소리로 자그마한 준비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럼 준비하자고 마지막 리허설. 명심하렴 다들. 오늘은 관객이 있으니까! 소중한 이 시어터에서의 첫 번째 관객 말이야!]



웅성거리는 대 수라장에 부담이 백 배가 되어 벗어나고자 하는 날 눈치챘는지 관리인 아저씨는 은근슬쩍 아이들에게 마무리성 멘트를 하며 나를 뒤로 빼내고 앞에서 일장 연설을 늘어놓은 뒤 다시 문을 닫았다.



[휘유,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힘들구만!]



[하하핫 여전하구만 자네도!]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긴. 옛날에 말이지 한번은 정말 대단한 배우가 우리 시어터에서 주최하는 뮤지컬에 참여하게 됐었어. 다들 만반의 준비를 했었지. 모든 게 완벽해 보이던 순간에,그가 한마디 하더군 '한 명이라도 좋으니 관객을 데려다 놓고 리허설을 해 보라'라고.

왜 그러나 하고 했더니 왠걸,다들 여태 보이지 않던 실수와 불협화음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대체 어떻게 찾아낸 거냐' 라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때야말로 엔터테이너가 가장 긴장하는 순간이며 또 가장 최선을 다해야 하는 순간'이란 거야. 

과연 그건 맞는 말이었고 다들 그에 맞춰 다시 연습을 시작해서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대흥행을 이끌어냈지.]



[너무 길어요!]



[에잉 요즘것들은...누군가 보는 사람이 있을 때 아이돌이고 연극 배우고 진정한 본모습이 나온단거다 이눔아!]



[근데 왜 하필 저인 거냐구요...]



[왜긴 왜야 내 집,내 시어터에 맘대로 들어왔잖아. 하다못해 정문으로 통과하면 얼마나 좋아. 뒷문으로 스윽 들어와서는..]



[치잇...]



달리 반박할 논리가 없었다 멋 모르고 들어온 내 잘못은 맞으니.

이 관리인 아저씨 페이스는 뭔가 장난이 아니다. 아까 아이들을 휘어잡는 것도 그렇고 절대 주도권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이젠 자살이고 뭐고 그냥 오늘은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



그렇게 해서 결국 난 지금 이 시어터의 가장 큰 본관 무대의 관객석에 홀로 앉아 조용히 곧 시작할 무대를 기다리는 단 한명의 관객이 되었다.


[그건 그렇고 여기 정말 크구나...객석 수가 한...]


[프로듀서가 그러는데 2층까지 해서 천명까지 의자에 앉을 수 있데요! 만일 그 이상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쩌긴...누군가는 서서 봐야 에에엑?! 누구?!]


[우와악?! 노,놀라게 해버렸나요? 죄송해요!]


오늘 참 자주 놀라네...

그나저나 이 아이 아까 봤는데 이름이 분명...


[그러니까 카스가 미라이?]


[와! 그새 기억해주셨네요. 에헤헤 기뻐라♪]


자기 이름이 불렸단거에 기쁜듯 이 미라이란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머릴 긁적였다.


[아까 리허설 준비하라고 너희 프로듀서였나? 관리인분이 말씀하신거 아니였어? 지금 한창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있어야 되는거 아니야?]


[헤헷,물론 그게 맞는데 처음 오신 그것도 단 한명의 팬분이시니까 제 나름대로의 팬서비스를 하고 싶었거든요.]


[팬서비스?]


[데헤헤,팬과의 단 둘의 쌍자협의! 멋지지 않나요?]


[쌍자협의가 아니라 쌍방대화겠지...]


[앗,그런가요? 에헤헤...]


조금 바보 같다가도 해맑게 웃으며 또 머릴 긁적이는 카스가는 제법 예뻐보였다. 이러니 아이돌인 거일라나?


[카스가양은...]


[네?]


[카스가양은 아이돌의 어떤 면이 즐거운거야?]


[아이돌의 즐거운 면이요? 전부에요!]


[전부?]


[저,사실 여기 밀리언 스타즈 말고도 프로젝트 루미너스란 아이돌 프로젝트도 해봤어요. 그곳에서 시즈카쨩이랑 츠바사쨩이랑 또...아무튼 친구들이랑 선배들이랑 다른 프로덕션 분들까지 모두 참가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스탈릿 시즌이란 행사에서 마지막 스테이지까지 올라간거 있죠?]


[스탈릿 시즌? 아아,그 작년도에 완공한 스탈릿 돔에서 치뤄진 행사였지? 채널 돌리다 본 적 있어.]


가만 루미너스면 분명 그 행사 우승 팀이었던거 같은데? 이 아이 생각보다 대단한 아이인건가?


[네! 정말 굉장했어요! 마지막에 모두와 함께 무대에 올랐을때는...! 그때 정말 그해 있던 일들이 모두 한순간 지나가더라구요. 에 보자...코하쿠쨩이랑 있던 일들이랑 하루카씨랑 미카씨랑 있던 일이라던가...카호랑 같이...또...아,아무튼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카스가양은 정말 아이돌이 즐거운가 보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피고 하나하나 꼽으며 겪은 일들을 생각하는 카스가양을 보고 말했다.


[항상 즐겁던건 아니긴 해요. 그치만 돌이켜 보면 모두 추억이니까. 그리고 루미너스에 참가하고서 알게된 것도 있어요. 행복의 마법이요!]


[행복의 마법?]


[네! 루미너스에 있는 동안 코하쿠가 떠날 뻔 했다던가 슬픈일도 있었어요 하지만 모두의 도움으로 떨쳐내고 그 추억들을 쌓아서 만든 그 무대에서 팬 분들을 마주보면서 알게 됐어요. 더 밝게 웃을수록 저를 보는 팬 여러분도 행복하니까. 지금도 그렇잖아요? 웃고 계시니까.]


[앗...!]


나도 모르는새 나도 웃고있었다.


[저기있다! 미라이! 곧 시작인데 거기서 뭐하는거야?]


[응! 금방 갈게! 그럼,지켜봐주세요! 저희 무대 헤헤♪]


[으,으응...]


그렇게 말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달려가는 카스가의 뒷 모습은 정말 예뻤다.


그리고 몇 분후...


Thank you for...


つくろう 数えきれないステージ

츠쿠로- 카조에 키레나이 스테-지

만들자 수 없이 많은 스테이지


この場所から

코노 바쇼 카라

이곳에서부터


막이 오르며 빛나는 무대를 나는 맞이 할 수 있었다.



---



...せーの!

세- 노 !

하나- 둘- !


ありがとう..!!

아리가토-..!!

고마워...!!


765의 아이돌들이 준비했던 무대가 끝마치자 나도 모르게 열광해 기쁘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정말 간만에 느껴보는 열기,그리고 기쁨?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즐거운건 사실이니까.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저희 잘했나요?]


땀이 송골 송골 맺힌 카스가양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크하하핫! 그걸 말이라고 묻나? 모두 훌륭했어! 하지만 기억하라고 제군들! 내일은 훨씬 많을테니까 말야 절때 긴장감에 지지 말라고 다들!]


[솔직히 말해서 훌륭했어요. 왜 시어터가 되살아날꺼라고 하는지 알겠네요. 바깥에서 건물을 봤을땐 후줄근한 구닥다리 양식에 벽에 군데군데 얼룩까지 져서 안이 이렇게 훌륭할지도,아니 애초 아직 쓰는 건물인지도 예상 못했는데...]


[사람도 건물도 겉만 보고는 모르는 법이지. 이 건물은 나보다도 오래된 건물이야. 르메이가 여길 불태울때도 살아남았지. 뭐,조선계인 내가 제국 딱지가 붙어있던 이 극장을 산건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하하하핫! 아무튼간에 이 인테리어도 그렇고 외벽도 그렇고 세월이 흘렀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겉모습이 추레해도...]


우와아 이야기 길어...아까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이 아저씨 자기 생각 관철하기 시작하면 말이 되게 길어지는 타입이구나.


[자,그럼 이제 다 같이 가도록 하지 않겠나?]


타카기 사장이 나와 한참 장황하게 말을 잇고있던 관리인 아저씨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걸어왔다.

뜬금 없이 어딜 가잔거지?


[가다뇨? 그것도 저까지?]


[하하핫,어딜꺼 같나?]


잔을 까딱거리는 시늉을 하며 싱긋 타카기 사장은 웃어보였다.

그러자 무슨 계획대로라는 양 관리인 아저씨가 입꼬리가 턱끝까지 쫙 올라가게 웃어재꼈다.


아무래도 이 양반들...나 쉽게 놓아줄 생각 없는거 같다...



---



[자아,이 시어터와 앞으로 나가는 만개의 별들을 위해 건배.]


[하하핫 건배! 쿠로이 그 친구도 왔으면 좋았을텐데 참 아쉽구만.]


[난 그 양반 츤츤대는거 놀려먹는 맛에 살았는데 말이지. 자네도 한잔 드는게 어떻겠나? 젊은 친구. 보르도 와인이야. 내취향은 아니지만 말이지. 난 역시 아이리시 위스키가 맞아.]


결국 난 이 아저씨들 사이에 끼어 회식이라도 하는것처럼 술을 받아 마시는 신세가 되 버리고 말았다.

이제 됐어...아까 카스가양네 공연 볼때 잠깐 잊긴 했지만 다시 울적해져버렸어. 자살이고 뭐고 그냥 집에가서 자고싶다...


[분위기도 달아올랐겠다. 타카기,아까 하고 싶다 한말 이제 슬슬 꺼내는게 어떤가.]


[아아 그거? 확실히 지금 놓치면 영영 놓칠듯 하니 이제 이야기 해봐야 할라나.]


[뭘 또 꺼내려 하는건가요. 저 데리고 2차까지 가자거나 하는건 아니겠죠?]


아까 이 두사람에게 붙잡힌 뒤로 내내 휘둘린거에 지칠대로 지친 난 될대로 대란 식으로 지껄였다.

아,술 기운 탓도 좀 있을지도. 아까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던데. 아까 생각은 그리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런 비싼 와인을 거부할 순 없잖아.


[실은 말이지 팅하고 와버렸지 뭔가.]


[팅 하고 오긴 뭐가요? 흐꾹!]


[자네 말일세 아까 우리 프로덕션 아이들을 보는 그 눈빛! 그건 분명 쉽게 볼 수 없는 눈이었어. 그걸 보고 느꼈다네. 자네,프로듀서 한번 해보지 않겠나?]


[프로듀서요?]


[나랑 같이 타카기 밑에서 일해볼 생각 없냐 이거야.]


[...아.]


돌발발언에 술이 확 깨는걸 느꼈다.

채용제의? 이렇게 뜬금 없이?


[내가 느낌이 오고서 틀린적은 한번도 없다네. 올스타즈와 그 프로듀서도 오로지 직감으로 뽑았지 뭐 프로젝트 39는 그 프로듀서 주도로 뽑은 멤버들이지만 말일세.]


[저,사무직이야 물론 가능하긴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난데없이...]


[실은 말이지. 이 안건은 여기 이 친구가 강력히 주장했다네.]


[하아,말하지 말라니까.]


[네...? 아저씨가요?]


능글맞은 타카기 사장의 발언에 관리인 아저씨가 크게 한숨 쉬며 얼음 잔에 위스키를 따르곤 한번에 들이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후우...이리 된거 솔직히 말하지. 아가씨,자살 생각했었지?]


[..! 어떻게?]


[내가 말했지. 버블시절부터 운영했다고 말야. 버블이 무너졌을때,여기도 졸지에 자살명당으로 찍혀버렸었지. 빚이 많은 직원에,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된 단골 손님,한번은 아내가 내연남이랑 가족에 돈까지 모조리 가지고 튄 경우도 있었어 참 내...아무튼 자넨 너무 뻔했어. 뒷주머니에 콘센트선을 가지고다니는 여자가 이세상에 어디있나?]


[읏...]


[아까 그랬지? 후줄근하고 구닥다리에 폐건물인줄 알았다고. 그런델 제발로 들어오는 사람이 정상일까? 당연히 아니지. 그래서 아까 붙잡았던거야. 원랜 나도 타카기도 적당히 하고 되돌려 보내려 했지. 근데 조금 생각해 보곤 마음을 바꿨어. 왠지 아나? 자네 눈을 봤기 때문이었어.]


[눈이 어때서요?]


[아까 리허설에서 감동받은 눈을 보고 타카기가 감이 왔다 했지. 하지만 난 더 많은걸 봤어. 자네 눈엔 부러움과 아쉬움도 분명 담겨있었어. 그걸 보고 깨달았지. 삶에 미련이 남아있다고 말야.]


[하...하하핫 재미있네요. 어느정돈 맞췄어요. 아까 카스가양이랑 대화해보고 확실히 알겠더라구요. 여기 이 아이들,나보다 더 행복하구나,더 열정적으로 살고 있구나.나도 저럴 수 있다면 좋을텐데...근데 한가지 생각 못하신게 있네요. 저 당장 돌아가서 잘 곳도 없어요. 다음주까지 방을 빼달래요. 월세가 밀려서요. 당장에 직업도 없구요. 아저씨 말대로 이대로 끝내고 싶진 않은데...흑! 미련도 있는데 앞이 보이지가 않아요! 히끅! 세상에 저 홀로 뿐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단 말이에요! 근데 제게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술기운에 숨기려던 것들과 스스로도 아니라 부정하던 것들까지 모조리 까발려지면서 북받쳐오른 감정이 파도같이 몰려들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서럽게 울면서도 부끄러움에 난 양손으로 두 얼굴을 받쳤지만 나오는 눈물이 양손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걸 여전히 난 느낄 수 있었다.


[...]


[저런 젊은나이에 힘들었겠구먼. 옳지옳지 차라리 있는대로 울고 털어버리게.]


[...이보게 타카기. 우리가 당장은 여기 바 포함해서 이 건물 방들 다 써야하는건 아니지?]


[음? 으음. 확실히 당장은 레슨실이랑 비품실 사무실 공연장 정도인가.]


[그렇단 말이지이...아가씨,뚝 그치고 내말 한번 들어보게. 자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도록 하지.]


[네..?]


[돌아갈 곳이 없다메? 여기서 자도록 하게 예전에 취침실로 쓰던 곳이야 물론 있으니까 물론 일을 한다면 말이지. 대신 조건이 하나 있네. 자네,나랑 게임 한판 하지 않겠나?]


[게임이요...?]



---



[처음 뵙겠습니다! 밀리언 시어터에서 사무직을 맡고있는 아오바 미사키라고 해요. 관리인님은 지금 공연 준비로 바쁘시니까 안내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ㄴ..넵! 잘부탁드려요!]


[차암,프로듀서씨는 저보다 언니잖아요? 긴장 푸세요.]


[미안해요 미사키씨 이런 차림,하도 간만이라 에헤헤...]


떨리는 마음으로 정장을 입고 출근한 첫날. 긴장할대로 긴장한 나는 바들바들 떨면서도 걸음을 재촉했다.

나의 마지막 기회...


'자네에게 잘곳과 일자릴 제공하지. 타카기도 동의했으니까. 단,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인진 모르겠지만 저에게 선택지따윈 없겠네요.'


'하,말했잖나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자네가 나를 프로듀스로 이겨보게. 그런다면 앞으로도 자넬 쭉 고용하겠네만 만일 내게 진다면..그떈 짐 싸고 길바닥에 나앉아야 겠지. 타카기가 자넬 신용했지만 난 아직 자넬 믿지 못하겠어.'


'...좋아요 받아들이죠.'


'후후후,그럴줄 알았어. 게임이 어떻게 돌아갈지 이야기해주지. 우리 프로젝트,정식 명칭으론 밀리언 스타즈는 오늘 오픈을 필두로 이제 본격적인 정식 활동에 들어갈꺼야. 이제 다들 어느정도 숙련이 됐으니 본격적으로 단독이나 유닛으로 활동하게 되겠지.'


'그렇다면 어느쪽이 더 성공하나를 겨룬단 말인가요?'


'아니,그 아이들을 데리고 갈등을 봉합하고 결함을 극복시키고 성공시키는게 프로듀서의 의무지. 이제 감이 오나? 중요한건 성공이 아니야. 그 아이들을 어엿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고 원석을 다듬아 보석으로 빛나게 하는게 진정 프로듀서의 일이지. 성공은 그 아이들 스스로 이뤄내는거야. 알았나? 저 아이들이 선택한 프로듀서. 그거로 점수를 낸다. 최후에 웃는자가 승리자지.'


살아남으려면 죽든 살든 모두를 빛나게 만들어야 한다. 빌어먹을 인간 같으니..정말 그 말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어...


[듀서씨? 프로듀서씨!]


[핫..?! 네!]


[드디어 시어터의 모두와 만나러 갈 차례에요. 관리인님이 먼저 이야기 해둔다고 했으니 모두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길 빌께요.]


[네..고마워요 아오바씨.]


[...해서 새 프로듀서를 들이게 됐다. 다들 벌써 그게 누군지 궁금하겠지? 하하하! 놀라지 마시라 자네들이 어제 본 바로 그 팬1호가!]


나는 관리인 아저씨의 소개에 맞춰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갔다.

모두의 이목이 나를 향해 있었다.


[오늘의 프로듀서란 말씀이지!]


[765 시어터의 새 프로듀서입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공은 이미 울렸다. 남은건 누가 이기냐 뿐.



---



일장 소동이 지나가고 제대로 단 둘이 술을 마시게 된 타카기 사장과 관리인.

둘은 간만에 즐거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하하핫,이거 한방 먹었구만 그래. 거기서 그런 조건을 그 친구에게 내걸줄이야.]


[그 친구,정말로 빠져든거 같았으니까. 이제 남은건 배수진에 빠진 그 아이가 어디까지 해내나 겠지.]


[그래 그렇고 말고...지금 생각해도 이곳에서 만난건 참 인연일지 모르겠네. 어쩌면 드디어...자네?]


어느순간 정적이 감돌고 있음을 깨달은 타카기는 뒤늦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의 친우는 어느새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하하핫,그래 자넨 언제부턴가 꼭 마술처럼 왔다 사라졌지...그 친구가 자넬 바꿔줄지도 몰라.]


홀로 씁쓸한 마지막 한모금을 마치고,타카기는 바를 정리한 후 불을 껏다. 이 낡은 시어터의 밤이 그렇게 끝이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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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마스 하십쇼 정.말.갓.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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