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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로 만든 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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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8, 2021 03:26에 작성됨.


무사태평할것만 같은 슈코가 심각한 얼굴로 상담을 요청해왔다. 프로듀서는 '무슨 일이지?'라며 물으면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슈코는 아이돌 은퇴 후 자신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슈코네 아버지가 조만간 과자집 업무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 말했다. 수십 년 째 '과자로 만든 집'을 지켜온 당신이셨지만세월의 무게를 견디기엔 그대는 너무 지치셨고 요 근래부터 눈에 띠게 건강이 나빠지고 있기도 했단다.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후계자'의 문제. 완고한 아버지의 성격도 그렇고 고되고 힘든 분야에 진득하게 오래 있기 싫어하는 요즘 사람들의 성향도 그렇고 이런 저런 악재가 겹치다보니, 지금 시오미 과자점 장인의 정식 후계자라 할 만한 사람은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아버지를 도와 함께 가게를 꾸려나가던 장인들도 곧 자신만의 가게를 차려 나갈 생각들이라 시오미 과자점의 미래는 어두웠다. 과자 장인이 없는 과자 가게에 시오미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할 순 없다과자 가게의 딸인 슈코도 '간판 소녀'의 경험은 있지만 '화과자 장인'의 길은 걸어본 적이 없었기에 선뜻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인이 되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했다. 애초에 그런 일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일찍부터 과자 가게를 이을 생각이 있을 정도로 부지런했다면,

분명 도중에 집에서 쫓겨난 일도 없었을 테지.

 

슈코네 부모님은 쓸데없는 걱정 말고 혼기가 찼을 때 좋은 상대를 만나 '결혼'해서 독립하길 바랄 뿐이라지만 지금은 결혼도...장인의 길도...선뜻 가야할 길이라 느껴지지 않는 슈코는 어느 쪽이든 그리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지만, 이대로 손 놓고 있어봤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래저래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문제군.'

 

뜻밖에도 무거운 슈코의 고민에 프로듀서는 선뜻 대답을 할 수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슈코네 화과자점'이 자랑하던 야츠하시의 맛은 이대로라면 분명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왜 그 모든 사랑스러운 것들은 언젠가 그리운 것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덩달아 시름이 깊어지는 그를 보더니 슈코는 괜히 걱정을 끼쳤다며 차나 마시자고 탕비실로 이끌었다탕비실의 안주인, 유키노양에게 맛있는 녹차를 부탁한 후 슈코는 습관적으로 찬장 안에서 야츠하시를 찾았다.

 

"어라? 벌써 다 먹었던가? 분명 여기 어디쯤..."   

"! 거기 있던 야츠하시 말인가요. 어제 아이들이 티파티를 하면서 조금...많이 먹어 버려서..."   

"아아...그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다니 기쁘네우리 집 화과자는 최고니까..."   

"대신에 남아있는 양과자라도 드릴까요? 녹차에 쿠키는 조금 생소하긴 하지만..."  

"? 고맙지만 괜찮아. 가끔은...과자 없이 차만 마셔보고도 싶었으니까."


알맞은 온도로 우려낸 향긋한 녹차. 티백이 아닌 잎차 특유의 깔끔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역시...아이하라씨의 차 맛은 일품이야."   

"마음에 들어 하셔서 다행이에요. 혹시 또 필요하신 것 있으시면 말씀해주셔요."   

", 고마워."

 

유키노가 찬장을 정리하러 나간 사이 탕비실엔 둘만 남았다과자도 없이 차만 홀짝이는 슈코는 차 맛을 음미하며 엷게 미소를 지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두 눈은 어딘지 모를 허전함이 깃들어 보였다.

 

'그래도...과자가 없는 차는...씁쓸하네.'

 

어쩌면 슈코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대며 슈코는 두 눈을 살며시 감았다.

 

"프로듀서...무슨 생각해?"

 

프로듀서는 힘없이 축 늘어진 슈코의 어깨를 토닥이듯 어루만져주며 말했다.

 

"너랑....같은 생각."   

"....역시....그렇지?"

 

그러다 슈코는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그의 손을 마주잡으며 손장난을 치기 시작했다곱고 하얀....거친 일이라곤 조금도 모르는 굳은 살 하나 없이 가녀린 손서로 손가락을 얽어가던 중 그녀는 맨들 맨들한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연휴 때...교토에 갈 생각이야."   

".....바래다 줄까?"

 

평소라면 장난스레 "~ 이렇게 예쁜 아일 그냥 바래다 주기만 할거야?"라며 또 뭔가 먹을 걸 어떻게든 뜯어낼 궁리를 하는 슈코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마음은 고맙지만...교토까지 갔다 올 정도로 프로듀서가 한가롭진 않다는 거 다 알아그러니까 이번엔 나 혼자 갈게."   

"....그렇지만"   


"사실...아버지, 지금 상태가 많이 좋지 않으셔. 연세도 연세고...건강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가게를 그만 두셔야 할지도 몰라당신은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겠다 하시지만...언제 또 쓰러지실 지도 모르고..."   

"...."   

"아버지의 뒤를 잇기엔 너무 늦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적어도 아버지의 마지막 자존심은 지켜드리고 싶어." 


며칠 뒤 교토에서 돌아온 슈코는 양 손으로 들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많은 양의 과자와 함께 사무소로 돌아왔다사무소의 아이들과 사무원들은 뜻밖의 주전부리에 들뜬 표정이었다늘 먹는 '슈코네 화과자'이지만 질리지 않는 단맛은 언제나 기분이 좋았다.

 

"역시...아버지는 아버지셨어."

 

탕비실에서 찻잔을 사이에 두고 생 야츠하시를 프로듀서에게 건네며 슈코는 무심하게 말을 이었다

  

"아버지 앞에서 '가업을 잇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채 꺼내기도 전에 '아무 말 말고 그냥 과자나 먹다 가거라.'고 퉁명스러운 말만 들었거든. 그러곤 아무 말도 않으셨지. 아무래도 반대하시리라 예상은 했지만 워낙 표정이 완고해 보이셔서 난 그 앞에서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내어주신 과자만 먹을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어."

 

슈코의 볼처럼 부드럽고 쫀득한 야츠하시를 우물거리며 그는 잠자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과자의 맛에 담긴 말씀이랄까...늘 말하는 거지만...우리 집 과자는…….정말 최고야. 교토 어느 과자점도 이런 맛은 따라할 수 없어. 그러니까…….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수 없는거야. 나는 이 맛을...혀로 느낄 수만 있지 지금도 완전히 잘 이해할 수 없거든. 이상하지? 평생을 화과자점에서 간판 소녀로 지냈는데...화과자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니. 하지만 과자 맛에 담긴 아버지의 생각과 철학...삶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야. 부부는 일심동체라지만 이건 어머니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단 말이지. 그렇기에....온전히 '아버지'같이 될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그 뒤를 대신할 수 없어."

 

"...요컨대 '여자들은 가업을 이을 수 없다?'"

 

"아냐, 이건 성별의 문제가 아니야. '철학'의 문제야. 단순히 늙은이에 대한 '동정심' 혹은 '무모한 자신감'과 같은 얄팍한 생각으로는 어설프게 다가오지 말라는, 일종의 장인정신의 표출이야. 한마디로 아버지는 시작과 끝을 모두 자신이 하기로 이미 마음을 정해두신 거였어."

 

"어중이떠중이에게 가게를 넘길 바엔 차라리 깨끗하게..."   

"...그런 셈이지."

 

"아버지에겐 아버지만의 길이 있으시고...“  

슈코에겐 슈코만의 길이 있다?”

 

슈코는 말없이 싱긋 미소를 지어보이며 야츠하시를 한 점 더 권했다.

머잖아 더 이상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 맛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한가로운 이야기가 이어질 무렵, 찻잔도 과자 접시도 이제 슬슬 바닥을 보인다.

입 속의 과자를 우물거리던 슈코는 교토를 떠날 때 이번에 만드는 것이 당신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수제 과자를 아낌없이 주시던 아버지의 환한 표정이 떠올랐다. 신칸센 차창 밖, ‘과자로 만든 집의 당주에겐 아무런 근심도 없어 보였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 언제 끝났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린 유년기도, 나 자신이 나 자신이 아니던 사춘기도 결국은 끝이 있다. 영원할 것만 같은 아이돌 생활도, 언제나 곁에 있을 것 같은

부모님과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끝이 있다. 결국엔 나 자신에게도 언젠가 마침표를 찍겠지.

 

하지만 아버지가 그 끝을 앞두고서도 아무런 미련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종언을 고할 수 있는 건, 여태껏 아무런 후회도 없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이겠지. 고향에서 마주한 아버지의 침묵에 담긴 의미. 아버지는 자신의 그림자가 딸의 발목을 잡는 것을 염려하고 계셨다. 자신의 노쇠와 병약에 근심하기보다 아버지가 과자에 온전히 자신을 담았듯이, 슈코 역시 오롯이 자신을 담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기를 바란 것이리라.

 

있잖아, 프로듀서...프로듀서는 내가 은퇴하고 나서 어떤 일을 할 것 같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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