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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사라기 치하야 「이상한 꿈을 보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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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8, 2021 22:28에 작성됨.

-0-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과장님!”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과장님.”


  6시를 조금 넘긴 금요일 저녁, 기획부로 송부할 문서 정리를 끝마친 나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점 3월이 지나가면서 회계연도 상 올해도 끝나가기 때문에, 부하직원들은 잔업으로 아직 바쁜 것 같았다.

  전에는 최대한 빠르게 일을 처리해두고 싶은 마음에 자진해서 야근을 했던 적도 많았다. 기한이 한참 남은 서류나 통계자료용 틀 같은 걸 미리 만들어두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거의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과장이 되고 나서는 그냥 그 날 내려온 업무만 빠르게 처리해놓고 정시 퇴근을 지키고 있다. 신입사원이던 시절에 우리 부서에 계셨던 과장님도 나처럼 늦은 시간까지 남아서 업무를 보던 분이었다. 어차피 야근이 일상이었던 나한테는 별로 상관없었지만, 다른 사원들에게는 윗사람이 남아있는데 먼저 퇴근하는 게 부담이었던 것 같았다. 입사동기 중 한 명은 딱히 할 일도 없는데 매일 9시까지 남아있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며 2달 정도 지나서 퇴사했을 정도니까. 그걸 기억하고 있던 나는 괜히 나 때문에 부하직원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늦어도 7시 전에는 자리를 비우고 있다.


“아, 키사라기 과장님! 잠시 괜찮으실까요?”

“네. 요시노 씨. 무슨 일이신가요?”


  사무실 층을 빠져나가려던 나를 붙잡은 건 인사과 여직원인 요시노 씨였다. 나보다 몇 년 일찍 입사했고, 나이도 나보다 한참 위인 것 같았지만 항상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서 나를 대했다. 신입 때 별로 아는 게 없었던 나에게 인사과의 사원 교육 프로그램을 이것저것 추천해주시기도 했고, 승진에도 도움을 주셨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아무튼, 요시노 씨는 조금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 다음 주쯤에 신입을 배치해야 되는데, 다른 부서들이 다 상황이 마땅치가 않아서요. 수습 기간을 회계3팀에서 해도 괜찮을까요?”

“신입사원 수습인가요?”

“네. 3팀이 요즘 결산 업무 때문에 바쁘신 건 알지만, 그... 다른 팀이나 영업부 쪽은 칼바람이 부는 중이라서...”

“그런가요.”


  보통 신입 수습은 우리 팀에서 맡지 않는다. 우리 팀은 재무제표나 결산 결과를 최종적으로 점검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서 신입 수습에 알맞은 환경은 아니었다. 그런 특성 때문에 다른 팀에서 근무하던 인원들이 업무에 익숙해지면 옮겨오는 곳이기도 했고.


“저희는 크게 상관없는데, 괜찮을까요? 아무래도 기초를 배우기에 좋은 부서는 아닌 것 같아서요.”

“저도 사실 그걸 걱정하긴 했는데, 그래도 키사라기 과장님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네? 그건 무슨 뜻이죠?”

“모르는 척 하시기는. 회계부의 에이스잖아요. 옆에서 보고 있으면 분명 배울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


  회계부의 에이스라. 그런 얘기는 특별히 들어본 적 없는데.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랑 업무 외에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남자 직원들이 내 일처리가 깔끔하다는 소문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게 기억났다. 능력에 대해서 호평 받는 건 싫지 않지만, 직무상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그렇게까지 주목을 받을 일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도 하지 않는 게 문제 아닐까.

  내가 한참동안 말을 하지 않자, 요시노 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역시 곤란하시면 꼭 떠맡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기획부나 마케팅부 쪽에 수소문하면 적당한 자리는 찾을 수 있으니까요.”

“아뇨, 곤란한 건 아니에요. 그러면, 말씀하신 신입 사원은 다음 주부터 출근하는 건가요?”

“네. 월요일부터 회계3팀으로 출근하라고 이야기해놓을 예정이에요. 괜찮으실까요?”

“괜찮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키사라기 과장님! 역시 믿고 기댈 곳은 과장님밖에 없네요!”

“네, 그럼 전 이만...”

“네! 좋은 주말 되세요!”


  요시노 씨와의 대화를 마친 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 회사 건물을 빠져 나왔다. 곧 있으면 4월이기는 했지만, 해가 떨어지면서 저녁 공기도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전철역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요시노 씨가 이야기했던 신입 사원 수습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물론 그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처럼 도저히 여유가 없을 때에는 우리 팀으로 신입 사원들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사실 나도 그런 경우였고.

  그때의 회계3팀은 새롭게 구성된 지 얼마 안 된 상황이라 인력난을 겪고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빠르게 승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분명 그 과정에서는 인턴 기간부터 나를 봐 왔던 요시노 씨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정작 요시노 씨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아무튼, 그 후로도 종종 신입 사원들이 우리 팀으로 배치되어왔지만, 이번처럼 내가 직접적으로 수습사원을 교육해야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물론 일대일로 교육을 담당하는 건 실무자 중 한 명이겠지만, 결국 내 팀에 들어온 신입이니까, 나도 어느 정도는 관여하게 되겠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학창 시절에 교실 안을 둘러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공부를 가르쳐주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딱히 누군가와 말을 섞는 일이 없었던 나는 그런 경험도 거의 없었다. 무언가를 가르쳐본 경험이라면... 그때가 마지막이려나.


‘치하야 씨, 이 부분, 음정을 잘 모르겠어~’

‘지난번에 가르쳐준 부분이잖아, 미키. 자, 여기는 끝에서 반음을 올리는 거야. 살짝 꺾어 올리는 느낌으로.’

‘흐음- 치하야 씨가 불러줬으면 좋겠는 거야!’

‘뭐?! 하아. 여기서는 조금 곤란하니까, 레슨실로 가자.’


  돌이켜보면 그때도 교습법이 훌륭하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호시이 미키라는 소녀가 나에게 동경의 시선을 보내주었을 뿐이었다. 나는 전차의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의 불빛을 보며, 나를 올려다보며 반짝이던 미키의 초록색 눈동자를 떠올렸다. 한참동안 떠올리지 않았던 기억이었고, 이젠 거의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어째서인지 미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났다. 지난번에도 그렇고, 나는 어째서 그 모든 걸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 조금은... 잊어버려도 좋은 것들일 텐데.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목욕을 마치고 앉아 TV를 틀었다. 딱히 즐겨 보는 방송이라던가 하는 건 없었지만, 오늘은 왠지 책을 읽는 것보다는 소리가 나는 무언가를 틀어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TV에서는 시사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사회 초년생들의 직장 생활 어쩌고 하는 제목이었는데, 정장 차림의 젊은 남성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토야마 히데노리 (24) / 증권사 근무 – 역시 첫 3개월이 고비인 것 같아요.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도 그렇고, 업무에 관해서도 배워야할 게 많으니까요. 대학생 때랑은 생활 패턴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고...]


  나는 저녁 대용의 칼로리 바 상자를 뜯으며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보았다. 수습기간... 나는 어땠더라.

  어떤 조직에 새롭게 들어간다는 것은 항상 모험에 가까웠다. 나는 그나마 기능적인 부분에 대한 적응이 빠른 편이었지만, 회사는 물론이고 고교에서의 진급 같은 것들도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을 유지했던 기억이 났다. 물론, 765프로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문득 회상을 멈추고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근 몇 주 동안 왜 갑자기 765프로에 대한 것들을 떠올리게 된 걸까. 당장 아즈사 씨의 결혼식이 내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회사에서의 이런저런 일들이 오랫동안 묵혀둔 기억을 자극했기 때문일까.

  그러다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오는 기분이 든 나는 칼로리 바 포장지를 정리하고 양치를 한 뒤에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아직 잠들기에는 한참 이른 시간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은 평소보다 피곤한 느낌이었다.

  어차피 일어나는 시간은 일정하니까. 오늘은 평소보다 몇 시간 일찍 자도 괜찮겠지.



-0.5-


  나는 어딘가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왼편으로 보이는 창문에는 ‘765’라는 숫자가 박스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안에서 보기에는 좌우가 반전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제야 나는 이곳이 765프로 사무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사무실 안쪽의 응접실 구역이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항상 이곳에서 잡지를 읽거나 옆방에서 음악을 듣고는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왜 갑자기 내가 이곳에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분명 이 사무실 건물은 오래 전에 비워졌을 텐데. 지금은 다른 회사의 사무실이 입주해있는 건물일 텐데. 나는 왜 지금 여기에, 765프로의 사무실 안에 앉아있는 걸까.

  응접실 소파에서 일어난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은 불이 꺼져 있어서 어두웠다. 나는 가만히 방 안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워서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잠깐 시간이 지나자 점점 어둠에 적응하면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누군가의 형체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의 형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그림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누구 있어요?”

“ㄴ, 누구시죠?!” 


  소녀의 형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급하게 내 쪽을 돌아보았다. 소녀의 목소리에서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나는 소녀를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죄송해요.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닌데... 일단, 불을 켤 테니까...”


  나는 벽면을 더듬으며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스위치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위치에 그대로 있었다. 

  전등을 켜자 방 안이 환해지면서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소녀는 나를 보며 당황했던 표정을 풀었다. 마치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런 소녀와 정 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프로듀서셨군요. 그러고 보니 오늘이 첫 미팅이라고 하셨죠.”

“프로듀서...?”


  그건 나였다.

  분명 나였다.

  나 자신, 키사라기 치하야가 무표정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특별히 경계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친근하지도 않은 무표정이었다.

  

“이야기는 응접실에서 하면 될까요, 프로듀서?”

“...”


  프로듀서?

  내가? 이 아이의?


  나에게는 프로듀서가 없었다. 업무에 관한 오퍼는 오토나시 씨나 타카기 사장님이 직접 관리했고, 스케줄이나 현장 업무는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프로듀서라는 사람이 정확히 뭘 하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프로듀서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어린 나 자신의.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내가 당황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내 앞의 키사라기 치하야는 조금 이상하다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프로듀서? 혹시 무슨 문제라도...?”

“ㅇ, 아니야. 그러면 일단 응접실에서 이야기하자.”


  나는 적당히 얼버무렸다. 애초에 미팅이 뭔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도 몰랐지만, 왠지 모르게 상황이 알아서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와 또 다른 키사라기 치하야는 내가 조금 전에 앉아 있었던 공간으로 돌아왔다. 나와 마주보고 앉은 그녀의 표정에서는 미미하지만 불만이 드러나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잠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이, 오히려 저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기... 괜찮은 건가요? 이렇게 한가하게 수다나 떨고 있어도.”

“뭐라고?”


  나는 순간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변하지 않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어서 일류 가수가 되려면, 이야기보다는 레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만.”

“...”


  일류 가수.

  뭐가 일류 가수야.

  그게 뭔지는 알고, 어떻게 되는 건지는 알고 떠들어대는 거야?

  너는... 네가 무슨 세계에 부딪히게 될지는 알고 떠들어대는 거야?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선, 그 전에 확인해야할 것들이 있으니까.”

“그런가요. 프로듀서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협조할게요. 필요한 건 얼마든지 질문해주세요.”

“일단...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자기소개라면 지난번에도...”

“그래도. 다시 정리하는 의미로.”


  애초에 지난번이고 뭐고 모르겠지만, 난 일단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네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야만 해.


“키사라기 치하야, 15살입니다. 고교 1학년이고, 취미, 특기는 노래입니다. 목표는... 일류 가수, 그 외에는 없습니다.”

“...”


  그녀의 대답은 내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대답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똑같은 대사를 정확히 똑같은 타이밍으로 재생할 수 있을 정도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눈앞의 소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걸 확인한 나는, 그때의 내가 절대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던 질문을 그녀에게 건넸다.


“넌... 왜 일류 가수를 희망하는 거지?”

“저한테는, 노래 말고는 그 무엇도 없으니까요.”


  어리석어.

  다음.


“일류 가수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있니?”

“실력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라면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체력을 위해서 아침 트레이닝도 스스로 하고 있고요. 재능은 부족할지 모르지만... 노래라면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어요.”


  실력? 노래?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 실력?

  어리석어. 편협해.

  

“노래로 그걸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네...?”


  소녀는 나의 말에 처음으로 동요했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는 의문이 담긴 눈빛이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내 말투는 점점 격앙되어 갔다.


“세상은 노래를 봐 주지 않아. 세상은 실력을 봐 주지 않는다고! 노래밖에 없으니까, 노래 하나로 일류 가수가 되겠다?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0-


  눈을 떴을 때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내 방의 천장이 보였다.


  또... 이상한 꿈을 본 거구나.


  침대에서 일어나 발을 디디고 서자 강한 두통이 느껴졌다. 나는 몇 초 정도 지끈거림에 저항하다 결국 다시 침대 위에 주저앉았다.

  대체 뭘까. 왜 갑자기 이런 꿈을 꾸는 걸까.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그러다 나는 휴대전화 화면에 떠오른 오늘의 일정을 보고 아즈사 씨의 결혼식이 오늘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그래. 자연스레 옛날 기억을 떠올리다보니 그랬던 걸 거야. 큰 의미는 없겠지.


  오늘도 빠짐없이 아침 운동을 하고 돌아온 뒤, 칼로리 바와 주스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시간에 맞춰 예식장으로 향했다. 특별히 차려입을 생각은 없었기에 평소와 똑같은 정장 차림에 간단한 브로치를 다는 걸로 마무리했다. 이 브로치도, 어머니가 아끼던 걸 물려받은 것뿐이지만. 


  결혼식장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사실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유치원생 시절에 부모님 손을 잡고 갔던 게 마지막이었으니까.

  홀 구역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은 저마다 대여섯 명의 무리를 지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신랑은 아즈사 씨가 다니는 회사에서 만난 사람이라고 했고,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하객들이 서로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당연히 그 누구도 알 리가 없는 나는 접수대에 축의금 봉투를 전달하고 적당한 곳에 서서 휴대전화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결국 식장에서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할 텐데,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야 자리를 잡기도 애매할 것 같아 약간 걱정이 되었다.

  그 때, 누군가가 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키사라기 씨, 아니신가요?”

“...?”


  아즈사 씨의 결혼식장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은 없을 텐데, 대체 누구일까. 저쪽 회사 사람이라면 거래처 때문에 마주친 적이 있을지도, 하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든 나는, 양쪽 옆머리에 단정한 실핀을 꽂은 여성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마미 씨?”


  그곳에는 그리운 얼굴의 아마미 씨가, 그때처럼 나를 환한 미소로 바라봐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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