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키사라기 치하야 「이상한 꿈을 보았다」 (4)

댓글: 1 / 조회: 586 / 추천: 1


관련링크


본문 - 05-06, 2021 23:53에 작성됨.

-0-


“맞구나, 치하야짱! 나, 기억해? 하루카야. 아마미 하루카!”

“...”


  나는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마미 씨는 1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리본이 실핀으로 바뀌면서 조금 더 인상이 차분해졌고, 뒷머리를 장발로 길렀다는 것만 빼면, 내 기억 속의 아마미 씨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지? 사실 여러 번 연락하려고 했는데, 왠지 치하야짱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해ㅅ- 앗.”

 

  아마미 씨는 들뜬 표정으로 이야기하다 말고 순간 멈칫했다. 표정에서는 당황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ㅁ, 미안. 갑자기 정신없었지? 나도 참, 들떠 버려서... 그, 호칭은, 키사라기 씨, 면 될까? 이제 어린 아이도 아니니까.”


  아마미 씨와 나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오랜만이기도 했고, 너무 갑작스럽기도 했고, 그리고...


‘치하야짱, 잠깐만!’

‘...막지 말아줘. 아마미 씨.’


  10년 전, 그게 마지막이었으니까. 그 후로 연락한 적도, 소식을 물은 적도 없었으니까. 내가 그런 식으로 잘라낸 관계였기에,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마미 씨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

“...?”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도 선뜻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불편한 상황이 몇 분 가까이 이어졌다.


“하루카~!”


  우리 둘 사이에 흐르던 침묵을 깬 건 아마미 씨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갈색 단발머리에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목소리의 주인공은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늦어서 미안! 오는 길에 차가 막혀버려서.”

“괜찮아. 나도 방금 도착했-”

“어...?!”


  젊은 여성은 아마미 씨에게 사과한 후 나를 바라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로 얼어붙었다. 나는 어색한 무표정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아, 미키. 이쪽은-”

“치하야 씨?! 치하야 씨, 맞지?! 진짜 치하야 씨인 거야?!”


  또 다시 아마미 씨의 말을 끊은 그녀는 갑자기 초록빛 눈동자를 빛내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순간 깜짝 놀라 한두 발짝 뒷걸음질 치다 아마미 씨가 방금 그녀에게 한 말을 다시 떠올렸다.


“혹시... 미키?”

“응응! 미키야! 어렸을 때 같이 아이돌 했었던! 기억해주고 있구나! 엄청 기뻐!”


  호시이 미키...? 이 사람이...?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미키와 똑같았지만, 그 외의 모든 부분이 내 기억과는 전혀 달랐다. 샛노란 금발은 차분한 갈색이 되어 있었고, 곳곳이 삐죽삐죽 튀어나왔던 긴 머리는 단정한 단발로 정리되어 있었다. (흔히들 바보털이라고 부르는 더듬이 같은 건 아직 남아 있었지만) 활기찬 목소리 톤은 그대로였지만, 개성적인 말투도 거의 희석돼서 평범해진 수준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키는 점점 목소리 톤을 높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치하야 씨, 잘 지낸 거지? 아즈사 씨가 가-끔 이야기해줘서 소식은 알고 있었는데, 역시 연락해보고 싶었어~! 그치만 미키, 아이돌 그만 둔 이후로는 엄~청 바빠져서, 어쩌다보니 시간이 없었던 거야!”

“미키, 키사라기 씨 앞이라 그런지 옛날 말투로 돌아왔네. 후후.”

“아...! 조심해야 되는데. 학교에서도 이러면 큰일이니까. 그래도... 오늘만큼은 괜찮은 거야. 아핫☆”


  미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옛날처럼 환하게 웃어보였다. 헤어스타일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많이 달라졌지만, 미키의 미소를 보며 왠지 그리운 느낌이 든 나는 시선을 조금 내리고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야, 미키. 그리고 아마미 씨, 호칭은 예전처럼 불러도 괜찮아.”


  아마미 씨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치하야짱, 미키. 슬슬 본식인 것 같으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식사하면서 할까?”

“좋은 거야!”

“그래, 그러자.”


  나는 아마미 씨와 미키를 따라 본식이 열리는 교회 건물 안으로 이동했다. 호텔 옥상에 따로 교회 형태의 건물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에서 본식이 끝나고 나면 아래의 피로연장으로 이동한다는 것 같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대로여서, 사전 조사를 하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교회 건물 안에서 자리를 잡은 뒤에는 본격적으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랑, 신부가 입장하고, 주례와 반지 교환, 서약 같은 순서가 뒤를 이었다. 식이 끝나고 난 뒤에는 하객들이 먼저 밖으로 나와 교회 문으로 나오는 신랑과 신부에게 꽃잎을 뿌려주기도 했다. 마치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결혼식이었다.

  본식이 끝난 뒤에는 피로연장으로 이동했다. 아즈사 씨의 배려 덕분인지 아마미 씨와 미키, 그리고 나의 자리는 같은 테이블에 배정되어 있었다. 본식이 시작되기 전에 이야기가 끊겨서인지, 두 사람이 내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둘 다 잘 지냈지?”

“응. 나야 그럭저럭?”

“미키는 엄청 잘 지내고 있는 거야!”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인 아마미 씨와 달리 미키는 눈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나는 아까 전에 미키가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나 자세히 물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미키는 지금 대학생인 거야?”

“아니! 선생님인 거야!”

“...응? 선생님? 미키가?”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하며 미키에게 되물었다.


“미키, 고등학교에서 생물 선생님을 하고 있는 거야. 아직 새내기지만.”

“......?”

“아하하, 치하야짱, 놀랐구나. 나도 처음에는 엄청 놀랐어.”

“뭔가 오랜만이네, 이런 반응... 미키, 그렇게 선생님이랑 안 어울리는 거야...?”


  아마미 씨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미키는 실망한 표정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는 조금 당황한 채로 미키를 달랬다.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조금 놀랐어.”


  사실 많이 놀랐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호시이 미키가 교사라니. 물론 내가 아는 미키는 중학생 때의 미키니까, 그 후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많이 놀랐다.


“으음- 잘 생각해보면, 치하야 씨는 미키를 마지막으로 본 게 중학생 때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미키는 그러더니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순간 미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방금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미키, 모처럼 치하야 씨랑 만나게 됐으니까,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

“...?”

“?”


  나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미키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 건 아마미 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미키는, 아니, 나는... 치하야 씨처럼 되고 싶었던 것 같아.”

“...에?”

“...”


  아마미 씨는 더욱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미키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키는 목이 타는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이돌을 그만둔 뒤로, 그러니까... 765프로가 그렇게 된 뒤로 생각해봤거든. 나는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하고.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아. 그런 생각을 해본 건. 전에는 항상 그때마다 하고 싶어지는 걸 했을 뿐이니까.”


  마이페이스. 내 기억 속 미키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마이페이스 그 자체였다. 레슨도 연습도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열심이었고, 그랬기에 다음 행동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아이였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진지하게 생각해봤어. 타카기 사장님도 코토리 씨도 항상 열심히 뭔가를 해줬고, 치하야 씨도, 아즈사 씨도, 하루카도 항상 열심히 했는데, 왜 우리는 결국 안 됐던 걸까, 하고. 그리고...”


  미키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3초 정도 뒤에 이야기를 계속했다.


“항상 마빡이라고 놀리던 이오리는, 결국 필사적으로 길을 찾아서 성공했으니까.”

“...”


  미나세 양. 톱 아이돌을 거쳐 지금은 누구나 아는 배우가 되어 있는 그녀는, 우리와 달리 결국 그 업계에 남아 정점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나로서는 미나세 양의 자세한 사정을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미키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생각해본 거야. 그렇게 열심히 하던 사람들도 안 됐고, 성공한 이오리는 저렇게까지 필사적인데, 나는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하고. 물론 부모님은 항상 내가 좋으면 된다고 해 주시기는 했지만.”

“그래서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한 거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마미 씨가 물었다.


“아, 맞아. 이야기가 좀 길게 새 버렸네. 헤헤. 아무튼, 난생처음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까 이것도 저것도 잘 모르겠어서, 그냥 멋있는 어른이 되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결론이 나왔거든.”

“고민은 진지하다가 결론은 갑자기 미키다워졌네...”

“하루카, 그런 태클은 안 걸어도 괜찮은 거야!”

“ㅁ, 미안!”


  두 사람은 그러더니 가볍게 웃었다. 나도 분위기를 따라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그래서 미키가 처음에 나처럼 되고 싶었다고 했던 건 대체 무슨 이야기였을까.


“저기, 미키. 그래서 나처럼 되고 싶었다는 건...”

“아, 맞아맞아! 그래서 멋있는 어른은 뭘까~ 하고 떠올려봤더니, 항상 이것저것 가르쳐주던 치하야 씨가 생각났던 거야. 가끔은 일부러 귀찮게 한 적도 있는데, 치하야 씨는 그때마다 엄청 진지하고 상냥하게 가르쳐 줬으니까.”

“...”


  그때의 나는 노래에 대한 부분이었다면 분명 진지했겠지만, 상냥하게 가르쳤다, 라... 흐릿해진 추억에 의한 보정이 아닐까.

  아무튼, 미키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면 나도 치하야 씨처럼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가 이미 교사를 하고 있었으니까, 어느 정도는 언니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맞아, 나오 언니, 선생님이었다고 했지.”

“...”


  아마미 씨가 이야기한 ‘나오 언니’는 미키의 친언니였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얼굴도 잘 떠오르지 않고, 이름이 나오였다는 것도 방금 아마미 씨의 말로 기억해낸 거지만.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미키의 기억 속의 내가, 내가 알고 있는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미키, 오리라던가, 새 같은 동물을 구경하는 건 좋아하니까. 그러면 과목은 생물이 좋을까나~ 하고 공부했던 거야. 정작 교과 과정에는 새 이야기 같은 건 조금도 나오지 않아서 실망하기는 했지만. 아, 철새 이야기가 두 줄 나오는 정도?”

“아하하, 그치그치! 학교에서 배우는 건 왠지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들만 잔뜩 있고!”

“그래도 나름 재미있는 것 같아. 고등학생들도 엄청 열심히 들어주고~”


  미키와 아마미 씨는 서로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나는 그런 둘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계기가 어떻게 되었던, 미키가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면 된 거겠지만... 그녀가 동경하고 닮고 싶어 하는 존재가 나였다는 걸 내 스스로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


“맞아, 하루카는 요즘 어때? 그 후로도 밴드는 계속 해?”

“응. 미키가 와준 공연 이후로 무대에 설 기회가 더 많아졌거든!”

“밴드...?”


  나는 또 다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아마미 씨를 바라보았다. 아마미 씨는 웃으며 차근차근 지금까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인턴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노래를 할 기회가 생겨서 그대로 인디밴드에 가입해버렸다고 한다. 지금은 아르바이트와 밴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아직은 무명이지만, 요즘 유O브에 올린 음원들이 나름 조회 수가 높게 나오고 있어서, 미니앨범도 준비하고 있거든!”

“하루카, 앨범이 나오면 하나 슬쩍 받아 볼 수 있는 거야?”

“우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역시 발주를 넣는 거라서 단가가...”

“아핫, 농담이야, 농담! 꼭 사 줄 테니까, 나오면 알려 줘.”

“고마워, 미키!”


  그랬구나. 아마미 씨는... 아직 음악을 놓지 않고 있는 거구나. 전부 놓아버린 나와는 다르게, 도망쳐버린 나와는 다르게... 진심으로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는 건, 저런 거겠지.


“치하야짱은 어떻게 지내?”

“응? 아, 나는 신주쿠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어.”

“헤에, 대기업! 역시 치하야짱! 대단해!”

“아니, 그 정도는...”

“오피스 레이디구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정작 내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차마 그 후로 모든 걸 끊어내고 지내왔다는 걸 대놓고 이야기하기는 좀 그랬으니까. 10년 만에 만난 이 아이들한테, 그런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 후로도 피로연은 계속됐다. 우리는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결혼식에 참석해본 것이 처음이라 행사를 하나하나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왠지 다채로운 축제에 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는 느껴지는 것 같았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우리는 아즈사 씨께 간단한 인사를 한 뒤 함께 식장을 빠져 나왔다. 저녁 시간을 넘긴 뒤라 이미 해는 떨어진 뒤였다.


“치하야 씨,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어! 하루카도, 나중에 연락할게!”

“응! 연락해, 미키!”

“나도 반가웠어, 미키. 조심해서 들어가.”


  역 앞에서 미키를 먼저 보낸 뒤, 아마미 씨와 나는 다음 버스 정류장까지 걸음을 옮겼다. 아마미 씨는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있지, 치하야짱.”

“응?”

“미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사실 나도 치하야짱처럼 되고 싶었어.”

“...뭐?”

“예전의 치하야짱은 엄청 멋있었으니까. 모든 일에 성실하고 진지하고, 노래도 엄~청 잘 하고. 자연스럽게 동경하게 된달까~ 물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해. 사실 나도 회사에서 일을 해보기는 했지만, 역시 적성에 좀 안 맞는다고나 할까... 뭐가 됐던 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건 멋있으니까. 나도 조금은...”

“...그건 안 돼.”

“에?”


  나는 아마미 씨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마미 씨는 피로연장에서 미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도 놀란 눈치였다.


“그건 안 돼. 아마미 씨. 나처럼 되는 건 절대...”

“치하야짱...?”

“나는 도망쳤을 뿐이야. 나는 미키가 생각하는, 아마미 씨가 생각하는 그런 멋진 사람이 아니야. 지금도... 도망치고 도망쳐서 다다른 곳이 여기인 거야. 노래로부터... 잊고 싶은 기억으로부터 도망친 거야. 나는 아마미 씨와는 달라. 좋아하는 노래를 어떻게든 지켜오고 있는 아마미 씨랑은, 전혀 다르다고. 그러니까 제발...”

“...”

“나처럼 되지 말아줘. 그때의 아마미 씨처럼, 지금의 아마미 씨처럼 있어 줘. 제발... 부탁이니...까....”

“ㅊ, 치하야짱?! 울 정도의 일은 아니니까?!”


  아마미 씨는 흐느끼는 나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나조차도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10년 만에 만난 사람한테, 마지막으로 그렇게 헤어진 사람한테, 나는 또 무슨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성과 달리 몸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나를 위로하며 토닥이는 아마미 씨의 품에 안겨 계속 흐느꼈다. 스스로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스스로를 진정시키기까지는 5분 정도가 걸렸다. 아마미 씨는 함께 벤치에 앉은 채 나를 계속 토닥여주고 있었다. 나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아마미 씨. 아까는...”

“괜찮아. 치하야짱.”


  아마미 씨는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괜찮다는 대답을 해 주었다. 내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자, 아마미 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사실 치하야짱의 자세한 사정은 몰라. 1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그래도...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해. 치하야짱은 누가 뭐래도 나한테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니까. 미키한테도 그럴 거고.”

“아마미 씨...”

“나도 도망쳐본 적도 많아. 나는 아무리 해도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천재적인 사람들은 따로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거든. 그렇지만 지금의 밴드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다시 깨달았어. 나는 나여서 다행이다, 라고.”

“나여서, 다행이다...?”

“응. 나보다 훨씬 노래를 잘 부르고, 나보다 훨씬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나는 나니까. 내가 부르는 노래는, 나의 노래니까.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거니까. 치하야짱도,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

“ㅁ, 미안! 갑자기 조언 같은 게 되어버렸네, 내가 뭐라고, 아하하...”


  나는 멋쩍은 듯이 웃어 보이는 아마미 씨에게 말했다.


“고마워. 아마미 씨.”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


  그 후로 10분 정도 더 걸은 뒤에야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마미 씨는 먼저 온 버스에 올라타면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 언제든지 연락해, 치하야짱!”

“응. 고마워. 나도 반가웠어, 아마미 씨.”


  그렇게 문이 닫히고, 나는 멀어지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나의, 노래...”


  미키, 아니, 호시이 선생님은 웃는 얼굴로 교단에 서고 있다. 인디밴드의 보컬리스트 아마미 씨는 무대 위에서 자신의 노래를 당당하게 불러 보이고 있다. 

  나의 노래는 어디로 간 걸까. 내가 스스로 잘라 내고, 내가 스스로 밀어낸 나의 노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다시 찾을 수 있는 걸까. 다시 그때처럼... 노래를 마주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처음부터...

  나는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던 걸까.

1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