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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츠바사 블룸 (翼 Bloom)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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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6, 2021 16:46에 작성됨.

6.


 여느 때처럼 서류 더미 속에서 바쁘고 정신없는 날이다. 좀처럼 지루함이 가시지 않아 여러 번 자리에서 일어나 스트레칭이라도 했을 터였다.


 이전의 미니 라이브가 끝난 뒤부터 근 2주간 밀려있던 여러 서류 작업 속에서 허우적대왔다. 지치는 것도 지치는 것이지만, 일상이 따분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업무가 사무 쪽으로 조금 치우쳐버리자, 자연스레 아이돌들의 레슨이나 공연 스케줄을 봐 주는 시간이 줄어들어 버린 것도 이 지루함에 한몫 더했을 것이다.


 오늘도 몇몇 아이돌들의 레슨을 참관하려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밀린 서류 더미가 산처럼 쌓여 있어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


 코토하나 츠무기한테는 한 소리 듣겠지만, 시즈카나 미라이는 이해해 줄 것이다. 아마도.


 걱정거리가 있다면, 이부키 츠바사가 보여주었던 자그마한 행동들이다. 별 일 아니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바닥에서 그래도 몇 년 굴러먹은 그는 직감적으로 불안함을 느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그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무 업무를 중단하고 레슨을 보러 가기에는 업무의 양이 너무 많다.


 그나마 아키즈키 리츠코가 업무를 일부 분담해주고 있다지만, 어디까지나 일부일 뿐이다. 프로듀서가 해왔던 업무를 모두 할 수는 없다.


 “......”


 그렇다고 에라 모르겠다 식으로 업무를 때려 치기에는 감사제 의상을 만드느라 하얗게 불태워 그로기 상태에 빠져버진 아오바 미사키에게 미안하고, 뭘 했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오토나시 코토리에게도 조금 미안한 감이 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서류 작업을 하는 신세에 처해 있던 것이다. 소파에서 편안히 낮잠을 즐기는 호시이 미키가 부럽다, 고 그는 투덜거렸다.


 “도와줄까?”


 그런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내려왔다.


 “아, 바바 씨.”


 “코노미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도와줄 거야.”


 “코노미 씨! 코노미 씨 정말 천사!”


 이 지옥 같은 사무 업무를 분담해준다는데 뭔들 못 할 리가 없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바바 코노미는 애초에 사무원 지망이었고, 나름 경력직 이직 신청이었다.


 즉, 자잘한 서류 업무 정도는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경력자다. 솔직히 말해서 어지간한 서류 처리는 오토나시 코토리는 물론이거니와 아오바 미사키, 혹은 아키즈키 리츠코보다도 잘할 것이다.


 물론 되도록 아이돌들에게 그의 업무를 분담시키려 하지 않았지만, 자존심을 내세우기에는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그는 바바 코노미, 날개 없는 천사의 앞에 넙죽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프로듀서의 모습에, 코노미는 피식 웃으며 작은 의자를 하나 가져와 그의 옆에 앉았다. 맞은편도 아니고 굳이 옆에 앉는 그녀의 모습에, 오토나시 코토리는 실소를 참을 수 없어 픽, 하고 웃어버렸다.


 “자, 그러면 나는 뭐부터 하면 될까?”


 “괜찮으시다면 이쪽의 예산안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누나한테 맡기라구!”


 누나라기에는 아무래도 프로듀서 쪽의 나이가 더 많긴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던 찰나, 따르르릉, 미사키의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고, 의자에 나자빠져 있던 그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았다.


 ”네에, 765 프로덕션의 아오바 미사키입니다.“


 정석적인 사무원의 응대에 프로듀서는 슬쩍 오토나시 코토리를 보았다. 저렇게 좀 해 주실래요? 라는 말이 눈빛과 얼굴에서 보였고, 그녀는 조금 울컥한 마음에 그에게 투덜거렸다.


 ”저, 저도 할 때는 잘 한다니까요!“


 ”오늘이 하실 때잖아요? 자 어서, 결산 보고서.“


 ”흐으윽.“


 하지만 말로 프로듀서를 이긴다는 것은 오토나시 코토리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단 두 마디 말에 TKO를 당한 뒤, 그녀는 울며 겨자 먹기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저어, 프로듀서 씨.“


 ”네네, 미사키 씨.“


 전화기를 내려놓은 사무원은,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큰일은 아닐 것이다, 그는 웃으며 미사키의 말을 들었다.


 ”츠바사쨩, 레슨에 안 왔대요.“


 ”......“


 미사키의 말에 그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요 주의 인물이 요주의 인물답게 행동했을 뿐이지만, 프로듀서로서는 쉽게 넘길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은 52명이며, 이정도 규모의 숫자라면 당연히 누군가 레슨을 땡땡이치는 일은 가끔씩 일어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자신만의 사유가 있고, 때문에 레슨을 빼먹고 가는 곳이 대부분 정해져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찾아서 데려올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부키 츠바사는 다르다. 지루하니까, 질렸기 때문에 등의 단순한 이유로 레슨을 슬그머니 빼먹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 찾아오기 굉장히 어렵다는 말이다.


 지난번에 금방 찾아서 데리고 온 것은, 어찌 보면 요행이었을 것이다. 대충 여기겠다 싶어서 갔던 곳에 정확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행은 요행일 뿐이다. 우연은 두 번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번에 이부키 츠바사를 찾아오는 것은 제법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한창때의 호시이 미키가 연상되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소파에서 자고 있는 미키를 슬그머니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츠바사와 가까운 아이들에게 한번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에...일단 트레이너 씨도 프로듀서 씨께 맡겨둔다고 하셨으니까요.“


 당연히 레슨을 빼먹은 아이돌을 방치해 둘 수는 없다. 그리고 최근 들어 잦아지는 것 같았기 때문에, 이번에 찾으면 한 마디 해야겠다, 그는 생각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이부키 츠바사의 레슨 욕구를 끌어올릴 다른 방법도 생각해 두어야 했다.원체 무대에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오랜만에 혼자 마음껏 끼를 발산할 수 있는 라이브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살그머니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들어, 미즈키와 유리코에게 메일을 보냈다.


 츠바사가 레슨을 빼먹었으니, 연락을 해보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송신한 뒤,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하다면 프로듀서 자신이 연락하고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산처럼 쌓여있는 눈앞의 일거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바바 코노미가 도와주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이 일을 내팽겨 치고 츠바사를 찾으러 간다면, 본말전도다.


 여기서는 미즈키나 유리코를 믿을 수밖에 없다. 어른스러운 미즈키와 사려 깊은 유리코라면, 츠바사를 잘 설득해서 데리고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시끄러운 거야, 흐아암~.“


 그러나 프로듀서와 사무원의 대화는, 소파에서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는 소녀에 의해 중단되었다. 그는 피식 웃으며 소녀에게 말했다.


 ”그렇게 잠만 자면 살찐다, 미키.“


 ”에, 허니야말로 요새 뱃살이 좀 나오는 거 아니야?“


 ”......“


 조금, 정말로 조금이다. 요새 이런저런 일 때문에 바빠서 운동을 열심히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운동하면 금방 돌아올 것이다, 그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나, 나는 프로듀서고, 미키 너는 아이돌이잖아.“


 ”흐-응.“


 미키의 볼이 불룩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의미 없는 변명이었다. 그녀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자, 프로듀서는 어깨를 으쓱이며 순순히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놀려서 미안, 내가 실언했어.“


 ”흐-으응. 딱히 놀린 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거야.“


 ”그렇게 말해 봐야.“


 자신이 뭘 알겠느냐, 뒷말은 속으로 삼켰지만 그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도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몇 초 만에 눈이 가늘어진 호시이 미키에게 확실한 정답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이십 하고도 수년간 연애와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남자에게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뭐, 허니가 둔감한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까, 이번에는 미키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거야. 응응.“


 ”가, 감사합니다?“


 어째서 고마워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마움을 표해야 할 것만 같았다. 옆에서 키득, 웃고 있는 오토나시 코토리에게 한번 눈총을 주자, 어느새인가 미키가 그의 앞에 다가와 있었다.


 ”앗, 잠깐만, 미키?!“


 ”으응~역시 여기가 가장 안심되는 거야.“


 그가 의자에 앉아 있는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키는 그녀의 프로듀서에게 갑작스레 안겨들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그의 가슴팍에 느껴졌고, 그의 양팔은 갈 곳을 잃은 채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미키, 이러면 곤란해.“


 ”미키적으로는 문제없는 거야. 게다가 허니라면, 미키한테 뭘 해도 문제없는 거야.“


 ”아이돌이 그런 말 하는거 아니라니까.“


 ”미키는 진심인거야.“


 ”......“


 이부키 츠바사고 호시이 미키고, 하여간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은 개성적이고 적극적이며 이렇게 무시무시한 말을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내뱉는단 말인가. 그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런 프로듀서의 당황한 얼굴이 마음에 들었던가, 미키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콧등을 툭툭 건드렸다.


 ”미키는 미키고, 허니는 허니인 거야. 프로듀서와 아이돌이 아닌 거야.“


 ”......“


 기분이 나빠졌던 부분은 그쪽이었나, 그는 중얼거렸다.


 그가 담당하는 이 아이돌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한 아이일 것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슬픈 프로듀서의 숙명대로 다음번 업무에 대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이부키 츠바사의 흥미를 자극하려면 새롭고 신선한 시도가 좋을 것이다. 그것이 레슨이던, 레슨을 받도록 유도하는 동기부여이건, 지루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개성이 강하지만, 의외로 비슷한 두 아이돌을 붙여놓으면 어떨까. 이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자, 아이디어 노트를 펼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물론, 프로듀서의 이 변화를 가장 가까이 있던 호시이 미키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에, 허니는 일 중독인 거야. 미키, 바람맞은 거야.“


 뭐라고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이내 그는 미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본분은 너희들의 프로듀서니까.“


 ”우ㅡ, 이럴 때는 미키를 좀 더 생각해 주는 거야.“


 ”그럼그럼. 지금도 미키 생각뿐이라고.“


 하지만 노트에 빠르게 써 내려가는 글을 본 미키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허니는 거짓말쟁이. 다른 여자 생각도 하고 있는 거야.“


 ”아차, 들켰나?“


 ”나쁜 남자인 거야.“


 흥흥, 귀엽게 볼을 부풀리며 미키는 그에게서 스르륵 떨어져 나왔다. 옆에서 사무를 보던 바바 코노미가 쓴웃음을 짓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싫은 거야.“


 ”어, 뭐가?“


 갑작스러운 미키의 거절에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미키를 보았다. 아직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속내를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떼쟁이는 싫은 거야.“


 ”......“


 네가 할 소리냐,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하지만 미키가 누구를 말하고 있는지 그는 짐작할 수 있었다. 눈치 빠른 여중생은 이미 그의 속내를 파악한 것이리라.


 ”그래도 츠바사는 아직 중학생이잖아.“


 ”그래봐야 미키보다 한 살 어릴 뿐인 거야. 어른인 거야.“


 이쪽이 보기엔 둘 다 꼬꼬마들일 뿐이건만, 그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옆에서 오토나시 코토리도 웃음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해한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무실로 오면서 츠바사랑 마주쳤던 거야. 반짝반짝하지 못한 얼굴이었던 거야.“


 미묘하게 엇갈렸던 것이리라. 그러나 이어지는 미키의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레슨 빼먹는 떼쟁이보다는 미키가 더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거야.“


 프로듀서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평소의 목소리도 아니다. 오히려 보란 듯이, 누군가 더 들으란 듯 목청을 높여 강하게 이야기하는 미키의 어조에 그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키 너, 혹시 츠바사 싫어하는 건 아니지?“


 설마 하던 아이돌 선후배간 기강 잡기인가, 잠시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흔들어 잘못된 생각을 날려버렸다.


 세간의 그런 부조리한 문화를 그는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설령 아이돌 경력으로 인한 갈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그의 앞에서 티를 낼 수가 없다.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츠바사는...조금 귀찮긴 하지만 분명히 귀여운 후배인 거야. 싫어할 리가 없는 거야.“


 ”그런데 왜ㅡ“


 ”그거랑 이건 다른 문제인 거야. 성실하지 못한 아이돌은 빛날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할 말이냐,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765 프로덕션 불성실의 상징이었던 호시이 미키가, 누구에게 불성실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제법 성실하게 레슨도 받고, 일도 나가고, 라이브도 한다.


 물론 사무소에서 낮잠 자는 행동은 아직 고치지 못한 것 같지만, 그 정도는 미키만의 개성이라 생각하며 놔두고 있다.


 어찌 되었건 그는 미키의 주장을 미키로 반박하려 했지만, 미키가 한발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미키의 무대가 최고로 빛났다면, 허니는 미키에게 상을 줘야 하는 거야!“


 주먹밥의 대가로 딸기 바바로아를 요구했던 것으로도 모자랐더냐, 속으로 투덜거리며 체념한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그래, 들어나 볼게.“


 이제는 무슨 요구를 할지가 두렵다. 프로듀서의 지갑은 그리 풍족한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키의 요구는, 그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미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자, 그는 얼굴을 딱딱하게 굳힐 수밖에 없었다.


 ”어·른·의 데이트인거야. 아핫☆“


 ”삐, 삐요오오오오오옷-!!“


 옆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던 오토나시 코토리가 코피와 함께 괴성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아오바 미사키가 허겁지겁 구급상자를 가지러 달려간다. 바바 코노미는 작은 한숨과 함께 그런 오토나시 코토리를 조금은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부산스러운 광경에도, 프로듀서는 오히려 차분한 눈으로 미키를 바라보았다.


 그가 안 된다고 말하리라는 것을 호시이 미키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들어줄 수 없는 요구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다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사무소 문에서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문이 열리는 소리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다. 미키와의 대화 소리가 작은 편은 아니었기에 충분히 들었을 수 있는 상황이다.


 설마, 그는 중얼거렸다. 미키가 이런 전개를 예상하고 말을 했다면, 그녀에게 한 방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답지 않게 흥분한 상태다, 라는 것을 프로듀서를 비롯한 사무소 내의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 그에게는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소녀는, 그녀의 담당 프로듀서와 선배 앞에 멈춰 서서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입을 열었다.


 ”치사해요, 미키 선배!“


 ”미키적으로는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어른의 데이트라니! 그런 건...!“


 ”츠바사가 허니에게 달라붙어 안기는 행동도 치사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녀석 담아두는 성격이었나, 쓴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을 입술을 꽉 깨물며 어떻게든 참아냈다.


 ”읏......!“


 미키의 말에 츠바사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모르는 아이돌들 간의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치하야나 미키를 비롯한 다른 아이돌들의 눈매가 매서워졌던 것도,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 하지만 세리카쨩이나 모모코쨩도......“


 ”츠바사는 중학생인 거야. 다 큰 거야.“


 물론 프로듀서 또한 미키의 말에 동의한다. 세리카나 모모코, 이쿠와 같은 아이들과 궤를 같이하기에는 츠바사는 그래도 더 성숙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 세리카도 중학생이긴 하지만, 중학생이라는 느낌이 들진 않으니 아직은 괜찮다.


 그러나 의외로 미키가 세게 나간다는 느낌을 그는 지울 수 없었다. 미키가 한번 화가 나면 자신도 말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섭고 오래가지만, 지금은 딱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츠바사에게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대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으......“


 그리고 츠바사는 미키의 말에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했는지, 발만 동동 구르며 미키를 노려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데이트를 하고 안 하고는, 결국 허니한테 달린 거야. 치사하다고 할 문제는 아닌 거야.“


 ”으우......“


 여전히 츠바사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기세 좋게 쳐들어온 것은 온데간데없고, 당혹감과 약간의 짜증,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깃든 눈으로 그와 미키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미키. 데이트한다곤 한 마디도 안ㅡ“


 ”허니는 조용히 있는 거야. 눈치 없는 남자는 싫은 거야.“


 ”......“


 미키의 박력에 그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의외로 먼저 입을 연 것은 츠바사였다. 프로듀서를 째릿, 노려보는 츠바사의 얼굴은 흥분으로 인해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프로듀서 씨! 저도 어른의 데이트가 하고 싶어요!“


 ”그건 안 되는 거야.“


 그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미키가 먼저 츠바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우, 하고 작게 볼을 부풀리며 츠바사는 미키를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미키의 건방진 얼굴이다, 라고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예전에는 종종 볼 수 있었던 표정이었지만, 39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는 스스로 선배임을 인식했는지, 철없는 행동이나 표정은 거의 보여주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명백한 도발이다. 미키가 프로듀서를 도발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지만, 가끔 다른 아이돌들에게 저러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적은 있다.


 효과는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차분한 치하야도,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았던 타카네도, 미키의 도발은 흘려넘기지 못했었으니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츠바사가 이를 흘려넘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으, 어째서죠? 아무리 미키 선배라 해도 프로듀서 씨는......“


 ”지금 레슨실에 있어야 할 사람을, 허니가 좋아할 리 없는 거야.“


 ”하, 하지만 미키 선배도 예전엔ㅡ“


 ”예전? 지금의 미키는 그야말로 성실 그 자체인 거야. 츠바사가 이길 수 있을 리 없는 거야.“


 성실 그 자체? 미키의 말에 웃음이 터질뻔한 것을, 그는 가까스로 참아냈다. 째릿 노려보는 미키의 시선을 살금살금 피하며, 그는 어떻게든 속으로만 박장대소 하는 것으로 넘겼다. 옆에 있던 오토나시 코토리는 참을 수 없는 웃음에 아예 자리를 피해 밖으로 뛰쳐나갔다.


 ”윽...“


 뭐라고 말을 하는 족족 미키에 의해 츠바사의 말문은 막혔다. 미키는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츠바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프로듀서가 보기에는 의도적인 도발이지만, 흥분한 상태의 츠바사에게는 이를 분간할 냉정함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작게 씩씩거리지만, 결국 츠바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키에게 화를 낼 수도 없거니와, 코토리나 미사키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프로듀서에게 밉보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츠바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저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요!“


 ”레슨도 전력을 못 내는 사람이, 무대에서 전력을 낼 리 만무한 거야.“


 ”저는 항상 전력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증명해 보이는 거야.“


 ”......좋아요, 물론이죠.“


 그리고 두 명의 시선이 동시에 프로듀서에게로 모였다. 부탁하는 눈이 아니다. 명령하는 눈이다. 지금 당장, 가능한 한 빠르게 무대를 만들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알았어, 근시일 내로 라이브 일정을 잡아 볼 테니까, 그렇게 무서운 눈으로 보지 마.“


 그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뭐, 아무래도 좋다. 그가 생각하던 시나리오는 아니었지만, 어쨌건 두 명을 한 무대에 올리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프로듀서로서는 결과만 좋으면 장땡인 것이다.


 ”미키, 기대하고 있는 거야.“


 ”저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프로듀서 씨.“


 ”뭘 기대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열심히 해 줘.“


 두 명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그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싶은 것 역시 그의 마음이다.


 어른의 데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히 달래줄 수 있는 무언가는 준비해 두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7.


 계획에 없던 일을 하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


 특히나 이학에 있어 계획적인 실험이야말로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지만, 계획이 틀어졌을 경우, 들이닥치는 후폭풍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비록 여심이 그러한 학문은 아닐지언정, 이런 예정에 없던 이벤트는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기에 딱 좋았다.


 물론 평판 좋은 프로듀서인 만큼, 자그마한 라이브 일정 하나쯤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서류도, 그리고 무대의 준비도 빠르게 계획을 수립했고, 그대로 시행했다.


 문제는 날씨가 제법 쌀쌀한 가운데에 야외무대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정에 의해 765 프로덕션의 극장은 잠시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었고, 도내 대부분의 공연시설은 가까운 시일 동안 예약이 가득 차 있었다.


 제아무리 대형 프로덕션의 실권자라 하더라도, 있는 예약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는 없다. 게다가 공연을 미루자는 말을 미키와 츠바사에게 하니, 곧바로 절대 불가 통보가 날아들어왔다. 다시 한번 투덜거리자면 통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고심 끝에 야외무대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곧 겨울이 다가오는 날씨인 것이 걱정이다. 본 무대도 걱정이고, 리허설 무대 또한 걱정이다.


 “추운 거야.”


 “으, 생각보다 쌀쌀하네요.”


 당연한 이야기다. 초겨울이 얼마 남지 않은 늦가을은 당연히 쌀쌀하기 마련이다. 물론 여기보다 겨울이 추운 곳 출신인 그는 딱히 춥다고 느끼진 않았다.


 선선하다. 솔직히 조금 더 시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쿄 출신인 츠바사나 도쿄 인근 카나가와 출신인 미키는 늦가을 날씨가 춥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기의 야외무대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지만, 구할 수 있는 시설이 야외밖에 없었다. 물론 소중한 아이돌들을 위해 돈을 들이는 한이 있더라도 방풍막과 난방장치는 설치할 생각이지만 천장은 어찌할 방도가 없다. 공연 당일의 기온이 따스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다만 지금 당장은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리허설 때문에 무대를 찾은 미키와 츠바사가 걱정될 따름이다.


 아이돌을 관리해야 하는 입장인 그는 이 리허설 무대를 반대했지만, 미키와 츠바사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 조금 불편하더라도 따뜻한 옷을 입고 리허설을 할 것, 이라는 조건 하에 리허설을 허락했다.


 최종 리허설은 당일에 진행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가보다, 이 아이들은.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행한 미사키를 보았다.


 “어떻게, 지금 난방장치를 사용할 수는 없나요?”


 “프로듀서 씨 말씀대로 알아보긴 했는데, 무대 설계상 지금 당장 난방장치나 전열기기를 가동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해요.”


 “적어도 라이브 당일에는 따뜻하게 공연할 수 있겠죠.”


 하아, 깊은 한숨과 함께 그는 아오바 미사키를 보았다. 그녀 역시 씁쓸한 얼굴로 무대를 보고 있었다.


 “오늘 리허설을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미키와 츠바사가 너무 강력하게 밀어붙여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두 명이 같이 비는 스케줄이 오늘뿐인가봐요?”


 “......야간에 할 수는 없으니까요.”


 자책하듯 투덜거리며, 그도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미키와 츠바사가 몸을 풀고 있었고, 음향 관계자가 스피커를 세팅하고 있었다.


 라이브 당일에 진행하는 리허설이 아닌데다가,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고 해도 무대는 야외였기 때문에 괜스레 주변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다. 음향은 무대에만 들릴 정도로, 마이크는 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음향 관계자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리허설이라기에는 조금 애매해졌지만, 적어도 무대 위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일지, 어떻게 스텝을 밟을지, 어떤 포인트에서 어떻게 어필을 할지 정도는 연습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환경은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765 프로덕션의 극장이 괜스레 그리워진다.


 “극장 공사만 아니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안타깝네요.”


 “의상은 되도록 따뜻하게 만들어 볼게요.”


 “부탁드립니다, 미사키 씨.”


 765 프로덕션의 찬란한 빛 그 자체인 아오바 미사키에게 그는 속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했다. 그녀가 없었더라면 의상도 없었을뿐더러 오토나시 코토리의 업무 일부를 프로듀서가 떠맡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프로듀서의 강력한 건의로 인해 바바 코노미는 정말로 정식 사무원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음향 관계자가 미키의 의상에 마이크를 세팅해주고 있었다. 갈색의 털 달린 경량 패딩 어디에 마이크를 꽂을지 안절부절하다, 결국 패딩의 단추 맨 위를 열고 안쪽 옷에 마이크를 장착했다.


 음향 관계자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을 외모지만, 확실히 미키의 옆에 있으니 일반인이라는 느낌이 물씬 든다. 단순한 미인상으로 따지면 호시이 미키를 따라올 아이돌은 765 프로덕션 내에도 몇 없을 것이다.


 순수하게 외모만 따진다면 시죠 타카네나 미나세 이오리 정도일까.


 츠바사도 분명 아이돌 중에서 최상위에 속하는 외모이지만, 거의 대다수 아이돌들의 외모가 최상위인데다가 그 중에서도 탑 클래스에 속하는 미키다. 여러 명이 같이 하는 유닛이면 모를까, 단둘이서 무대 위에 올라가면 직접적으로 비교되지 않을까 그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츠바사를 보았다.


 그러나 그의 걱정과는 달리, 츠바사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의상을 가다듬고 있었다. 아마 오랜만에 야외에 나와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즐거운 것이리라. 저 나이대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말이다.


 이제 20대 중후반에 접어든 나이의 프로듀서로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다.


 “확실히...”


 아오바 미사키가 입을 열었다. 무대 위에서는 미키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스피커는 하나만 켜 두었기 때문에 그와 미사키가 있는 무대 반대편까지는 노래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희미한 노랫소리, 그리고 미키의 움직임을 볼 때 어떤 노래인지를 프로듀서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미키 쨩, 움직임이 둔하네요.”


 765 프로덕션에 입사한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프로듀서나 아키즈키 리츠코를 따라 아이돌들의 무대를 본 것은 제법 횟수가 된다. 미키가 평소보다는 몸이 무겁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도 남는다.


 “아무래도 추위 때문에 몸이 굳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난방이 되어 있는 트레이닝 룸에서는 완벽했거든요.”


 “그리고 의상도 무시할 수는 없네요. 아무래도 움직이기 불편한 옷이다보니.”


 “원래대로라면 이런 날씨에 야외 공연은 안 했겠지만...”


 그가 말끝을 흐리자 미사키가 피식 웃었다. 미키와 츠바사, 두 명이 언쟁할 때에 있었던 당사자로서 그의 마음고생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힘내세요, 프로듀서 씨.”


 “감사합니다. 조금은 위로가 되네요.”


 그렇게 두 명이 말하는 사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뀌었다. 프로듀서도, 그리고 아오바 미사키도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Day of the future] 다음에 [마리오네트의 마음]...이라.”


 “그다음이 미키쨩과 츠바사쨩의 듀엣인가요? 미키쨩도 진심이네요.”


 “[마리오네트는 잠들지 않아]로 시작하니까요. 알아서 선곡해보라고는 했지만 이렇게 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후배니까 조금은 봐주지 않을까, 혹은 츠바사의 마음을 다잡아주기 위한 그녀 나름대로의 방책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었지만, 머리에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설령 진짜로 미키가 츠바사를 위해서 도발했다고 하더라도, 공사구분은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일단 무대에 오르는 이상, 대충 할 생각은 없다.


 “많이 철들었네요, 미키도.”


 “아하하, 저는 직접 본 적은 없어서요.”


 아오바 미사키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오토나시 코토리였다면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미키를 대견하게 바라보았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열세 명이 어떻게든 프로덕션을 꾸려가던 그 시기가 아니다. 시간이 지난 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임과 동시에 의무다.


 미키가 그랬듯, 츠바사 또한 그래야 한다.


 “츠바사도 알고 있겠죠, 미키는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걸.”


 아마 미키가 어떤 분야던 패배선언 비슷하게 한 사람은 치하야와 하루카뿐일 것이다. 치하야의 노래는 존경한다 했었고, 하루카의 약삭빠름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루카는 무슨 소리냐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약삭빠르다. 그는 음음, 고개를 끄덕였다.


 “츠바사쨩은...점퍼가 조금 추워 보이기는 하네요.”


 파란색의 점퍼를 입고 무대 위에서 츠바사가 춤을 추고 있었다. 확실히 날씨에 비해 얇아보인다. 미키처럼 더 두꺼운 옷을 입었어야 했을 것이다.


 “점퍼도 점퍼인데 저 녀석, 짧은 팬츠를 입었네요.”


 “보기만 해도 추워지네요, 으으으.”


 “......”


 조만간 겨울용 연습복을 따로 주문해야겠다고 그는 생각하며 무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미키와 츠바사가 나란히 서 있었다. 보통 때라면 미키의 뒤에서 시작했겠지만, 지금은 미키의 옆에서 시작한다.


 저렇게 놓고 보니, 자매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닮아 있었다.


 다만 지금은 키타카미 레이카도 없고 줄리아도 없다. 두 명이 부르는 파트를 미키와 츠바사가 나눠서 불러야 한다.


 그러나 그와 따로 사전협의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키가 레이카의 파트를, 츠바사가 줄리아의 파트를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었다. 아마 둘 사이에 그가 모르는 협의가 있었으리라.


 “......츠바사가 걱정이네요.”


 늦가을 날씨를 반증이라도 하듯,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주중에 비 소식이 있어서일까, 공기가 예전보다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걱정은 미키가 내려온 무대 위, 혼자 남아 의상을 가다듬는 츠바사를 보았을 때, 가장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아, 움직인다. 그런데 아직도 몸이 굳어있나 보네요.”


 “추워서 그래요. 저 녀석, 지금 좀 무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한 뒤 객석의 가운데, 츠바사의 눈에 가장 잘 띄일만한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손으로 [중지하고 내려와] 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분명 츠바사가 못 볼 리가 없는 위치다. 게다가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것도 그는 분명히 확인했다.


 하지만 츠바사는 계속해서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는 계속 제스처로 그만하자고 말했지만, 츠바사는 본체만체 여전히 무대 위에 있었다.


 “저 바보가!”


 하여간 고집불통이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리허설을 중지시키고 강제로 내려오게 할 수도 없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츠바사가 토라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얼마나 오래 심술을 부릴지 모른다.


 겨울용 연습복은 따뜻하다 못해 더울 정도로 주문해야겠다, 그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아오바 미사키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츠바사를 보았지만, 프로듀서가 더 이상의 제지를 하지 않는데 그녀가 무언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프로듀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만히, 그렇지만 누가 보아도 걱정이 가득 담긴 얼굴로 츠바사의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가 끝나자, 그는 곧장 츠바사에게 다가갔다. 얇은 점퍼에 숏 팬츠였지만 최선을 다해서 몸을 움직였음을 반증이라도 하듯, 츠바사 목덜미와 팔에는 적게나마 땀이 흐르고 있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에~, 그래도 불이 붙어버린걸 어떻게 해요.”


 “마음은 알겠지만, 네 컨디션도 생각해야지.”


 “괜찮아요. 젊으니까요, 헤헷.”


 “......”


 띠동갑도 더 차이나는 아이가 그런 말을 하니 괜스레 기분이 슬퍼진다. 씁쓸함을 애써 무시하며 챙겨두었던 작은 손수건을 츠바사에게 건넸다.


 남자가 손수건을 왜 가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영업직 겸임인 그는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하리라.


 “어쨌건 고생했어. 츠바사도, 미키도.”


 “본 게임은 다음 주인 거야. 허니는 데이트 계획이나 짜 두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러니까 난 동의한 적 없ㅡ”


 “이제와서? 남자답지 못 한 거야, 허니. 츠바사도 같은 생각일 거...야?”


 말과 동시에 츠바사에게 시선을 돌리던 미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듀서 역시 미키의 시선을 따라가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저는, 그게......”


 목덜미에 흐르는 끈적한 액체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츠바사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고보니 이거, 프로듀서 씨의 손수건이다.


 이걸로 땀을 닦아도 괜찮은 건가, 그런 의문을 품어버렸고, 괜스레 프로듀서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먼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츠바사의 머리를 강타했다.


 “머, 머머,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서 당황한 표정으로 대강 인사하고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빨리 몸을 씻어버리고 싶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달려가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 잠깐만, 츠바사?!”


 데자뷰다. 최근에 겪어본 일이다. 그는 뛰어가는 츠바사를 붙잡기 위해 발을 내딛었지만 그 앞을 미키가 막아섰다.


 “역시 허니는 둔감하다 못해 바-보인 거야.”


 “미키 너......”


 “가끔은 그 상냥함이 문제인 거야. 응응. 미키에게만 상냥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는 거야.”


 “나는 모두의 프로듀서니까.”


 “허니 다운 거야. 그런 모습도 좋아하지만, 지금은 츠바사를 그냥 내버려 두는 거야.”


 미키가 이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순순히 미키에게서 물러난 뒤, 다른 스탭들에게 리허설 종료 지시를 내렸다.


 날이 춥다. 빠르게 정리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것이 좋다. 아오바 미사키가 의상을 챙기는 것이 보였고, 그도 다른 스탭들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그제야 미키도 츠바사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세신을 포함한 뒷정리를 하고 나오는 데까지 삼십 분 이상은 족히 걸릴 것이다.


 차에 히터를 최대한으로 틀어놓아야겠다, 그는 노트북이 담긴 가방과 기기 점검표를 들고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츠바사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아무래도 사춘기일 것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대해야 할 것이다, 그는 중얼거렸다.


 츠바사가 고열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8.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구름은 많이 끼지 않았지만 대기는 끈적거리며 피부에 달라붙었다. 어차피 소나기일 것이다, 그는 주문이라도 외는 듯 중얼거렸다.


 작은 문 앞에서, 그는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아무리 병문안이라지만 남성인 프로듀서 자신이 담당 아이돌의 집에 방문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질 나쁜 파파라치에게 사진이라도 찍혔다면 좋은 꼴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왜 여기에 있는가 잠시 자문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냈다.


 안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라고 말을 하니, 카스가 미라이와 모가미 시즈카에게 한 시간 정도 진심에서 우러나온 잔소리를 들었다. 가만히 있었다가는 한나절동안 잔소리를 해댈것만 같았기 때문에 차라리 그 시간에 병문안을 다녀 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호시이 미키의 경멸하는 듯한 얼굴을 보면서 일을 할 자신이 없기도 했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텐쿠바시 토모카나 키사라기 치하야였다면 미키보다 더한 표정을 보여주었으리라.


 어쨌든 여기까지 왔다. 와 버린 이상 그냥 돌아갈 수도 없다. 


 방문을 똑똑, 두 번 노크한 뒤 얌전히 대답을 기다렸다. 문 안쪽에서 ‘엄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는 엄마가 아니기에 따로 대답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문이 벌컥 열렸다. 노란 원피스 위로 살짝 흐트러진 연녹색 가디건을 입은 채, 이부키 츠바사가 문 안쪽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머리도 마구 헝클어져 있고 얼굴도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것이, 그녀가 방금까지 자고 있었음을 반증한다.


 “누구세...프, 프프, 프로듀서 씨!?”


 반쯤 감긴 눈이 순식간에 토끼처럼 동그래지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모르게 피식, 하고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츠바사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파파밧 하고 정리하며 빨개진 얼굴로 후다닥 침대로 뛰어갔다.


 이불 속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채 이쪽을 매섭게 노려본다. 어째서 여기 있느냐 하는 눈동자다. 그렇게 노려보아도, 부모님께 허락까지 받았으니 딱히 무섭진 않다.


 한참은 어린 나이이지만 그래도 여자아이의 방에 들어가는 것이니, 아무래도 실례되지 않도록 허락은 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들어간다?”


 물론 부모님께 허락받은 시점에서, 츠바사 본인의 허락이 크게 필요한 부분은 아니다. 적어도 프로듀서라는 직책 앞에선 그러하다.


 그래서 들어가겠다 통보와도 같은 선언을 해버리고, 당당하게 문지방 너머로 발을 옮겼다.


 “아으...그, 잘 부탁드려요.”


 고작 병문안일 뿐인데 무얼 잘 부탁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평일이고, 아직 스케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츠바사의 상태만 체크하고 일정을 미룰지, 혹은 속행할지 판단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렇다고 병문안이라는 명분에 무턱대고 빈손으로 올 수는 없으니, 평소에 구하기 힘들고 맛보기 힘든 것을 조금 구해왔다. 인맥이란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자, 쾌차 기원 선물.”


 “와-! 고저스 세레브 푸딩이잖아요? 단 거 먹어도 되나요?”


 “먹은 만큼 트레이닝은 해야지, 아무렴.”


 “에에~너무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싫은 얼굴은 아니다. 몸을 일으켜 분홍색 베개에 상체만 기댄 후, 동봉되어있는 플라스틱 숟가락을 집었다.


 “지금 먹어도 될까요?”


 “그럼. 먹으라고 사 온 거잖아.”


 “음...그러면.”


 탁자에 올라가 있던 분홍색 휴대폰을 머리맡 위쪽으로 올린 후, 츠바사는 푸딩의 포장을 벗겨냈다. 그리고 한 숟가락 살포시 떠올려, 이쪽으로 향했다.


 “프로듀서 씨 먼저.”


 “나는 괜찮아.”


 “프로듀서 씨.”


 조금 더 강하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츠바사가 옅은 미소와 함께 차분하게 말했다.


 “가끔은, 어리광부리면 안 돼...?”


 “......”


 입술이 옅지만 미소짓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츠바사의 붉은 눈동자는 놀랍도록 가라앉아 있었다. 화가 난 모양새는 아니다. 특별히 토라진 것도 아니다.


 조금, 이전보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소망하는 것이다. 이부키 츠바사가 한 걸음 더 나아왔듯, 그녀의 담당 프로듀서 또한 한 걸음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신체 때문에 그녀가 중학생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미우라 아즈사나 사쿠라모리 카오리처럼 어른으로 대하는 것도 아니다.


 중학생이니까, 다 컸으니까.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그 나이가 다 컸다고 말할 나이는 아님을 안다. 은연중에 부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츠바사의 헝클어진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츠바사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이내 에헤헤, 작게 웃으며 숟가락을 놓았다.


 “확실히 이거, 기분 좋아요.”


 배시시 웃는 얼굴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로 좋은 미소잖아, 여태껏 츠바사가 지었던 표정 중에 가장 좋은 얼굴이다. 아마도 이 순간을 카메라로 촬영했더라면 아이돌로서, 그리고 한 명의 소녀로서 길이길이 남는 역작이 되었을 것이다.


 원래는 약하게나마 한마디 할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라이브를 미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 미소를, 이 표정을, 이 몸짓을 그대로 무대 위에 세우고 싶다, 그런 생각뿐이었다.


 “......빨리 나아 줘.”


 그렇기 때문일까, 자기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갑작스러운 본심이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말에 츠바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보다가, 옆에 있는 곰돌이 인형을 손으로 팡팡 치며 웃었다.


 “프로듀서 씨, 얼굴 빨-갛다구요?”


 당연하다.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이런 낮간지러운 말은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츠바사는 한술 더 떠서 다시 한번 숟가락을 집어 들고 이쪽을 보았다.


 “헤헷, 프로듀서 씨 먼저~.”


 하는 수 없다. 작게 한숨을 내쉰 뒤, 츠바사가 내민 푸딩을 살며시 받아먹었다.


 달콤하다. 입에 침이 고이는 것을 꿀꺽, 삼켰다.


 “맛있네, 정말로.”


 “그러네요, 프로듀서 씨가 사 오셔서 그런지 더 맛있는 것 같아요.”


 그제야 츠바사도 숟가락으로 푸딩을 떠먹기 시작했다. 숟가락을 바꾸지 않는 것은 아이돌로서 조심스럽지 않느냐, 라고 한소리 할까 했지만 여기는 이부키 츠바사의 방이다.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구태여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다.


 그저 츠바사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빠르게 푸딩을 떠먹는 것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더워요.”


 “열이 나서 그래.”


 푸딩을 다 먹은 후, 이불 속으로 다시 쏙 들어간 츠바사는 얼굴만 빼꼼히 내민 채 이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다. 몸에 열이 나는데다 침대 위에서만 하루 종일 있었으면 더울 수밖에 없다. 늦가을이기 때문에 난방까지 틀어져 있으니 덥지 않을 리가 없다.


 “이렇게 더우니까,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요.”


 “그건 안 돼.”


 “에, 정말로요~?”


 “아프다고 뭐든 다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


 당연한 말이지만, 츠바사를 위해서다. 물론 40도가 넘어갈 법한 고열이라면 아이스크림을 권장했겠지만, 고열이라고 해도 38도 정도다. 그렇다면 속을 차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제가 아픈 거 다 낫고, 미키 선배보다 멋있는 무대를 만들면...어때요, 프로듀서 씨. 약속해줄 수 있어요?”


 주어는 생략하고 말했지만, 그 생략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아이스크림은 물론이거니와 어른의 데이트를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 미키나 츠바사 같은 중학생과 어른의 데이트를 할 수는 없지만, 하루 정도 어른스럽게 챙겨줄 수는 있을 것이다.


 “약속할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ㅡ”


 하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이불 속에서 상체를 반쯤 일으킨 츠바사가, 한 손으로 곰돌이 인형을 껴안으며 이쪽으로 손가락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약속...해줄 수 있어요?”


 새끼손가락을 내밀고 이쪽을 보며, 붉어진 양 볼을 숨길 생각도 없이 살며시 웃어보였다. 손가락과 손가락을 걸게 된다면, 아무래도 단순히 말로만 했던 약속보다는 책임감이 커진다. 더이상 지나가는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츠바사도 이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듀서로서도, 어른으로서도, 그리고 남자로서도, 내야 할 답은 하나뿐이다.


 어느새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유리를 타고, 개나리색 날개의 손 끝에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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