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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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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31, 2021 01:55에 작성됨.

나는 이치노세 시키라는 소녀를 모른다.

소녀, 라는 건 다른 단어로 치환해도 마찬가지이다. 세 가지의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고 해도. 이치노세 시키라는 여자. 이치노세 시키라는 아이돌. 이치노세 시키라는, 나의. 

...파트너. 친구. 동료. 소중한 사람. 아니, 무엇일까. 분명 이 세계에 어떠한 음성으로서 존재할, 더 적절한 단어는. 그 '더 적절한 단어'조차 나는 모른다. 그녀는 나의 무엇인지 나는 모르고, 그렇기에 설명할 수도 없다. 내가 그녀의 무엇인지조차 나는 모른다. 예외적인 존재라고 해야할까. 그런 부분은 단어 하나 하나의 타당함을 고찰하는 나의 성가신 성격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확실한 건, 그런 내 성격을 성가시다고 정의해버리는 것도 그녀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나는 분명 그녀에게서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단언컨대 절대로 내 의지가 아니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을만큼, 제어할 수 없을만큼 그녀의 생각에, 말에, 표현에, 표정에, 자그마한 반응 하나하나에 깊이 끌려가버리는건.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드는 건, 또 말 한 마디에 터무니없이 기뻐지는 건, 그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도 같은 업앤다운을 경험하는 기분이란. 그 생경하고도 어딘지 불편한 기분을 생각하면 그녀는 그녀라고 지칭하는 것보다 '그 녀석'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옳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되었건 그 녀석이 되었건 이것이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마음이 깎여나가는 듯한 자존심 상하는 일임은 틀림 없지만.

자랑할만 한 일이 결코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는,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 자존심 상하는 일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실종이 특기인 길고양이 같은 녀석을 찾아나서고, 종국에는 찾아내고, 데려오고야 말았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녀석을, 시키를, 정확히 말하자면 시키의 실종을 수사해내는 무료 탐정 같은 역할은 모조리 나의 전담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오늘도였다.

태양이 가장 뜨거울 때 시작하여, 태양이 지기까지 나는. 더위에 지쳐 묶은 머리카락을 다시 풀 무렵까지.

오늘도 평소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 그 소녀를 위해 같은 길을 몇번이고 반복하여 걷는다. 혹여나 기상천외한 곳에 숨어있을까봐 덤불도 뒤지고, 좁은 골목길도 서슴지않고 들어가본다. 그 일에는 일체의 재미도 보람도 없다. 승자는 아무도 없는 숨바꼭질이다. 술래는 언제나 불리하다. 그래도 술래는 찾아낼 때까지 포기할 수 없다. 누군가를 찾아내야만 멈춰서는 것이 가능하다. 그 고독을 묵묵히 견디고 참아야만 한다는 쓰디쓴 무언의 강요가 나를 짓누른다. 그래도 해야만 한다. 내가 해내야만 한다. 

왜일까.

내가 해내야만 한다, 그것은 알아도,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속죄일까.

그런 건 아니다. 물론 실종된 것을 내가 찾아내었을 때 그녀의 몰지각함에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여언쟁을 벌인 것이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다. 어리광을 부리도록 내버려둔 것이 이러한 굴레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 레슨이 힘들다는 거짓말에 제 의지로 속아넘어가 함께 '실종'에 동조해버렸던 것. 이런 저런 부탁들을 쉬이 들어주었던 것들이 지금의 프로페셔널로서 도무지 답이 없는 그녀를 만들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을 할 수는 있어도, 실제로 그랬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키는 언제나 시키일 뿐이었으니까. 내가 무엇을 했건 그녀는 끝까지 그녀였으니까. 

그녀가 내게 영향을 받는 것은 악영향이라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것은 그녀와 함께한 시간에서 의미없는 고찰을 반복하며 얻은 의미없는 결론들 중 하나였다. 제멋대로고, 엉망인. 

모르겠다. 시키에 대하여 돌아가는 사고회로들은 전부 엉망진창이다. 기계처럼 일정히 돌아가던 나의 생각에, 그 녀석이 정체모를 약품을 부어버려 삐걱거리게 만들어버린 것만 같다. 망가져버린 연구실에서 제대로 봐줄만 한 것은 깨진 거울에 비치는 나의 조각난 형상들도 아니었고 삐그덕거리기만 하는 구제불능 기계덩이들도 아니었다. 흥미가 돌아 신이 난 듯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톡톡 건드리고 망가뜨리는 순수악적인 파괴자만이, 유일하게 멀쩡하며 활기찬 존재였다. 그 안에서 나는 멍한 시선으로 그녀를 좇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아무 의미도 없이. 

그런데 어째서일까. 오늘의 나는 그 무기력한 작업마저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석양을 보게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나 찾아다녔는데도, 그 녀석과 함께 이 광경을 보지 못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날이 저물면 녀석을 찾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아니, 어쩌면, 이 아니라 확실히, 그 녀석은 찾지 못한다. 그렇게 찾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린 녀석은 사무소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적은.... 있었다.

...있었다고 들었다. 며칠간이었지만. 어쩌면 이번에는.

그러니까, 나는 찾아야만 한다.

해가 지기까지 앞으로 얼마 남았더라. 그런 것을 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시간이 아깝다. 아깝다고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혼란에 머리가 가득 차서 어디로 가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도 결론짓지 못하는 채 나는 무작정 내달렸다. 모르겠다. 그 녀석이 어디 있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 

전에는 어떻게 그 녀석을 그렇게 쉽게 찾아냈었을까. 왜 나는 '오늘도'라며 그 일을 쉬운 일로 치부했던걸까. 

불안하다. 

나 뿐일까. 정말로 나 뿐이었을까.

두 사람의 사이에서, 영향을 받는 것은.

불안한 것도, 외로운 것도, 의지하는 것도, 의지하기를 바라는 것도. 나 뿐이었을까. 그랬다면 녀석은. 너는. 왜 나의 곁에 있어주었을까. 숨이 차도록 뛰었다. 간절히 빌었다. 간절히 너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너를 모르지만, 너는 나를 알잖아. 내가 어디를 찾아볼지 따위의 것들이라면 얼마든지 알고 있잖아. 그러니 나는 너를 찾을 수 없지만, 너는 나를 찾을 수 있잖아

늘 그랬다. 너는 나를 알았다. 나는 너를 몰랐지만, 너는 나를 알았다. 나는 너를 몰랐지만, 그 무지를 알았다. 그래서 알 수 없었다. 내 능력으로는 도무지 작정하고 실종된 너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한번도,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을. 아무리 운이 좋았다고 치더라도 언제나 너를 찾아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걸 알았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필사적임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너를 찾아낼 존재이고 싶었다. 언제나 널 찾을 수 있는 존재이기는 무리더라도, 언제나 너를 찾으러 갈 존재이고 싶었다. 그런 존재로서 네 옆에 있겠노라고 맹세했던 것이다. 너는, 이번에는 그런 나를 찾아줄 수 없었던걸까. 

찾지 않고 떠나가버린걸까. 고양이처럼.


틀렸다. 달리는 사람 쪽이 눈에 띄기 쉬운 것은 맞지만, 더 이상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달릴 수가 없었다. 눈에 띄기를 바라는 것은 그 자체로도 마음이 지치는 일이었다. 아아, 결국 이번에는 실패인가. 실패하지 않았던 이전의 전적들이 더 이상한 거였다. 숨을 허덕이며 꼴사납게 멈춰서서는, 돌아가지 않는 생각의 나사를 어떻게든 맞춰보려고 하며, 나는 주저앉았다. 갑작스러운 큰 움직임에 참새들이 포로록 날아갔다. 어쩌면 다른 종류의 작은 새였을지도 모른다. 별안간 길바닥에 주저앉아버려 따가운 시선이 등에 꽂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건 이제 상관 없다. 시키를 찾을 수 없었고, 시키가 나를 찾아내게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면목이 없다. 자만이 지나쳤다. 언제나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도. 나는 무릎을 끌어안았다. 팔을 뻗어 잡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무릎밖에는 없었다. 

태양이 지고 있겠지. 

나는 보려하지 않았다.

석양은, 오늘은 어떤 모양의 빛으로 물들어 거리를 비출까. 그것은 오늘밖에 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한심하다.

그 녀석이 어떤 기분으로 실종을 해왔는가를 생각해본다. 의외로 지금의 나와 같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내가 간신히 그녀를 이해하는 순간은 지금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이야말로 '실종'되고 싶으니까. 내 자신이 한심해서 어딘가로 도망가버리고 싶으니까. 빛이 너무 눈이 부셔 웅크리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워지니까.


그래도 그럴 수는 없겠지.

빛이 있다면, 내 자신이 그만큼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감안해야만 한다. 그만큼 짙어지는 자신의 그림자도, 마주봐야만 한다. 빛과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시키의 곁에 있던 시간동안이 그랬던 것처럼.

시키가 빛처럼 나의 곁에 있어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결심하고, 일어서서 뒤를 돌면.


그 곳에는 빛이 있다.

눈이 부시게 저무는, 빛이 있다.


"냐하, 아스카쨩."


아아.

싫다. 

내 자신이 증오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 한없이 무너져내리고 마는 작고 나약한 내 자신이 싫다. 

싫다. 알기 쉽게 싫다. 찾을 수 없었음에 그렇게까지 절망하고도, 꿋꿋한 기풍도 없이 또다시 찾아내졌음에 기뻐하는 내 자신이.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이 의지조차 싫다. 의지 없이 끌려다니는 나의 의지가 싫고 싫어 참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오직 내 의지가 향하는 곳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시키, 시키, 시키. 오직 시키였다. 이치노세 시키였다. 아니, 어쩌면 이치노세 시키가 나의 마음이 있는 곳이니 마음과 의지는 동맹일지도 모르겠다.

"시키."

나는, 힘겹게 나의 마음을 불렀다. 

".......시키, 나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시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화를 내야할까. 화를 내면, 시키는 도망가버릴까. 또 다시. 그리고 변덕으로 또 나를 찾을까. 모르겠다. 그러면 아는 것은 무엇일까. 아는 것은, 그래. 내가 갖고 있는 것 뿐이다. 나의 마음이다.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나의 마음 뿐이다.

"나는, 기뻐."

".........."

"네가 돌아와 주어서 기쁘다. 나는..."

"아스카쨩."

"...응."

말이 끊겼음에도 끊어진 말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정작 말을 끊은 장본인은 희미한 비소를 머금고, 무척이나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양이란 동물은 말이야, 멋대로 집으로 들어와 잔뜩 흔적을 남기다가도 아무 때라도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등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아스카쨩은, 고양이를 좋아해?"

"아아. 그래. 좋아해."

"......그래."

고양이도 아스카쨩을 좋아해. 아이아이가사相合傘구나. 해피엔딩이네. 시키는 잠긴 듯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나의 품으로 들어왔다. 안겨왔다, 보다도 쓰러져왔다에 가깝게. 온 무게를 실어서.

"그렇다고 해도 시키쨩은 고양이는 아니지만."

"그렇겠지."

"그렇지만, 시키쨩도 아스카쨩을 좋아해."

".........."

"부비부비~."

효과음처럼 말하지 마.

"자, 이렇게 시키쨩의 향기가 새겨졌으니, 다음의 아스카쨩은 확실하게 시키쨩을 찾을 수 있을거야. 이 향기를 잊으면 안 돼."

그건 무슨 의미였을까. 다음에는 조금 더 쉽게 숨어준다는 것이었을까. 그럴 바에는 아예 실종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냐하하. 걱정하지 마. 시키쨩도 아스카쨩의 향기, 제대로 맡았으니까. 킁킁."

뭘 걱정하지 말라는 건가. 알 수 없다. 여전히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랑 아스카쨩의 향기, 조금 섞였을지도 모르겠네."

그건 기쁘군.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시키는 웃으며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따라갔다. 내가 녀석의 또 다른 변덕스런 실종에 동행하게 된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미 지하철에서 상당수의 역을 지나치고 도착한 도시 변두리에서 낡아 부서지게 생긴 식당의 말도 안 되는 저녁을 먹고도 한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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