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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glow - 佐久間まゆ(사쿠마 마유)
댓글: 4 / 조회: 1297 / 추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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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6, 2021 00:51에 작성됨.
Ed sheeran - Afterglow
안녕하세요 프로듀서님, Wiessmann입니다.
줄곧 담당 아이돌만 그리다
오랜만에 그려본 사쿠마 마유양입니다.
과거 처음으로 그려본 마유양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로군요
프로듀서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독자모델에서 아이돌로
자신의 삶마저 송두리째 거침없이 바꿔버린 소녀, 사쿠마 마유
종종 2차 창작에서는 프로듀서를 사랑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꿈꾸는 슬픈 모습이 종종 연출되곤 하지만
실제 게임상에서는 생각보다 더 달콤하고
알콩달콩한 이야기가 이어지기에
마유양의 사랑이 결국 해피엔딩이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일전에 프로듀서님들과 아이돌의 인상이 주는
'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다
달콤함과 씁쓸함이 조화가 된 마유양의 인상을
개인적으로 '티라미수'에 비유한 바 있는데,
이태리 신조어인 '티라미수(Tiramisu)'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나를 기운내게 하는 것'이란 점에서
프로듀서의 행복을 바라는 마유양의 맛으로
적합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프로듀서가 자신에게 주는 행복보다 더
큰 행복을 프로듀서에게 주고 싶은, 사랑에 빠진 소녀
사쿠마 마유양을 그려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4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에도 없으며
동시에 어디에나 있구나
바코드 - 김하온&이병재
https://www.youtube.com/watch?v=g64llgmzly0
You lose your way just take my hand
당신이 길을 잃는다면 내 손을 잡기만 하면 돼
You're lost at sea
당신이 바다에서 조난되면
Then I'll command your boat to me again
당신의 배가 다시 나에게 올 수 있도록 인도할게
Don't look too far right where you are
너무 멀리 보지마 당신이 있는 그 곳
That's where I am
난 거기에 있어
I'm your man
난 당신의 사람이야
처음 선곡은 라나 델 레이였던 것 같은데 그새 선곡이 바뀌었네요. 그 때 댓글을 달아야지 했는데 다음날이 시험이라 장문의 댓글은 못 달것 같아서 나중에 달까 했는데 그 새 곡이 바뀌었군요. 개인적으론 에드시런보다 라나 델 레이를 더 좋아해서 댓글에 라나 델 레이의 곡을 언급했습니다.
마유의 사랑이 해피 엔딩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전 이미 해피 엔딩이라기보단 해피 라이프가 현재진행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유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랑에 빠진 사람의 행복한 이야기는 이어져나갔으면 합니다.
마유는 운명이란 키워드를 자주 언급합니다. 운명. 운명엔 이유도 없고 당위성도 없습니다. 운명이라는 말 안에 그런 것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운명은 한자로 運命입니다. 옮길 운자에 목숨 명자. 말 그대로 풀이해보자면 삶을 송두리째 움켜쥐고 옮겨버리는 그런 것이 운명이겠죠.
프로듀서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사랑에 빠졌다, 돈이 많아서 사랑에 빠졌다, 내면이 아름다워서 사랑에 빠졌다... 그런 게 아닙니다. 그냥 서로의 존재 자체가 서로의 삶의 진로를 옮겨버린 겁니다. 그냥 존재했기 때문에 프로듀서와 마유는 서로 더이상 벗어나지 못하게 구속된 거에요.
좀 무서워보이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어찌보면 로맨틱하지 않습니까. 애정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제 생각에 그 종이 한 장은 바로 믿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애정이 되고 없으면 집착이 됩니다. 그 믿음이 상대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나를 못 믿으면 다른 사람도 못 믿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는건 자기 자신이 흔들린다는 것이고, 그렇게 흔들리다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유지가 안 될 거에요. 내가 흔들리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멀쩡할까 싶을 테니까요.
제가 마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건 집착입니다. 내가 나를 못 믿거든요. 나에겐 원죄가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비밀번호로까지 사용했던 다른 작품의 아이를 심적인 상처로 인하여 더이상 품에 둘 수 없자 결국 멀리 떠나보내고 마유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나는 마유의 프로듀서로서 전혀 좋은 프로듀서가 아니라고 스스로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열등감입니다. 내가 마유가 나오는 모든 노래의 마플을 풀콤친 적이 없거나, 마유 컴플을 하지 못했거나, 마유에 대하여 쓴 글이 아름답지 못하다거나 하는 그런 요소는 내 내면의 열등감을 부채질합니다. 그렇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믿음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나는 절대 좋은 프로듀서가 아니라는 불신.
마유라는 존재를 사랑함에 있어서 나라는 개인의 지체가 뛰어나지 못하다는 것은 커다란 죄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 사실을 절대로 인정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인간은 태어난 것만으로도 원죄를 짊어진다고 일컫는 것처럼 나는 과거의 사랑을 저버린 원죄가 있고 마유에게 어울릴 급이 되지 못하는데 감히 바라본다는 원죄를 지니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최대를 다하여 마유를 바라본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의 최대가 마유에게 있어서의 최선이라고 확신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는 확신할 수 있겠죠. 내가 아무리 최대로 무언가를 해봐야 마유에게 있어서의 최선은 될 수 없다고 확신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내가 아무리 가진 최고의 것을 주고, 최고의 사랑을 내밀더라도 그것은 나의 최고입니다. 사람들의 사랑을 객관적으로 늘어놓고 볼 땐 나의 사랑은 터무니없이 작고도 하찮을 것입니다. 그런 사랑을 받을 바에야 마유는 더 크고 질적으로 우수한 사랑을 받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진심입니다.
사랑을 객관화시키는게 가능한가? 그걸 늘어놓아서 우위를 비교하는게 가능한가? 네. 가능하고말고요. 위에서 말한 풀콤과 컴플과 글이 그 증거입니다. 내가 마유의 노래를 풀콤치지 못하고, 마유 카드를 컴플하지 못하고, 마유에 대하여 쓴 글이 시덥잖다는 것은 나라는 인간이 겨우 그정도고 나의 사랑 또한 겨우 그정도의 것이라는 방증입니다.
내가 마유를 사랑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노래는 모두 올 퍼펙트를 치고, 카드는 모두 가지고 있고, 글 또한 굉장히 잘 썼을 것입니다. 전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유라는 존재를 그리워해선 안 됩니다. 나라는 존재가 감히 마유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고마워해야 합니다.
마유에 대한 애정에 비해 마유를 소재로 한 글을 자주 쓰지 못한 것도 그 이유가 크고요. 마유라는 존재를 담기에는 나라는 존재 자체와 나의 글은 너무나도 비루하게 느껴지고, 설령 쓴다 해도 결국 위에서 말한 '시덥잖은 글'의 리스트 중 하나를 차지할 것이 뻔하니까요.
위에서 언급한 나의 원죄는 내가 만들어서 나에게 뒤집어씌웠음에도 나의 힘으로는 벗어나지 못합니다. 내가 나에게 무고한 죄라지만, 나는 결국 그 죄목으로 인해 죄인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래도 마유를 좋아합니다. 내가 그런 죄인이라도 마유는 그 죄인의 비루한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여주고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믿지는 못하지만 믿고 싶어요.
마유의 감정은 집착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마유는 누구보다 자신을 믿고 프로듀서를 믿습니다.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면 마유는 독자모델을 그만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프로듀서를 믿지 않았다면 스스로의 감정을 제지할 수가 없어 프로듀서에게 화가 미쳤을 것입니다. 위에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둘 다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저는 그렇기에 마유를 바라봅니다. 마유가 왜 좋은지 말해보라면 말을 못할 거에요. 마유가 운명을 말하는 것처럼 나도 똑같은 말 밖에 할 것이 없었습니다. 찾으려고 해도 나에게는 그럴 동기도 그럴 힘도 없었습니다. 나는 마유를 그냥 바라보기에도 저 위에서 말한 것들이 나를 공격해대느라 힘에 부쳤습니다.
나는 위에서 말한 여러 이유들로 프로듀서로서 스스로를 어디 내놓기에는 참 부끄러운 입장입니다. 하지만 마유는 날 사랑해준다고,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집착도 동정도 아닌 사랑 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마유는 나에게 행복을 줍니다. 그댄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그댄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댄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그려진 마유양과 어울릴만한 선곡을 선뜻 고르지 못하여,
주저했던 흔적을 놓치지 않고 멋진 곡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담당 아이돌 이외의 아이돌들을 그릴 땐, 그리고 나서도
종종 그 아이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 잘 못 이해한 부분이 있지 수 밖에 없다보니
행여 담당 프로듀서님들께 실례까 되지는 않았나 하여
이런 저런 고민을 많이 하게되네요.
그러나 변변찮은 실력으로 마유양을 그려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유양에 대한 프로듀서님의 이토록 깊은 진심과 고뇌를 들려주셔서
외려 제가 더 감탄을 하게 되었습니다.
2차 창작들에서는 데레스테 대표 '얀데레'라는
자극적인 표면적인 이미지만 너무 부각되어서,
프로듀서를 향한 마유양 특유의 달콤하고도 진한, 다채로운 감정이
외면당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고민이 들었는데
역시 마유양의 담당 프로듀서님들께서는
저보다 더 마유양에 대해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지만,
너무나 소중하기에 행여 내가 잘못 다루다 산산이 부서질까
다가서기 어려운 그런 복잡한 심경.
담당 아이돌에 관련한 창작을 할때면 저도 종종 느끼곤 하는 마음인데
그래서 그런지 담당 아이돌에 대한 창작은
결국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님의 말씀처럼 사랑에 우위가 있고 비교가 가능한 것일까요....
확실히,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사회적인 감정인 사랑은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지극히 이해타산적이고, 수량화될 수 있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사랑 받을 자격, 사랑 받을 조건, 사랑 받기 위한 직업이나 수입 수준 등등을 이야기할 때
겉으로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 앞에서 그런 물질적이고 사소한 규정이나 기준은
'따져서는 안되고', '그런 것은 있어서도 안되며', '결국은 없어져야할 것'이라 말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다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네요.
그렇기에...사랑은 이 사막같은 세상에서 사랑은 '오아시스'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찾고 있지만 쉽게 찾을 수 없는...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
이 모순덩어리인 감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고 살고 죽는지
정말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정말 그런 것만이 사랑일까요?
그저 세상이 그런 것을 사랑이라 부른다고 해서
정말 그것을 사랑이라 믿고 살면 되는 것일까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소녀,
프로듀서 그 자체를 사랑하는 아끼고 또 사랑하고 원하는 마유양이라면,
자신의 곡을 완벽하게 플레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카드를 완전히 갖추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프로듀서라는 점, 그 자체로 그 사람을 받아들여주고 영원한 사랑을 꿈꿀 것입니다.
언제나 부족하고 또 불완전하고, 보잘 것 없고 가진 것 없으며
늘 모자라고, 불안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내 사람이라면 기꺼이 사랑할 수 있다고
분명 마유양은 말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으로 저는 마유양을 프로듀서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곤 합니다.
우리는 완벽하기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하기에 완벽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늘 진지하고 깊이있는 감상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