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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모음집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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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8, 2021 02:41에 작성됨.

1.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특별히 뭔가 이상한 곳도 아니고

옛날부터 여기서 살고 있었기에 공포 체험 같은 건 생각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거실에 있으면 밤낮 가리지 않고 여성의 낮은 콧노래가 들리는 것이다.



"음--.. 음─ 음──"



처음에는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로 멀리서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있으니 점점 크게 들렸다.



"음--.. 음─ 음──"



계속 무시하니 의식하지 않아도 들릴 정도로 가까이 오는 것이다.



"음--.. 음─ 음──"



그래서 나는 그 목소리가 들리면 

언제나 반야심경 마지막 부분을 반복해서 외기 시작했다.

반야심경의 아제아제 부분을 외우고 있으면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정말이지 이 거실에 있으면 텔레비전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때는 불규칙적이고 재빨리 반야심경을 외우지 않으면

가끔은 방까지 들어온다."



"음--.. 음─ 음──"



그러고 보니 최근 프레짱의 새로운 앨범이 나왔다.

발매일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앨범을 샀을 때는 기분이 무척 고조되었다.

얼른 집에 돌아가서 헤드폰을 쓰고 한 번에 다 들었다.

여운을 느끼면서 좋다고 생각하며 헤드폰을 벗었더니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음────────"




2.



어느 날, 나는 사나에랑 둘이서 술을 마시러 갈 약속을 했다.

그날은 예약을 잡아 놓았기에 약속 시간 조금 전에 가게에 도착했다.



준비된 방에 안내를 받아 나는 자리에 앉았다.

방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다다미방으로 마루에는 방석이 있고 키가 낮은 테이블 밑은

바닥이 한층 낮아서 발을 내려앉을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일단 앉아서 상의를 벗고 내 옆에 두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메뉴를 바라보면서 사나에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내 발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밑을 보아도 아무것도 없다. 

일순 테이블 다리인가 싶었으나 

자세히 보니 테이블의 짧은 다리는 다다미 위에 올라가 있었다.

즉, 지금 내가 발을 내리고 있는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을 터였다.



나는 발을 조금 움직여서 아까 느꼈던 감촉을 찾았다.



있었다.



딱 내 정면 근처에 조금 둥글고 납작한 물체가 있었다.

좀 더 발을 움직여 보니 이번에는 발끝이 아니라 

정강이 바깥 부분에 무언가 세로로 긴 것이 느껴졌다.

마루에서 수직을 뻗은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그 끝에 달린 둥글고 납작한 것.



다리.



지금 내 다리에 닿고 있는 것. 그건 틀림없이 인간의 다리였다.



한 번 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렸다. 나는 방에 혼자 있다.

고개를 들어도 거기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다리가 있다.



몸이 사슬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존재에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다리가 맞닿은 채 움직이지 않고 있자 문득 그 다리의 감촉이 사라졌다.



그 다리가 사라져 버린 건 아니다.

책상 밑에서 다리가 닿았을 때 누구나 하는 행동.

치웠다. 그저 다리를 치운 것이다.



눈앞에 있는 존재가 인간적인 행동을 한 것에 

조금 냉정을 되찾은 나는 일단 화장실로 갔다.



아까 그건 대체 뭔가. 유령? 요괴?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아니, 그것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의지 같은 것을.

마치 거기에 있는 것이 당연한 듯이 거기에 있었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방으로 돌아오니 거기에는 사나에가 와 있었다.



"왔네."



어색하게 말을 걸면서 정면에 앉았다.



잠시 술을 마시면서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갑자기 사나에가 "아, 미안."라고 말했다.

나는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기에 때문에 알아 버렸다.



아마도 다리에 닿았던 것이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다리에.



"괜찮아."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3.



잔업을 끝내고 녹초가 되어 막차에 탔다.



돌아가면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샤워를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가

내일을 대비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만 미칠 것 같다.



이 시간 치고는 드물게도 사람이 많고 앉을 수 있는 자리도 별로 없었다.



향수 냄새가 지독한 여자와 술 냄새가 지독한 아저씨 사이에 끼여서

눈을 질끈 감고 고역을 치른다.



"이봐. 이런 생활을 계속해봤자 뭐가 재밌겠어."



전철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시간까지 일하다니 너무하지..."



"가족은 너 덕분에 먹고사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너무 시끄러워서 눈을 뜨고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호리호리한 남자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봐. 이런 시간에 돌아가면 아내는 뭐라고 말할까."



호리호리한 남자는 주절주절 말을 하지만 

중년 남성은 무시하는 건지 자는 건지 눈을 감고 꾸벅거린다.

호리호리한 남자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옆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다.



"이봐. 부장의 성희롱 짜증 나지..."



여성은 스마트폰을 보면서 하품을 한다.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뒤에서 몰래 울었지. 지금은 상처받아도 좀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아.

그저 괴로운 마음을 덮어두고 책상에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 괴롭지."



호리호리한 남자는 여성에게 말을 거는 걸 관두고 또 옆에 있는 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어? 조금씩 내게 다가오잖아.



남자에겐 불길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다가올수록 기분이 우울해진다.



잠시 후 옆에 있던 향수 냄새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역시 나밖에 안 들리는 건가..?)



"이봐. 그 손목에 난 상처... 오늘도 늘었구나..."



남자 말을 처음엔 무시하던 여자가 잠시 후 부들부들 떨더니 울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거의 다 자거나 음악을 듣고 있기에 조용히 우는 그녀를 보는 건 나뿐이었다.



"울어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내가 아는 한 약 5명에게 말을 걸었지만

목소리가 들리는 건 나랑 그녀뿐인 것 같다.



"이제 전부 손에서 놓자고. 인생 끝내고 싶지 않아?

괴롭겠지. 도망치고 싶겠지..."



안내방송이 울리고 슬슬 다음 역에 정차할 시간이 다가왔다.



차량은 속도를 늦추고 흘러가던 풍경이 점점 느려진다.



여성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전철 밖으로 나갔다.



건너편에서는 전철이 오고 있다. 그녀가 뛰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으니

호리호리한 남자가 그녀 뒤에 천천히 다가가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뭐라 속삭였다.



이건 틀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은 채 그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부끄러웠다.



전철이 다가온다.



마지막까지 주저하며 흐느끼던 그녀의 등을 남자가 세게 밀치고 

비틀거리던 그녀가 전철에 치여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호리호리한 남자가 전철 안으로 돌아와 내게 다가온다.



(내 차례인가...)



"이봐. 아이돌들한테 계속해서 웃고 받아주니까 힘들지 않아?

혹시 너를 바보 취급하는 거 아닐까 계속해서 생각하지..."



나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



4.



사이가 정말로 나빠진 두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치히로는 프로듀서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말해서 불러냈다.

오랫동안 지내왔고 여러 가지를 주거니 받거니 했으니까.

'추억으로 남을 것'을 보여줘서 생각을 고쳐먹게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분이 언짢았던 프로듀서는 단호하게 거절하려고

밤에 치히로가 사는 집으로 찾아갔다.



근처까지 와서 택시에 내렸더니 프로듀서 전화기가 울려댔다. 치히로였다.



"도착했습니다만 뭡니까?"



"여기에요. 여기."



프로듀서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50미터 떨어진 입구를 보니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이 서서 이쪽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일부러 밑에까지 내려와서 맞이하러 온 건가 싶어 

프로듀서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도대체 뭐하는건지.."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면서 입구로 갔다.



"아, 미안해요. 잊어버린 게 있어서.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러자 치히로가 말하며 제지하는 것이다.



"기다릴 거라면 방에 가 있겠습니다."



"됐어요. 거기서 기다려요. 거기서. 금방 돌아올 테니까."



그러면서 치히로는 입구에서 사라졌다. 왠지 그러면서도 전화는 끊지 않았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거북한 느낌이 드는 프로듀서였다.



"빨리 좀 해주시죠? 좀 있으면 막차 끊기는 시간.."



"미안해요. 금방이에요. 금방이면 끝나니까."



철컥, 덜컹, 저벅저벅. 방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뒤로 엘리베이터가 오는 소리가 들려서 

"이제야." 하고 프로듀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휴대전화로 들려서 입구를 봤더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갸웃거리다 전화를 들어 짜증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합니까? 지금 어디에요?"



"....ㅈ"



".. 네? 갑자기 왜 이래. 잘 안 들려요. 뭐라고요?"



"...기...지..."



"네?"



"기다렸지?"



그 순간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설마 싶었는데 역시 치히로였다.

프로듀서는 너무 놀라 비명이 나오지도 않은 채 멍하니 가로등 아래에서 서있었다.

가로등 아래에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찰이 와서 조사한 후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밑에서 기다리게 한 뒤 기다릴 곳을 정한 건 두 가지 정도인데.

좋게 생각하자면 뛰어내릴 때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거고,

나쁘게 생각하자면 가로등 밑 가장 좋은 자리에서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잊어버린 물건이 있다던 옥상에는 유서가 하나 남겨져 있었다.

프로듀서에 대해 원망 같은 건 전혀 없었고,

그저 자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빽빽하게 적어놓았다.



그 이후, 프로듀서는 여러 의미로 망가져서 일을 쉬고 있다.

휴대전화도 그 후로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전화기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칠 때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게 아니었을까.



계절상 마지막 괴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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