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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세 이오리 『SO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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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3, 2021 11:42에 작성됨.

이것은 시어터가 있기 전에,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


......


정신을 차리니 나는, 어렴풋이 약간 흐린 오후.


왜 여기에.....맞아. 그랬지.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할 이유를 떠올렸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인적 드문 부둣가. 도심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곳. 여기라면 괜찮아. 심호흡을 한 뒤, 휴대폰으로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 슬슬 그 사람이 올 때가 되었다.


그래. 마침 저기 보인다. 나보다 조금 큰 키의, 여전히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여성이. 어깨를 덮을 정도의 길이인 부스스한 흑발이 이따금 바람에 휘날린다.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맥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프로듀서. 날 한눈에 알아보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피곤해보이는 눈길을 주고 있다.


"여기야, 여기."


나는 그 사람- 프로듀서를 불러세웠다. 그제서야 프로듀서가 이쪽으로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하나, 둘, 셋. 거기까지. 손짓을 보이자 프로듀서는 그 자리에 딱 멈춰섰다. 이 순간이 되어서까지, 당신이라는 사람은. 지나칠 정도로 맞춰주는구나. 평소보다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프로듀서와 마주했다. 나는 이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게 있었다.


"휴일인데도 정장이야? 여전하네."


지금은 쓸데없는 말을 할 때가 아니야. 두려운 마음이 만들어낸  허세 대신에 바로 본론을 뽑아내기로 했다.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 나, 당신에게 할 말이 있거든. 여기라면 조용하니까."


혹시 근처에 누군가가 있지는 않겠지. 주위를 살피면서, 나는 빠르게 말소리를 이어나갔다.


"솔직히 놀랐어. 갑자기 활동 정지라고 해서. 설마 벌써 1년이 다 되어갈 줄은."


프로듀서와 내가 765 프로덕션에서 활동한지 어느덧 1년. 그 사이 햇병아리 아이돌이었던 나는 겨우 C랭크에 입성해, 마침내 메이저라고 불리는 위치에까지 올랐지만. 그뿐이었다. 겨우 올라온 피라미드의 중간 자리. 아직도 우러러 봐야하는 톱의 자리는 여전히 높고, 아득해서-


"곧 있으면 마지막 콘서트네. 어때? 준비는 잘하고 있어?"


1년 안에 톱 아이돌이 되지 못한다면, 가망이 없다.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던 타카기 사장의 말버릇이었다. 그리고 그건, 말버릇만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시간이라고는 고작 며칠밖에 없었다. 당신이나 나나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돌아온 건 이 손에 잡힐 정도인 결과밖에 없다니. 날씨에 덩달아 흐려진 시야에는, 그 사이 많은 빛을 잃어버리고 칙칙해진 프로듀서가 비쳤다. 프로듀서는 내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응, 그래."


흔들리는 마음을 건방진 미소로 감추었다. 해야할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소홀한 부분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 그리 알고 있어. 뭐, 지금까지 한 걸 봐서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거라 믿지만."


아아- 콘서트를 마치고 나면, 당신과 나는 이제. 아직 말을 하는 도중인데도 입 안에서 제멋대로 쇠맛이 났다. 잠깐 바다로 시선을 돌리자, 잔잔한 파도는 변함없는 척을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얇게 슬라이스된 마음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것에 닿지도 않았는데. 어째서일까나. 뭐어, 괜찮겠지. 이런 건 내일이면 아물 거니까.


"당신과 나는 이제, 작별인 거네."


서서히 배여나오는 핏기와 아픔에 등 돌린 채 기어코 말을 마쳤다. 어디서부터인가 새의 우는 소리가 프로듀서의 목소리 대신 메아리쳐 돌아왔다.


"저기 말야. 앞으로 넌 어떻게 할 거야? 앞으로도 계속, 다른 누군가를 프로듀스할 거야?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대신 이런 건 어때. 미나세 가의 비서가 된다던가. 물론, 내 전속으로 말야."


최고의 대우를 약속할게. 용기를 내서 쏘아보낸 제안에는 소리없는 거절이 되돌아왔다. 그럼 그렇지. 당신이라는 사람은, 꼭 이런 부분에서는 맞춰주질 않더라고. 애석하게도 말야. 아쉬운 시선을 그쪽으로 보냈다. 평소보다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프로듀서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번진 물감처럼, 흐릿하게.


"앞으로 우리는 타인이 되어버리는 걸까."


휘이잉- 소금기가 느껴지는 쌀쌀한 바람이 두 사람의 공간을 한바탕 할퀴고 지나갔다. 내 말에 프로듀서가 침묵을 깨고 뭐라 대답을 건넨 것 같았지만, 해풍에 뒤섞여 잘 들리지 않았다. 확실히, 1년 동안 참 힘들었지. 괴로운 일도 많았어. 나도 나이지만, 특히 프로듀서 당신에게는. 


그래도, 거기에는.


따스했던 기억이 두둥실하고 나를 감싸안았다. 당신과 함께하는 세상은 어디까지고 계속된다. 아닌 척하면서도 실은,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아니야.


그래.


아니야, 아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그런데도 나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해. 정말로 해야할 말이 있는데.


싫어. 가지 말아줘.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아. 가지 말아줘!


계속 내 곁에 있어줘!


난폭하게 소리치고 싶은데. 나오지 않았다. 대신 번뜩이는 눈으로 프로듀서를 보았다. 프로듀서, 프로듀서는.....역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전보다 더 흐릿하게, 윤곽만 겨우 분간이 갔다.


".....됐어."


하고 싶은 말 대신 짧은 한 마디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머리 속에서 지난날 보았던 꿈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바다를 사이에 둔 꿈의 결말은 이러했다.


그럼 안녕.


그 말을 남긴 채 떠나가는, 사람을 닮은 검은 그림자. 내 곁에는 긴 귀를 가진 무리들. 어떻게 풀어보든 결말은 단 하나였다. 왜냐면 나는 백조가 아니니까. 프로듀서. 당신이 있는 곳으로는.....건너갈 수 없어.


"이만 가보도록 해."

".....그럼 안녕." 


꿈이 현실에 정확히 끼워넣어지는 순간이었다. 흐릿해서 사람인지 잘 분간이 안 가는 덩어리가 점차 멀어져만 갔다. 잠긴 목소리에 돌아온 대답은 너무나도 타이트했다. 이젠 나밖에 없는 듯한, 너무나도 조용한 부둣가.


짜증이 부글부글, 벌컥벌컥. 마치 용암과도 같이 들끓어올랐다. 나는 저녁놀에 대고 소리쳤다. 울었다. 엉망진창인 소리를 보냈다. 모든 게 잿빛으로 흐릿해진 가운데, 오직 저녁놀만이 손에 닿을 정도로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


안녕, 프로듀서. 사무소에 오는 건 오랜만이네. 응? 고작 며칠 사이라고? 틀린 말은 아닌데.....조금은 장단을 맞춰주는 게 어때? 응. 그렇지. 그래야 내 하인이지. 


뭘 보고 있냐고? 아아, 이거. 아즈사가 보고 있던 잡지야. 


그 녀석은 이런 걸 꽤 챙겨보더라고. 원래 점 같은 거에 관심이 많은 듯 하니까. 나야 뭐, 그렇게 믿는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리 운명이니 뭐니 해도 결국은 내 의지가 중요한 거잖아. 안 그래? 니히힛.


그렇다고 해도 여기 적혀있는 거, 아예 허무맹랑한 건 아닌가봐. 자, 여기 별자리 운세. 황소자리인 사람은 오늘 그리운 사람과 만날 거라고 적혀있어.


그리웠냐고? 그, 그건.....키이잇! 


가, 가끔은 일 없어도 이쪽에 얼굴을 비추란 말야! 


설마 신인들만 챙겨주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이오리쨩이 뭐든지 잘하는 슈퍼아이돌이라고 해도, 너무 믿는 거 아냐? 


미안해? 


말로만 그러는 건 아니겠지? 후후, 그래. 오늘은 관대히 넘어가줄게. 다음부터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헤에, 프로듀서도 이런 데에 관심 있어? 무작정 믿는다는 건 아니고 가볍게.....그래. 그 정도가 딱 적당하지. 


뭐하면 프로듀서 것도 봐줄까? 어디보자, 프로듀서는 물병자리였던가? 맞지?


물병자리는.....어머, 신기해라. 물병자리도 오늘 재회의 기회가 있다고 적혀있어. 참 신기한 우연이네. 


프로듀서도 역시 이오리쨩이 그리웠던 모양이네? 


니히히, 아니긴. 얼굴에 다 써져있다고. 꽤 잘 맞는 점 같으니 옆에 다른 것도 볼까? 


이건 꿈해몽 코너네. 프로듀서, 혹시 어제 꿈 꾼 거 있어? 후지산하고 가지하고 매를 봤다고? 거짓말! 신년도 아니고 무슨. 


그래서 진실은.....꿈 같은 거 원래 잘 안꾸는 편? 삭막하네. 푹 잘 수 있어서 좋다고? 네에, 네. 그러신가요. 나? 나는....꿈을 꾸긴 했는데. 그렇게 좋은 꿈은 아닐지도.


어떤 거냐고? 부둣가에서 프로듀서하고 내가 단 둘이 있는 꿈이었어. 축 가라앉은 분위기였다니까.


괜찮을 거라고? 그랬으면 좋겠네. 아, 프로듀서. 여기 볼래? 꿈에 나오면 좋은 것들이라고 적힌 부분. 응, 맞아.


흐응. 꿈에 토끼나 백조가 나오면 길몽이라고 하네. 어느 쪽이 더 좋냐고?


글쎄. 꿈에서 나오는 거라면 토끼보다는, 백조가 더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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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이오리 신곡, ソナー(소나. SONAR)의 꽤나 쓸쓸하고 건조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적당히 끄적여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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