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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츠바사 블룸 (翼 Bloom)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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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06, 2021 16:40에 작성됨.

전작 : 토모카 트랩 (朋花 Trap)카오리 허밍(歌織 Humming)

읽으시면 좋지만 특별히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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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온한 날이기를 바란다. 프로듀서의 일과는 이 자그마한 바램과 함께 시작된다.


 그러나 그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은 1년 365일 중 며칠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사무소는 평소와 다름없이 바쁜 일상이었고, 업무량 역시 평소처럼 끝내주게 많았다.


 소파에는 언제나처럼 텐쿠바시 토모카가 앉아있었고, 바로 옆의 책상에서는 시즈카와 시호가 늘상 그렇듯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이를 말려야 할 다른 사무원들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한 명은 일이 아닌 것 같기는 하다.


 52명의 아이돌과 두 명의 사무원이 재직하는 프로덕션이라면, 좋건 싫건 자그마한 사건 사고 정도는 거의 매일 일어나는 법이다.


 주로 몇 명의 사고뭉치 아이돌들과 한 명의 사고뭉치 사무원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프로듀서 씨. 부탁하신 것, 여기 있어요.”


 아오바 미사키다. 정말 감사하게도 사고를 안 치는 사무원 쪽이다. 이런 인재가 765 프로덕션에 입사한 것은, 그에게 있어 행운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스케줄이 정리된 서류를 건네주는 손짓 하나하나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옆에서 떫은 표정으로 이쪽을 보는 오토나시 코토리가 그녀의 절반만 닮아 주었으면 한다.


 “아, 감사합니다, 아오바 씨.”


 그녀의 자상한 손끝으로부터 오늘 자 스케쥴표를 받아들고, 그는 서류를 눈으로 빠르게 훑어내려갔다. 일이 바빴을까, 프로듀서에게 서류를 건네주자마자 그녀는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눈을 힐끗 돌려보니, 아오바 미사키는 평소와 다름없는 해탈한 표정으로 재봉틀을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어째서 프로덕션 사무소, 그것도 업무용 책상에 재봉틀이 구비되어 있는지 신경이 쓰이지만, 모른 척 해 주는 것이 프로덕션의 암묵적인 룰이다.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분명 아키즈키 리츠코 아니면 사장님이 결재했을 것이다, 블랙 기업의 실태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런 아오바 미사키를 도와줘야 할 사무원 선배인 오토나시 코토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두 눈을 부릅뜨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모니터 화면에는 19금 동인지 판매 사이트가 열려 있다는 것을 프로듀서는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때로는 평화를 위해서 모른 척하는 것이 맞다. 물론 인사고과는 정직하다.


 리츠코가 외부 활동 때문에 이 자리에 없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토나시 씨. 제가 부탁드렸던 극장 무대 세트 변경안은 어떻게, 사장님 결재가 완료되었나요?“


 ”히익!? 프로듀서 씨! 그, 그게...저기, 사장님께서 부재중이셔서요.“


 ”......“


 제아무리 오토나시 코토리라 하더라도 공적인 일로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농땡이를 피우면 피웠지,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비즈니스 관계에서 치명적임을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체득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마침 765 프로덕션의 사장은 이틀 전부터 출장 때문에 부재중인 것이 맞다. 게다가 이 건이 아니더라도 오토나시 코토리를 괴롭힐 여지는 많다.


 절대로 업무시간에 동인지 판매 사이트 같은 걸 보고 있는 게 화가 나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공적인 영역이다, 그렇고말고.


 ”아, 그리고 지난주에 있었던 미니 라이브의 결산 보고서, 주시겠어요?“


 ”앗......“


 ”......“


 잠시, 코토리와 프로듀서간의 눈빛 교환이 일어났고, 그의 차분하다 못해 심연과도 같은 눈동자에 그녀는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눈을 슬그머니 돌렸다.


 ”오토나시 씨.“


 ”시,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어디의 악역 박사 같은 말을 하는 코토리에게, 그는 작은 한숨을 동봉하여 말했다.


 ”예산은 드릴 수 없고요, 시간은 오늘 자정까지. 저한테 메일로 보내주세요.“


 ”오, 오늘 자정까지요?! 시간이 너무 촉박ㅡ“


 ”라이브 일정이 끝난 지 벌써 일주일입니다. 제가 초안은 써서 드렸잖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가 오늘 내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오늘까지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충 어느 정도 진행이 되어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도 안 되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랬더라면 아키즈키 리츠코가 외부 활동같은 건 하지 않고, 오토나시 코토리의 옆에 찰싹 붙어 있었을 것이다.


 ”넵......“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코토리가 대답했고, 그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그 광경을 보던 아오바 미사키는 쓴웃음을 지었고, 이 회사의 연봉정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이어 걸려온 전화에,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프로듀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서 씨. 잠시 괜찮으세요?“


 ”무슨 일인가요?“


 ”그, 저기, 그게ㅡ“


 처음 겪어보는 일에, 그녀는 섣불리 입을 떼지 못했다.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적당히 둘러대야 하나, 혹여 자신이 잘못 말을 하면, 프로듀서나 다른 아이돌에게 폐가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자신이 고민하는 만큼 프로듀서의 시간을 빼앗는 일이 된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츠바사쨩이 레슨에 안 왔다고......“


 ”아, 그래요?“


 ”.....네?“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덤덤한 얼굴로 대답하는 프로듀서의 태도에, 오히려 아오바 미사키가 동그랗게 치켜뜬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런 미사키의 얼굴을 본 프로듀서는 자기도 모르게 픽, 실소를 흘렸다. 그러다가 부끄러움으로 점점 빨갛게 물들어가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상습범이거든요.“


 ”그런가요? 저는 한 번도 보지 못 했었는데...“


 ”보통 저한테 직접 전화가 오거든요. 이번에는 못 받아서 사무실로 전화가 온 것 같네요.“


 ”아하하......“


 그녀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야, 별 일 아니잖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


 ”한번 따끔하게 혼내둬야 할까.“


 그가 어두운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아오바 미사키는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화를 내는 프로듀서의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평소에 화를 안 내는 사람이 한번 화나면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보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그늘진 얼굴도 잠시, 그는 이내 평소처럼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미사키에게 말했다.


 ”저는 잠시 이부키를 찾아 올 테니까, 죄송하지만 잠시 사무소를 부탁드릴게요.“


 츠바사가 아닌, 그답지 않게 이부키라고 부르는 점이 그가 조금은 화가 나 있음을 반증한다.


 ”네? 앗, 네에, 알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뭘 부탁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근면성실한 사무원답게 공손히 대답했다. 그가 눈짓으로 오토나시 코토리의 컴퓨터를 가리키는 것은 쓴웃음으로 받아넘겼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오바 씨.“


 싱긋 웃으며 말한 뒤, 그는 재빨리 정장 외투를 걸쳐입고 지갑과 휴대폰을 챙겼다. 그리고 의외로 곧바로 사무소를 나가지 않고, 아직 말다툼을 하고 있는 두 아이돌의 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가 뒤로 다가온것도 모른 채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두 명의 어깨에, 그는 살그머니 손을 올려놓았다. 키타자와 시호도 모가미 시즈카도 갑작스러운 무게감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익숙한 손길임을 깨닫고 어깨에 힘을 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두 사람에게 그가 뭐라뭐라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조금 거리가 있어 명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아오바 미사키가 듣기에는 화를 내거나 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리고 말이 끝나자 그는 두 명의 머리를 한번 살살 쓰다듬어 준 뒤, 그 길로 사무소 문을 열고 나갔다. 거짓말같이 말다툼은 멎었고, 조금 퉁명스러운 표정만이 그녀들에게 남아있었다. 별 것 아닌 것이다.


 평온한 날이기를 바란다, 아오바 미사키는 중얼거렸다.



2.


 책상 위에 한 대의 캠코더가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사무실 내의 상황을 녹화하고 있는 그것의 소유자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곁눈질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오토나시 코토리의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모니터를 향하지 않았다.


 그런 선배의 나태한 모습에 아오바 미사키는 쓴웃음을 흘렸다.


 존경할만한 구석이 없는 선배이건만, 이상하게도 이런 모습을 보면 자그마한 존경심이 든다. 이유를 모르겠다는 점이 서글프다.


 프로듀서가 사무실을 나선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의 문이 열렸고, 프로듀서가 피곤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뾰루퉁한 얼굴의 아이돌, 이부키 츠바사가 입을 비쭉 내밀고 있었다.


 찰칵, 하는 경첩 소리에 텐쿠바시 토모카가 문쪽을 한번 슬쩍 쳐다보았다. 그리고 프로듀서와 그의 옆에 있는 이부키 츠바사를 한번 보더니, 앗, 하고 그로부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아예 프로듀서의 자리가 안 보이는 쪽에 앉아버리는 것이, 뭔가 보기 싫은 일이 생길 것을 직감한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키타자와 시호와 모가미 시즈카 역시 슬그머니 토모카의 옆자리로 움직였다. 평소라면 서로 기싸움이라도 했을 사춘기 여중생들이지만, 프로듀서의 분위기를 읽었을까, 얌전히 옆자리를 내주고 앉았다.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 순간, 오토나시 코토리는 자신의 귀중한 캠코더를 재빠르게 세팅했었다. 빛보다도 빠른 속도였기 때문에 아오바 미사키는 그녀의 선배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부키.“


 그의 업무용 의자에 앉아, 프로듀서는 그의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이부키 츠바사를 보았다. 그녀 특유의 바보털은 한풀 꺾인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게 그녀를 지칭하는 프로듀서의 말투가 굉장히 딱딱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아이돌들을 이름으로 불렀던 만큼, 그가 구태여 성씨를 부른다는 점은 화가 났기 때문이다, 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화를 적당히 갈무리하여 분출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의 배려이자 성격일 것이다.


 이부키 츠바사가 아무리 천방지축 중학생 소녀라 해도, 최소한 그녀의 담당 프로듀서가 조금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그래서 평소처럼 그를 대하지 못하고 조금 주뻣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아주 귀중한 이부키 츠바사의 모습이다. 눈치없는 오토나시 코토리의 입가에 주르륵 침이 흘러내렸다.


 ”...그래, 이번에도 지루해서니?“


 뭔가 다른 말을 하려던 것 같았지만, 이내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츠바사를 보았다. 조금이지만 그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제아무리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하더라도, 소중한 담당 아이돌에게 드러내놓고 화를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눈치 빠르게 이를 알아차린 츠바사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게, 매번 똑같은 것만 반복하구요~.“


 ”......“


 ”요즈음엔 프로듀서 씨가 보러 와 주시지도 않으시잖아요. 흥흥.“


 츠바사의 말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담당하는 아이돌의 수가 늘어가면서, 개개인에게 더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점은 분명히 있다.


 츠바사는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비단 츠바사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빼꼼, 소파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쪽을 보기 시작한 모가미 시즈카의 태도가 그 증거이리라.


 물론 이부키 츠바사가 레슨을 빼먹고 근처의 백화점으로 놀러 간 것은 당연히 잘못된 행동이었지만, 그만큼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프로듀서의 책임도 아주 작은 부분이지만 있었다.


 보통이라면 신경조차 쓰지 않고,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정도의 책임이지만, 765 프로덕션의 프로듀서라는 사람은 이 조그만 의무감을 대범하게 넘길만한 위인이 되지 못했다.


 바쁜 나날이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어 레슨을 참관해야겠다, 그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에~, 말로만 그러시는 거죠?“


 이렇게 이부키 츠바사 특유의 헤실거림을 더하여 말하면,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다. 어째서인지 이쪽이 잘못한 모양새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한숨을 내쉬며 그는 입을 열었다.


 ”한번 시간 내 볼테니, 이제부터라도 레슨을 조금 더 성실하게ㅡ“


 ”얏호-!! 프로듀서 씨 정말 좋아~!“


 하지만 그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에잇!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가슴께에 폭신한 감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옆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코피를 쏟는 기분이 들었다.


 목 옆으로 한 쌍의 팔이 쑤욱 나와서 그를 감싸안았고,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그의 허리를 강타했다.


 ”컥.“


 무겁다, 는 단어는 어떻게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등에 느껴지는 중량보다 그를 두렵게 만든 것은 눈앞에 놓인 서류를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었다.


 ”에헤헤~프로듀서 씨.“


 야수는 사냥감의 목을 물어뜯을 때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수, 숨 막히니까 일단 떨어져 줄래?“


 ”에에~, 재미없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 강하게 제지하자 츠바사는 아쉬운 표정으로 그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사무소 문이 힘차게 열리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녀왔습니다~! 프로듀서 씨!“


 ”카스가 씨. 레슨 아직 안 끝났습니다.“


 ”자자, 안나쨩도 그렇게 시무룩한 얼굴 하지 말고.“


 ”유리코 씨...귀찮아.“


 ”엑.“


 카스가 미라이를 비롯한 네 명의 아이돌들이 기운찬 표정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그는 눈을 돌려 시계를 힐끗 쳐다보았고, 레슨 중간의 자그마한 휴식 시간임을 알아차렸다.


 ”얼레, 츠바사? 여기에 있었어?“


 프로듀서 앞에 서 있는 츠바사를 보았는지, 미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이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왜 없었지, 그 의문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으리라. 미라이답다면 미라이다운 생각이다.


 ”헤헷, 걸려버렸어.“


 츠바사는 혀를 날름 내밀며 배시시 웃었다. 이 녀석, 아무리 그래도 혼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 아닌가. 그는 한쪽 입꼬리가 부들거리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카스가 씨, 이부키 씨는 레슨을 빼먹다가 프로듀서 씨께 잡혀온 겁니다.“


 ”아-, 그렇구나.“


 조금 엄한 표정의 프로듀서,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있는 아오바 미사키, 이 상황을 녹화하고 있는 오토나시 코토리, 그리고 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세 명의 아이돌.


 역시나 마카베 미즈키답게 사무소의 분위기만으로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특히나 저 세 명의 아이돌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어색함을 풍기고 있었다. 그렇겠지, 어느 정도 친분은 있다지만 큰 접점이 있던 아이들은 아니기에, 의외로 말을 섞기 어려운 것이리라.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카스가 미라이와 마카베 미즈키의 출현이 그 세 명의 어색한 분위기를 멈추게 했다. 시즈카는 미라이에게, 시호는 미즈키에게 각각 시선을 돌렸고, 서로를 한번 보더니 흥, 하고 고개를 휙 돌리며 미라이와 미즈키에게 다가갔다.


 본의 아니게 홀로 남겨진 텐쿠바시 토모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탁자 위의 책을 집었다.


 ”어서 와, 미라이.“


 ”데헤헤~시즈카 쨩! 오늘 스케쥴 있어?“


 ”아니. 레슨 때문에 왔어.“


 시즈카가 차분하게 미라이를 맞아주었고, 덕분에 미라이의 시선을 프로듀서로부터 돌릴 수 있었다. 업무가 꽤 많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아주 고마운 현상이다.


 안나와 유리코는 언제나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핏 들으니 새로운 게임에 관한 이야기다. 나도 게임 하고 싶다, 그는 작게 투덜거렸다.


 마카베 미즈키는 프로듀서를 한번 보더니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쌓여 있는 서류 더미와, 그 앞에서 주삣거리는 이부키 츠바사를 보고 방해하면 안 된다, 라는 사실을 기특하게도 깨달아 준 것이다.


 연장자가 괜히 연장자가 아니다. 마카베 미즈키의 혜안에 그는 엷은 미소로 화답했다.


 ”마카베 씨.“


 ”아, 키타자와 씨.“


 ”아직 레슨이 끝나지 않으셨는데 죄송하지만, 잠시 이야기 가능할까요.“


 ”네. 무슨 일인가요?“


 ”프로듀서 씨께서 새로운 유닛을 제안하셔서요.“


 ”그거, 흥미롭네요.“


 그리고 다행히 미즈키에게도 이야기할 상대가 있던 모양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시라이시 츠무기도 불러 두는 건데, 라고 내심 생각했다.


 그런 여러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어서인지, 이부키 츠바사가 입맛을 다시며 무시무시한 눈동자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츠바사를 질책하던 와중임을 깨닫고, 한마디 따끔하게 이야기하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으로 츠바사에게 시선을 되돌리던 찰나.


 ”저도 봐달라구요, 프로듀서 씨~!“


 다시 한번 온몸의 체중을 싣고 전력으로 그에게 안겨들어오는 이부키 츠바사를, 당연하게도 그는 막을 수 없었다.


 공교롭게도 양팔이 벌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밀어내지도 못했고, 결과적으로 츠바사는 그녀가 원하던 만큼이나 완벽하게 프로듀서를 껴안을 수 있었다.


 ”츠바사, 너...“


 ”헤헤, 프로듀서 씨. 얼굴, 빨-갛다구요?“


 그거야 당연히, 아무리 중학생이라지만 중학생답지 않은 몸매의 소유자가 이렇게 밀착해 있으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


 ”......“


 하지만 그런 당황은 한순간이었고,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을 느낀 그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사무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이쪽을 쳐다보는 눈동자가 다섯. 문을 막 열고 들어오는 시선이 두 개 더 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시선은 모가미 시즈카. 미라이와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눈동자는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그 옆에서 새로운 유닛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마카베 미즈키와 키타자와 시호. 서로 하던 말을 멈추고 차분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상당히 무섭다고 그는 생각했다.


 조금 떨어진 소파에서 휴대용 게임기를 가지고 놀던 모치즈키 안나와 나나오 유리코 역시 하던 게임을 멈추고 웃는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유리코도 유리코지만, 차분한 얼굴로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평상시의 안나 답지 않다.


 그리고 막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오던 키사라기 치하야와 호시이 미키. 드문 조합이다, 라고 프로듀서는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듀서에게 매달려 있는 츠바사를 보는 두 명의 눈동자는, 앞선 다섯 명을 모두 합친 것 만큼이나 그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치하야 스파이럴은 안 된다. 미키가 또다시 탈주하면 안 된다. 그 생각들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따가움에 조용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프로듀ㅡ“


 ”허니? 뭐 하고 있는 거야?“


 치하야가 그를 부르려는 찰나, 미키가 한발 빠르게 끼어들었다. 분명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한 자루 날카로운 비수같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미키. 그게 말인데ㅡ“


 그 짧은 순간 동안 프로듀서는 그의 모든 지능을 총동원해 머리를 굴렸다. 프로듀서로서의 신뢰도 지키면서, 츠바사와 다른 아이들 간의 관계 또한 지킬 수 있는 한 마디가 필요하다.


 물론, 그런 말이 있을 리 없다. 한쪽이 희생해야 한다면 아이돌이 아닌 프로듀서여야 할 것이다. 각오를 다진 뒤, 그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려 했지만.


 ”야호! 미-키 선배~!“


 츠바사가 한발 빠르게 그에게서 떨어져 도도도, 미키에게 달려갔다. 예상외의 반응에 다른 아이돌들은 물론이거니와 당사자인 미키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츠바사를 보았다.


 하지만 츠바사는 그런 미키의 표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빠르게 미키에게 안겨들었다.


 ”오랜만이잖아요, 미키 선배!“


 ”오, 오랜만이라니, 분명 이틀 전에 같이 레슨 받은 거야!“


 ”에에~, 24시간 이상 못 봤잖아요.“


 ”츠바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 거야.“


 그러면서 자신에게 부비적거리는 츠바사의 뺨을 주욱 잡으며 떨어뜨리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츠바사는 더욱더 달라붙는 것이, 그 호시이 미키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 정도였다.


 ”츠바사, 너무 달라붙는 거야.“


 ”에이~, 뭐 어때요. 저희 사이에.


 “아무런 사이도 아닌 거야.”


 ”그렇다기엔 미키 선배, 질투했잖아요.“


 ”......“


 맞는 말이지만 맞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 질투는 했지만 프로듀서에게 질투를 느낀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자신에게 달라붙고 있는 상대는 눈치도 없단 말인가, 저절로 작은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전의 호시이 미키라면 이 상황에서 짜증이나 분노를 표출했겠지만, 지금의 미키는 그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달라붙는 츠바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살짝 밀어냈다.


 ”츠바사. 허니가 일하는데 방해하면 안 되는 거야.“


 ”그래도오~, 조금쯤은 괜찮잖아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히잉.“


 뺨을 살짝 부풀리며 츠바사는 프로듀서를 보았다.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것이 풀죽은 강아지를 연상시켰지만, 그는 일부러 못 본 척하며 서류 작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풀이 죽어 있는 강아지라도 결국은 강아지다. 그녀의 바보털이 슬며시 흔들리나 싶더니, 미키가 말릴 새도 없이 쪼르르 프로듀서 곁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프로듀서의 옆에서 히죽, 웃으며 말했다.


 ”프-로듀서 씨. 한 번만 더 안아봐도 괜찮을까요?“


 ”......“


 한두번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일까, 츠바사는 그의 앞에서 무릎을 조금 굽히고 눈을 치켜뜨며 살그머니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하면 못 본 체를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츠바사를 안아주거나 한다면, 안 그래도 싸늘한 실내의 공기가 영하로 내려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응석을 받아주는 것도 좋지만, 츠바사에게 끌려다니기만 하는 것도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조금 떨어진 옆자리에는 사무원인 오토나시 코토리와 아오바 미사키도 있다. 아키즈키 리츠코가 외부 활동으로 이 자리에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지만, 마냥 받아주는 것도 프로듀서의 입장상 곤란하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츠바사의 눈을 보니 쉽게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조금 강하게 나가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 것이다, 그렇게 마음먹고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안 돼.“


 ”에, 오늘 프로듀서 씨 매정해요!“


 매정한 건 내일까지 다음 라이브 계획서를 작성해서 올리라는 사장님과, 크게 중요하지 않은 계약 문제 때문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있는 모 회사와, 그리고 부조리함으로 가득찬 이 사회란다. 그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츠바사를 보았다.


 하지만 이부키 츠바사는 그녀의 대단히 성숙해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중학생이다. 교복을 입으며 학교에 다닐 나이이고, 그 또래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타인의 기분을 헤아리거나 배려하는 것에 서툰 편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부탁해 봐. 미라이라거나ㅡ“


 ”프로듀서 씨가 아니면 안 되니까요.“


 헤실거리며 말했지만 무서운 말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자각이 있는지 궁금할 정도다. 이부키 츠바사라는 소녀는 직설적으로 부딪쳐 오기 때문에 더더욱 두렵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하지만 전, 프로듀서 씨라면 정말로 괜찮은걸요.“


 ”......“


 그렇게 말해버리면 다른 아이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된다. 그는 마음속으로 한탄했다. 이 프로덕션은 평온하게 굴러가는 날이 없다.


 프로듀서가 예상한 대로 미키와 치하야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시호와 미즈키도, 안나와 유리코도, 그리고 시즈카와 미라이 역시 무서우리만치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츠바사를 응시했다.


 그러다 문득, 츠바사를 바라본 프로듀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찰나였지만, 그 붉은 색의 눈동자에서 한순간 강한 의지가 엿보였고, 분명히 츠바사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것인지 혹은 계획된 도발인지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전자이지 않을까 추측했다.


 그렇다면, 그가 이 상황의 주도권을 잡지 않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기분을 조금 상하게 하더라도 그녀를 자신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다.


 이부키 츠바사는 착한 아이지만, 동시에 본능적인 소악마다. 분명 자신은 최근 들어 아이돌들에게 단호하게 선을 그어버리는 언행을 자제하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녀 간의 문제가 아닌, 츠바사가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그는 츠바사의 머리를 톡톡 토닥이며 말했다.


 ”내가 괜찮아도 너의 팬분들이 안 괜찮을 거야. 프로라면 남들이 보건, 그렇지 않건 올바르게 행동해야지.“


 이렇게 말하면 보통 키사라기 치하야는 납득할 것이고, 텐쿠바시 토모카는 납득은 하지만 토라질 것이며, 사쿠라모리 카오리는 머리로는 납득했겠지만 분명 논리적으로 따질 것이고, 다나카 코토하라면 납득 하지도 못한 채 조곤조곤 따지고 들 것이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아는 이부키 츠바사라면, 조금 토라진 티는 내겠지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조금 투덜거리겠지만, 그것을 크게 문제 삼을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츠바사 뒤편에서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미키를 본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호시이 미키라면 그런 일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미키적으로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인거야, 그녀가 중얼거리는 것만 같았다.


 시어터 소속 아이들 중에서 가장 미키와 닮았나 싶은 아이다. 아이돌의 재능도, 레슨을 걸핏하면 땡땡이치는 일도, 그리고 프로듀서에게 능글맞게 달라붙는 행동 등등이 그렇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부키 츠바사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흐응~.“


 그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괜스레 달라진 츠바사의 분위기에서 프로듀서는 자그마한 불안감을 느꼈다.


 ”저기, 프로듀서 씨는ㅡ“


 히죽 웃으며 말하는 것이 희생양을 발견한 작은 악마와도 같았다. 사건과 파란의 예감이다. 그리고 그의 직감은 의외로 정확하다.


 츠바사는 그녀 특유의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를 응시했다.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눈동자에 한순간 그녀가 요염하다, 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떨쳐버렸다.


 중학생이다. 열 살도 넘게 차이가 난다. 어른스럽게 대우는 해줄 수 있을지언정 그런 눈으로 볼 수도 없거니와 봐서도 안 된다.


 하지만 호시이 미키가 그러한 것처럼 이부키 츠바사 역시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마성이라는 이름의 무언가가 있다. 방심하면 잡아먹히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가 싫어요?“


 이것 봐라. 그는 작게 실소를 흘렸다.


 애처로운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면, 제아무리 마음 단단히 먹은 프로듀서라도 살짝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 귀여운 생물은 뭐란 말인가.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다. 이부키 츠바사가 아이돌로서 프로인 것처럼 그는 프로듀서로서 프로다. 살짝 흔들렸던 이성은 이미 제자리를 되찾았고,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고 츠바사를 보았다.


 ”765 프로덕션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


 그의 말에, 츠바사를 포함한 다른 아이돌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졌다. 미키만 조금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지만, 역시나 바보털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싫은 기분은 아니다.


 ”그러며언~, 조금 달라붙어도 괜찮지 않아요?“


 ”그건 별개의 이야기...앗, 잠깐!?“


 프로듀서가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츠바사가 기습적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원체 순식간에 일어나버린 터라, 그녀가 파고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에헤헤, 헤헤헤.“


 ”......“


 주변의 시선이 무섭다. 그러나 이부키 츠바사는 알고도 무시하는 건지, 모르는 것인지 고양이처럼 갸르릉거리며 한껏 그를 즐겼다.


 이대로 밀어내는 것은 간단하다. 중학생 여자아이가 성인 남성의 힘을 이길 수는 없다. 게다가 프로듀서는 이부키 츠바사의 상사이기 때문에 권력도 우위에 있다. 그가 원한다면 츠바사를 잠시 떼어놓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순간에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릴 생각은 없다. 물론, 이대로 츠바사를 방치할 수도 없다.


 타자를 두드리던 손을 잠시 멈추고, 츠바사의 목덜미에 손을 올려놓았다.


 ”햐앗-?!“


 일순간 츠바사가 움찔, 몸을 떨었지만 이내 만족스러운 얼굴로 프로듀서의 허벅지에 머리를 올려놓고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역시 작은 한숨과 함께 츠바사를 보았다.


 ”만족했으면 좀 일어나 주지 않을래?“


 ”만족 못 했다면요?“


 ”그래도 일어나 주면 좋겠어. 오늘도 야근하고 싶진 않아.“


 ”뭐어, 어쩔 수 없네요. 헤헷. 아, 이거 좋아요, 좋아...읏!“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츠바사는 슬그머니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어쩔 수 없다, 그는 작게 투덜거렸다. 중학생의 어리광치고는 굉장히 대담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 봐야 중학생이다. 열 살도 넘게 차이가 나기에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어른이라면 적당히 받아 줄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나중에 한마디 경고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며 오른손으로 츠바사를 살포시 껴안았다. 천천히 그녀의 동그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살며시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만 밀어냈다.


 그리고, 차갑고 무시무시한 시선ㅡ특히 텐쿠바시 토모카의 시선ㅡ을 애써 무시하며, 츠바사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자자, 레슨 가야지.“


 하지만 츠바사의 얼굴은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잘 익은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뿔싸, 몸이 살짝 떨리고 있는 모양새다. 사춘기 소녀에겐 조금 과한 행동이었나 싶다.


 천천히 그에게서 얼굴을 떨어뜨리고 얌전히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이, 그 불안감에 작은 확신을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대담하게 들이대는 소녀라 해도, 결국 중학생이다. 남자에 대한 면역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조금 과한 스킨십이었던 것이리라.


 이부키 츠바사가 충격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고향의 법은 속인주의다. 한순간에 성희롱, 성추행, 고발, 해고, 재판, 빨간 줄, 등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지만, 가까스로 내색하지 않았다.


 ”으...네, 넵, 그, 실례...했습니다.“


 ”......?“


 돌발행동보다 더 돌발행동 같은 츠바사의 말에, 프로듀서는 물론이거니와 츠바사에게 눈총을 보내던 다른 아이돌들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히려 요염하게 웃으며 목을 끌어안으며 부비적거리면 부비적거렸지, 이렇게 얌전하게 물러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츠바사?“


 ”......“


 프로듀서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불러보았지만, 츠바사는 천천히 문 쪽으로 뒷걸음질을 칠 뿐이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손이 문에 닿는 순간,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후다닥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잠깐만, 츠바사?!“


 황급히 뒤쫓아가려 했지만, 어느새 다른 아이돌이 문을 가로막았기 때문에 나갈 수는 없었다. 모치즈키 안나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이 문을 통과시켜 줄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프로듀서 씨, 츠바사는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카스가 미라이가 말렸고, 연이어서 마카베 미즈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 프로듀서 씨께서는 안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확실히 찾아서 징벌...아니, 잘 달래 볼 테니까요!“


 ”......“


 나나오 유리코의 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모두가 츠바사의 동료다. 더군다나 츠바사가 자신을 피하는 모습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알기 전까지는 섣부르게 행동하는 것은 금물이다.


 신중하게 접근하자, 그는 생각하며 아이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맡겨 둘게.“


 ”물론이죠, 프로듀서 씨.“


 ‘이예이-!’ 하고 카스가 미라이가 외치는 것을 필두로, 네 명의 소녀들이 폭풍처럼 우르르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얼떨결에 남겨진 프로듀서는 작게 한숨을 쉬며 그의 팔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


 벌써 홀아비 향이라도 나는 것인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 보았지만, 자신의 체취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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