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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할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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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21, 2021 20:31에 작성됨.

*프로듀서 성별은 여성입니다.

*강압적인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일순간 뇌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난 그저 치아키의 입이 버끔버끔 움직이는 걸 보고만 있었다.

치아키가 점점 다가오더니 내 휴대폰을 힐긋 바라봤다.

나는 K씨의 사진이 행여나 보일까 휴대폰을 최대한 보이지 않게 했다.

안 봤겠지...? 이 각도라면 보이진 않을 거야...

치아키가 느릿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해. 노크는 했었는데 못 들었나 보구나?"



치아키의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현실감각이 돌아온 건지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

나는 자기 스스로 해석한 치아키의 말이 전부 뇌리에 박혀가고 있었다.



"술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인지 화장실에 갈려고 했었는데."



[프로듀서 주제에 아이돌에게 무슨 짓거리야]



"내가 방을 착각했나 봐 미안해."



[그것도 동성에게... 기분 나빠..]



난 그저 이불을 뒤집어서 눈을 피하며 바닥만 보고 있었다.

이제 끝났다. 프로듀서로서의 인생도 나의 인생도.



"....."



치아키는 내 반응을 살피더니 바닥에 떨어져 있던 

이어폰 한 쪽을 귀에 넣어 흘러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치아키는 이어폰을 빼더니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늘 K씨가 불렀던 노래네? 생각보다 좋은 걸?"



아.. 맞다. 다음에는 공연 녹화한 걸 보려고 했었지.

깜짝 놀라 치아키를 쳐다보자 치아키는 빙긋 웃으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 드디어 여길 보네."



뭐야 저 표정.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데? 이상해.

이때 난 오히려 나보다 치아키 쪽이 나쁘다고 생각했었다.

어른이라면 할 수도 있잖아. 그게 보통인걸.

그걸 치아키는 빤히 쳐다보고 너무 이상하잖아.

이건 치아키가 더 이상하고 나쁜 거야.

그저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고 계속해서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다.

난 창피하지 않아. 이건 보통이야.



"화장실이라면 저기에 있어. 이제 나가봐."



간신히 짜낸 목소리였지만 쇳소리가 나버렸다.



"음... 이젠 상관없어. 프로듀서랑 더 얘기하고 싶고.

그보다 프로듀서 방은 방음이더라? 신기했어."



얼굴에서 열이 나오는 게 느껴졌다.

난 지금 추태를 보였다는 것보다 무시당했다는 게 충격이었다.

지금 날 놀리는 건가? 아니면 도발?

치아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음이 꽤나 잘 되어있네. 관리를 잘 하나 봐?"



이건 뭐라고 받아들어야 하는 거지? 난 이제 어쩌면 좋은 거야.



"저기, K 지금 남친있다고 말했었어.

물론 팬들에게는 비밀로 했었지만 마음이 꽤 잘 맞는다고 했었지 아마?"



별로... 어차피 그녀랑 나는 동성에다가 남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듀서랑 아이돌의 관계잖아.

K씨가 사귀다고 한들 나랑 무슨 상관이야...

별로 신경 쓰지 않아.



"난 말이지 K가 조금 마음에 들었었어.

그래서 K가 로케 가는 날에 맞춰서 우연을 가장해 호텔로 데려갈 거야."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바닥을 보던 시선은 천천히 치아키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으로 향했다.



"물론 거절한다면 힘을 쓸 수밖에 없겠지. 그냥 한 번이면 돼.

그거라면 만족한다고 나는 생각해."



소리가 뇌를 거쳐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치아키가 말하고 있는 것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



"저기... 프로듀서는 K를 좋아하는 거지?"



한순간 물이 목까지 온 것처럼 답답해진다.

치아키가 말하는 소리들이 나를 옥죄여왔다.



"아까 듣고 있었던 K의 노래 그리고 핸드폰에 비쳤던 사진.

K를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프로듀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 괴로운 짓을 한다니 사과할게."



봤었구나! 안돼 변명거리조차 없어졌어.



"사과의 의미로 프로듀서가 K의 노래와 사진을 보고 한 짓을

K에게 제대로 잘 전달해 줄게.

K라면 프로듀서가 한 짓에 대해 감동받게 될 거야."



"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치아키가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난 방문 사이에 있었고 치아키는 침대에 앉아있었다.

치아키는 손인사를 하며 다리를 꼬고 있었다.



"드디어 여기로 와줬구나."



".... 농담으로 한 말이지?"



"응? 아~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난 고개를 끄덕였다. 농담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다음에 나온 말은 원했던 대답이 아니었다.



"유감이지만 진담이야. 프로듀서에게는 미안하지만."



전혀 미안해 보이는 표정이 아니었다.

역시 이상해 지금 이 상황. 어째서 이렇데 된 거야.



"이상하잖아... 네가 말하고 있는 전부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정말로 하는 건 아니지? 방금 말했던 거.."



"아니, 정말로 할 거야."



이 녀석은 아까부터 제정신이 아니야.

헛소리만 말하고 있어. 날 놀리고 있는 거겠지.

순간적으로 냉정이 찾아오자 모든 게 허탈해지고 있었다.



"치아키가 하려는 거 범죄잖아."



"그렇게 되나? 그럼 프로듀서가 했던 짓은 말해도 되지?

그건 범죄가 아니니까."



"뭐?"



정말 날 놀리려고 작정을 했다.



"말할 생각이야...?"



불안함과 경악이 섞인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무의식적으로 위험함을 감지해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럼 말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프로듀서는 나한테 뭘 해줄 거야?"



갑작스러운 제안. 왜 내가 대상이 돼버린 거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면 멈출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무슨 조건을 내밀까, 내가 할 수 있는 쉬운 일인 걸까 하며.

치아키는 조금 고민하더니 나를 보고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걸로 하자."



뭐지.. 무슨 일을 시키려고 하는 걸까.



"만약 지금부터 프로듀서가 나랑 잔다면 아까 했던 말 전부 그만둘게."



"에..?  잔다니.."



"물론 잔다는 의미는 건전한 쪽이 아닌 쪽으로 말하는 거야."



희망이 뚝 끊어진 소리가 들렸다.

울상이 돼버릴 것만 같았다.



"왜... 왜 어째서 그런..."



"왜? 그야."



치아키가 천천히 자신이 입고 있던 스타킹을 벗고 있었다.

위험해.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프로듀서를 좋아하니까."



벗은 스타킹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툭 던진 치아키는 누가 봐도 매혹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매혹적이긴커녕 악마와도 같았다.

잔다고? 그것도 내가 담당하는 아이돌이랑? 심지어 같은 성별.

머릿속이 뒤죽박죽 되어가고 있었다. 



"한 번이면 돼. 약속할게."



K씨에게 내 추태를 보여야 하느냐,

담당하는 아이돌이자 협박하고 있는 사람과 자느냐.

선택하는 쪽이 아닌 선택해야만 하는 쪽. 협박과도 같았다.

식은땀이 계속해서 나고 있었다.

내가 선택을 하지 못하자 치아키는 흥미가 없어진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됐어. 나 이제 잘 테니까 나가줄래?"



"그러면 아까 말했던 것들은.."



"물론 전부 할 거야. 잘게."



치아키는 이불을 끌어당기고는 침대에 누웠다.

어떡하면 좋지? 어떻게 하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면 치아키는 말해버릴 거야.

정말로 얘기할 기세였으니까.



"잘 자 프로듀서."



카운트다운은 점점 0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치아키. 만약 네가 원하는 걸 해준다면...

정말로 전부 그만둘 거야..?"



방아쇠는 당겨졌다. 하지만 총알이 나가는 방향은 달랐다.

그래도 상관없다. K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상관없었다.

치아키는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누웠던 자세를 

일으켜 세우더니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약속할게. 

나와 자 준다면 K랑 죽을 때까지 절대로 만나지 않을게."



"죽을 때까지? 평생이라는 뜻?"



"그래. 프로듀서가 보여준 각오는 대단한 거였어.

그러니 그 정도는 해줘야지. 난 약속은 평생 지키거든."



"...."



"기분이 정리됐다면 문을 닫고 침대까지 와줘." 



나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문을 닫았다.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여유가 없어서 최악의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유가 있다고 해도 난 과연 다른 선택지를 낼 수 있었을까?

뇌가 과부하가 돼버린 건지 치아키가 이곳에서 날 쫓아내지 않았던 것에

오히려 나는 조금 안심을 해버렸다는 거다.



천천히 난 침대로 걸어갔다.

어느새 눈앞까지 오자 치아키는 눈을 번득이며 나를 훑어보았다.

거울이 있었다면 필시 난 지금 역겨운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약속해. K씨에게 일절 손도 대지 않기로."



"절대로 그러지 않을게. 그러니 이리 가까이 와 줘."



프로듀서가 된 날 이 방을 방음이 잘되게 만들었었다.

아이돌들의 노래를 잘 들을 수 있게, 무대를 보고 검토할 수 있게.

그리고 넓게 누울 수 있도록 마련한 더블 배드.

그 침대에서 치아키가 내 몸에 올라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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