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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섭 종료 소식을 듣고 한달간 멘탈 나갔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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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0-02, 2021 00:53에 작성됨.
"나는 이제 사라질 거야."
하루카에게 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네?"
"말 그대로야. 난 이제 없었던 존재가 될 거야.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 할 거고, 나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인 채로 멀리서 모두를 응원하고 있겠지."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꾼 거에요?"
"나쁜 현실이지."
무의식적으로 얼굴이 찌푸려진다. 하루카는 내 찌푸려진 얼굴을 보며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그럼 그게 진짜라고 쳐요. 그럼 그 증거가 뭔가요?"
"최근 시어터에 아무런 공연도 안 들어오고 있었지?"
"......"
"새로운 유닛 발표도 없었고, 새 의상도 없었어."
"그거야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맞아. 내가 아까 내가 사라질 거라고 했잖아? 그게 그럴 만한 사정이야."
"말도 안 돼요."
"맞아.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집에서 며칠동안은 울기만 했어."
어느날 갑작스레 눈 앞의 여러 사물들이 간헐적으로 반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날 밤 꿈에서 난 갑작스러운 선고를 받았다. 지금의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지금과는 나는 다른 세상에 있을 것이고, 어느 아이돌들도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 가지 희소식은 있었다. 나는 얼마든지 프로듀서 일을 다시 할 수 있다고 했다. 언제든지 아이돌들을 다시 볼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겠지만.
"가기 싫어."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나한테는 선택권이 없는걸."
"그럼 같이 따라갈게요. 전 프로듀서씨 곁에 계속 있을 거에요."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카, 걱정해줘서 고마워."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말. 나는 하루카를 언제나 걱정해주고는 했다. 리더라는 것은 힘든 자리고 위에 올라간다는 것은 그만큼 옆의 공간이 적어진단 것이다. 하루카는 언제나 걱정해주는 나에게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늦게나마, 나는 그대로 돌려준다.
"...왜 저한테 이 이야기를 한 거에요?"
"안 하면 못 견딜 것 같았어."
"나쁜 사람."
"맞아."
가기 싫다.
"미안해."
가기 싫어. 가기 싫다고.
"방금 전에 어쩔 수 없다고 했잖아요. 어쩔 수 없는 걸로 미안하다고 하지 말라고요."
"...미안해."
"...설마 다른 아이들한테는 아무 말 없이 훌쩍 떠나버릴 생각은 아니죠?"
"말해야지."
나는 사무소의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대부분은 믿을 수가 없다며 부정하는 반응을 보였다.
예민하거나 어린 아이들은 다시 날 만나지 못하는 거냐며, 날보면서 훌쩍였다.
성숙하거나 의연한 다른 아이돌들은, 최대한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고마웠어."
나와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 나도, 사무소의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지막으로 의문을 느낀다.
"어째서에요?"
"나도 모르겠어."
어제부턴 사물들에 이어서 사람들까지도 반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사장님도, 코토리씨도, 미사키씨도, 그리고 아이돌들 모두. 지금은 흐릿해서 거의 형체만 보일 정도까지 갔다.
그리고 지금은, 땅을 바라보니 바닥조차도 분명히 보이지 않아서, 언제 머리가 으깨질지조차도 기약도 못할 나락 위에 계속 떠다니는 듯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프, 프로듀서씨!?"
"괜찮아요!?"
"안 괜찮아."
나와 함께 있는 모두는 마지막으로 공포를 느낀다.
"프, 프로듀서씨가 이상해. 지, 진짜 어떻게 되는 거야?"
"싫어..."
바닥에 고꾸라지고 나니 눈 앞에 보이는 전경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있는 모두는 마지막으로 슬픔을 느낀다.
"흑, 훌쩍..."
"흐아아아앙..."
더이상 눈 앞이 빛으로 감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린, 마지막으로는 사랑을 느꼈다.
"좋아해요!"
"프로듀서씨...!"
"훌쩍... 흑..."
"나도 좋아해."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졌다.
다시 눈은 뜨였다. 모든 것은 생생했다. 익숙한 방. 먹고 난 뒤 안 치운 과자봉지가 있던 방. 향취가 아닌 남자의 체취만이 느껴지는 베게 위에 나는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익숙한 곳애 있을 익숙한 전호번호를 찾고있었다.
없다.
사장님의 전화번호도, 방송국 쪽의 전화번호도, 코토리씨의 전화번호도, 미사키씨의 전화번호도, 아이돌들의 전화번호도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내가 기억하는 대로의 번호를 눌러서 전화를 걸어봤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가진 것은 상실감뿐이었지만 아무런 눈물도 나지 않았고, 머릿속이 차게 식는다거나 하는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가슴에 아린 통증만 계속 남아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위해 울어주었던 사람을 위해 울어주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서 웃거나 울게 해줄 수 있을까? 곧바로 머릿속에서 아니란 대답이 들려왔다.
그 이후로, 나는 단칸방에 틀어박혀서 밖으로 나오지 않게 되었다. 돈은 쓸 곳도 없었고, 이제 딱히 무엇을 이뤄야 할지, 그것을 이루면 뭐가 좋은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죽지 않은 채로 가만히 있는 것.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그렇게 한달쯤은 방 안에서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창 밖을 보았다. 꿈 속의 목소리는 다시 시작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했었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딱히 그 목소리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밖에 나갔다. 이대로 갔다간 내가 나를 죽여버릴 것만 같다는 직감이 들어서였다. 나는 발을 딛었다. 어디라도 좋으니 가만히 있어선 안 될것 같았기에 발을 딛었다. 도쿄의 풍경은 그대로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하늘을 바라봤다.
스무마리정도 되어 보이는 멧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훨훨 더 멀리 날아올라서 점처럼 작디작게 보일때까지 저 하늘 위를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 도시 한복판에는 새가 먹을 것이라곤 하나도 없을 텐데. 대체 무엇을 찾는 걸까. 무엇을 본 걸까. 무엇이 있길래 저렇게 떼로 몰려온 걸까. 나는 새들의 푸드덕거리는 날갯짓소리가 들려오지 않을 정도로 멀리 날아갈때까지 새들을 쭉 바라보았다.
하늘이 새들의 궤적으로 수십조각이 나고 있었다.
새들을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걷던 나는 한 때 익숙했던 건물에 도착했다. 나는 아무런 생각도, 노크도 없이 건물에 발을 딛고 문고리를 꽈악 쥐고 당겼다.
"아, 안녕하세요! 765 프로 사무실입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아, 아닙니다."
내 앞에 있던 익숙한 사람은 역시 날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사무소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테이프로 765라는 숫자가 붙여진 창문. 이리저리 어질러진 방 안. 서류들과 컴퓨터.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서류들 사이에 내가 본 적 없던 종이가 한 장 있었다.
765 프로 사무소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문이었다. 전엔 타카기 사장님이 직접 날 스카웃했었지만, 이번엔 사람을 찾지 못해서 공고문을 낸 걸까.
"저, 여기 공고문이 있는데, 아직 모집이 안 된 거 맞나요?"
"아, 네!"
"......"
난 코토리씨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제가 지원 의사가 있는데요. 혹시, 나중에 면접 보러 가도 괜찮겠습니까?"
제목 그대로 한섭 종료 소식을 듣고 한달동안 멘탈이 나간 뒤 페스 무료연을 돌리며 느낀 것을 글로 쓴 겁니다.
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한국 신데마스' 서비스 종료의 슬픔을
'한국 밀리마스'에서 또다시 마주할 줄이야...
저 역시 가상 세계의 아이돌들을 보면서
종종 파란약과 빨간약 사이를
오가는 괴로움을 느끼곤 하지만
서비스 종료는 정말 급이 다른 큰 충격으로 다가오네요.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피할 수 없는 작별...
한국 밀리마스를 떠나보내신
많은 프로듀서님들께 심심한 위로를 전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