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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id. you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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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9, 2021 14:03에 작성됨.

* 젤리팝빈즈 극중극에서 피치가 과거에 남기를 선택했을 경우를 망상해본 if 스토리입니다.


"피치는 어떻게 하고 싶나요?"

"에.....?"

"피치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나요? 아니면....."

"나는....."


마치 우주와도 같은 온통 새까만 공간. 시간의 틈바구니 속. 로코가 던진 질문에 피치는 대답을 망설였다. 스우, 애니 그리고 히비키가 두 사람을 숨죽여 지켜보는 가운데, 피치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돌아가고 싶어."

"피치....."


피치에게서 나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어째서, 인가요? 로코는 지금이라도 당장 울것 같은 표정으로 피치를 보았다. 그걸 본 피치도 그만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으며 말했다.


"모두를 좋아한다는 말, 진짜야. 그치만. 너희들은 미래의 사람인 걸."

"그렇다고 해도!"

"아까 말했었지? 과거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돌아가야한다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너희들과 함께하는 미래는 분명 즐겁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피치의 뺨에서 결국 한줄기 눈물이 흘러 떨어졌다. 슬픔으로 얼룩진 푸른 눈망울. 그 안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결의에 로코와 스우, 애니는 뭐라 말을 덧붙일 수 없었다. 그들을 대신해서 나선 게  히비키였다.


"정말로 괜찮은 거야 피치? 이래보아도 이거, 큰 마음 먹고 저질러 버린 거라고. 이제 다시는 이런 짓 못해. 자신은 이 녀석들하고 미래에 갈 거야. 물론, 미리 사정을 이야기해두긴 했지만....."

"미안해."


아, 이거 어쩌지. 곤란한데. 이거라면 반드시 스타를 데려올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히비키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쓰게 웃었다.


"신경써줘서 고마워."

"신경은 무슨. 자신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극장을 부흥시킬 수 있는 스타 가수를 데려오려고-"

"지배인, 그쯤 해둬."

"스우."


스우가 떠벌거리던 히비키의 앞으로 나서 피치와 마주했다. 피치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스우를 올려다보았다.


"우리가 미래에서 할 일이 있듯이, 피치는 거기서 할 일이 있다는 거지?"

"응."


고개를 끄덕인 피치는 곧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조용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해 노래하고 싶어. 만약 내가 너희들과 같이 가버린다면, 할 수 없게 되어버려. "

"....네에. 그렇겠네요. 과거의 사람들은 미래의 노래를 들을 수 없으니까....."

"로코....."


애써 납득하려고 하지만,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는 로코를 애니가 도닥였다. 어딘가 능글거리던 분위기가 사라진 히비키는 굳은 얼굴로 모두를 돌아보며 외쳤다.


"자, 이제 시간이 없어! 꾸물거리고 있다간 영원히 이곳에 갇혀버리고 말 거야! 그러니 로코, 부탁해!"

"에, 에엣!? 저.....어째서 저인가요!?"

"왜냐면 로코는 아티스트니까!"

"네에!?"

"아티스트는 말야,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사람인 걸! 그러니 로코, 너라면 할 수 있어! 자, 알려줘! 올바른 시대의 방향을!"


그 말에 로코는 허둥지둥 주변을 살폈다. 그런 로코에게 돌아오는 건 두 사람의 격려였다.


"괜찮아 로코! 나는 로코를 믿고 있어! 지금까지도 그랬잖아?"

"나도 로코 덕분에 내 꿈을 떠올렸어! 그러니까, 믿을게!"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스우. 그리고 옆에서 진지한 시선을 보내는 애니. 조금 용기를 얻은 로코가 피치를 보자, 피치는 미소를 돌려주었다.


"고마웠어, 로코. 모두하고 함께 겉돌던 내게 말을 걸어준 것부터 시작해서, 같이 그림을 그리자고 해준 것도. 그리고 마지막으로....함께 가자고 해준 것도."

"그게, 로코는 그냥, 피치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으으응. 정말로 고마웠어. 그러니까, 잘 지내."

"피치.....!"


작별인사를 들은 로코는 질끈 두 눈을 감았다. 그 탓에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이 로코의 두 뺨을 적혔다. 그렇지만, 더는 망설이지 않아. 로코는 쥐어짜듯 소리쳤다.


"피치 말이 맞아요. 과거는 미래를 알 수 없어. 그치만, 미래에서는 과거가 어땠는지 알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아아, 그래. 그건가. 로코가 하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알아챈 히비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을 그 때. 로코의 몸에서 환한 빛이 나오는가 싶더니, 이윽고 이 새까만 공간 전체로 퍼져나갔다.


"기다리고 있을 게요! 미래에서!"


.....


...


"어~이~! 로~코~!"

"스우? 무슨 일인가요?"

"거기까지 해둬. 이제 슬슬 점심이잖아. 배 안 고파?"

"아, 그 말을 듣고보니....헝그리해졌네요. 좋아요. 피니시는 식사 후에 하지요."


그 뒤로 꽤 긴 시일이 흘렀다. 히비키의 믿음대로 그들은 다시 '테아트르 밀리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피치의 모습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피치는 제대로 과거에 돌아갈 수 있었을까. 로코 일행은 한동안 걱정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그 걱정은 해소되었다.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극장의 과거 기록들에서, 피치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애니가 열심히 찾아온 오래된 신문에서도 종종 브로드웨이의 간판 가수 피치를 언급하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거기다 로코 일행은 최근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피치가 남긴 SP 디스크 몇 장까지도.


"읏차.....어라, 누가 뮤직을 틀었나요? 아, 이거. 피치의 보이스네요."

"저기 애니가 시험삼아 틀어보고 있어. 구닥다리 물건이긴 해도 잘 돌아가서 다행이네."

"확실히 모던 타임에는 카세트 테이프가 포풀러하니까요. 그렇다해도 정말 좋은 송이네요."

"응. 그렇지.....그 애는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스우가 눈을 가늘게 뜬 채 툭 중얼거렸다. 지금 와서는 새로운 걱정이 생겨버린 것이다. 1920년대에서 1960년대. 그리고 지금은 거기서 또 6, 7년이 흘러버린 상황. 그 당시 11살이었던 피치는 이제 50이 넘은 중년 여성이 되어있을 터였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있다면.....의 이야기지만.


"그러게요. 피치는 계속 밀리언 달러 시어터에만 있던 게 아니고. 릴리즈된 노래는 이게 마지막....."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에 골인. 그렇게 해서 축복 속에서 은퇴한 거라면 좋겠지만."

"신문 부고 소식에는 뭐 올라온 거 없죠?"

"전에 확인해봤을 때는 없었어."

"얼굴을 보지 못해도 좋으니까, 몸 건강히 살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뭐, 뭐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니까. 그러겠지. 그나저나 로코, 밥이다 밥! 뭐 먹을래?"

"어.....스우는 생각해둔 거 있나요?"

"요 근방에 새로 햄버거 레스토랑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지배인은 벌써 가봤다던데. 애니도 불러서 셋이 같이 가볼까?"

"굿 아이디어에요!"


스우의 제안에 호응하던 로코는 새삼스럽게 테아트르 밀리언을 돌아보았다. 여전히 낡은, 아니. 이제는 훨씬 더 낡아버린 건물. 혹여나 무너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일단은 틈틈히 보수공사를 하고 있으니 오케이, 라고 로코는 생각했다.


언젠가 '그 황금시대' 때처럼 극장을 띄워보겠다던 히비키의 야심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테아트르 밀리언. 특히 요 몇년 사이에는 지역의 명소 취급을 받기 시작해서, 꼭 공연을 보러오는 것 말고도 순전히 관광 목적으로 찾아오는 이들도 꽤 되었다.


"그럼 애니를 불러올게. 잠깐 기다려줘."

"네!"


스우가 불 꺼진 극장 안으로 내달렸다. 로코는 극장의 엔트런스 근방에 서성거리다 벽에 걸린 포스터에 눈길을 주었다. 자신이 그린 것. 아직 마무리가 덜 된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확인하기 위해 걸어두었다.


단촐한 크림색 벽과 어우러진, 전체적으로 세피아 톤인 포스터에는 발 밑에 그림자를 드리운 채 무대에 서 있는 작은 소녀와, 그와 등을 맞댄 체 서 있는 4명의 또 다른 여성들이 그려져 있었다. 다음 시즌에 테아트르 밀리언이 선보일 공연, 'Between Past and Future'. 그 홍보를 위한 것이었다.


"여기가 앞으로 좀 더 유명해진다면. 어쩌면."


로코가 중얼거리던 도중이었다. 덜컥, 하고 굳게 닫혀있었던 극장의 정문이 열렸다. 누구? 혹시 오너? 로코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인 것은, 조금 작은 키에 잿빛 정장을 차려입고 길고 검은 머리를 한데 올려묶은 여성이 아니었다.


"어라.....?"


못 보던 사람이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보이는 그 사람은, 옅은 갈색 단발머리에 흰 브라우스와 밤색 조끼. 그리고 풍성한 플레어라인을 가진 짙은 풀색의 롱스커트 차림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진주로 된 목걸이까지. 예상과는 한참 달랐던 사람의 방문에 로코는 깜짝 놀랐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는 그 사람- 중년 여성에게 다가갔다.


"시어터를 찾아주셔서 감사해요. 그치만 지금은 유지보수 기간이라서요. 관람은 조금-"


정형적인 안내멘트를 날리던 로코는 돌연 입을 멈추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몰랐지만,  가까이 마주 선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이 여성이 과연 누구인지. 그리고 그건, 여성 측도 마찬가지였다.


".....롱 타임 노 씨네요, 피치.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그 만남이 있었던 때보다는 조금 어른이 된 로코가, 이제는 원숙해진 피치한테 인사를 건넸다. 


"나? 나야.....잘 지내고 있었지. 늦게 와서 미안해 로코. 그동안 많이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맞아요. 다들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자, 어서 와요. 테아트르 밀리언에! 로코가 피치의 주름진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거기에 이끌려가는 피치는 어느덧, 어느 한 극장의 꼬마 간판 가수였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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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id, you will. we meet. 이별도 사랑의 한 형태라는 가사를 어디서 봤어요. 그치만 역시 재회하는 게 약속이라고 생각합니다(대체로 해피엔딩파). 원래 해피로 끝났던 걸 억지로 뒤틀어버렸다는 게 문제지만요. 뭐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게 아닐까요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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