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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 엘레나 『판타지스타 걸』 -4-(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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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4, 2021 14:34에 작성됨.

"그렇구나. 확실히 정말 고민되는 일이지. 어느 것을 더 우선하는 게 좋을까 항상 헤매게 돼. 아, 그렇지."

"응?"

"전에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거 기억해? 아이돌에게는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말."

"아, 그거."


그렇다는 건 역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엘레나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답하자, 프로듀서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책임감은 중요하지. 그렇지만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잖아. 가끔은 청춘을 즐겼으면 한다고."

"그건 그렇지만....."

"책임감을 갖는 건 중요해. 그치만 때에 따라서는 더 소중한 게 있다고 생각해."

"더 소중한 거?"


엘레나의 반문에 프로듀서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응.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것. 그게 제일로 소중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


그러니까. 프로듀서가 엘레나의 어깨를 퐁퐁 두드렸다. 


"엘레나가 더 이상 다른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았으면 해. 좀 더 자신을 드러내도 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줘."


그러자 엘레나는 얼굴이 환해지다가도 곧 멈칫했다. 정도는 다르지만 전에 쿠로이 사장이 말했던 거랑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내가 하고싶은 대로만 하면, 다른 사람들은? 엘레나는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는 시선을 프로듀서에게 보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자신있게 말했다.


"엘레나가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말하면, 각자 생각이 있겠지? 엘레나의 생각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거야. 의견이 다르면 서로 이야기하면서 합의점을 찾아나가자. 무작정 참고 따라가는 것보다, 아니면 너무 멋대로 하다가 원망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아. 엘레나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작게 탄성을 흘렸다. 그랬다. 이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 서로 이야기 해서,  자신과 남 모두가 즐거울 수 있도록 방안을 찾으면 되는 거였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모두가 즐거울 수 있을까. 엘레나에게 안겨진 새로운 고민. 그렇지만 그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었다. 


"프로듀서."


잠깐 생각해보던 엘레나가 씩 웃으면서 프로듀서를 불렀다.


"응?"

"나 방금 좋은 게 떠올랐어."

"뭔데?"


프로듀서가 귀를 기울이자, 엘레나가 크게 외쳤다.


"카니발이 하고 싶어! 우리들만 춤추는 게 아니라, 관객들도 다 같이 춤추는 거야! 극장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아보고 싶은데, 어떻게 안될까?"


아이돌의 순수한 요청. 거기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나누고, 재고, 구체화하는 것이 프로듀서의 역할. 프로듀서는 보란 듯이 외쳤다.


"맡겨줘!"


.....


... 


그리하여 시어터 미니 카니발 행렬이 기획되었고, 얼마 전 행사를 마쳤다. 본고장의 엄청난 규모나 화려함은 따라갈 수 없었지만,  관객들의 참여가 돋보이는 이색적인 시도였다. 물론 처음 했던 것이기에 여러 시행착오도 있었고, 하면서 실수한 부분도 좀 있었긴 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꽤나 호평이었다. 


"으어어....."


늦은 저녁, 시어터 대기실에서 혼자 남아 이번 미니 카니발을 돌이켜보던 프로듀서는 쑤시는 팔다리를 주물렀다. 설마 자기까지 그 행렬에 참가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엘레나가 자길 멋대로 끌고 가던 걸 회상하던 프로듀서는 픽하고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러고보면 그 때도  이랬던가."


혹시 무대에 참고 할 수 있을까해서 찾아갔던 삼바 카니발.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춤을 추고 있던 관객 한 사람. 연두빛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즐겁게 춤을 추던 소녀. 주변의 다른 사람마저도 같이 춤을 추게 만들 정도였었다. 그리고, 프로듀서도 어느덧 그 소녀에게 이끌려 있었다. 자신이 엘레나를 스카웃했지만 그보다 먼저, 엘레나 쪽이 자신을 꿈과 열정의 공간으로 끌고 간게 아닐까. 프로듀서가 감상에 젖어있을 때였다.


띠링-


"이런, 잠깐 여유부릴 시간도 없다는 건가."


프로듀서가 투덜거리며 휴대폰을 확인하다, 두 눈을 깜빡였다. 업무연락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프로듀서~ 아직 있지?


엘레나에게서 온 라인 메세지였다. 프로듀서가 간단히 답장을 보낸지 얼마 되지도 않아 갑자기 대기실 문이 벌컥 열렸다.


"프로듀서~!"

"으, 우왓!?"


문을 열고 등장한 이는 엘레나였다. 엘레나는 무작정 프로듀서에게 달려가더니 그대로 꼭 안아.....버리지는 않았고, 딱 코 앞에 멈춰섰다.


"프로듀서, 안아도 돼?"

"에, 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얼어버린 프로듀서가 대강 대답하자, 엘레나가 정말로 프로듀서에게 두 팔을 벌려 포옥하고 감싸안았다.


"꺅."

"에헤헤, 프로듀서 귀여운 비명소리네♪"

"무슨 일이니. 집에 간 거 아니었어?"

"그러려고 했는데, 프로듀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으흠, 그래."


가만히 안겨있는 프로듀서에게, 엘레나가 조금 걱정을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 혹시 이러는 거 싫어? 답답해?"

"그럴 리가. 좋아해. 너무 갑자기는 곤란하겠지만."


프로듀서가 엘레나의 등에 팔을 두르고 툭툭 두드려주자, 엘레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프로듀서는 이제 되었다는 듯 그만 엘레나를 놓아주었다.


"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고마워!"

"미니 카니발 말하는 거야? 그거라면 이쪽이야말로 고맙지. 좋은 아이디어였어. 꽤 신선하고 좋은 공연이었다고 생각해. 아직 부족한 점이 있긴 했지만."

"그거 말고도 하나 더 있어."

"하나 더?"

"응."

"그 때 있잖아. 내가 961 프로에 전화하는 걸 프로듀서가 봤을 때."

"아아, 그거."

"만약 내가 프로듀서였다면, 깜짝 놀라고, 화도 나서.....분명 큰 소리를 냈을 거야. 그렇지만 프로듀서는 끝까지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지."

그거야 당연한 걸. 나는 네 프로듀서니까. 믿어줘야지."

".....고마워."


감사를 표하는 엘레나의 눈빛은 진지했다.


"프로듀서. 나.....이적하지 않겠다고는 했지만, 그래도 전-혀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 왜냐면, 그 때는 두 가지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거든."


엘레나가 자신과 프로듀서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끝까지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 같은 건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쿠로이 사장이 그렇게 말해서."


쿠로이 사장이 하는 짓은 전혀 마음에 안들지만, 한 번 정했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나도 둘 중 하나를 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하고. 엘레나가 다른 곳에 시선을 두며 중얼거렸다.


"열심히 생각해봤는데, 역시 혼자만 즐거운 건 싫어. 모두 함께 즐겁게 지내고 싶어. 그래서 전화했던 거야. 자기만 생각하는 사장님은 싫어. 메롱! 이라고."

"푸하핫, 잘 말해줬네."

"그랬더니 쿠로이 사장, 엄청 화내서는! 삼류 사무소에 맞는 삼류 아이돌이 어쩌구저쩌구- 아, 이게 아닌데."


엘레나가 프로듀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여튼 그래서....결심했던 거야. 재미없어도 재미있게 하자고."

"그건 즉,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꾹 참겠다는 거?"

"응. 하지만 프로듀서와 이야기하고나서 알았어. 그럴 필요 없다는 거. 그래서, 그게 제일로 고마워! 이걸 말하고 싶었던 거야."


기운찬 감사인사에, 프로듀서는 부드러운 미소로 화답했다.


"후후, 이 정도야 뭘.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걱정?"

"응. 나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리오도 그렇고, 미야도 그렇고." 

"아....."

"괜찮아, 괜찮아. 엘레나, 이젠 더는 안 그럴 거잖아?"

"맞아."

"계속 신경쓰이면 미안하다고 전해줘."

"그래야겠어!"


엘레나의 활기찬 대답에 프로듀서는 이제 마음 놓았다는 듯,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며 엘레나에게 손짓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슬슬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아.....그렇네. 저기, 프로듀서는?"

"나는 조금만 더 있다가 가려고. 걱정 마."

"같이 가면 안 돼?"

"미안, 다음에."


어쩔 수 없네. 엘레나가 아쉬움을 뿌리치고 프로듀서에게서 완전히 돌아선그 때였다.


"아, 잠깐만 엘레나."

"어?"

"엘레나는 모두를 즐겁게 하고 싶다고 말했지?"

"맞아. 그런데?"

"그 모두에는 너도 포함되어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


그 말을 들은 엘레나가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섰다. 앗, 혹시 내가 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프로듀서가 걱정하는 마음으로 엘레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걱정이 무색하게 엘레나는 이전의 애매한 것이 아닌, 진정으로 환한 웃음을 돌려주며 말했다.


"응, 알았어! 명심할게! 그럼 이만! 내일 봐!"

"그래. 내일 봐."


역시 엘레나에게는 저런 태양같은 미소가 어울린다니까. 시어터 대기실에 다시 혼자 남은 프로듀서는 엘레나가 가고난 뒤로도 한참 동안을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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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월루의 힘을 빌어 후닥닥 끝내버리기. 구상은 전부터 했던 건데 계속 미루고 있다가 이제야 완성했네요. the indigo라는 가수가 부른 '판타지스타 걸'이라는 노래에서도 약간의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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