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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의 날개. -제1장, 직접 만든 무도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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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9, 2021 01:16에 작성됨.

[도쿄 스이게츠 학원 중등부 학생회실 ------ 모가미 시즈카]


“모가미, 잘 가! 다음 주에 봐!”

“응. 주말 잘 보내, 나오미.”


  같은 반 친구이자 학생회 동료인 나오미와 인사를 나눈 뒤, 시즈카는 시계를 확인하고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 회의가 예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이미 고등부의 수업이 끝나는 시간을 훌쩍 넘긴 뒤였다.

  황급히 신발을 갈아 신고 현관을 뛰쳐나온 시즈카는 예상외의 광경에 깜짝 놀랐다. 교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시즈카는 교문으로 걸음을 옮기다 말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인파 가운데에서 벤치에 앉아 태연히 기타를 치고 있는 줄리아를 발견했다.


“줄리아 선배?!”

“음?”


  줄리아는 시즈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더니 기타 연주를 멈추고 오른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


“여어, 시즈.”

“‘여어, 시즈’가 아니잖아요! 뭐 하고 계신 거예요?!”

“네가 늦길래 잠깐 기타를... 우와?! 뭐야, 이 인파?!”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줄리아는 그제야 주변에 모여 있는 인파를 알아챘는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털털하게 웃더니 주변의 아이들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줄리아 선배, 엄청 멋있었어요!”

“선배, 올해도 스이게츠제에 나오시는 거죠?”

“들어줘서 고마워. 올해 축제는... 잘 모르겠네. 바빠질 것 같아서.”

“...”


  줄리아는 환호하는 주변의 중등부 아이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해주었다. 시즈카는 그런 줄리아를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모여 있던 인파가 어느 정도 해산되고 나자, 줄리아는 기타를 케이스에 넣어 등에 메고 시즈카에게 싱긋 웃어보였다.


“갈까, 시즈?”

“늦어서 죄송하다고 하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으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오늘은 남는 게 시간이니까. 아하하. 그래서, 오늘은 학생회 때문에 늦은 거야?”

“네. 3학기도 이제 끝이니까, 마무리 지을 게 많아서요.”

“골치 아프네. 학생회 같은 거.”

“나름 보람도 있어요. 좋은 경력이기도 하고요.”


  그 후로 두 소녀는 최근의 학교생활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거닐었다. 시즈카가 중등부 1학년, 줄리아가 중등부 3학년이었던 때에는 가끔 마주칠 때마다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지만, 줄리아가 고등부로 진학한 이후에는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마주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시즈카는 자신의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줄리아를 바라보며 문득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왠지 즐겁다는 생각이 들어 쿡쿡 하고 웃었다.


“후후.”

“왜 그래, 시즈? 뜬금없이.”

“조금 전 일을 생각하니까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요. 줄리아 선배, 처음 전학 오자마자 전교에서 엄청 유명해졌잖아요.”

“언제 적 이야기야...”


  줄리아는 재작년에 후쿠오카에서 전학을 오자마자 단숨에 스이게츠 학원의 유명인사가 됐다. 본명은 아니었지만 일단 줄리아라는 이름 자체가 너무 튀었던 데다, 얼마 뒤에 있었던 교내 서머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기타 솔로의 임팩트 때문이었다. 

  시즈카가 줄리아에게 처음 말을 걸어본 것도 그 공연 직후였다. 다시 떠올려 봐도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즈카는 다짜고짜 3학년 교실로 찾아가 줄리아를 불러냈다. 처음에는 줄리아도 굉장히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음악을 좋아해서 공연을 감명 깊게 봤다는 시즈카에 말에 금방 풀리던 줄리아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는 시즈도 지금보다 엄청 뻣뻣했지~ 추억이네.”

“뻣뻣하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흠흠.”


  줄리아는 시즈카의 질문에 갑자기 목을 가다듬더니, 거의 기어들어가는 얇은 목소리로 시즈카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저기, 줄리아 선배...!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잠깐 괜찮으실까요...?”

“그,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요?! 과장하지 말아주세요!”

“아하하, 이것도 많이 순화한 건데.”

“정말...”


  그렇게 추억을 떠올리며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새 둘은 전에 자주 가던 우동 가게 앞에 도착해 있었다. 어제 시어터에서 마주친 이후로 아이돌 활동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오랜만에 저녁 약속을 잡게 된 것이다.


“키츠네 하나, 부탁드립니다.”

“저도 같은 걸로.”


  자리를 잡고 주문을 마친 줄리아는 물을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을 꺼냈다.


“안 온 사이에 인테리어가 이것저것 바뀐 것 같네.”

“그런가요? 저는 워낙 자주 와서 잘 모르겠던데.”

“시즈, 마지막으로 왔던 게 언제야?”

“으음... 그저께?”

“...”


  줄리아는 왠지 질린 듯한 표정으로 시즈카를 바라보았다. 시즈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받아쳤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이번에는 시즈카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줄리아 선배도 시어터 조의 아이돌인 거죠?”

“응? 응. 어쩌다 보니.”

“선배는 아이돌보다는 록 밴드 쪽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뭐... 그것도 사정이 좀 있긴 하지만.”

“사정이라면...?”

“말하자면 긴데, 듣고 싶어? 이야기해줘?”

“네. 듣고 싶어요.”

“흐음, 어디 보자...”


  줄리아는 마치 전래동화를 떠올리는 부모님처럼 손을 턱에 가져다대고 뜸을 들였다. 시즈카는 왠지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런 줄리아를 바라보았다.

  한 5초 정도가 지났을까, 줄리아는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버스킹을 하다가 하세가와 미유키라는 사람한테 스카우트 당했어. 끝.”

“네?! 긴 이야기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뜸 들여 놓고는...”

“그렇게까지 실망할 건 없잖아.”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해 주실 줄 알았다고요. 실망이에요, 줄리아 선배.”


  시즈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줄리아를 쳐다보았다. 시즈카의 입장에서는 록 밴드를 지망하다 아이돌로 진로를 변경하게 된 깊은 사연이라던가, 톱 아이돌을 노리는 각오라던가, 음악에 대한 신념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정작 기대에 비해 너무나도 싱거운 이야기였기에 실망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줄리아는 뾰로통해진 시즈카를 무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이상한 데서 진지해진다니까, 시즈.”

“...비웃지 말아주세요.”

“사실 더 이야기해주고 싶어도 특별한 이야기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더 해보자면...”


  줄리아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시즈카는 다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줄리아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와서 명함을 내밀더니 ‘신인 발굴 프로젝트가 있는데, 함께해보지 않을래?’같은 소리를 하길래, 오디션을 보는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서 신청했어. 사실 오디션을 볼 때까지만 해도 아이돌을 뽑는지 몰랐거든. 프로듀서도 아이돌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안 했고, 공고문에도 신인이라고만 써놨지, 아이돌이라는 얘기는 없었으니까.”

“아, 그러면 혹시 지금도 아이돌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신 거예요?”

“아니. 처음에는 당황하긴 했어. 아이돌이라니 갑자기 뭔 소린가 싶기도 했고.”

“그렇겠네요. 록 가수랑 아이돌은 꽤나 다른 분야니까...”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어쩌면 그렇게 단정 지을 것까지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네? 그건 무슨 뜻이에요?”


  줄리아는 컵을 가볍게 두드리며 시즈카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이돌이라는 거, 뭔가 딱 정해진 건 아니잖아. 아이돌은 무조건 이래야 된다, 라던가.”


  시즈카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지망하고, 자신이 동경하는 아이돌이란 뭐였을까. 스테이지에서 빛나던 모습,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는 모습, 누군가에게 꿈이 되어주는 모습. 확실히 그런 모습들에 정형화된 틀은 없었다.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스타일은 있을지 몰라도, 각각의 아이돌들이 명확한 개성으로 어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765프로의 선배들만 보더라도 키사라기 치하야 같은 보컬 타입, 가나하 히비키 같은 댄스 타입, 호시이 미키 같은 비주얼 타입으로 각자 가장 강한 분야가 명확하게 나뉘어 있었다. 다른 연예기획사로 범위를 넓힌다면 더 개성적인 컨셉을 지닌 아이돌들도 많았다.

  한편, 줄리아는 시즈카의 눈치를 살피더니 말을 이어갔다.


“프로듀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고. 아이돌다움은 정해진 법칙 같은 게 아니니까, 록이 강점이라면 그걸 어필해도 좋을 거라고.”

“확실히... 그러네요.”


  시즈카는 기억을 더듬어 록 음악과 관련된 컨셉을 가지고 있었던 다른 회사의 아이돌 유닛을 떠올려냈다. 줄리아의 말대로 아이돌의 범위는 넓었다. 딱히 정해진 틀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각자가 어필할 수 있는 강점을 살리면 충분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역시 불안하더라~ 나, 아이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까. 댄스도 토크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줄리아 선배는 무대 경험이 많으니까, 분명 괜찮을 거라고 생각해요.”

“뭐, 그렇게 말해준다면 고맙지만. 그래도 아이돌로서는 나도 초보니까,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지. 배워야할 것도 많고.”


  줄리아는 가볍게 웃더니 물을 들이켰다. 시즈카는 그런 줄리아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시즈? 뭐라도 묻었어?”

  “아, 아뇨. 그냥... 멋있다고 생각해서요.”

“칭찬해도 뭐가 나오지는 않는데?”

“뭐를 바라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그렇게 확실하게 뭔가를 결정할 수 있는 줄리아 선배가, 조금 부러워서...”

“결정?”

“네. 저는 6년... 아니, 8년 넘게 고민해왔던 거니까요. 아이돌을 하겠다는 결정.”

“8년?! 시즈, 지금 열네 살이잖아?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네. 6살 때였을 거예요. 그때부터 쭉, 아이돌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줄리아는 꽤나 놀란 눈치였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마치 ‘에이, 설마.’라는 의문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즈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확실히 어렸을 때는 자세한 방법을 몰랐으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초등부 5학년을 넘기면서는 쭉 그렇게 생각했어요. 프로 아이돌이 하고 싶다고.” 

“네가 1학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됐는지는 몰랐어. 의외네.”

“진즉에 뭔가 했어야 했는데, 계속 주변 탓만 하고 고민하느라 아무 것도 못 했거든요. 사실 지금도 너무 늦어버린 것 같지만...”

“시즈. 네가 늦은 거면 나는 뭐가 돼. 아직 중학생이면서.”

“저는 상황이 달라요. 올해 안에 뭘 하지 못하면... 이대로 그만둬야 하거든요.”

“...에?”


  줄리아는 아까보다도 더 놀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즈카의 말에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꿈꿔왔다면서 왜 이제야 행동에 옮긴 건지, 심지어 왜 그 기간이 올해 안으로 제한되어 있는 건지, 왜 중학생인 시즈카가 고등학생인 자기보다 초조해하는 건지 등등,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자세한 걸 물어봤자 분위기만 무거워질 거라고 생각했는지, 줄리아는 사정을 자세히 묻는 대신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아이돌이잖아. 그거면 된 거지. 앞으로 해 나갈 것들이 많을 거 아니야.”

“그건... 그렇지만요.”

‘넌 지금 아이돌이 아니야, 모가미 양.’

“...!”


  그 순간, 야마모토의 차가운 한 마디가 시즈카의 뇌리를 스쳤다. 흔들림 없는 표정, 내려다보는 시선, 차분한 어조. 마치 자신을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대하던 그 모습이, 아버지의 모습과 명확하게 겹쳐보였다. 

  시즈카가 굳은 표정으로 시선을 떨구자, 줄리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시즈? 갑자기 표정이 어두운데.”

“아, 아뇨...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걱정이 돼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너도 나도 아이돌에 대해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는 수준이니까.”

“저기, 줄리아 선배. 시어터 담당이라는 야마모토 씨,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에? 갑자기?”


  줄리아는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즈카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다.


“미팅 때도 그렇고, 지난번 오리엔테이션 때도 그렇고,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서요.”

“으음- 글쎄. 나는 잘 모르겠던데. 이야기는 주로 미유키 프로듀서랑 했고. 그래도 유능한 사람 아닐까? 내가 마주쳤을 때는 이것저것 일처리 한다고 바빠 보이던데.”

“글쎄요. 자꾸만 어린애 취급하는 느낌이 들어서 맘에 안 들기도 하고... 차라리 미유키 프로듀서 쪽이 더 친절하고 믿음직스러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자세한 건 몰라도 좋은 사람인 것 같긴 하더라, 미유키 프로듀서. 어딘지 모르게 어설프긴 하지만서도. 맞아, 치하의 담당 프로듀서라며? 치하는 엄청 유명하니까, 그런 프로듀서라면 의외로 유능할지도 모르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미팅 때도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기도 했고요.”

“상냥한 건 잘 모르겠지만. 그 바보P.”

“에...? 바보P...?”

“아니야. 아무 것도.”


  그렇게 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했던 키츠네우동이 둘의 테이블에 도착했다. 둘은 종업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젓가락을 꺼내 조금 이른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아무튼, 주말에 극장에서 더 자세한 걸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같이 지내다보면 알겠지. 아직 만나본 지 한 달도 안 된 사람들이니까.”

“그렇긴 하지만요...”


  시즈카가 조심스럽게 유부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누구야?”

“미유키 프로듀서요. 어쩐 일로...”

“일단 받아보는 게 좋지 않아?”

“네. 그러면 잠깐 실례할게요.”


  시즈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전화를 받았다. 휴대전화 너머로 이제는 익숙해진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시즈카? 나야.”

“네. 미유키 프로듀서. 전화는 어쩐 일로...?”

“혹시 저녁 먹었니?”

“네?! 아, 네. 지금 먹는 중인데요.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시즈카는 순간 당황하며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갑자기 뜬금없이 저녁식사 여부는 왜 묻는단 말인가. 그런 시즈카의 당황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유키는 여전히 상냥한 어조로 대답했다.


“차라리 다행이네. 혹시 5시 반 이후로 급한 스케줄 같은 거 있어? 괜찮으면 잠깐 시어터에 들러줬으면 하는데.”

“시어터요? 괜찮기는 한데... 아마 도착하면 6시 정도 될 것 같아요.”

“오케이. 알겠어.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와. 나는 사무실에 있을 건데, 혹시라도 왔는데 없으면 다시 전화 줘. 그럼 이따 보자.”

“네. 이따가 뵐게요.”

-뚝.

“프로듀서가 뭐래? 극장으로 와 달래?”


  줄리아가 물었다. 시즈카는 의문에 찬 표정으로 휴대전화 화면을 끄고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뒤 대답했다.


“네. 잠깐 들를 수 있냐고 하시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미팅이라면 업무 관련일지도. 늦지 않겠어? 서둘러야겠네.”

“아뇨. 서두를 것까지는 없어요. 미유키 프로듀서도 천천히 와도 된다고 하셨고.”

“그래?”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는 해두었지만, 왠지 신경이 쓰인 시즈카는 평소보다 빠르게 키츠네우동을 해치웠다. 우동을 앞에 두고 식사를 서두르다니, 평소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미유키의 용건이 뭔지 궁금한 나머지 자기가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줄리아도 그런 시즈카의 페이스에 맞춰 조금 빠르게 식사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면 갈까? 방향이 달라서 극장까지 가줄 수는 없지만, 전철역까지는 같이 가줄게.”

“일부러 따라오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괜찮아. 시즈랑 가면 나도 가는 길에 심심하지 않으니까.”


  시어터로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 시즈카는 줄리아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걸까요? 갑자기 부르시고.”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뭔가 짐작 가는 거 없어?”

“으음...”


  시즈카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활동 계획에 대한 걸 직접 물어보았던 야마모토라면 몰라도, 미유키가 특별히 자신에게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야마모토에 대한 불만이 더욱 커져갔다. 자기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했으면 최소한의 계획이라도 이야기해줄 줄 알았는데, 정작 시어터 업무 보조라던 미유키가 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해주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시어터 조 담당이라면서, 자신과 츠바사는 미유키에게 떠넘겨놓고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불만 섞인 의문이 들었다.


“벌써 다 왔네. 뭐, 용건은 가보면 알겠지.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라인 해도 되니까 연락하고. 조심해서 가. 시즈.”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줄리아 선배.”

“아니야. 나도 즐거웠어. 아, 그리고 호칭 말인데.”

“네...?”

“역시 그냥 반말이 편하지 않아? 매번 줄리아 선배, 줄리아 선배, 하는 것도 귀찮잖아. 이제는 아이돌 동료기도 하고.”

“네?! 아뇨, 그래도 그건...”

“나는 상관없으니까, 말은 편하게 해도 돼.”

“그래도 역시...”

“하다못해 선배라도 어떻게 해보라고. 학교에서 선배인 건 맞지만, 아이돌로서는 둘 다 동급이잖아.”

“그러면, 줄리아 씨. 라고 부를게요.”

“여전히 딱딱한데... 뭐, 그 정도면 발전한 건가. 아무튼, 난 갈게. 일요일에 극장에서 봐!”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줄리아 씨.”


  시즈카는 손을 흔드는 줄리아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전철을 타고 시어터로 향했다. 시어터에 도착했을 때는 정확히 6시가 되어 있었다. 시즈카는 대충 예상했던 건데, 정확히 맞아떨어져서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다른 아이돌들이 없어서인지, 극장의 백스테이지 구역은 조용했다. 모퉁이를 돌아 사무실 구역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원단 뭉치가 눈앞에서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꺄아악-!”

“으아앗?!”


  원단 뭉치와 부딪힌 시즈카는 뒤로 넘어져 바닥을 짚고 주저앉았다. 욱신거리는 허리를 문지르며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사무원 제복을 입은 여성이 주저앉아 자신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저기, 죄송합니다!”

“아야야... 괜찮아요...오? 아, 모가미 시즈카짱?”

“네. 시어터 조 소속, 모가미 시즈카예요. 저기,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갑자기 부딪혀버려서...”

“아니야 아니야. 나야말로 조금 더 앞을 주의했어야 되는데. 하하...”

“정리하는 거 도와드릴게요. 이건... 의상에 쓰는 천인가요?”

“응. 시어터 조의 의상은 여기서 직접 만들거든. 의상실로 옮기는 중이었어.”

“의상을 직접... 대단하네요. 아, 혹시 성함이...?”

“시어터 사무원, 아오바 미사키야. 잘 부탁해.”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아오바 씨.”


  바닥에 떨어진 원단을 전부 주운 뒤, 미사키는 다시 위태로운 걸음으로 의상실로 향했다. 나눠 들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미사키 본인이 괜찮다고 한 데다 미유키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시즈카는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실례합니다-”

“왔구나. 시즈카.”


  시어터 사무실에 들어서자 미유키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놓고 있었다. 아마 미유키의 맞은 편에 비어있는 책상이 야마모토의 자리인 것 같았다. 시즈카는 안을 둘러보며 왠지 학교의 교무실이랑 비슷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안녕하세요. 미유키 프로듀서.”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해. 슬슬 어두워졌으니까, 돌아갈 때는 차로 데려다 줄게.”

  “아뇨, 굳이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아. 사무소로 돌아가려면 어차피 그쪽 방향으로 가야 하거든.”

“그러면, 조금만 신세질게요.”

“응. 그러면... 여기 와서 앉으면 돼. 녹차라도 줄까? 주스도 있어.”

“주스로 부탁드릴게요.”


  시즈카는 미유키의 자리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건네받은 오렌지 주스를 홀짝였다. 줄리아는 상냥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시즈카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미유키 정도면 꽤나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즈카에게 오렌지 주스를 건네준 뒤 커피 한 잔을 따라 자리로 돌아온 미유키는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살짝 보니 화면에는 시즈카 본인의 이력서가 띄워져 있었다.


“정리하면서 잠깐 이력서를 다시 읽어 봤는데, 시즈카, 피아노 콩쿠르에 나간 적이 있더라? 노래도, 아마추어 콩쿠르 입상 경력이 있고.”

“네. 그건 초등학생 때 잠깐...”

“대단하네. 어렸을 때라고는 해도 확실히 실력이 있다는 증거니까.”

“감사합니다.”


  시즈카는 미유키의 칭찬에 내심 기뻐했다. 오디션 이후로 몇 주 동안 츠바사와 자신을 챙겨 주어서인지, 아니면 자꾸 야마모토와 비교가 되어서인지 몰라도, 시즈카는 미유키에게 어느 정도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꼭 그거 때문에 부른 건 아니니까. 어디 보자...”


  미유키는 자판을 몇 번 두들기더니 노트북의 화면을 껐다. 그러고는 의자를 돌려 시즈카를 마주 보고 앉았다.


“시즈카. 솔직하게 대답해 줘. 앞으로의 활동에 중요한 이야기니까.”

“네? 네.”


  왠지 긴장한 시즈카는 미유키를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아까보다는 조금 진지한 어조였지만, 여전히 가벼운 미소를 짓고 있는 미유키가 시즈카에게 말했다.


“야마모토 씨에 대해서, 뭔가 불만이 있니?”

“...!”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 오히려 불만이 많은 편이지만...


  그걸 대놓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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