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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라기 치하야 「이상한 꿈을 보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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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15, 2021 11:07에 작성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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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공기가 서늘한 월요일 아침, 평소보다 30분 정도 일찍 일어난 나는 아침 운동 코스를 조금 더 길게 잡았다.

  반환점으로 잡은 공원에 도착한 뒤,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벤치에 앉아 목을 축였다. 한 3분 정도 지났을까, 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

“...?”


  노랫소리....라고 하기도 어려운, 고성방가에 가까운 소리가 새벽공기를 뒤흔들었다. 박자는 대충 맞는 것 같았지만, 호흡도 발성도 음정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는 소리였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린 아이도 아니었고, 다름 아닌 정장 차림의 젊은 여성이었다.

  딱히 주택가가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주변에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대라지만, 대체 공공장소에서 무슨 짓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굳이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조용히 걸음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다 그 여성은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벤치에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사원증 목걸이를 꺼내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반대편을 보고 앉아 있었기에 저쪽은 내가 있다는 걸 모르는 눈치였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워서 말소리가 다 들리는 수준이었다.


“첫날인데 잘 할 수 있으려나...”


  겉보기에 어려보이기도 하고, 왠지 어딘가 미숙해 보이는 인상이기도 해서, 어딘가에 새로 취업한 신입사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부터 우리 부서에서 수습기간을 위해 신입이 배치된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회계연도가 바뀌는 때에 맞추어 사내구조를 조정하고 신입을 배치하기 때문에, 저 사람도 그런 케이스인 것 같았다.

  그녀는 잠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벤치에서 일어났다.


“노래는 잘 안 늘어도, 수학은 문제없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활기찬 사람이네. 하고 생각했다. 분위기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침울해 있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앗, 벌써 시간이! 차 놓치지 않게 가야지!”


  여성은 그러고는 허둥지둥 가방을 챙겨 걸음을 옮겼다. 나는 멍하니 그녀가 앉아 있던 벤치를 바라보다가, 시계를 확인하고는 깜짝 놀라 조금 빠르게 달리면서 공원을 빠져나왔다. 그렇게까지 늦은 시각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멀리 나온 날이었기에 들어가서 출근 준비를 하고 신주쿠까지 가려면 약간 빠듯할 수도 있는 시간대였다.

 

  다행히도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덕분에 회사에는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음이 바빴기 때문인지 오히려 평소보다 2분 일찍 도착했다. 

  긴 사무실 복도를 지나 “회계3팀” 팻말이 걸린 구역에 도착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직 출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부러 정시에 퇴근하기 시작한 뒤로 업무를 처리할 시간이 조금 빠듯해졌기 때문에, 나는 앞당겨진 퇴근시간만큼 일찍 출근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쪽은 이쪽대로 부하직원들이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야근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 고른 해결책이었다.

  하라다 씨와 이이노 씨의 자리를 지나, 내 옆자리인 쿠보오카 씨의 의자 밑에 떨어진 삼색 볼펜을 주워 책상 위에 올려둔 뒤, 마침내 내 자리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켰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온 업무 메일을 열어보면서 요청받은 결재서류 목록을 메모지에 적어 화면에 붙여두고, 잠깐 커피 한 잔을 내리러 탕비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한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들고 자리에 돌아왔을 때, 정장 차림의 여성이 우리 부서 구역 앞에 서서 쭈뼛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일단 우리 부서에 나를 제외한 여직원은 이이노 씨밖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부서 사람은 아닌 게 확실했다. 그리고 1팀이나 2팀도 이 시간대에는 잘 출근하지 않으니까...


“저기, 혹시 회계3팀에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으아아?!”

“?!”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자, 여성은 깜짝 놀라며 내 쪽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공원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성이, 지금 내 앞에 놀란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아, 여기가 회계3팀 맞나요...?”

“네. 보시는 대로.”


  나는 손가락으로 가볍게 머리 위에 걸린 팻말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팻말을 천천히 읽어보더니 갑자기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부터 회계3팀에서 일하게 된 야부키 카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이 사람이었구나. 새로 온다는 수습사원. 되도록 유능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좀 전에 공원에서 수학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했으니까. 노래랑 달리 업무는 깔끔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던 중, 고개를 든 야부키 씨의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내 소개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장인 키사라기 치하야예요.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야부키 씨.”

“네, 키사라기 과장님! 잘 부탁드려요!”

“자리는 여기가 비어 있으니까, 일단은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야부키 씨의 사수는 몇 분 내로 출근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커피, 드릴까요?”

“아, 커피는 제가...!”

“탕비실이 복잡한 상황이라서요. 제가 드리겠습니다.”

“아, 네...!”


  종이컵을 건네받은 야부키 씨는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커피를 홀짝였다. 대충 보기에도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신입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오히려 멍한 것보다는 적극적인 쪽이 나으려나.

  계장인 쿠보오카 씨가 출근한 것은 그로부터 15분이 지난 뒤였다. 그 사이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출근하면서 8시 50분이 되자 우리 부서의 모든 자리가 채워졌다. 나는 쿠보오카 씨가 짐을 정리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쿠보오카 씨, 저쪽은 오늘부터 출근한 야부키 카나 씨입니다. 수습 기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오늘부터였죠. 네, 알겠습니다. 과장님.”


  내 말을 들은 쿠보오카 씨는 자리를 정리하고 야부키 씨가 앉아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후에는 가볍게 기본적인 사항들을 안내하고 실무를 가르치는 전형적인 수습 과정을 진행해주셨다.

  나는 그 사이에 아까 적어두었던 메모지를 보면서 하나씩 업무를 처리해나갔다. 쿠보오카 씨가 사수 일로 바빴기 때문에, 내가 최대한 빈자리를 메꿀 수 있도록 할 생각이었다.

  정신없는 오전 시간대가 지나가고, 오후 업무에서도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다음 분기의 예산안 검토를 마친 나는 업무 메일로 서류를 올려 보내고, 기지개를 켠 뒤 야부키 씨와 쿠보오카 씨 쪽을 바라보았다.


“야부키 씨, 그러니까 이건 여기가 아니라 이쪽으로 몰아야 한다니까...”

“아, 네! 죄송합니다...!”

“첫 날이니까 죄송할 것까지는 없지만, 이 정도 일은 며칠 내로 적응하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분위기를 살펴보니 야부키 씨의 수습이 그렇게까지 잘 되어가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막 바뀐 회계연도 때문에 나도 나 나름대로 업무가 밀려들었고, 쿠보오카 씨의 업무까지 맡다 보니 저쪽에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어느덧 시계는 6시 30분을 가리켰다. 어느 정도 업무를 마무리 지은 나는 메모지에 쓰여 있는 마지막 업무에 가로줄을 긋고, 컴퓨터의 전원을 끈 뒤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바쁜 시기이기는 하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주세요.”

“수고하셨습니다, 과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에 도착한 나는 정문을 나섰다. 그러자 바로 앞에서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기는 야부키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괜히 부담이 될까 싶어서 그냥 지나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역시 우리 부서에서 첫 날을 보낸 상태니까, 뭐라도 간단하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야부키 씨?”

“으아?! 앗, 키사라기 과장님!”


  야부키 씨는 아침에 봤던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잠깐 멈칫 했다가 말을 이었다.


“첫 날 업무,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과장님...”


  확실히 아침보다 텐션이 떨어져 있었다. 원래 첫 날은 그런 거니까. 그래도 나는 첫 날에 그렇게까지 고생한 기억은 없지만, 역시 체력적으로는 부담이 됐는지 그 날 집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아침까지 잤던 기억이 났다.


“특별히 어려운 점이나 힘들었던 부분은 없으신가요?”


  나는 야부키 씨에게 물었다. 야부키 씨는 정곡을 찔린 듯 또 다시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살짝 시선을 내리며 말했다.


“역시 복잡한 것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네요... 쿠보오카 계장님이 친절하게 알려 주셨는데, 왠지 따라가지를 못해서...”

“그러신가요.”


  전형적인 새내기 신입의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회계부의 특성상 결코 단순한 업무는 아니었겠지만, 첫 날이니까 분명 어려운 일을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문서 정리나 데이터 입력 정도일 텐데, 그걸 어려워해서야 수습 기간을 버텨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능력 미달로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특히 우리 회사의 회계부는 밀려드는 업무를 버티지 못하고 자진 퇴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회계부에 수습사원이 잘 오지 않는 이유였고, 특히 회계3팀에 더더욱 신입을 배치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직 초반이니까, 적응해나간다는 생각으로 내일도 힘내주세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역 방향으로 걸음을 뗐다. 그 때, 등 뒤에서 야부키 씨가 나를 불러 세웠다.


“저기, 키사라기 과장님!”

“네? 왜 그러시죠?”

“저, 사실은...!”


  야부키 씨는 쭈뼛거리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녀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한 10초 정도가 지났을까, 야부키 씨는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 키사라기 과장님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여기에 지원한 거라서...!”

“...네?”


  나는 순간 야부키 씨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작년에 처음 과장 직급을 달고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회사의 홍보 자료를 위해 인터뷰에 응했던 것이 기억났다. 처음에는 인터뷰 같은 건 나랑 맞지 않는다며 고사했지만, 회사에서 여러 차례 부탁해 와서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응했던 인터뷰였다. 

  당시에는 별다른 자각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대졸 신입으로 들어온 여직원이 근속 4년이 채 안 돼서 과장 직급을 달았다는 거니까, 일반적인 사례보다 두 배 넘게 빠른 이례적인 일이기는 했다. 나중에 홍보자료에 실린 기사를 읽고 나서야 안 것이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내 사례를 앞세워 회사의 능력 중심적 경영 같은 걸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키사라기 과장님의 인터뷰,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서, 꼭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서 붙었을 때는 정말 기뻤거든요! 그런데 같은 부서라니, 꿈만 같아서...!”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좋게 봐 주셔서.”


  딱히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적당히 감사를 전했다. 그보다도 빛나는 야부키 씨의 눈을 보니 자꾸만 누군가가 떠오르는 느낌이 들어 가슴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무언가를 칭찬받을 때 보았던 아마미 씨의 눈, 항상 나를 올려다볼 때 보여주었던 미키의 눈. 그 시선들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동경 따위, 바란 적도 없는데. 애초에 그런 동경의 시선을 받을만한 인간도 아닌데.


“저, 아직 미숙하지만, 동경하던 곳이니까, 꼭 열심히 해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이것저것 폐를 끼쳐드릴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야부키 씨. 그러면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과장님!”


  동경.

  그 때도, 지금도. 원하지 않았던, 부담스러운 정도의 동경을 받고 있다.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과분할 정도의 기대와 동경의 시선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동경하던 곳, 동경하던 사람, 동경하던 생활.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런 존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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