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단편] 츠바사 블룸 (翼 Bloom) - 2

댓글: 0 / 조회: 890 / 추천: 4


관련링크


본문 - 03-06, 2021 16:44에 작성됨.

3.


 고작 하루 정도 지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24시간 동안 프로듀서가 느낀 부담의 크기는 그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증가하고 있었다.


 업무적 부담이 아니다. 다른 인간관계에서 오는 부담도 아니다. 다른 아이돌들과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조금 적극적이다 못해 노골적이기까지 한, 어느 아이돌의 시선 때문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미즈키. 이번 달에는 새로운 유닛에 집중해 주면 좋겠어.“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세요.“


 언제나처럼 포커페이스였지만, 주먹을 불끈 쥐는 미즈키의 행동에서 그녀의 기분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프로듀서 역시 마카베 미즈키라는 아이돌을 신뢰하고 있다.


 그러한 신뢰가,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츠무기도, 세 명짜리 유닛이니까 힘들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말해줘.“


 ”그건 제가 미덥지 못하다는 말씀이신가요? 정말이지, 당신이란 사람은ㅡ“


 ”믿고 있으니까.“


 ”......정말로 바보시네요.“


 조금 토라진 얼굴로 흥, 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그런 것 치곤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프로듀서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도 안다. 시호가 옆에서 풋, 하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을 들은 그는 시호를 보며 말했다.


 ”네가 웃을 건 아닌 것 같은데.“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바보 프로듀서 씨.“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시호를 조금 놀려주고 싶었을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솔직하지 못하기는.“


 ”읏, 쓰...쓸데없는 소리에요!“


 정곡을 찔렸으리라.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입술을 부르르 떠는 것이 조금 더 놀렸다간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여기까지만 하자, 속으로 하하 웃으며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노트에 손을 가져다 댔다.


 ”......“


 그러다, 소파 뒤쪽에서 자신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알 수 없는 압박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다행히 미즈키나 츠무기, 시호는 모두 자신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뒤를 돌아보는 것은 시간문제다.


 게다가 눈치 빠른 시호라면 지금 프로듀서의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시선을 애써 모른 척하며, 그는 미즈키에게 말했다.


 ”당분간 오토메스톰으로 활동하지 못 하는 것은 아쉽겠지만, 이해 해 줬으면 좋겠어.“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다른 맴버들은...?“


 미라이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의 거취를 묻는 미즈키의 질문에, 그는 이미 생각해 두었다는 듯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안나와 유리코는 당분간 듀엣으로 활동할 계획이고, 미라이는 하루카와 듀엣을 짜 볼까 해. 그리고 츠바사는ㅡ“


 말을 하다가 힐끗, 소파 뒤에서 굉장한 시선을 보내는 아이에게 시선을 보냈다. 자신의 이름이 나온 순간부터 강아지처럼 귀를 쫑긋 세운 것이 눈에 보였다.


 ”......히비키가 요새 바빠서, 당분간은 레슨에 집중해 줘야 할 것 같아.“


 심층 머메이드를 생각했었지만 안타깝게도 당분간 휴업이다.


 그의 말에, 소파 뒤에서 빼꼼히 이쪽을 보던 츠바사의 바보털이 한순간 풀이 죽은 것처럼 축 가라앉았다. 워낙 레슨 받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다 보니, 당분간 레슨만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부키 츠바사가 몸담은 곳은 아이돌의 세계.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연습 없이는 그 재능을 꽃피우기 어려운 곳이다.


 이를 아는 프로듀서는 자신이 악역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레슨은 철저하게 감시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레슨을 빼먹는 아이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부키 츠바사도 그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마 지금쯤 머릿속으로 어떻게 하면 레슨을 잘 빼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 죽은 와중에도 이쪽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미즈키와 이야기하는 도중 눈동자만 굴려 츠바사 쪽을 바라보니, 이제는 소파에 누워 빼꼼히 고개만 내밀고 있었다.


 관심을 바라는 강아지 같다. 그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츠바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미즈키에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미즈키, 네가 시즈카랑 같이 츠바사를 잘 살펴 줘.“


 ”레슨 말씀이신가요.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당연히 근처에 있는 시호와 츠무기에게도 이 속삭임은 들렸을 것이다. 그 증거로 쿡쿡, 하고 조용한 웃음소리들이 들린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자, 그러면 오늘은 이만 해산. 세 명이 유닛을 하는 기념으로 친목이라도 다지면서 쉬렴.“


 그러면서 그는 지갑에서 현금을 적당히 꺼내서 미즈키에게 주었다.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미즈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돈을 받았다.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프로듀서.“


 ”이렇게까지 신경 써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호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중학생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아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부담감이겠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그는 말하려 했다.


 그러나 츠무기가 한발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면, 저희가 프로듀서의 지시가 없으면 서로 친해질 수 없으리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그렇게 붙임성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붙임성, 아...그래. 그렇지. 붙임성.“


 ”뭐, 뭔가요, 그 반응은! 정말로 제가 그, 붙임성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시는 건가...요.“


 불평불만을 토해내지만, 말투에 자신감이 없다. 아마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프로듀서로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오답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는 미즈키와 시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츠무기를 부탁할게.“


 ”옛써.“


 ”알겠습니다.“


 동시에, 미즈키와 시호는 각각 츠무기의 팔 한 쪽을 잡았다.


 ”자, 잠깐. 마카베 씨? 키타자와 씨?“


 츠무기의 당황한 비명은 못 들은 척, 도망가지 못하게 단단히 팔짱을 낀 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츠무기를 데리고 사무소 밖으로 나갔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잉교ㅡ!!“


 "친목도모입니다."


 "친목도모, 니까요."


 문밖에서 사투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하니 적잖이 당황한 것 같았다. 나중에 한 소리 들을지언정 지금은 평온하다.


 아니, 평온했어야만 할 것이다, 그는 작은 악마의 존재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소파를 바라보니, 여전히 츠바사가 굉장한 기세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그가 시선을 츠바사에게 돌리자 방금전의 기세가 거짓말인 양 휙, 하고 고개를 돌려 프로듀서의 시선을 피했다.


 옆자리에서 오토나시 코토리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잘못이라도 하셨어요?"


 "아니요? 딱히 짐작 가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러면, 직접 물어보시지 그래요?"


 "...그렇네요."


 아오바 미사키도, 타카기 사장도 아닌 오토나시 코토리에게 정곡을 찔릴 줄은 몰랐다. 결국, 두려운 마음이 어디 한 구석에 있으니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못 하는 것이다.


 슬그머니 츠바사의 상태를 살피니, 방금 전처럼 시선을 피했던 일 따윈 처음부터 없던 양, 소파에 턱을 괸 채로 그를 지그시 보고 있었다.


 확실히 평소랑은 다르다. 그리고 이것이 프로듀서가 느낀 부담의 정체였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걸어갈 때마다 츠바사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빤히 바라보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잠시 외투를 가지러 가는 척을 하다, 그는 돌연 츠바사가 몸을 기대고 있는 소파로 순식간에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프로듀서의 행동에, 소녀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하고 당황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아하하, 프로듀서 씨 쉬시는거예요?"


 "어이쿠, 어딜 가시려고? 안 바쁜 거 다 안다."


 "엣, 에? 아앗?!"


 말과는 반대로 슬그머니 소파에서 빠져나가려는 츠바사를 한쪽 팔로 제지했다. 그러자 츠바사는 그녀답지 않게 붉게 상기된 얼굴로 소파 한쪽 구석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솔직히 그렇게 대놓고 피하면 상처받는다. 그는 쓰라린 속을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오전부터 계속 나를 보던데, 할 말이라도 있니?“


 ”응~어떨까요?“


 표정은 울 것 같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여유 있는 척, 회피성 반문을 내뱉는다. 어째서인지 괘씸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건방진 아이에게는 벌이다.


 ”요 녀석, 어른을 놀리면 못 쓴다.“


 스르륵 츠바사의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뒤, 손가락으로 딱밤 한 대, 츠바사의 이마에 명중시켰다.


 ”아얏! 아프잖아요!“


 ”너한테 하루 종일 감시당한 나의 마음도 찢어지는 듯 아프구나.“


 ”으, 언제부터 눈치채고 계셨어요?“


 츠바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강렬했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 우스울 정도다. 그는 뭐라고 말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글쎄다, 어떨까.“


 ”에~! 치사해요! 연하의 귀여운 여자아이를 놀리면 안 된다고요?“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해도 괜찮은 건가, 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지만 어떻게든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할 말은?“


 ”으응...프로듀서 씨, 꼭 듣고 싶어요?“


 ”아침부터 그렇게 쳐다봤으면서, 내가 안 궁금하겠니.“


 ”그러-엄, 꼭 대답해주기 어때요?“


 ”......?“


 질문이라도 하는 건가, 그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바 코노미를 비롯한 성인조도 아니고, 이부키 츠바사에게 뭔가 꿍꿍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스케줄, 업무, 라이브, 그것도 아니면 오프날에 대한 질문 정도이리라. 그는 머릿속으로 츠바사의 스케줄과 레슨을 떠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그의 대답을 들은 츠바사는 헤실거리며 프로듀서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내놓았다.


 ”그럼, 그럼요...프로듀서 씨는 뭘 좋아하세요?“ 


 ”그게 무슨 말...이니?“


 ”말 그대로요! 프로듀서 씨가 좋아하는게 뭔지 궁금해요. 뭐, 좋아하는 색이라거나, 음식이라거나, 취미라거나, 그런 것들 말이에요.“


 ”......“


 정말로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고, 열심히 업무 생각을 하던 프로듀서는 이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구에 몇 초 동안 멍하니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머리에 생각이라는 것이 발돋움을 할 무렵, 고작 그것 때문에?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싹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속으로 작은 한숨을 내쉰 뒤, 그는 츠바사를 보았다.


 기대감에 가득 차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보니, 역시나 뭐라도 말을 해 주긴 해야한다.


 ”좋아하는 거라고 해봐야...“


 딱히 좋아하는게 뭐다, 라고 인식을 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수동적인 사람이었던가, 속에서 절로 탄식이 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츠바사도 이를 대충 눈치챘는지, 흐응, 작게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 좋아하는 색은 뭐에요?“


 ”음...파란색이나 검은색일까?“


 ”그럼...좋아하는 옷은요?“


 ”양복 말고는 입을 시간이 없다.“


 눈에서 흐르는 것은 분명 땀일 것이다.


 ”좋아하는 동물이 있나요?“


 ”냄새 안 나는 동물들.“


 ”그런데 프로듀서 씨의 취미는 뭐예요?“


 ”취미? 네가 알기에는 조금 이르다.“


 ”에~그런 게 어딨어요.“


 그렇게 츠바사와 프로듀서는 주로 프로듀서의 사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이를 보고 있던 오토나시 코토리와 아오바 미사키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귀엽다.


 중학생 소녀가 이성에게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어보는 저의가 무엇이겠는가. 믿기지 않겠지만 오토나시 코토리도, 아오바 미사키도 십대 소녀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ㅡ그리고 지금도 마음만큼은 소녀이기 때문에ㅡ츠바사의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하지만 상대는 그 프로듀서다. 본인은 둔감한 척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도 둔감한 사람이다.


 아마 765 프로덕션의 자랑인 저 프로듀서는, 이부키 츠바사가 왜 이런 질문을 하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뻔하다.


 츠바사도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어린 나이이지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인인 그녀답게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아주 좋다. 연애 경험 없는 프로듀서의 의중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열심히 질문하는 것은, 츠바사 나름대로의 관심 끌기, 그리고 주도권 획득이 목적일 것이다.


 765 프로덕션에 소속되어 있는 이상, 아이돌과 프로듀서간의 관계는 좋던 싫던 상사인 프로듀서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조금이나마 관계의 변화를 원한다면, 이 전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프로듀서가 원하는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아이돌이 원하는 대로만 해서도 안 된다.


 둘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765 프로덕션의 아이돌들은 빨랐건 느렸건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츠바사가 이 질문 공세의 마침표로 선택한 질문을, 코토리와 미사키는 예상할 수 있었다.


 두 사무원의 눈이 서로 맞았고, 한번 힐끗 츠바사를 보더니 서로 빙긋 웃어 보였다.


 ”ㅡ그러면, 두 개만 더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그럼. 물론이지.“


 왜 이렇게 사적인 질문을 화살비처럼 쏟아내는지 모르겠지만, 마지막 질문이라니 한숨 돌렸다,


 하지만 츠바사는 방금처럼 단번에 질문을 하지 못했다. 입술을 오므리고 말을 할 듯 말 듯 우물쭈물 거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기도 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천천히 말을 꺼냈다.


 ”프로듀서 씨, 좋아하는 여성은 어떤 타입이에요?“


 ”......“


 ”앗, 아니! 특별히 무슨 뜻이 있어서 물어보는 건 아니니까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지만 무엇을 부정하는지는 츠바사 자신도 모를 것이다. 뭐, 괜찮겠지. 그는 픽 웃으며 말했다.


 ”글쎄?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에ㅡ, 그렇게 피하는게 어딨어요.“


 ”사실인걸 어쩌니.“


 정확하게는 특별히 여성 취향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 맞다고 그는 생각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765 프로덕션이라는 아주 특수한 상황 속에서 아이돌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듀서 씨! 연애를 해 보신 적이 없다면 부디 저와!“


 ”어림도 없지! 오토나시 씨는 조용히 하세요.“


 ”삐요옷!“


 기세 좋게 책상을 박차고 일어났다가, 기세가 완전히 꺾인 채로 의자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그런 오토나시 코토리의 축 늘어진 어깨를, 아오바 미사키가 위로하듯 토닥여주었다.


 프로듀서도, 그리고 츠바사도 이 광경을 눈앞에서 보니 자연스럽게 실소가 나왔다. 그 웃음에 코토리의 어깨는 더더욱 힘을 잃고 축 늘어져갔다.


 ”그러엄~! 마지막 질문!“


 활기차게 외쳤지만, 츠바사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도 더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말을 하는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은, 누가 보아도 긴장하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 이부키 츠바사가 긴장을 할 정도의 질문이라니, 프로듀서 역시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있잖아요, 프로듀서 씨. 주말에 시간 있어요?“


 ”......뭐?“


 그러나 예상하지 못해던 질문에 그는 잠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츠바사는 그런 프로듀서를 기다려 줄 생각이 없다는 듯, 재빨리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랑 놀고 싶어요.“


 그제야 그는 츠바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후우, 그는 한번 작게 숨을 들이쉰 뒤 살짝 굳어버린 얼굴로, 무방비상태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츠바사의 이마에 조금 전처럼 딱밤을 한 대 먹였다.


 ”요 녀석. 어른을 놀리면 안 된다고 했지?“


 ”아얏!“


 그 모습을 본 코토리와 미사키는 작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질문도 예상했듯, 답변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놀린, 거 아닌데...“


 ”어, 츠바사? 자, 잠깐, 잠깐만?!“


 ”놀린...거...히끅...아니에...요.“


 그러나 오토나시 코토리도, 아오바 미사키도, 그리고 당사자인 프로듀서까지도 츠바사의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언제나처럼 농담으로 시작해서 농담으로 끝나지 않을까 생각했었을 뿐이다.


 그러나 츠바사의 눈에 작은 방울이 고이자, 그는 순간 당황해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고, 마찬가지로 당황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코토리와 눈이 마주쳤다.


 어떻게 좀 해봐요! 라고 코토리에게 눈으로 말했다. 어찌어찌 알아먹은 코토리는 손으로 X표를 크게 그렸다. 제가 뭘 알겠어요? 라는 뜻이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다행히 사무실에 두 명의 사무원 외에는 다른 사람이 없다. 하지만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르는 것도 사실이다.


 다른 사람, 특히 리츠코가 들어와서 이 광경을 봤다가는, 단순히 잔소리 듣는 것으로는 안 끝날지도 모른다. 경우에따라 경위서와 함께 시말서 까지 제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담당 아이돌을 울렸다는 것은 어지간한 변명으로는 납득시키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대는 이부키 츠바사다. 눈물 또한 그녀의 무기일 수 있다.


 ”알았다, 알았어. 주말에 시간 내 볼게.“


 어차피 현장답사를 겸하여 주말에 외부 일정을 잡아두었다. 원래는 프로듀서 혼자만 갈 예정이었지만, 츠바사를 포함한 몇몇 아이들이 같이 간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보호자 두어 명을 포함해서 네다섯 명 정도면 적절하지 않을까.


 ”정말이죠?! 약속한 거예요?“


 ”이럴 줄 알았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잖아.“


 ”헤헤, 프로듀서 씨가 키운 아이돌이니까요.“


 타 프로덕션 아이돌의 캐치 프레이즈를 슬그머니 가지고 오는 츠바사에게,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대신, 레슨 빼먹으면 안 된다.“


 ”그럼요! 프로듀서 씨가 보러 와 주신다면요, 헤헷.“


 츠바사는 힘차게 대답했지만, 그녀의 다짐이 오래 가지 못할 것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다.



4.


 ”주말 아니었니?“


 ”주말은 내일이에요 프로듀서 씨!“


 ”그런 의미가...아니, 됐다.“ 한숨이 푹 나왔다. 옆에서 츠바사가 헤실거리며 웃는 모습이 오늘따라 약이 오른다.


 그렇다고 뭐라 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라디오 녹화와 방송 녹화 사이에 두어 시간 정도 시간이 비었기 때문에, 츠바사가 근처의 백화점으로 놀러가고 싶다는 의견을 거절하지 못했다.


 아무리 프로듀서라 해도 여자 아이돌이 남자와 붙어 다니는 것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지만, 츠바사의 의지가 원체 강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무래도 중학생에 여자아이에 아이돌인 아이를 혼자 다녀오게 할 수는 없다. 츠바사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스토커나 치한, 유괴범 등등 아이돌을 노리는 질 나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핑의 짐꾼이자 말동무로서 츠바사의 시중 아닌 시중을 들게 된 것이었다.


 대체로 하는 일은, 츠바사가 고르는 옷을 평가해주거나 구매한 옷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손에는 여러 옷가게의 봉투가 들려 있었고, 자연스레 얼굴에는 피로의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보다 이거 다 살 돈은 어디서 나는 것인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중학생의 쇼핑답게 하나같이 유명 브랜드의 옷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옷의 특성상 가격이 제법 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츠바사가 이쪽을 보며 손짓을 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외투인가보다.


 ”저기저기, 프로듀서 씨. 이거 어때요? 귀엽지 않아요?“


 노란색 후드 점퍼를 입으며 츠바사는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츠바사의 머리 색과 잘 어울려, 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부키 츠바사라는 소녀는 코디네이트가 뭔지 안다. 아마 어떤 이론이나 경험에 의하여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어울릴 의상이 뭔지 아는 것만 같았다.


 ”괜찮네. 그것도 살 거야?“


 그렇다고 해서 양팔에 봉투를 가득히 든 채로 좋은 말이 나오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츠바사는 중학생이니까 어른스럽게, 어른스럽게. 마음속으로 열심히 다짐하며 귀찮음이나 짜증을 표출하진 않았다.


 ”에에~프로듀서 씨, 반응이 너무 성의가 없잖아요.“


 담당 아이돌. 동기부여. 월급. 머리에 세 단어가 박히자마자 목에서 반사적으로 소리가 나왔다.


 ”당연히 잘 어울리지.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뿐인걸? 어디 소속 아이돌인지, 정말로 귀엽네.“


 ”흐응...조금 더 진심을 담아서 말해주시면 좋을 텐데요.“


 ”진심이야.“


 진심이긴 하다. 팔이 아파 올 뿐이다. 하지만 츠바사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헤헤 웃으며 여러 색상의 점퍼를 입어 볼 뿐이었다.


 ”이건 어때요?“


 같은 디자인의 파란 색 점퍼. 츠바사의 머리 색이 돋보이는 효과가 있어,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알맞다. 게다가 츠바사의 몸에 알맞은 옷맵시다. 점퍼임에도 불구하고 중학생답지 않은 츠바사의 굴곡이 조금이지만 드러난다.


 아마 또래 남자아이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샐지도 몰랐겠지만, 이쪽은 어른이다. 중학생 소녀를 여자로 보지는 않는다.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조금 치수가 작은 것 같긴 한데, 확실히 잘 어울려.“


 ”어라~? 프로듀서 씨. 엄한데 보시는 건 아니시죠?“


 ”아니야.“


 ”정~말로요?“


 눈매를 가늘게 뜨고, 붉은 눈동자로 이쪽을 흘겨보았다. 강한 의심의 눈초리였지만, 입가는 고혹적으로 웃고 있는 것이, 분명 이쪽을 놀리는 것이다.


 작은 한숨을 내쉬며 츠바사에게 말했다.


 ”어른을 놀리면 못 쓴다.“


 ”뭐, 그런걸로 할게요, 헤헤헷.“


 히죽거리며 웃는 모습이 분명히 오해한 모양새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해 봐야 오해만 더 불러일으킬 것만 같았기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이것도 좋은 거 같은데, 으음, 어느걸로 살까요~♪“


 녹색 바탕의 검은색 체크무늬가 섞여 있는 점퍼를 몸에 대보며, 츠바사는 콧노래를 불렀다. 확실히 저것도 귀엽긴 하겠다. 하지만 녹색이라고 하면, 어쩐지 츠바사보다 딱 떠오르는 아이돌이 한 명 있다.


 ”미키한테도 잘 어울리겠네, 저건.“


 스스로도 모르게 내뱉었나보다. 한순간 츠바사의 어깨가 움찔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뒤를 돌아본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히죽거리며 웃는 얼굴이었다.


 ”프로듀서 씨. 여자애랑 데이트 중에 다른 여자 이야기는 금지라구요?“


 ”딱히 데이트는 아니잖아.“


 ”남자랑 여자랑 둘이 놀면 그게 데이트죠 뭐,“


 ”......“


 이쪽은 딱히 노는건 아니다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혹시 프로듀서 씨는 옷 사실 생각 없으세요?“


 ”슬슬 겨울도 다가오니 외투나 한 벌 사고 싶긴 한데, 너 설마.“


 ”당장 가요! 제가 골라드릴 테니까요!“


 ”안 돼. 다음 녹화까지 얼마 안 남았어.“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츠바사는 이쪽의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녀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단점이기도 하다.


 ”으응ㅡ, 빨리 고를테니까요. 같이 보러 가는거, 안돼에~?“


 ”......“


 어느쪽이건, 분명한 것은 이런 점이 츠바사의 매력이라는 것이다. 저렇게 뒷짐을 지고 치켜뜬 눈으로 올려다보면, 조금쯤이라면,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20분 정도라면 괜찮겠지.“


 ”야-호! 프로듀서 씨, 빨리빨리! 이쪽이에요, 이쪽!“


 환호를 내지르며 양복 끝자락을 쭈욱 잡아끌었다. 그런 와중에도 점원에게 점퍼 세 개를 맡겨두는 치밀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 새 원래 입고 왔던 연노랑색 야구 점퍼를 입고 있었다. 빠르기도 빠르다, 요즘 중학생은.


 ”어디 보자, 남성 정장이...3층이네요.“


 ”한 층 위네. 주차장하고 가까우니 빨리 갈 수 있겠다.“


 ”우ㅡ, 저랑 같이 있는 시간이 싫은...건가요?“


 ”그럴 리가. 오해 하지 말아주세요, 이부키 양.“


 ”우와, 방금 어-엄청 느끼했어요.“


 그렇게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남성 의류매장에 들어섰고, 다리와 팔에 힘이 빠진 나머지 재빠르게 의자에 앉았다. 20대 초반에는 팔팔했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것 같다.


 ”미안, 츠바사. 나는 조금 앉아 있어도 괜찮을까?“


 ”벌써 앉아놓고선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프로듀서 씨.“


 피식 웃으며 츠바사는 여러 디자인의 코트가 진열된 쪽으로 걸어갔다. 따라오지 않는다고 딱히 투덜거리지 않는 점이, 츠바사 나름대로 짐꾼의 휴식을 배려해주는 부분이리라.


 이따금 으-응, 으음, 으으응, 하고 고민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시간을 보니 십여 분 정도 여유가 있다.


 그러다 어느새, 이쪽으로 와보라고 손짓하는 츠바사를 보았다. 그 작은 손에 두툼한 코트가 여러 벌 들려있는 것을 보니 식은땀이 흘렸다.


 마네킹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 틀림없다. 모든 남자들이라면 분명, 이런 상황을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상의나 바지도 아니고 외투일 뿐이다. 외투 정도라면 잠시 마네킹이 되어도 괜찮다. 조금만 귀찮으면 된다.


 ”시간 없으니 다섯 벌만 입어봐 주세요.“


 ”히익...“


 많아,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프로듀서인 이상, 담당 아이돌의 부탁이라는 이름의 명령에 선택권 같은 형편 좋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빠르게 다섯 벌, 하나씩 하나씩 그 자리에서 입어보았다. 한 벌 한 벌 입을 때마다 츠바사의 눈매가 날카로워졌고,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솔직히 어린 여자아이 앞에서 패션쇼를 하는 것은 상당히 부끄럽다.


 그러나 다섯 벌의 코트 전부 츠바사의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다 어디론가 도도도 달려간 뒤, 손에 코트 한 벌을 들고 나타났다.


 ”프로듀서 씨에겐 이거...으음, 역시 이 코트!“


 ”이게 마지막이지?“


 ”네. 진짜 잘 어울릴 테니까, 입어봐 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츠바사의 눈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어, 차마 귀찮은 티조차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츠바사가 하라는 대로 옷을 입어보고 나서야 생각보다 괜찮다, 라고 중얼거릴 수밖게 없었다.


 ”역시 이 코트가 정답이네요.“


 ”확실히 잘 어울린다는 건 둘째 치고, 내 취향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틀림없이 네 취향의 화려한 코트를 고를 줄 알았는데.“


 정말로 궁금했다. 물론 취향이랄 것도 없이 심플하면서도 단정한 복장을 선호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보통 츠바사 또래 나이의 소녀라면, 취향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가장 어울리는 것, 을 먼저 선택할 것이다.


 혹은, 자기 취향의 옷을 고르거나.


 하지만 츠바사는 배시시 웃으며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한 마디,


 ”항상 프로듀서 씨를 보고 있으니까요.“


 라며 기특하면서도 무서운 소리를 던진다.


 ”윽...“


 아무래도 이 영악한 소악마는 남자의 마음을 흔드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츠바사가 골라준 옷이니 이걸로 할까?“


 ”그래요! 제가 사드리ㅡ“


 어쩐 일인지 기특하게도 사주겠다는 말을 한다. 마음은 고맙지만, 정말로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재빨리 츠바사의 말을 잘랐다.


 ”그럴 필요는 없어. 골라준 것만으로도 충분해.“


 ”흐응, 그래요?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네요.“


 솔직히 말하면 띠동갑도 더 나는 아이한테 선물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경제력 있는 남성의 자존심은 생각보다 강하단 말이다.


 ”대신, 새로운 코트로 나하고 데이트하자♪“


 가끔 그녀의 기분이 고조되어 있을 때 튀어나오는 반말도 제법 귀엽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단호하게 말을 할 수밖에 없다.


 ”데이트는 안 돼.“


 ”에에~, 치사해요.“


 ”그래도 네가 골라준 코트를 안 입을 리는 없으니까, 그걸로 봐 주면 안될까?“


 그 말에, 츠바사의 양쪽 날개 머리가 파닥파닥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이내 옆으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왼쪽 팔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원래대로라면 제지해야 했지만, 생각보다 팔을 두르는 힘이 너무 강해서 뿌리치지 못했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프로듀서로서 아무런 주의도 주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밖에서 이러면 곤란해.“


 ”뭐 어때요. 조금쯤은 괜찮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 팬들이나 기자들이 어디서 보고 있을지 모르잖아.“


 ”저는 신경 안 쓰는걸요?“


 ”조금은...아니, 됐다.“


 하지만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코트를 골라준 것도 있고 하니, 너무 심하게 말할 생각은 없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을 것이다. 아이돌이라 해도 아직 중학생이다. 어리광부리고 싶을 나이긴 하다. 이런 사소한 투정도 받아주지 못한다면, 어른으로서의 모범이 되지 못하리라.


 양팔에 많은 짐들, 심지어 츠바사가 달라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몸이 가벼워지는 것은 기분 탓이리라. 



5.


 가을이 끝날 무렵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 바야흐로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았다. 이렇게 하늘을 바라본 것도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심하면 다음 날 새벽까지. 사무소에서의 서류 작업과 외부 영업으로 점철된 프로듀서의 삶은, 하늘은커녕 솔솔 불어오는 낙엽의 냄새마저 느끼지 못한다.


 그렇기에, 이런 업무를 가장한 휴식은 프로듀서에게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용한 가을 하늘 아래, 낙엽 흩날리는 공원을 걸으며,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고 싶었다.


 그의 옆에 붙어있는 담당 아이돌들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부키 츠바사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예상한 부분이다. 단둘이서 놀러 갈 거라고 섣부르게 확신하지 않았었다.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는 사적인 시간을 담당 아이돌과 단둘이서 보내지 않는다.


 정말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적어도 누군가의 바람을 최악의 경우로 만들어버리는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춥지 않고 선선한 날씨였기 때문에, 프로듀서가 코트를 입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골라준 옷을 입고, 같이 데이트하는 모습은 이 나이대 소녀가 동경하는 상황이 아닌가. 츠바사는 작은 실망감을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러나 조금, 아주 조금 실망했다고 해서 그의 옆에서 걷는 이 시간이 싫은 것은 결코 아니다. 어제 산 연노랑빛 후드 점퍼의 옷깃을 다듬으며, 츠바사는 슬그머니 프로듀서의 옆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저 앞에서 손을 흔들며 프로듀서를 부르는 키타카미 레이카 때문에 프로듀서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버리자, 그의 팔을 잡으려던 츠바사의 손은 허공을 잡게 되었다.


 다시 한번, 츠바사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나왔다.


 “프로듀서 씨~! 여기에요~♬”


 긴 흑발을 휘날리며 손을 붕붕 흔드는 키타카미 레이카에게서는 성인의 모습이라곤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깡충깡충 뛰는 것이, 마치 푸른 들판에 고삐 없이 뛰어나간 한 마리 새끼 염소와도 같았다.


 호기심 덩어리, 천방지축,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어른, 4차원.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키타카미 레이카의 모습은, 아마도 정확하게 그녀의 본 모습일 것이다.


 그런 레이카의 옆에서, 자그마한 자색 머리의 소녀가 곁눈질로 그를 훑고 있었다.


 모치즈키 안나. 항상 조용하고 얌전하지만, 무대 위에서는 누구보다도 정열적이고 힘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이런 외출에서까지 휴대용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것은 지양해 주었으면 한다. 프로듀서로서의 걱정은 물론이거니와 한 명의 사람으로서도 걱정스럽다.


 “알고 있어, 키타카미 씨. 조금만 천천히 가 주지 않을래?”


 “에이, 프로듀서 씨. 체력 좀 기르세요!”


 “......”


 농담이지? 그는 피식 웃었다. 혼자 쉰 하고도 두 명이 되는 아이돌과 두 명 사무원의 뒷바라지를 하는 그가 체력을 더 길러야 한다면, 세상의 어느 누가 멀쩡한 사람이겠는가.


 레이카 역시 그녀의 작은 말실수를 알아차리자 에헷, 혀를 살짝 내밀며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꽁, 때렸다.


 “농담이에요♬”


 아무렴, 농담이어야지. 천천히 레이카와 안나의 뒤를 따라가며, 그는 슬며시 자신의 뒤를 보았다.


 키타카미 레이카도 모치즈키 안나도 가끔은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히려 지금 가장 걱정되는 사람은 저 두 명이 아니었다.


 “세리카쨩~♪ 우후후, 이리 오렴♬”


 “네~에! 카오리 언니!”


 “어, 언니...언니...!”


 하코자키 세리카를 품 안에 꼬옥 껴안고, 언니라는 말에 기분이 고조된 듯,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저 사람이 가장 걱정이 된다.


 아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였을 줄은 몰랐다. 물론 저 감정이 세리카의 귀여움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데에서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을 마구잡이로 발산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여기는 공공장소다.


 세리카의 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는 것은, 아무래도 아이돌이 공공장소에서 하는 행동으로는 조금 부적절하지 않을까.


 세리카 역시 곤란한 표정으로 도움을 요청하듯 이쪽을 바라보았다.


 “저기, 사쿠라모리 씨.”


 “네, 프로듀서 씨? 지금 한창 좋을 때인데, 방해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


 정말로, 너무나도 걱정스럽다. 세리카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마치 작은 토끼를 손에 넣은 늑대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카오리의 텐션이 너무 올라가기 전에 세리카를 일단 떨어뜨려 놓는 것이 좋겠다. 그는 작은 한숨과 함께 세리카를 바라보며,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아 두 팔을 벌렸다.


 “자자, 세리카. 잠깐 이쪽으로 올래?”


 “아, 네! 프로듀서 씨!”


 그의 말에, 세리카는 카오리를 한번 꼬옥 안아준 뒤, 그녀의 품에서 빠져 나와 프로듀서에게로 도도도 달려갔다.


 사쿠라모리 카오리가 입맛을 쩝쩝 다시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애써 무시했다.


 카오리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녀와 프로듀서에 대한 세리카의 신뢰도와 애정 차이는 분명히 있다. 사쿠라모리 카오리가 친한 언니이자 사무소의 동료라면, 프로듀서는 세리카에게 있어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간 존재이기 때문이다.


 “에헤헤~.”


 방긋 웃으며 안겨드는 세리카를 한 손으로 안아 들고, 그는 앞서 걸어가고 있는 레이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저기, 키타카미 씨?”


 “네? 무슨 일이신가요, 프로듀서 씨?”


 레이카는 종종걸음으로 프로듀서에게 다가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으시면, 세리카를 좀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아...그런 거네요. 알겠어요♪”


 갑작스러운 프로듀서의 부탁에 레이카는 그와 카오리를 한번 번갈아 쳐다본 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리카쨩, 언니랑 놀까요?”


 “우우, 프로듀서 씨.”


 레이카가 손을 내밀었지만, 세리카는 프로듀서의 품에 안겨든 채로 살짝 볼을 부풀렸다. 의외의 반항에 그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세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착하지? 키타카미 씨랑 잠시 놀고 있을래?”


 “......”


 찰나의 순간이지만 세리카의 눈매가 가늘어지는 것을, 옆에 있던 레이카는 알아차렸다. 단순히 보호자나, 또는 친한 오빠를 보는 눈은 분명히 아니었다.


 하코자키 세리카는 조그맣고 귀엽지만, 분명히 중학생이다. 시호나 시즈카보다 고작해야 한 살 어릴 뿐이다. 프로듀서는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에, 하코자키 세리카는 프로듀서의 말을 잘 듣는다. 이내 방긋 웃는 얼굴로 프로듀서의 품 안에서 답했다.


 “네~에, 프로듀서 씨.”


 그러면서 은근슬쩍 프로듀서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어 어리광을 피우는 것은, 세리카를 비롯한 몇몇 아이들만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작은 특권이리라.


 부럽다, 이부키 츠바사는 중얼거렸다.


 하코자키 세리카와 이부키 츠바사는 고작 한 살 차이다. 둘 다 같은 중학생이다. 그러나 츠바사가 세라카 처럼 프로듀서에게 달라붙어 응석을 부려 봐야 어느 정도 선까지만 받아줄 것이며, 실제로도 그러했었다.


 하코자키 세리카가 하는 것처럼 프로듀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를 만끽하는 것은, 츠바사 본인이 이전처럼 기습적으로 달려들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게다가 다음번에는 프로듀서가 조금 더 강하게 밀어낼 것이 틀림없다.


 물론 이는 츠바사 또래의 카스가 미라이, 모가미 시즈카나 심지어 하코자키 세리카와 같은 나이인 에밀리 스튜어트나 후타미 자매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코자키 세리카를 비롯하여 스오우 모모코, 오오가미 타마키, 나카타니 이쿠 정도만 프로듀서가 어리광을 받아주는 것이다.


 짐작컨대, 아마도 프로듀서의 경계심을 푸는 데에는 단순히 나이 말고도 다른 몇 가지 요소가 필요한 것이리라.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아이 취급이다. 만약 프로듀서가 세리카를 아이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서 대했더라면ㅡ물론 실제로 그랬다가는 철창행을 면치 못하겠지만ㅡ지금 세리카가 하고 있는 것처럼 프로듀서를 꼬옥 안아준다거나, 그의 볼에 자신의 뺨을 부빈다거나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나 스캔들이 나는 것을 조심하며 아이돌과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으려 하는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는, 나이와 무관하게 아이돌들 대부분을 여성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듀서가 철저하게 공사를 구분한다는 뜻이며, 어느 정도까지만 어리광만 받아준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나마 이부키 츠바사를 비롯한 중학생 아이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며, 고등학생 이상, 특히 스무 살이 넘은 성인들의 경우는 어지간하면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약간의 질투 섞인 심술이라도 났으리라. 세리카가 레이카의 손을 잡고 프로듀서에게서 멀어지자, 츠바사는 살며시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그래, 츠바사?”


 프로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츠바사는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 천천히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술을 움직이려 했지만, 파르르 떨리기만 한 채, 잘 떨어지지 않았다.


 프로듀서의 뒤에서 카오리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 보였다. 츠바사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카오리는 아는 것이다.


 카오리 언니는 성인이니까, 츠바사는 생각했다. 성인이기 때문에, 자신보다 십 년 가까이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나름의 조언을 하는 것이다.


 상냥하니까. 상처받지 않게.


 “왜, 무슨 일이야?”


 여기에서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하면 끝난다. 사쿠라모리 카오리의 눈동자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정론이다. 분하지만 츠바사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는 없었다.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이기 때문에 작건 크건, 반드시 상처만이 남게 된다.


 그래도 입장이 반대였다면 말 하셨을 거잖아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츠바사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츠바사의 눈매가 가라앉는 것을 보자. 카오리는 그녀에게서 눈을 돌리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 눈동자에 조금이지만 강력한 거부감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 사무소에는 바보들밖에 없구나, 카오리는 자책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으......”


 “츠바사.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여. 혹시 어디 안 좋니?”


 이런 프로듀서의 쓸데없는 다정함이 좋다. 츠바사는 프로듀서의 옷깃을 잡던 손을 살그머니 그의 손으로 가져갔다. 프로듀서가 당황하여 손을 빼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츠바사가 강하게 잡고 있어 뿌리치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힘으로 중학생 소녀의 힘을 뿌리치지 못할 리가 없다.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매몰차게 그녀를 거부하면 츠바사에게 어떤 상처가 남을지 알고 있기에, 그는 강하게 거부하지 못한다.


 이부키 츠바사는 그런 프로듀서의 심리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조금은 영악하게, 소악마같이 작은 욕심 정도는 부려도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은 세리카와 고작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그 말이 주문처럼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항상 자신이 안겨들었지만, 한 번쯤은 프로듀서가 안아주는 것을 원한다. 결심한 얼굴로, 츠바사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있잖아요, 프로듀서 씨.”


 “......?”


 살며시 그를 올려보았다.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 십 대 초반이라기에는 요염함이 깃든 보석에, 프로듀서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아이다. 아직 미성년이며 정신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할 나이다. 그런 츠바사에게서 일순간이라지만 어른과도 같은 성숙함을 느낄 리가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


 “저도 세리카쨩처럼, 안아주면 안 될까요...?”


 그녀의 말에,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프로듀서의 눈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는 일류 프로듀서. 이러한 상황은 빈번하게 마주쳐 왔고, 그때마다 위기를 잘 넘겼다.


 솔직히 말해서 사무소 내부였다면 눈 딱 감고 한 번쯤 안아서 등이라도 토닥여 주어겠지만, 여기는 외부다.


 주말인 만큼 제법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공원의 대로에 북적이고 있었고, 나름 모자나 안경을 쓰고 변장을 했다지만 다섯 명의 아이돌들이 몰려다니면 누군가는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건수를 노리는 연예계 기자들이 없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바보 같은 일로 아이돌들의 주가를 떨어뜨리는 것은, 프로듀서로서 지양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그는 손을 들어 츠바사의 머리로 가져갔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건드리자, 츠바사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 몸을 움츠렸다. 발돋움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은 어린애다. 프로듀서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츠바사는 이제 다 컸잖아.”


 하지만 속마음을 내보이진 않았다. 그냥, 가만히 서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츠바사의 머리카락과 바보털을 살살 쓰다듬으며, 담담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죠, 역시?”


 츠바사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서운함을 애써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니까, 바보니까.


 “그러면, 오늘은 이걸로 만족할게요!”


 하지만 이부키 츠바사는 실망에 삼켜지지 않는다. 프로듀서에게 모든 주도권을 넘겨줄 생각은 없다. 밀어내거나 당겨본다는 선택지는 중학생 여자아이에게는 없는 선택지이다.


 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안 된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가자. 츠바사는 중얼거리며 프로듀서의 팔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그래도 이건, 뭐라고 하셔도 안 놓을 거니까요.”


 프로듀서가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원천차단해 버린다. 자신의 의지를 내보이려는 듯, 오히려 프로듀서에게 더 밀착하는 모습에, 옆에서 지켜보던 카오리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 아이가 일부러 가슴을 닿게 하고 있다는 것을 프로듀서는 알고 있을까. 분명 당혹스러운 얼굴이지만 부끄러운 얼굴은 아니다. 하여튼 둔감한 프로듀서다.


 “프로듀서...씨, 안나, 도...할래.”


 그리고 어느새 게임기를 집어넣은 모치즈키 안나가 츠바사의 반대편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말릴 새도 없이, 츠바사가 하던 대로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감았다.


 동료이지만 적이다. 적이지만 동료다. 저 앞에서 힐끗힐끗 이쪽을 쳐다보는 키타카미 레이카도, 그런 레이카에게 안겨서 가늘게 뜬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하코자키 세리카도, 쓴웃음을 짓고 있지만, 살짝 얼굴이 달아오른 사쿠라모리 카오리도.


 그리고 자신 못지않게 프로듀서의 팔을 꼭 껴안고 있는 모치즈키 안나까지.


 하지만 연적도, 우정도, 동료애도, 이부키 츠바사의 두근거림을 막아서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미라이나 시즈카에게는 말 못 하겠지, 츠바사는 자기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저기, 프로듀서 씨.”


 그래서 츠바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한다. 당혹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프로듀서의 손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듯 꼬옥 잡아끌었다.


 조금 더 특별한 관계가 되고 싶어, 그런 생각과 함께 츠바사는 바싹 마른 입을 간신히 열었다.


 “역시 프로듀서 씨가, 안아주면 안 될까요?”

4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