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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히는 도시」 이치노세 시키 단편 (feat.운전만 해)

댓글: 14 / 조회: 1261 / 추천: 3



본문 - 10-23, 2021 01:17에 작성됨.

21/11/28 조금 수정하고 내용 추가


22/12/30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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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루눈이 흩날린다. 떠들썩했던 거리가 다시 적막해지고, 광장의 트리가 끌려나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야는 불야성이었지만, 이제는 추위와 눈에 파묻혀 도시는 잠들고 있다.


 때를 맞추지 못한 눈은, 환영받는 대신 길거리로 쓸려나간다. 차들에 짓밟히고 매연에 시꺼매져 눈물을 흘린다.


"조용하네."


"그러게."

 

 드문드문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간다. 평상시 같았으면 밴을 타고 갔어야 하나, 어제의 한파로 차가 안 굴러가서, 부득이 그와 함께 돌아가는 중이다.


 나름 아이돌이랍시고, 춥다면서 이렇게 온갖 걸 둘러놓은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신선한 경험을 하는 중이라, 춥다던지 짜증난다던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즘 일도 동료도 많아져 그가 케어를 맡는 빈도도 줄어든 만큼, 시간을 내면서까지 굳이 그가 같이 가주는 건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주변의 공기를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이브의 콘서트 여운이 아직도 남았던 탓일까. 차갑고 생기없는 이 거리가 참 쓸쓸했다.

... 아니, 차라리 이렇게 어둡고 적막한 편이 어울렸다. 빛나는 네온과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자면 왠지 더 착잡해질 뿐이니.


 모퉁이를 돌자 느긋하게, 혹은 망가진 듯 로우파이를 잔뜩 먹인 시티팝이, 다시 스피커를 통해 열화되어 들려온다.


 도시의 세련됨을 노래하는 가사가, 도시와 나를 분리하는 우울함으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감성일까? 




 ... 감성이라, 화학약품과 논문에 중독되어 살던 내가 감성을 논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1+1은 반드시 2다. 물을 분해하면 반드시 수소와 산소가 나온다. 그런 당연한 것들만 봐왔던 내가 이렇게 생각조차 젖어버린 건...


그래, 그 때문이겠지.


 ‘좋은 냄새네? 흥미로운데?’라며 그에게 달라붙었던 과거의 미친년에게는 참 감사하다. 정말 그때의 나는 어떤 인간이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게 그때 날 쳐다보던 시선인가. 나도 공감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던가.



말없이 그냥 걷기만 해요 

부쩍 줄어든 대화 속에

What happen to us

침묵이 내려 지금


"달리는 차 안에 우린 아무 말 없네

너는 그렇게 운전만 해~"


"어?"


"뭐야, 노래 따라부르던 거 아니었어?"


"... 맞아."


 또 얼버무렸다. 말을 끊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내 대화 능력은 심각했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날 케어해주는 그에게는 더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 '도시'의 세련됨이지 도시 '사람'들의 세련됨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도시 전체도 아니고 더 좁고 폐쇄된 차라는 공간에서 소통의 단절을 말하니 더더욱."


뭐, 지? 내 생각을...?


"어...? 내가 그것까지 말했어?"


"아니, 시티팝을 들으면서 조금 표정이 가라앉은 정도? 그래도 알아야지, 네 프로듀서잖냐."


 표정이 가라앉아? 하... 정말 놀라웠다.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고... 아니,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단 말인가.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면서도, 아무리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당하는 아이돌이라도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남의 얼굴 훔쳐보고 그러는 거 아냐."


“미안, 직업병이라.”


“흠. 그래서 시티팝이 좀 마음에 든 거야? 그럼 다음 곡은 그쪽으로 해볼래?”


“그렇게 멋대로 결정해도 돼?”


“이래봬도 팀장이랍니다~ 가수 앨범 한두개는 마음대로 프로듀싱 가능해.”


“... 좀 더 생각해볼게.”


“그래.”


 생각보다 말이 길어지자, 역시나 긴장한 나머지 말을 끊어버렸다. 나 스스로도 왜 이렇게 서툰지 짜증이 난다. 예전처럼 두서없는 아무말이라도 대화가 오래갔던 게 나을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이건 나 자신의 약속이니까. 포장된 모습 대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한 그와의 약속이니까.

 

 첫 번째 라이브의 뒤편에서 내 등을 밀어준, 생애 처음으로 수많은 이들 앞에서 나를 보여준 그때부터, 나는 그의 앞에서는 'MIT의 Shiki'도 '346의 아이돌'도 아닌 이치노세 시키로 있기로 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 * *




 번화가에서 주택가로 공간이 이동하자, 주위의 정적에 맞춘 듯 우리의 소리도 없어졌다. 

사람이야 원체 없었지만, 이제는 소리마저 잦아든, 완벽한 밤이었다.


불안하게 깜빡이는 가로등과, 차갑게 식고 덮여진 차들만 남은 길.


 도시가 잠들고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며칠 전까지의 활기는 간데없는 것이 하늘에서 내린게 눈이 아니라 수면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슬로우 모션으로 스쳐가는 집에도 불은 켜지지 않고, 짓밟힌 눈 표면에 난반사된 빛이 무대효과도 아니면서 공간을 채운다.


주인공도, 관객도, 이야기도 없는 주제에.


 그러다 화학물질에 예민한 내 코가 반응했다. 차갑지만 청량하지는 않은 공기. 

낮 동안에 쌓인 매연이 밤중의 역전층(1)에 가로막혀 도시에 머무른 탓일까. 어쩌면 내일은 스모그가 올지도 모른다.  


  아, 다시 생각이 논리 쪽으로 돌아왔다. 감성에 빠져 무뎌지고 뭉개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지금은 필요가 없다.

무대 외의 내 감성은 아직도 메마른 만큼, 이 귀중한 경험을 지금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 아, 망할. 끊어졌다. 생각이 안 난다. 


순간적인 짜증 한 번의 대가로는 너무나도 컸다. 빌어먹게도.


 하아... 절로 한숨과 함께 김이 서렸다. 기껏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됐다, 굳이 떠올리려 하지 말고 갈무리나 하자. 내일 깨서 관조하고 기억을 돌려보면 떠오르겠지.

그도 아니면 그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가 우리의 말을 잊을 리 없으니.


 이제 생각을 그만두고 머리를 식혔다. 오늘만큼 충실하고 기분좋은 날을 짜증으로 끝낼 수는 없으니.


그는... 계속 옆에 있었다. 언뜻 굳었던 그의 얼굴이 이제 조금 풀린 것 같기도 하다.

 

그를 보고 있자니 편안함이 느껴졌다. 아니 안도감인가.



 언제나 그랬다. 그는 항상 그곳에 있었고, 어느 순간 당연하다고 느껴질 만큼 내 옆에서 나를 도왔다. 


분명 내 인생에서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은 짧은 만남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없던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조차 희미해질 정도로.


 과거의 내가 죽고, 새로운 나로 변해간다. 어쩌면 소름돋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소름돋는 일은, 그것을 내가 가장 바라고 기뻐한다는 것이겠지.


그와 함께, 스스로 나를 죽이고, 나를 바꿔가는 것이... 그래, 정말이지 기뻐서 어쩔 수 없었다.




* * *



 어느새 눈은 걷히고, 상공의 구름들도 어디론가 쓸려갔다.


문득, 이 조용함 속에서 의식이 가라앉자, 적당히 던져둔 기억들이 올라왔다.


--- 시키 씨는

--- 혼자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으음... 글쎄?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로?



 새벽, 길을 거니는 인영은 두 사람. 세상은 어두운 밤에 가라앉아, 불빛도 드문드문하다.


--- 반짝거려


 그래서인지, 도심임에도 하늘에는 별 몇 개를 볼 수 있었다.


얼마간 그대로 별을 쳐다본 채로 걸어가다가,



아, 내 생각에 빠져서, 널 잃어버릴 뻔했어.



 꾸욱, 하고. 이치노세 시키는 앞을 걸어가는 남자의 옷자락을 그러쥐었다.


"응? 왜그래, 시키?"


"아무것도? 하하..."


...정말로?


그가 없어지는 걸로도 나는...


"시키?"


걸어갈 수 있을까?


"괜찮아?"


이 도시에서, 나 혼자...


"...저기."


"응?"


"손."


덧없이 흔들리는 저 별빛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사람.


"그래."


--- 꼬옥


이 손을 놓고, 네가 어디론가 가버린다면,


분명,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이 도시 속에 파묻혀 가겠지.






* * *

* * *



(1) 일반적으로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하강하는 반면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상승하는 대기층, 상부가 따뜻하고 하부가 차가워 매우 안정되어 대류 등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아, 대기 오염물질이 갇히게 되어 스모그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 대외용 한국어로 써본 그 부분.

 

생각보다 말이 길어지자, 역시나 긴장한 나머지 말을 끊어버렸다. 나 스스로도 왜 이렇게 서툰지 짜증이 난다. 예전처럼 두서없는 아무말이라도 말이 오래갔던 게 나을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이건 나 자신의 약속이니까. 포장된 모습 대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한 그와의 약속이니까.


데뷔 무대의 뒤편에서 내 등을 밀어준생애 처음으로 수많은 이들 앞에서 나를 보여주고, 본명 지희(志希) 대신 라희(拏喜)라는 예명을 선택한 그때부터, 나는 그의 앞에서는 MIT에스페(espérer) 도 연예인 정라희도 아닌 유지희로 있기로 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에스페(espérer) : 희망

지희(志希) : 희망을 바라다

라희(拏喜) : 행복을 붙잡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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