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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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프로듀서
21/11/28 조금 수정하고 내용 추가
22/12/30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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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가루눈이 흩날린다. 떠들썩했던 거리가 다시 적막해지고, 광장의 트리가 끌려나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야는 불야성이었지만, 이제는 추위와 눈에 파묻혀 도시는 잠들고 있다.
때를 맞추지 못한 눈은, 환영받는 대신 길거리로 쓸려나간다. 차들에 짓밟히고 매연에 시꺼매져 눈물을 흘린다.
"조용하네."
"그러게."
드문드문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간다. 평상시 같았으면 밴을 타고 갔어야 하나, 어제의 한파로 차가 안 굴러가서, 부득이 그와 함께 돌아가는 중이다.
나름 아이돌이랍시고, 춥다면서 이렇게 온갖 걸 둘러놓은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신선한 경험을 하는 중이라, 춥다던지 짜증난다던지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요즘 일도 동료도 많아져 그가 케어를 맡는 빈도도 줄어든 만큼, 시간을 내면서까지 굳이 그가 같이 가주는 건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주변의 공기를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이브의 콘서트 여운이 아직도 남았던 탓일까. 차갑고 생기없는 이 거리가 참 쓸쓸했다.
... 아니, 차라리 이렇게 어둡고 적막한 편이 어울렸다. 빛나는 네온과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자면 왠지 더 착잡해질 뿐이니.
모퉁이를 돌자 느긋하게, 혹은 망가진 듯 로우파이를 잔뜩 먹인 시티팝이, 다시 스피커를 통해 열화되어 들려온다.
도시의 세련됨을 노래하는 가사가, 도시와 나를 분리하는 우울함으로 느껴지는 건 나만의 감성일까?
... 감성이라, 화학약품과 논문에 중독되어 살던 내가 감성을 논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1+1은 반드시 2다. 물을 분해하면 반드시 수소와 산소가 나온다. 그런 당연한 것들만 봐왔던 내가 이렇게 생각조차 젖어버린 건...
그래, 그 때문이겠지.
‘좋은 냄새네? 흥미로운데?’라며 그에게 달라붙었던 과거의 미친년에게는 참 감사하다. 정말 그때의 나는 어떤 인간이었는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이게 그때 날 쳐다보던 시선인가. 나도 공감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던가.
말없이 그냥 걷기만 해요
부쩍 줄어든 대화 속에
What happen to us
침묵이 내려 지금
"달리는 차 안에 우린 아무 말 없네
너는 그렇게 운전만 해~"
"어?"
"뭐야, 노래 따라부르던 거 아니었어?"
"... 맞아."
또 얼버무렸다. 말을 끊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내 대화 능력은 심각했다. 다른 이들도 아니고 날 케어해주는 그에게는 더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 '도시'의 세련됨이지 도시 '사람'들의 세련됨은 아니니까. 더군다나 도시 전체도 아니고 더 좁고 폐쇄된 차라는 공간에서 소통의 단절을 말하니 더더욱."
뭐, 지? 내 생각을...?
"어...? 내가 그것까지 말했어?"
"아니, 시티팝을 들으면서 조금 표정이 가라앉은 정도? 그래도 알아야지, 네 프로듀서잖냐."
표정이 가라앉아? 하... 정말 놀라웠다. 그 미묘한 표정 변화를 잡아내고... 아니, 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단 말인가.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면서도, 아무리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당하는 아이돌이라도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남의 얼굴 훔쳐보고 그러는 거 아냐."
“미안, 직업병이라.”
“흠. 그래서 시티팝이 좀 마음에 든 거야? 그럼 다음 곡은 그쪽으로 해볼래?”
“그렇게 멋대로 결정해도 돼?”
“이래봬도 팀장이랍니다~ 가수 앨범 한두개는 마음대로 프로듀싱 가능해.”
“... 좀 더 생각해볼게.”
“그래.”
생각보다 말이 길어지자, 역시나 긴장한 나머지 말을 끊어버렸다. 나 스스로도 왜 이렇게 서툰지 짜증이 난다. 예전처럼 두서없는 아무말이라도 대화가 오래갔던 게 나을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이건 나 자신의 약속이니까. 포장된 모습 대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한 그와의 약속이니까.
첫 번째 라이브의 뒤편에서 내 등을 밀어준, 생애 처음으로 수많은 이들 앞에서 나를 보여준 그때부터, 나는 그의 앞에서는 'MIT의 Shiki'도 '346의 아이돌'도 아닌 이치노세 시키로 있기로 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 * *
번화가에서 주택가로 공간이 이동하자, 주위의 정적에 맞춘 듯 우리의 소리도 없어졌다.
사람이야 원체 없었지만, 이제는 소리마저 잦아든, 완벽한 밤이었다.
불안하게 깜빡이는 가로등과, 차갑게 식고 덮여진 차들만 남은 길.
도시가 잠들고 있다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며칠 전까지의 활기는 간데없는 것이 하늘에서 내린게 눈이 아니라 수면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슬로우 모션으로 스쳐가는 집에도 불은 켜지지 않고, 짓밟힌 눈 표면에 난반사된 빛이 무대효과도 아니면서 공간을 채운다.
주인공도, 관객도, 이야기도 없는 주제에.
그러다 화학물질에 예민한 내 코가 반응했다. 차갑지만 청량하지는 않은 공기.
낮 동안에 쌓인 매연이 밤중의 역전층(1)에 가로막혀 도시에 머무른 탓일까. 어쩌면 내일은 스모그가 올지도 모른다.
아, 다시 생각이 논리 쪽으로 돌아왔다. 감성에 빠져 무뎌지고 뭉개지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지금은 필요가 없다.
무대 외의 내 감성은 아직도 메마른 만큼, 이 귀중한 경험을 지금 끝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더라.
... 아, 망할. 끊어졌다. 생각이 안 난다.
순간적인 짜증 한 번의 대가로는 너무나도 컸다. 빌어먹게도.
하아... 절로 한숨과 함께 김이 서렸다. 기껏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중이었는데.
됐다, 굳이 떠올리려 하지 말고 갈무리나 하자. 내일 깨서 관조하고 기억을 돌려보면 떠오르겠지.
그도 아니면 그에게 물어보면 된다. 그가 우리의 말을 잊을 리 없으니.
이제 생각을 그만두고 머리를 식혔다. 오늘만큼 충실하고 기분좋은 날을 짜증으로 끝낼 수는 없으니.
그는... 계속 옆에 있었다. 언뜻 굳었던 그의 얼굴이 이제 조금 풀린 것 같기도 하다.
그를 보고 있자니 편안함이 느껴졌다. 아니 안도감인가.
언제나 그랬다. 그는 항상 그곳에 있었고, 어느 순간 당연하다고 느껴질 만큼 내 옆에서 나를 도왔다.
분명 내 인생에서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은 짧은 만남이었는데. 이제는 그가 없던 과거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조차 희미해질 정도로.
과거의 내가 죽고, 새로운 나로 변해간다. 어쩌면 소름돋는 일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소름돋는 일은, 그것을 내가 가장 바라고 기뻐한다는 것이겠지.
그와 함께, 스스로 나를 죽이고, 나를 바꿔가는 것이... 그래, 정말이지 기뻐서 어쩔 수 없었다.
* * *
어느새 눈은 걷히고, 상공의 구름들도 어디론가 쓸려갔다.
문득, 이 조용함 속에서 의식이 가라앉자, 적당히 던져둔 기억들이 올라왔다.
--- 시키 씨는
--- 혼자서라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으음... 글쎄?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말로?
새벽, 길을 거니는 인영은 두 사람. 세상은 어두운 밤에 가라앉아, 불빛도 드문드문하다.
--- 반짝거려
그래서인지, 도심임에도 하늘에는 별 몇 개를 볼 수 있었다.
얼마간 그대로 별을 쳐다본 채로 걸어가다가,
아, 내 생각에 빠져서, 널 잃어버릴 뻔했어.
꾸욱, 하고. 이치노세 시키는 앞을 걸어가는 남자의 옷자락을 그러쥐었다.
"응? 왜그래, 시키?"
"아무것도? 하하..."
...정말로?
그가 없어지는 걸로도 나는...
"시키?"
걸어갈 수 있을까?
"괜찮아?"
이 도시에서, 나 혼자...
"...저기."
"응?"
"손."
덧없이 흔들리는 저 별빛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사람.
"그래."
--- 꼬옥
이 손을 놓고, 네가 어디론가 가버린다면,
분명,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이 도시 속에 파묻혀 가겠지.
* * *
* * *
(1) 일반적으로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하강하는 반면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상승하는 대기층, 상부가 따뜻하고 하부가 차가워 매우 안정되어 대류 등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아, 대기 오염물질이 갇히게 되어 스모그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 대외용 한국어로 써본 그 부분.
생각보다 말이 길어지자, 역시나 긴장한 나머지 말을 끊어버렸다. 나 스스로도 왜 이렇게 서툰지 짜증이 난다. 예전처럼 두서없는 아무말이라도 말이 오래갔던 게 나을까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이건 나 자신의 약속이니까. 포장된 모습 대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기로 한 그와의 약속이니까.
데뷔 무대의 뒤편에서 내 등을 밀어준, 생애 처음으로 수많은 이들 앞에서 나를 보여주고, 본명 지희(志希) 대신 라희(拏喜)라는 예명을 선택한 그때부터, 나는 그의 앞에서는 MIT의 ‘에스페(espérer) 유’도 연예인 ‘정라희’도 아닌 유지희로 있기로 했다.
그걸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감당할 수 있었다.
에스페(espérer) : 희망
지희(志希) : 희망을 바라다
라희(拏喜) : 행복을 붙잡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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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차의 시키의 발버둥이자 10년차의 시키의 안온함이 뒤섞인
(사실 원래 오래된 관계였다가 중간 설정변경 때문이지만)
그런 관계입니다.
아이돌로서의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프로듀서에 대해 복잡하고도 특별한 감정을 지닌
시키양에 대한 멋진 작품을 선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시의 불빛과 탁한 밤 공기와
한 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연말의 분위기가
합쳐져 참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네요.
흔히 낭만적으로만 다뤄지는 '연애 감정' 역시
여러 호르몬들이 칵테일처럼 뒤엉켜 형성되는
복잡한 생화학 반응의 일종이라 보는 견해도 떠오릅니다.
자신의 일상에 멈출 수 없는 화학반응을 일으킨
촉매와 같은 프로듀서를 보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결국 마음을 굳혀가는 시키양을 보면서
과학자이자 아이돌이자 여자 아이인 시키양의
여러 일면들을 동시에 겹쳐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흥미본위로 늘 자유분방하게 실종되거나
대개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마이페이스이지만
슈코의 사례에서 보듯, 애초에 가출이라는 건
집이든 사무소든 돌아갈 곳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고
그런 점에서 시키양의 실종이라는 것도
결국 그녀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니
시키양은 어쩌면 언제 어디서나 진짜 자신을 찾아줄 수 있는
프로듀서와 같은 사람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우에 따라 가명과 가면을 쓰지만
그 어떤 이름을 쓰더라도 결국은
본연의 자신을 프로듀서에게 오롯이 내비치려는
시키양에게 사랑받는 프로듀서는 정말 부러운 사람이네요!
쌀쌀해진 연말, 항상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흥미로운 시키양 단편, 감사합니다!
화학 시키가 아닌 감성 시키는 어떠셨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새로운 시도라고 도전했다가 그놈의 감성병이 폭발해서 시키같지 않은 시키가 튀어나왔습니다만... 크리스마스 직후와 연말, 눈오는 밤의 새벽감성이라고 봐주세요. ㅎㅎㅎ...
이번 시키의 마음과 4차원의 해석에는 어디서 봤던 이 글이 영향을 많이 줬습니다.
"그녀가 그 남자의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연기야."
"인간이라면 반드시, 아주 작게라도 자신을 괴롭혔던 그의 죽음에 대해 기쁨, 통쾌함, 하다못해 안도라도 해야 했어. 그런데 슬픔만 100%? 로봇이 아니라면 연기일 수밖에 없지."
한 가지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은 없다. 그럼 시키의 4차원은 그냥 그녀의 천성이라서일까? 라는 의문과 고찰이 이번 글의 두번째 뼈대가 되었습니다.
실종, 과거의 시키라면 어느 순간 한계를 넘어가면 반향 없는 일방적인 동경과 지루한 세상에 질려, 누구도 찾지 못할 소실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키는 그럴 수 없겠죠. 자신의 유일한 이해자이자 동반자를 버리고, 다시 무의미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길들여진 거죠. 언제나 흥미가 떨어지면 떠날 수 있는 길고양이에서, 가족이 생겨 집을 나가도 언젠간 돌아오는 집고양이로.
그러나 누군가를 길들인다는 것은, 나 또한 길들여지는 것. 프로듀서 또한 이젠 시키 없는 일상은 상상도 하지 못하겠죠.
어쩌면 잘려나간 다음 독백으로는 이게 가장 어울릴지도 모르겠군요.
'그렇기에야 말로, 몇 번이고 실종해버려도, 다시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가출을 통해 두번째 집을 찾은 누군가처럼, 어느새 나도, 이곳이 내 안식처이자... 돌아갈 곳이 되어버렸으니까.'
자신이 사라지기보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시키였습니다.
가명이라기 보다는, 한국어 버전을 좀더 설명하자면 '에스페'는 이름이 어려워서 지희라는 이름을 외국어로 번역한 거고, '라희'는 '행복을 붙잡다'. 데뷔 무대의 그순간을 잊지 않자는 마음과, 자신이 바라는 이상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은 이상에 도달하지는 못했기에 그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나' 인 '지희'인 거죠.
희망을 바라던 소녀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 파묻히고 단절된 도시 속에서도 연결되어, 이윽고 행복을 붙잡는다.
더욱 관계를 이어나갈 두 사람을 응원하며, 기나긴 감상 정말 감사합니다.
역전층 이야기는 공시 공부할 때 본 적이 있습니다. 국어 쪽에서 나온 지문이었지....
한 쪽으로만 생각하기보단 융합인재가 더 좋잖아요? 뭐 이거 시키 맞아? 하는 위화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쓴 장본인조차도 좀 그런데 ㅎㅎ...
역전층은 그냥... 감성에 계속 끌려가기 전에 분위기 환기용으로 넣은 겁니다. 배경과 어울리고 적절하게 끊을만한 소재를 찾다가 딱 하고 떠올랐어요.
덕분에 그놈의 감성폭발 전에 컷할 수 있었네요. 맨 마지막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초반에 계속 감성이 올라가서 이 마지막의 담백함으로 어떻게 이어지지 하는 연결 부분을 계속 며칠동안이나 고민했습니다. 사실 아직도 덜 매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요...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프로듀서님이 쓰신 작품은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멋진 작품을 써 주심에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시티팝이라는 소재가 굉장히 마음에 와닿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난 노래가 이치노세 시키의 커버곡 중 하나인
도쿄 지헨의, 시이나 노리코의 "여자아이는 누구라도" 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이치노세 시키는 이름 그대로
희망을 바라지만, 기존에 바란 희망은 자신의 희망이 아닌
타인의 희망을 들어주기 위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꿈이 아닌, 그저 부모의, 어른들의, 모두의 바램대로 조기 진학하고
미국으로 날아가고, 박사까지 단숨에 달려갔어도
그것은 끝끝내 자신의 희망이 아닌 타인의 희망이였기 때문에
존재의 무력감을 느끼고 탈선해서 기어코 일본으로 돌아왔다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희망이 아닌, 시키의 희망을 바라는 사람이 나타났죠
그게 바로 프로듀서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일겁니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제껏 한번도 희망이라는걸 가져본 적 없는 아이가
스스로 희망을 붙잡는 과정은, 정말로 맨발로 걸어가는 신데렐라와 가장 근접한 모습일겁니다.
자신도 이해를 못하는 것 이죠, 천재라고 칭송받으며 모두가 우러러보며 살았고
천재라는 이름하에, 범인들의 희망과 바램만을 들어주고 살았는데
처음으로 자신을 이끌어주는,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천재]를 이끌어주는 남자와의 만남은
분명 시키를 새롭게 변화시켰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놓치기 싫었을겁니다. 그 남자가 사라져버리면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이끌어준 사람을 놓쳐버린다는 공포와 고통
천재로써는 절대 느껴볼 수 없는 감정에 휩쌓여버린 시키가 다시금 빛나리라 생각친 않습니다.
외적인 이야기로, 데레스테의 이치노세 시키 5차 SSR의 메리 베드 유토피아의 에피소드의 경우
"끝끝내 자신을 이끌어줄 프로듀서를 찾지 못한 이치노세 시키는, 감정따위에 흔들리는 인류에게 허무함을
느끼고, 녹화가스로 온 인류를 식물화 시킨다. 그리고 최후에는 자신마저도 식물화 되어간다."
라는 대단히 섬뜩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키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이끌어주는 프로듀서는 도시, 세계, 아니 인류와도 바꿀 수 없는
그런 소중한 희망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들의 희망이 아닌, 이치노세 시키의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생각합니다.
역시 대단하신 프로듀서 분들이 많으시네요. 제가 생각하고 쓴 그 이상의 부분을 이렇게 답해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저도 더욱 자극받고 기쁘게 느껴집니다.
말씀대로 시키의 행복, 아니 희망은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었죠. 특히 아버지의... 기대를 부응하기 위한 삶이자 재능이었고 그러다가 만난 그. 미지이자 새로운 희망인 그를 통해 진정한 희망이자 행복을 찾아나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를 '완전히 이해해버리는 것'을 두려워했죠. 예전에 시놉시스 썼던 건데 '프루스트 이펙트' 노래는 그것을 두려워 한 시키가 그의 곁에서 실종되어버린 if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렇게 보니 제가 가장 마음에 든 주제인 '바람을 바람'에 알맞기도 하네요.
새가 하늘을 날고자 한다면 등을 밀어줄 '바람'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 자신이 하늘을 날고 싶다는 '바람'이 필요하듯이.
희망을 바란다면, 먼저 누구를 위한 희망인지, 내가 왜 그것을 바라는지를 이해해야만 진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또다른 신선한 감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