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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바라 엘레나 『판타지스타 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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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04, 2021 08:51에 작성됨.

그로부터 며칠 후. 765 프로덕션 시어터.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시어터 내 사무실에 있던 프로듀서는 이마를 한 손으로 부여잡은 채 고개를 푹 숙였다. 전에 리오가 했던 이야기로 봐서는 엘레나가 이상해진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프로듀서는 어제 들었던 또 다른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프로듀서 씨, 잠깐 괜찮으신가요~? 조금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미야가 프로듀서에게 찾아와서 이런 말을 했었다. 전에 특별 기상캐스터 일을 했을 때, 같이 있던 엘레나가 기운 없어보였다고. 아니, 그걸 넘어서- 마치 억지로 참는 듯이 보였다고 했다. 단순 짐작보다 생생한 증언에, 프로듀서는 말라붙은 입술을 혀 끝으로 적셔가며 양복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다이어리 앱을 켰다.


그리고는 오늘 엘레나의 일정을 확인했다. 오후에 레슨이 하나 있었다. 프로듀서는 휴대폰 상단의 시계에 시선을 옮겼다. 지금쯤이면 시어터에 벌써 도착했을 수도 있었다. 프로듀서는 라인을 켜서 바로 메세지를 보냈다.


-엘레나, 잠깐 시간 있니?


그런 뒤 약 5분 정도를 기다렸지만 답장이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프로듀서가 의아함을 느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응?"


비록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지만, 메세지에 답장 정도는 받았었다. 프로듀서는 메세지 옆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1이라는 숫자를 가만 지켜보다, 더는 못 기다리겠다는 듯 수화기를 들었다.


뚜- 뚜-


-통화 중입니다. 나중에 다시 시도해주세요.


"칫, 하필 또."


프로듀서는 혀를 차며 휴대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역시, 직접 가서 말하는 게 좋겠네. 정말 진지한 이야기라고 말하면 도망치지는 않겠지. 그렇게 판단한 프로듀서는 사무실을 나와 시어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복도, 주출입구, 대기실, 극장 안, 자재준비실, 창고, 레슨 룸.....그러나 어디에서도 엘레나를 찾을 수 없었다.


대체 어디있는 거람. 프로듀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혹시나 싶어서 엘레나에게 전화를 한 번 더 해봤지만 여전히 통화 중이었다. 엘레나가 이렇게나 통화를 오래 하는 애던가?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혹시 설마, 아직 시어터에 오지 않은 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것 같은데. 잘못하다가는 레슨에 지각할 수도 있으니까. 잠깐, 그러고보니.....프로듀서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자신이 처음 엘레나에게 주의를 주었던 때를 떠올렸다. 


아직 엘레나가 아이돌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때. 


프로필 사진을 찍기로 했던 날.


엘레나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지각했었다. 프로듀서가 이유를 물어보니, 날씨가 좋아서 공원을 산책하고 왔다고 했다.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프로듀서는 조금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약속과 시간을 지키는 건 아이돌 활동에 있어서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니까.


-지각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무슨 일 있으면 꼭 연락해. 그래야 왜 그러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잖아. 모두를 무작정 기다리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아.....미안해. 다음부터는 꼭 연락할게.

-그렇게 해줘. 아이돌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 생각도 좀 해주렴. 알았지?

-응! 알았어. 나, 모두에게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올래. 


다행히 엘레나는 금방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모두에게 사과도 했고 해서 좋게 풀렸다고 생각했는데....그게 아니었나. 프로듀서는 굳은 얼굴로 멈췄던 엘레나 수색을 재개했다. 그런지 한 몇 십분이 지났을까. 시어터 뒷편 후문에까지 도착한 프로듀서는, 마침내 엘레나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엘레나!"

"우아앗!?"


프로듀서가 소리치며 다가가자, 엘레나는 화들짝 놀라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과, 작은 종이조각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엘레나는 황급히 휴대폰과 종이조각을 도로 주우려고 했지만, 프로듀서는 이미 그게 어떤 건지 보고 말았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바탕에 짙게 깔린 검은 불꽃 모양 마크가 돋보이는 명함. 예능계에서 악명이 자자하다는, 961 프로덕션의 것이 틀림없었다.


답장 없는 라인 메세지.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해서 통화 중.


그리고, 방금 봤던 명함.


.....엘레나, 너어....!?


지금까지의 정보가 철컥철컥하고 머리 속에서 빠르게 조립되는 순간, 프로듀서는 그만 크게 소리칠 뻔 했다. 그렇지만 그는 울컥하고 튀어나오려는 감정에 가까스로 브레이크를 걸었다. 몰아세우면, 안 돼. 프로듀서는 원래 자신이 하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기억해냈다. 엘레나와 이야기하기. 프로듀서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엘레나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리고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침착함을 발휘했다.


"저, 저기, 이건 말야....."

"괜찮아."

"프로듀서?"

"이야기할 게 있어서 찾고 있었어. 라인도 보냈는데, 혹시 못 봤니?"

"에, 아아, 그거."

"전화도 했는데 계속 통화중이라고 해서 말야. 그래서 직접 만나러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 좀 돌아다녔는데, 여기서 보네."

"저기 있지, 나...."

"혹시 레슨 뒤로 시간 되니?"

"그게....."


망설이던 엘레나는 곧 응, 이라고 꺼질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


그리하여 레슨이 끝난 뒤, 저녁. 시어터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던 프로듀서에게, 엘레나가 찾아왔다.


"저기....."

"자, 일단 여기 앉아봐."


프로듀서가 가볍게 손짓하자, 엘레나는 잔뜩 주눅 든 모습으로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요즘 무슨 일 있니? 다들 걱정하는 것 같더라고."

"으으응. 아무 것도 아....."


엘레나는 말을 하다 말고 프로듀서를 보았다. 프로듀서는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는 눈짓을 보냈다. 엘레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해."

"뭐가?"

"나, 모두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응?"


폐라니. 엘레나와는 맞지 않는 단어에 프로듀서가 의문을 표하자, 엘레나는 결심했다는 듯 계속 이야기를 해내갔다.


"저기 있지, 실은.....전에 오프일 때 쿠로이 사장하고 만났어."


이 명함도 그 때 받은 거야. 엘레나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명함을 내밀었다. 프로듀서가 그 명함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엘레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어 말했다.


"거, 걱정 마! 절대 이적 같은 안 할 테니까! 아까 전화했던 건 거절하려고 했던 거야!"

".....그러니."


프로듀서의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기는 대답에, 엘레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어색한 웃음과 함께 프로듀서의 눈치를 슥 살피는 엘레나. 프로듀서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여기 남아준다고 해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프로듀서가 도중에 말을 멈추고 엘레나를 보았다. 일렁거리는 푸른빛 눈동자와 흔들림없는 갈색 눈동자가 서로룰 마주했다.


"엘레나."

"응."

"엘레나는 이걸로 괜찮은 거야?" 


에? 예상치 못한 질문에 엘레나가 목소리를 높였다.


"961 프로덕션으로 가는 게 어쩌면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프, 프로듀서는.....내가 이적했으면 좋겠어?"


떨리는 목소리로 돌아온 질문에, 프로듀서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그러면, 왜?"

"지금은 네 생각을 묻고 있는 거야. 여기 남아준다고 결정한 건,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니면 네 스스로 그래야겠다고 생각한 거야?"

"....."


엘레나는 긴 침묵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해서야."

"그래? 그럼 됐어."


프로듀서는 이상할 정도로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저기 프로듀서? 괜찮아? 더 안 물어봐?"

"이미 끝난 걸 굳이 또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응.....그렇구나. 그럼."

"미안. 아직 안 끝났어.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뭐, 뭔데?"

"요즘 너 말야, 왜 그러는 거야?"

"엣?"

"지나치게 다른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고. 네 의견을 말하는 일이 별로 없던 것 같은데. 무슨 이유라도 있어?"

"아, 그건....."


이제서야 겨우 프로듀서가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입에 담자, 엘레나는 찔린 듯이 대답했다.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혼자만 즐거우면, 안될 것 같아서."

".....역시 그랬구나."

"프로듀서?"

"미안해."


프로듀서가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러자 엘레나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프로듀서가 왜 사과하는 건지 물었다.


"그 때 그런 말을 한 건, 무조건 억누르자는 의미가 아니었어. 그냥, 조금 자제하면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한 건데....."

"아....그랬구나."


엘레나의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조금 빠졌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완전히 가벼워지진 않았다. 프로듀서는 엘레나에게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어보았다. 엘레나는 지난 프로필 사진 촬영 때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 때 나만 생각해서 연락도 없이 늦게 왔잖아. 그래서 촬영이 늦어졌고."

"응. 그 때는 잘못했지. 그치만 진심으로 사과했잖아. 촬영에도 열심히 응했고."


그걸로 만회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어? 프로듀서의 말에 엘레나는 고개를 약하게 가로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생각해봤어. 나만 즐거운 것보다는 모두가 함께 즐거웠으면 좋겠어. 그런데 나 때문에 모두가 정해둔 게 흐트러졌잖아. 그 때 그 단체곡 때도, 내가 너무 튀어서."


말로 잘 정리가 안되는지 엘레나가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프로듀서는 끈기 있게 엘레나가 전부 말해주길 기다려주었다.


"모두가 정해둔 걸  내가 맘대로 깨버리면 안되니까, 그래서 참았어.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라던가, 이것보다는 다른 걸 하고 싶다던가, 이건 별론데 하는 거....."


엘레나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재미없어지더라구. 아이돌 하는 게 즐겁지 않아졌어. 아이돌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줘야하는 거잖아. 전에 프로듀서가 그렇게 말했지?"

"응."

"근데 말야, 내가 즐겁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그 질문에 프로듀서는 고개를 저었다. 


"그치? 내가 재밌어야 남들도 재밌게 해줄 수 있잖아. 하지만 그렇게 되면 또 나 혼자만 즐겁게 되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하자고 정해둔 걸 망쳐버릴 것만 같아."


프로듀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엘레나의 깊은 고민에 프로듀서 또한 미간을 움츠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지 조금 시간이 지난 후. 프로듀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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