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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굿바이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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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7, 2021 20:56에 작성됨.

케이트 「투란도트」


하얀색 도화지가 있다. 그 앞에 바다처럼 파란 눈을 품고 있는 하얀 살갗의 미녀가 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모델. 그것을 알고 있지만 화가는 그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손으로 그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모델에 대한 모욕이다. 그릴 수도 없고 그리지 않을 수도 없는 패러독스. 프로듀서는 어느 정답지를 선택해야할 지는 알고 있지만, 선뜻 그 선택지를 고를 수도 없다.


"붓이 멈췄어요, PRODUCER. 그 속도로는 오늘 안에 끝낼 수 없어요."


"죄송합니다, 케이트 경. 아무래도 모델이 모델인지라..."


"후후, TAKE IT EASY~ 저는 어디로 도망가지 않으니까요."


도망가지 않는다. 그래, 그녀는 어쨌든 도망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땅에 왔을 때부터 그런 적이 없다. 다만 조금 어색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그렇기에 마냥 하얀 석고상같은 모습이 아닌,  곳곳이 선홍색으로 붉게 물들어있는 모습인 거겠지. 그 모습이 묘한 생동감을 주고 있지만 또한 어디다 눈을 둬야 할 지 몰라 난감하기만 하다. 혹시 케이트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을까. 그녀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추측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그 추측은 들어맞을 거다.


"으음, 조금 COLD하네요... COLD,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그, 그렇다면 담요라도 덮으시는게..."


"아뇨, 그럼 COURAGE를 낸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조금 더 참아 볼게요."


"하아..."


케이트는 영국인답게 고집이 세다. 그것을 프로듀서도 알고 있다. 아마 알몸으로 그의 앞에 선 이상, 그녀의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이 연극을 그만두지 않을 거다. 그것을 그도 알고 있다. 혹시 그는 이곳에 온 순간부터 진 것일까. 혹시 지금 패배 선언을 하면 그녀는 순순히 프로듀서를 놓아줄까. 갈 곳을 잃은 시선이 케이트에게로 향한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에 그녀의 봉긋한 두 개의 언덕이 있고, 발그레한 꽃봉오리 두 개가 수줍은 자태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디까지 DRAWING했나요~?"


"아, 아직은 얼굴만..."


"OK, I GOT IT. 천천히 그려나가요~?"


"아, 네..."


담당 아이돌이다. 그의 앞에 태초의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겨 온 담당 아이돌이다. 그러니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연인이라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겠지. 그러나 케이트는 아이돌이다. 어떤 어둠의 마수도 물리치고 기어이 키워낸, 그 자신이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아이돌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다. 적어도 프로듀서는 그렇다.


"...PRODUCER는 정말로 COWARD예요."


"예?"


"...NOTHING."


그러나 그는 지금, 하나를 간과하고 있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간과한 그 한 가지는,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한 여자의 마음을 조금 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 케이트는 아이돌이기 이전에 여자다. 한 남자를 사랑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한 사람의 여자다. 


"케이트 경, 방금 뭐라고..."


"NOTHING. "


"아뇨, 분명히 들었어요.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알고요."


"...그럼 어째서 제게 COME하지 않는거죠?"


프로듀서는 아마 케이트를 아이돌로만 생각했겠지. 그러나 케이트는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서프라이즈를 만들지도 않았겠지. 그녀의 말처럼 그는 바보다. 여자의 소녀심도 알아주지 못하는 바보.


"케, 케이트 경...?"


"PRODUCER도 알고 있잖아요? 제가 어째서 이런 짓까지 하는지 말이에요."


"저, 저는..."


아이돌은 사랑할 수 없다. 그건 회사 내규로도 정해진 것이다. 그것을 케이트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아무리 얌전하고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어느 선이라는 것은 있다. 어느 한계점을 넘어서서 더욱 더 어떤 사람을 알고 싶을 때 넘어야만 하는 선. 그리고 케이트는 이미 그 선을 한참이나 넘겨서 다가오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그녀의 앞에 멍하니 서 있는 이 바보 멍텅구리같은 프로듀서만 몰랐을 뿐이다.


"죄송합니다, 케이트 경. 저는..."


"...혹시, 제가 이러는 것이 민폐인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저도 케이트 경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좋다」와 「사랑한다」 중 어느 감정이냐고 물으신다면..."


"...그렇다면?"


"저는..."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한다.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애매모호한 태도와 행동으로 웃어넘길 수 없는 선택지들 사이에서, 그는 선택해야만 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QUESTION. 한쪽의 미래는 그의 손에서 차디찬 잠을 맞이하겠지. 이렇게까지 되다니. 모든 것은 거짓말이다. 그래야만 한다. 진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역시, 케이트 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렇다. 이것이 프로듀서가 케이트에게 전할 수 없었던 진실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케이트가 프로듀서를 알고 있는 것처럼, 프로듀서는 케이트를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렇기에 그는 이미 예전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그 선을 예전에 넘은 것처럼, 그 또한 그 선을 언젠가는 넘었을 것이다. 그걸 넘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케이트를 알 수 있을리가 없다.


"그, 그럼 어째서..."


"당연하잖습니까, 케이트 경. 제 직위라는 것이 있고, 케이트 경의 위치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움직일 수 없는 게 맞지요."


"그, 그렇다는건..."


"죄송합니다, 케이트 경. 아무래도 더 이상은 인내심이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선. 그들은 또다시 선을 넘는다. 그 앞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번엔 둘이다. 그러니 이 선을 넘어도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이다. 그것이 마음이 이어진 두 사람의 힘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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