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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사해서 슬픈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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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2, 2021 06:56에 작성됨.

로코와 미사키씨가 디자인하고 입안한 새 의상들의 제작이 모두 끝났다. 765 올스타즈 멤버 중에선 유키호와 야요이에게, 시어터 멤버 중에선 엘레나와 레이카와 에밀리에게 새 의상이 생겼다.


"수고하셨습니다."


"헤헤. 로코쨩이 도와줘서 일찍 끝낼 수 있었어요."


"로코. 수고했어."


"로코는 노 프라블럼이에요!"


미사키씨는 언제나 모든 일을 열심히 했다. 그래. 모든 일 말이다.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하고 있었다. 옷 만드는 일까지도. 765프로는 거대한 제국은 아니라도 꽤 저력이 있는 곳이다. 개국공신은 나와 코토리씨와 사장님이라고 해도 지금의 저력을 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은 미사키씨일 것이다.


물론 가장 공이 큰 건 역시 우리 아이돌들이지만. 옷 만든다고 애쓴 로코도 당연히 여기 포함된다.


감상은 뒤로 제쳐두고 옷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의상이야 늘 그렇듯이 예뻤다. 언제는 안 예뻤겠냐만은, 예쁘다고 넘기긴 했어도 미사키씨가 만든 의상하고 로코가 만든 의상은 차이가 있었다.


미사키씨의 의상은 옷이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단 입은 아이돌을 돋보이게 하는 느낌이다. 그 아이돌에게 맞는 테마를 바탕으로 이런 의상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하고 만들어낸 의상이다.


로코의 옷에는 어딘가에 꼭 튀어나온 부분, 개성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리지는 못할 부분이 꼭 있었다. 타협하지 않고 자신을 집어넣은 의상. 난 볼때마다 알 수 있었다. 이 옷은 로코가 디자인했구나 하고.


이번엔 유키호의 옷이 그랬다. 찻잎을 본딴 녹색의 프릴과 그 위에 얹혀진 꽃잎 장식이 확실히 눈에 띄었고 가장 특색있는 부분은 역시 머리 장식이었다. 차이나 드레스를 모티브로 한 옷인만큼 머리장식에도 신경을 쓴 거겠지.


로코는 이렇게 종종 머리장식에 신경을 쓸 때가 있었다. 기사를 모티브로 한 안나의 의상도 투구를 같이 한세트로 디자인해서 안나가 투구까지 같이 입고 무대에 오르곤 했었다.


의상을 다 확인하고 나서 난 새 의상을 모두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직접 입은 모습도 보고, 거울 앞에서 자세도 취하는 것도 보고, 불편한 곳이 없나 확인도 해보고. 언제부턴가인진 모르겠지만 새 의상이 도착하면 다들 블로그에 새 의상을 입은 채로 의상과 관련된 글을 올리고는 했다.


그렇게 의상실에서 휴게실로 돌아오니 로코가 책상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로코는 사무소에서 늘 로코아트를 만들거나 이것저것을 만지느라 스마트폰을 평소에는 그렇게 잘 보지 않았다. 오늘은 아니었지만. 로코는 책상에 앉은 채로 스마트폰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블로그를 둘러보고 있는 걸까? 다들 이번 의상을 마음에 들어한 것 같아서 마음이 편했던 걸까.


"로코. 뭐 봐?"


"아, 프로듀서! 그게... 그, 딱히 임포턴트한 건 아니에요!"


"혹시 나도 봐도 되는 거야?"


"아! 예스에요! 여기요!"


로코는 핸드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로코가 보고 있던 것은 다른 멤버들의 블로그가 아닌 한 의상의 도안이었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의상. 누구를 위한 것일까.


역시 로코라고 해야할지. 도안임에도 마치 완성품의 사진을 찍은 것처럼 색깔과 주름 하나하나까지 자세하게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이건 누구 옷이야?"


"로코의 의상이에요! 전에 젤리팝 빈에서 유닛 액티비티를 하면서 옷을 디자인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로코의 의상을 로코가 셀프로 디자인하려고 했어요!"


로코는 늘 기특했다. 자기 옷은 자기가 만든다라.


젤리팝 빈 활동은 로코에게 있어서도 모험이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도 모험이었다. 로코가 유닛 활동을 총괄하는 것은 로코가 원해서 일어난 거였지만 나는 로코가 힘들어하는 것을 볼때마다 나의 일을 담당 아이돌에게 떠넘기기나 하는 무책임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사실은 그런 무책임한 어른이 맞겠지. 결국 떠넘긴건 사실이니까. 그래도 로코는 젤리팝 빈 활동을 하면서 힘들어도 즐거워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로코의 표정은 웃고 있었어도, 눈빛은 그렇지 않았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 눈빛은 로코의 마음속 불꽃이 식어버렸을 때 보이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코가 최대한 트라이했지만, 역시 안 되는건 안 되더라고요."


"안 되는건 안 된다니?"


"프로듀서. 이번 의상의 총 갯수는 파이브잖아요? 로코의 플랜으론 사실 식스였어요."


로코는 그렇게 말하면서 보라는 듯 씨익 웃어보였다.


"그러면 여섯 개를 다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고 싶었는데... 안 되더라고요. 커런트의 서컴스탠스가 베리 리미티드했어서, 로코가 원하는 대로 디자인을 하려면 한 명의 의상은 익스클루드 해야 했어요."


"...그래서 자기 의상은 안 만들고 다른 모두의 의상은 다 만든거야?"


"예스에요. 로코는 로코의 의상만큼은 컴프로마이즈 하고 싶지 않았어요. 차라리 지금 만들지 못하는 한이 있어도 넥스트 타임이 있으니까요."


"......"


진심일까.


로코는 착한 아이다. 하지만, 그 의상으로 에술을 향한 자신만의 의지도 강한 아이다. 평소대로의 로코였다면 의상을 만드는데 제약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단념하지는 않았을 텐데.


"미사키씨한테 진짜로 안 되는 거냐고 물어보지 그랬어. 아니, 나한테 말했으면 내가 어떻게든 했을 텐데."


"그러려고 했어요. 그런데... 있잖아요. 로코는 프로듀서랑 리츠코가 이야기하는걸 전에 들었어요. 사무소의 파이낸셜 서컴스탠스 말이에요."


"사무소 재정?"


...내 리츠코랑 사무소 재정 이야기를 했던가. 했었다면 이번에도 돈 나갈 일이 많다고. 징징댔던 거겠지. 돈 나갈일이 참 많다고. 내가 최대한 물 대신 커피만 마시고 살긴 하지만, 이대로 가도 괜찮을지 장담을 못하겠다고. 리츠코랑 이야기할때의 레퍼토리는 늘 비슷했다.


돈. 돈 아껴서 어디에 쓴다고. 청소부 고용할 돈 아끼겠다고 아이돌한테 청소까지 시켜놓고. 그래놓고 정작 돈을 써야할 때는 안 쓰고 있다니. 난 언제부터 그딴 인간이 되어 있었던 걸까? 


"로코는 프로듀서와 시어터에게 무리가 될텐데도 로코의 디자이어만 추구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로코..."


"아, 그! 프로듀서! 로코의 일로 너무 그렇게 루즈 하트 하지 말아요! 디자인은 지금 이렇게 멀쩡히 있고... 또..."


"미안해."


안 그래도 되는데. 안 그래도 되는데... 어쨰서. 


내가 좀 더 평소에 잘 했었더라면. 내가 평소에 좀 더 일을 잘했더라면 재정난이 오지 않았을텐데. 내가 평소에 로코에게 신경을 더 써줬더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의상을 디자인할 수 있게 해줬을텐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로코는 노 프라블럼이에요."


"안 괜찮아."


로코는 괜찮다고 했지만.... 난 안 괜찮다. 괜찮다고 넘기고 싶지도 않다.


하루카와 치하야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가며, 코토리씨와 함께 새벽 하늘을 봐가면서 일을 하던 내가 원하던게 이런 건가? 결국 로코가 자기 의상도 마음껏 디자인하지 못하게 하는 것? 나는 언제부터 타협만을 일삼다가 내가 품은 아이의 꿈도 이뤄주지 못할 인간이 되었나?


"다음에 이런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


"네에..."


나는 더이상 로코를 바라볼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듯이 휴게실을 나와서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로 가서 이런저런 숫자들을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내가 로코보다 아끼는 숫자들을, 로코의 기쁨보다도 애지중지하는 한 줌도 안 되는 숫자들을 바라봤다. 나 자신이 이렇게나 가소롭게 느껴지는 게 얼마만일까.


잠시 쉴까 해서 블로그를 이번 의상은 일제히 팬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로코의 의상은 거기 없었다.


로코는 그럼에도 날 볼 땐 계속 웃고 있었다.


다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난 더 이상 사무실에도 있을 수 없어서 어디든 뛰쳐나가야만 했다. 도망치듯이 오늘은 피곤하니 먼저 퇴근하겠다고 통보만 한 뒤 다른건 다 제쳐두고 집으로 먼저 갔다.


하늘은 지금 이런 내 기분을 참 잘도 알아줘서인지 거무죽죽하게 구름이 끼어 있었다. 이대로 비가 와서 날 씻어주면 하고 난 잠시 바깥에 서 있었다. 바깥에 서 있던 5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1시간이 되었다.


비는 오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거무죽죽하게 나란히 하늘을 덧씌운 구름이 해가 질 때까지 계속 있을 뿐이었다.


거무죽죽하게. 나같은 건 울지도 말고 웃지도 말고 그냥 저렇게 먹구름 낀 채로만 있으라는 거겠지. 거무죽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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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괴롭히던 중간고사는 드디어 끝났고 전 폭사했습니다.


이 글은 폭사해서 슬픈 글입니다.


내가 돈이 더 있었으면 로코에게 닿도록 천장을 찍었겠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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