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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리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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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7, 2014 01:09에 작성됨.

“하지만 왜 이런 짓을 하신 거죠? 쿠로이 사장님께서 미키에게 귀띔을 하셔서 저를 돕게 만든 건 이해를 했습니다만‥‥‥. 왜 그런 짓을?”
“네 녀석의 쓰레기 사무소의 사훈이 뭐지?”
“단결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네 녀석의 요즘 꼴은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다. 만약 네 녀석이 복귀를 하더라도 765 프로덕션의 기본 정신이 와해된다면 내가 짓밟아버리더라도 재미가 없지. 그런 거다.”
이 사람은 진짜‥‥‥. 나쁜 의미로는 외곬이고 좋은 의미로는 한결같은 사람이구나. 아마 저 말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각종 방해 공작으로 우리 사무소를 괴롭혀온 사람이지만 저 말은 진실이겠지.

“덧붙여서 말하자면 네 녀석이 혼자서 이 언덕을 오르지 못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지금의 네 녀석이 오르지 못할 곳을 골랐기 때문이다.”
“치밀하시네요.”
하긴 그렇지 않으면 미키가 나설 차례가 없으니까.
솔직히 이건 조금 놀랐다. 일반인이 가볍게 오를 수 있다는 언덕이라는 말을 너무 믿었기도 했고‥‥‥. 본격적으로 걸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비교할 수도 없었기에 눈치 채기 힘들었다.

쿠로이 사장은 내가 미키를 의지하게 만들었다. 요즘 나는 765 프로덕션에서 버림받는다는 정신적인 압박감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외에도 예전처럼 일하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쓸데없이 오기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쿠로이 사장은 그런 내게 현실을 보여줬다.

미키가 나를 도와주는 현실을 보여줬다.
나는 버림받지 않는다. 내가 힘들 때는 아이돌 아이들이 도와준다고. 그러니 쓸데없이 버티지 말라고 내게 충고를 해준 거다.
“이 언덕‥‥‥. 실은 이 언덕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은 타카기와 내가 자란 곳이다.”
“우리 사장님하고요?”
“미키도 그건 처음 들었어.”
쿠로이 사장이 혀를 차면서 말을 이었다. 타카기 사장님 관련 화제여서 그런지 쿠로이 사장은 조금 신경질적으로 말했지만, 그런 것치고는 왠지 모르게 편안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옛날이야기다. 나는 마을에서 상당히 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처지였다.”
음, 왠지 그럴 것 같다. 저 사람 성격을 보면‥‥‥.
쿠로이 사장이 나를 노려봤다.

“왜 그러시죠? 이야기 계속 하시죠.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째려봐서 어쩔 겁니까. 어차피 내 생각인데.
쿠로이 사장은 눈의 힘을 풀었다.

“그 래서 어느 날은 가출을 해버리고 말았지. 그리고 이 언덕으로 왔다. 당시 언덕은 공사를 하기 전이라서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경사가 지고 풀이 무성한 곳이었지. 지금은 공사를 해서 많이 낮아진 거다. 뭐, 그 공사도 이런 시골 촌구석은 장사가 될 거리가 없기 때문에 중단되었다는 것 같지만.”
언덕이 정돈된 이유는 공사 때문이었나‥‥‥.
쿠로이 사장이 이야기를 계속한다.

“가 출을 했을 때가 밤이었다. 나는 언덕을 올랐다. 처음에는 그냥 다른 사람들을 놀래줄 생각이었다. 내가 없어지면 부모가 내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줄 거라는 머저리 같은 생각을 했었다. 당시 내 부모가 나한테 거의 관심을 주지 않은 탓도 있었지. 뭐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심한 생각이었던 건 변함이 없다.”

후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쿠로이 사장은 계획 없이 가출을 했기 때문에 플래시라이트 같은 도구를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쿠로이 사장은 그 때문에 언덕을 오르다가 발을 헛디뎠다. 결국 다리가 부러진 채로 언덕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는데‥‥‥. 그 때 타카기 사장님께서 쿠로이 사장을 발견하셨다는 거다.

타카기 사장님은 쿠로이 사장이 가출했다는 소식을 듣고 쿠로이 사장을 계속 찾으셨다고 한다. 쿠로이 사장은 다리가 부러졌지만 마을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혼자서 나가서 살 거라고 억지를 부렸다. 그때 타카기 사장님이‥‥‥. 평소와는 다르게 험악한 얼굴을 하고 언덕의 정상까지 쿠로이 사장을 부축하여 끌고 갔다고 한다.

지금은 중년이 되었지만 타카기 사장님은 평소에 화를 좀처럼 내질 않으시는 편인데‥‥‥. 정말 어지간히도 화가 나셨나보네.

두 사람이 정상에 오르자 아침이 되었고 마침 언덕 아래의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고 한다. 타카기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쿠 로이! 이 마을을 봐라! 이렇게 작잖아! 이런 작은 마을에서 네가 없어졌다고 얼마나 큰 난리가 났는지 알아? 나는 너의 집안사정은 잘 몰라. 하지만 너의 부모님은 적어도 너의 친구인 내게 너를 보면 꼭 알려달라고 사정할 정도로 너를 걱정하셨어. 너를 괴롭히던 무리들은 당연히 그런 걱정 따윈 안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널 걱정했다. 그러니까 그런 바보 같은 고집은 부리지 마. 자기는 혼자라는 둥 그런 멍청한 소리는 하지 말라고! 지금 넌 이 언덕을 나와 함께 넘었어! 이 언덕은 지금 네 다리로는 오르지 못하는 곳이야. 하지만 나와 함께해서 이 언덕을 오를 수 있었지?’

“타카기 녀석은 평소에 내가 괴롭힘을 당해도 그 사실을 녀석에게 드러내지 않는 걸 내심 서운하게 여겼던 것 같다.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는 나를 괴롭히던 녀석들과 싸우기도 했고. 녀석은 옛날부터 단결이니 정이니 그런 것에 얽매이는 녀석이었지. 그 녀석이 말하더군. 이 언덕이라는 고비를 우리는 함께 넘은 거라고. 함께하면 이런 고비쯤은 가볍게 넘을 수 있다고 말이지.”
단결‥‥‥이라.
사장님은 어렸을 때부터 변한 게 없으시구나. 자기 신념을 올곧게 지키신 분이셨군.

“쿠로이 사장님.”
나는 심호흡을 했다. 호흡을 다듬자. 떨리지 않아. 좋아. 지금이 이 말을 하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쿠로이 사장이 멋진 이야기를 해줬으니‥‥‥. 나도 허세를 부려야 수지가 맞지.
“저의 복귀에 961 프로덕션의 원조는 받지 않겠습니다.”
“호오..”
“하지만 저 혼자서는‥‥‥. 현실적으로는 이 아이들과 함께 걸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전‥‥‥.”

그럼 방법은 하나다.
하지만 선택지가 달리 없어 절박한 심정으로 고른 선택이 아니다. 나는 기꺼이 이 선택지를 받아들이겠다.
“우리 아이돌 아이들에게‥‥‥. 매달리겠습니다. 그 아이들의‥‥‥. 미키의 손길을 기꺼이 잡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같이 나란히 설 겁니다. 넘어지면 아이들에게 일으켜달라고 할 겁니다.”
“호오, 그렇다고 해서 아이돌 녀석들이 너에게 손을 내밀어줄까?”
쿠로이 사장이 물었다. 하지만 쿠로이 사장의 눈동자는‥‥‥. 그 말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내 옆의 미키를 향했다. 미키는 그 질문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가슴을 당당히 펴고 말했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말이지.

“당연한 일이야! 미키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허니에게 손을 내밀 거야! 허니가 싫다고 해도 억지로라도 손을 잡게 할 거야!”
고맙다. 미키. 목이 메어졌어. 하하하하, 나중에 꼭 고맙다고 말해야지.
“그럼 됐다. 정상에서 기다리겠다.”
아이돌 업계에서 다시 보자는 말이다. 쿠로이 사장은 그 말만 하고 휙 돌아 언덕을 내려갔다. 나는 점점 작아지는 그 등을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허니, 여기로 와봐!”
미 키가 나를 끌고 언덕 끝으로 향했다. 마을 경치는 아쉽게도 나뭇가지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쿠로이 사장 말 대로 언덕이 낮아진 탓 같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뭇가지에 가리지 않는 부근, 언덕 바로 아래 부근에 익숙한 승합차가 보였다. 765 프로덕션에서 업무용으로 쓰는 차였다. 그 옆에 차가 한 대 더 있었는데 사장님 개인차량인가?

승합차 운전석에서 누군가가 내렸다. 말끔한 정장차림의 여성이었다. 리츠코구나!

리 츠코가 이쪽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걸 신호로 차 안에서 이오리, 아미, 아즈사 씨가 내렸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마미, 야요이, 유키호, 하루카가 내렸다. 사장님 개인차량에서는 사장님, 코토리 씨, 히비키와 마코토, 타카네, 치하야가 내렸다.

모두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든다.

하하 뭐야 서프라이즈 이벤트야?

나는 웃었다. 웃으면 웃을수록 목이 메어갔다. 나는 코를 훌쩍이면서 겨우 말을 꺼냈다. 울먹이는 내 목소리를 듣고 미키가 베시시 웃었다.

“가자!”
우리들은 언덕을 내려갔다.

나 는 미키와 함께 이 언덕을 올랐었고, 지금은 내려가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인생에서 이 언덕보다 더 가파른 언덕이 날 기다릴 것이다. 분명 나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언덕이겠지.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그 때마다 손을 잡아달라고 할 것이다.

왜냐면 혼자 오를 수 없는 언덕은‥‥‥. 다른 이와 함께하면 오를 수 있으니까!
나는 아이돌 아이들의 프로듀스를 계속 할 거다.

아이돌 아이들과 정상에 오를 거다.
우리들은 반드시 정상에 오를 거다.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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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월 23일에 쓴 글입니다.
미우라 아즈사 관련 매드무비인 3A07 ~Memories are here~(http://www.nicovideo.jp/watch/sm8893602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은 http://tvple.com/5630 이쪽으로.)에서 소재를 따와서 쓴 것인데, 아즈사가 아닌 미키가 주역으로 나왔습니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만 좀 보고 2차 창작 SS 정도만 돌았던지라 지금 다시 보니 캐붕이 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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