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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조라 코하쿠 「가려진 절반의 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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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8, 2021 00:57에 작성됨.

오쿠조라 코하쿠 「가려진 절반의 베일」

“오오, 대단하네, 오쿠조라!”
“큭...! 이, 이건 못 따라할 걸?!”
“오오오-!”

  동급생인 야마다 군은 분한 듯 이야기하더니 아까보다 더 현란한 기술로 능숙하게 펜을 돌렸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그런 야마다 군을 보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저는 조용히 야마다 군의 손을 바라보면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서와 마디 사이사이를 움직이는 펜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한 뒤, 하나하나를 머릿속으로 정리했습니다.

“어때, 오쿠조라? 이건 못 따라하겠지?”
“야마다, 지금 오쿠조라를 상대로 질투하는 거야? 어린 애도 아니고.”
“시끄러!”

  야마다 군은 옆에서 놀리는 남학생에게 빠르게 쏘아붙였습니다. 저는 방금 전에 본 움직임을 떠올리면서, 가볍게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펜을 돌려본 뒤 말했습니다.

“조금 어려울 것 같지만, 일단 해볼게요.”
“설마 이것도 할 수 있는 거야?”
“방금 그거 고급 기술이잖아? 맞지, 야마다?”
“...”

  저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시고 손에 들린 펜을 튕겼습니다. 집게손가락 사이를 빠져나와서 가운뎃손가락 사이로, 그리고 가운뎃손가락과 약손가락을 사용해서 빠르게 돌려주기. 열 번 정도 돌렸다가 손등으로 뒤집어서 새끼손가락으로 이동, 다시 열 번 정도 돌리다가 가운뎃손가락으로 돌아와서 반복.

“쩐다...”
“그냥 본 것만으로 저게 돼...?”
  주변의 남학생들은 제가 펜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웅성거렸습니다. 야마다 군은 당황하면서도 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에 본 루틴을 두 번 반복한 뒤, 펜을 멈추고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습니다. 남학생들은 저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 몇몇은 거의 경계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저기, 이 정도면 될까요?”
“이 정도고 말고가 아니잖아?! 오쿠조라, 정말 예전에 펜 돌리기 같은 거 배워본 적 없어?!”
“네. 영상이라면 지나가다가 본 적이 있기는 한데...”

  야마다 군을 놀렸던 남학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전에 유튜브에서 보았던 영상을 떠올리면서 대답했습니다.

“우리 펜 돌리기 연구부에 들어오지 않을래?”
“말씀은 감사하지만, 부활동으로 하기에는 펜 돌리기에 대해 잘 몰라서요. 죄송합니다.”
“으음. 아쉽네.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도전해보는 건 즐거웠어요. 보여주셔서 감사해요, 야마다 군.”
“어?! 아, 응. 괜찮아...”

  야마다 군은 제 감사에 조금 당황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가볍게 미소를 지은 뒤 교실 뒤편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습니다.

“전 그러면 부탁받은 일이 있어서, 이만 가볼게요.”
“응. 갑자기 붙잡아둬서 미안했어. 어울려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저도 즐거웠어요. 그럼 이만.”

  저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교실을 빠져나와 아래층의 다목적실로 향했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저에게 도움을 부탁했던 연극부의 나나쿠라 양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습니다.

“와 줬구나, 코하쿠짱!”
“응. 도와줘야할 부분은 어떤 거야?”
“다음 주에 공연하는 뮤지컬의 단체 곡 부분인데, 혹시 괜찮으면 같이 무대에 서 줄 수 있을까 해서. 머릿수만 늘리면 되는 거라 특별한 대사는 안 해줘도 돼!”
“뮤지컬이면... 노래도 하는 거지?”
“노래는 주인공들이 파트를 나눠서 하는 걸로 되어있어. 코하쿠짱은 뒤에서 같이 안무만 맞춰 주면 돼.”
“그렇구나. 열심히 해 볼게.”
“응. 정말 고마워, 코하쿠짱!”

  잠시 후, 저와 나나쿠라 양, 그리고 다른 연극부원들은 담당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안무를 연습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앞에서 보여주시는 동작을 자세히 살펴보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과 비교해보면서 동작을 하나씩 맞춰나갔습니다.

“어, 어라, 꺄악?!”

  그때, 제 옆에서 안무를 배우던 나나쿠라 양이 넘어지면서 연습이 중단됐습니다.

“잠깐 스톱! 나나쿠라, 괜찮니?”
“아야야... 네. 괜찮아요. 죄송해요, 선생님.”
“아니야. 다치지 않았으면 됐어. 혹시 다른 사람들도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물어 봐.”
“선생님. 턴하고 나서 위치를 바꾸는 부분을 잘 모르겠어요.”
“저도요.”
“저는 두 번째 스핀 방향이 헷갈려요.”

  이곳저곳에서 학생들이 손을 들고 선생님께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잠시 휴식을 위해 모두를 자리에 앉히신 뒤, 주변을 둘러보다가 저에게 다가와 말씀하셨습니다.

“저기, 이름이 뭐라고 했지?”
“오쿠조라 코하쿠예요.”
“오쿠조라, 안무는 다 알겠니? 아까 보니까 잘 하는 것 같던데.”
“보여주신 부분은 알 것 같아요.”
“그러면 잠깐 일어나볼래?”
“네? 네.”

  저는 당황하면서도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과 함께 다목적실 가운데로 향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박수를 쳐서 부원들을 집중시키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쿠조라 양이랑 시범을 한 번 보여줄 테니까, 잘 보고 중간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질문해 줘. 알겠지?”
“네~”
“오쿠조라, 조금 전에 보여준 부분까지만 할 테니까, 네 파트에 맞춰서 추면 돼.”
“네, 선생님.”

  그 후로는 선생님과 호흡을 맞춰 안무의 시범을 보였습니다. 조금 전에 본 그대로, 제 역할에 맞는 동작을 하나하나 연결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 상대역에 맞는 안무로 시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짝짝짝짝짝짝짝.

  시범이 끝나자, 부원들은 저와 선생님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장난스럽게 웃으시며 고개를 숙이셨고, 저도 그런 선생님께 맞춰 커튼콜에서 인사하는 배우처럼 고개를 숙였습니다.

“으으- 피곤하다. 역시 몸을 움직이는 건 체력이 중요하네~ 좀 더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는 걸. 코하쿠짱은 괜찮아?”
“응? 응. 괜찮은 것 같아.”
“헤에, 대단하네.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서.”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저는 나나쿠라 양과 함께 해가 지기 시작한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나나쿠라 양은 피곤한 듯 기지개를 켜며 저에게 이것저것을 물어왔습니다.

“코하쿠짱은 춤 같은 거 배운 적 있어?”
“아니. 아이돌이 나오는 방송 같은 걸 본 적은 있지만, 특별히 배워본 적은 없어.”
“진짜? 그런 것 치고는 능숙하던 걸.”
“그래? 고마워. 후후.”
“코하쿠짱은 잘하는 게 많아서 좋겠네~”
“응?”
“이곳저곳에서 소문이 들리는 걸. 지난번에 전학 온 애, 엄청 예쁘고 할 줄 아는 것도 많다고.”
“그래...?”

  저는 당황하면서 말을 흐렸습니다. 이것저것 칭찬을 받은 적은 많지만,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저기, 코하쿠짱.”
“응?”
“코하쿠짱은 어떤 걸 좋아해?”
“좋아한다는 건 어떤 분야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음식 같은 거?”
“뭐든 상관없어. 음식도 좋고, 아니면 취미 같은 것도 좋고.”
“취미? 그러게. 그렇다면...”

  저는 나나쿠라 양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봐도 확 하고 떠오르는 무언가가 없는 느낌이었어요. 오늘 학교에서 처음 해 봤던 펜 돌리기도 재밌었고, 춤을 추는 것도 즐거웠지만... 평소에 취미로 삼고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러자 저는 지금까지 해온 것들 중에서 즐거웠던 기억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즐거운 기억이라면 얼마든지 있었어요. 예전에 어머니와 함께 과자를 만들어본 것도, 그냥 주변을 둘러보면서 거리를 거닐었던 것도, 권유받은 만화를 읽어본 것도, 그리고 오늘처럼 새로운 걸 시도해보거나 춤을 추는 것도 전부 즐거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하쿠짱?”
“응? 아, 미안. 뭔가 딱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랬구나. 그래도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할 건 없잖아. 어려운 질문도 아닌데. 헤헤.”
“그건 그런 것 같네.”
“그래도 조금 의외네. 코하쿠짱은 이것저것 잘 하니까 분명 가장 좋아하는 취미도 있을 줄 알았는데.”
“...”

  저는 왠지 모르게 나나쿠라 양의 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잘 하는 게 많으니까 가장 좋아하는 것도 있을 줄 알았다. 잘 하는 것. 잘 하는 것...
  확실히 칭찬을 받은 일은 자주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도 펜 돌리기 연구부의 남학생들에게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연극부의 지도 선생님도 댄스에 대해서 칭찬해 주셨으니까요. 그 외에도 뭔가를 보고 따라하는 거에는 능숙해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나, 그림이나 공작처럼 손재주가 필요한 활동을 할 때면 자주 칭찬을 받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칭찬을 받아야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칭찬받는다는 건 기쁘고 감사한 일이고, 뭔가를 하는 것도 즐거웠거든요. 그렇기는 해도... 저는 그저 본 것을 그대로 따라했을 뿐인데. 눈으로 움직임을 익히고 익힌 움직임을 반복했을 뿐인데, 그게 ‘천재적이다’라던가,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에 충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난 여기서 들어갈게. 조심해서 가, 코하쿠짱!”
“응. 내일 봐. 나나쿠라 양.”

  제가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나나쿠라 양과 저는 어느새 전철역 앞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나나쿠라 양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뒤, 저와는 반대 방향으로 멀어져갔습니다. 나나쿠라 양의 모습이 역 입구 쪽으로 사라진 걸 확인한 저는 이어폰을 꺼내 음악을 들으며 상점가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이 동네로 전학 온 이후로,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자주 상점가를 걸어 다니고는 합니다. 가끔은 길거리 공연을 보기도 하고, 눈에 들어오는 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해보기도 해요. 오늘 처음으로 들른 곳은 알록달록한 간판이 걸려 있는 디저트 가게였어요. 혹시라도 돌아가는 길에 조그만 케이크나 푸딩 같은 걸 사서 돌아갈까 하는 생각에,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대라 안에는 제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저는 카운터 옆 쇼케이스 앞에 서서 다양한 디저트들을 둘러보았습니다.

“응. 이오리. 지금 와 있는데. 고져스 푸딩이면 되는 거지? 과일 같은 게 올려 진 걸로. 오렌지 주스도. 알겠어. 응. 확실하게 알고 있으니까... 알겠다니까.”

  제 옆에는 정장 차림의 남자 분이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서류철을 낀 채 어깨와 목으로 휴대전화를 고정해 통화를 하고 계셨어요. 뭔가 굉장히 바쁜 회사원이신 것 같은데, 잠깐 틈을 내서 이런 가게에 들르신 걸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언젠가는... 직업을 갖고 저런 바쁜 생활을 하게 되는 걸까요?

-스륵.

  그 때, 남자 분의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이 흘러나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통화에 집중하시느라 알아채지 못하신 것 같아서, 저는 조심스럽게 서류를 주워 남자 분께 말을 걸었습니다.

“저기, 실례합니다.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음? 아,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여보세요? 아니야. 잠깐 뭘 떨어뜨려서. 아무튼 알겠어, 이오리. 금방 사서 돌아갈게. 저기, 이걸로 한 세트 주세요.”
-뚝.

  남자 분은 전화를 끊으시더니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저에게 다시 감사 인사를 하셨어요.

“저기, 고마워.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아니에요.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 걸요.”

  저는 휴대전화 화면을 켜고 음악을 일시정지한 뒤, 이어폰을 빼고 남자 분의 말에 대답했습니다. 남자 분은 제 휴대전화 화면에 뜬 앨범 커버를 보시더니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라, 혹시 음악 같은 거 좋아해?”
“네? 아, 네.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요즘 이것저것 들어보고 있어요.”

  다소 갑작스러운 질문이었기에 저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왠지 인상이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아서 적당히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렇구나. 역시 그 곡은... 아차, 벌써 시간이...! 저기. 방금 전에는 고마웠어. 혹시 괜찮으면 이거라도 받아줄래?”

  남자 분은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저에게 작은 음료수 병 하나를 내미셨습니다. 라벨에는 ‘100% 오렌지 주스’라고 쓰여 있었어요. 

“네? 저는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괜찮아. 그 정도쯤은. 그냥 조그만 성의라고 생각해 줘. 그럼 난 이만.”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남자 분은 계산을 마치고 그대로 가게를 빠져 나가셨습니다. 저는 오렌지 주스 병을 든 채 다시 쇼케이스 안의 디저트들을 훑어보다가, 방금 전에 그 남자 분이 사 가신 푸딩에서 시선을 멈추었습니다.

“저기, 실례합니다.”
“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종업원 분은 친절한 어조로 저에게 물으셨고, 저는 쇼케이스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 푸딩으로 부탁드릴게요.”
“단품이랑 세트 중 어떤 걸로 드릴까요?”
“단품으로 세 개요.”
“네, 알겠습니다.”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온 뒤, 저는 집 쪽으로 걸으면서 또 다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코하쿠짱은 어떤 걸 좋아해?’
‘분명 좋아하는 취미도 있을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취미. 좋아하는 것. 
  저는 제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방금도 그 남자 분이 고른 푸딩을 별 생각 없이 따라서 사고 말았습니다. 물론 위에 얹어진 과일이 눈에 들어온 것도 있었지만, 과연 온전히 제가 스스로 골라야 했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는 조금 의문이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푹 빠져서 할 수 있을 만한 것. 확실한 취향, 확실한 취미.
  단순히 따라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
  저에게 있어서 마이 붐(マイブーム)은 무엇일까요...?
  
-휘잉.
“앗, 눈이...”

   순간 바람이 불어오면서 앞머리가 오른쪽 눈을 찔렀습니다. 저는 손으로 앞머리를 정리하고 욱신거리는 눈을 지그시 눌러 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눈을 반 정도 가리는 앞머리가 처음으로 신경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부터 오랫동안 해 오던 머리스타일인데, 왜 지금까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걸까요...?
  평소보다 다양한 생각을 해서인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뭔가... 조금은 정신없는 하루였네요.


[다음 날 오후, 시부야.]

“수고했어. 재능이 있네, 너.”
“감사합니다. 또 기회가 생긴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팬터마임을 가르쳐 주신 퍼포머 분께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했습니다. 팬터마임이나 길거리 공연에 도전해본 건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즐거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서 공연을 하는 것도, 즐거운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수고했어. 방금 전의 퍼포먼스, 대단했어.”
“엣...? 아,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를 부르는 소리에 돌아 서자, 어제 디저트 가게에서 마주쳤던, 제가 서류를 주워 드린 남자 분이 서 계셨습니다. 저는 왠지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제, 가게에서 만나 뵀던 적이 있었죠?”
“아아. 기억해줬구나.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남자 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는 현장을 정리하시는 퍼포머 분을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어요.

“게다가, 퍼포먼스도 능숙하고... 방금 전의 여자 분이랑 둘이서 활동하는 거야?”
“아뇨. 저 분하고는 초면이에요. 팬터마임에 도전해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고요.”
“처음, 이라고...”

  남자 분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왠지 학교의 친구들이 떠올라 가볍게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어요.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거기에 맞춰서 움직이는 거니까요. 그래도 팬터마임은 즐겁네요. 좋은 공부가 된 것 같아요. 최신 트렌드 특집에서 본 적이 있어서,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라, 어쩌다보니 따라 해보고 싶어져서...!”
“아. 그랬구나... 본 것만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조금 들떠버린 건지, 남자 분은 살짝 당황하시는 것 같은 눈치였어요.

“저기, 진짜 본 걸 따라한 것만으로 그렇게 한 거야?”
“관찰하고 재현하는 건 나름 자신이 있거든요!”

  저는 남자 분의 질문에 들뜬 채로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반가운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팬터마임에 도전해본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었는지, 어느새 평소보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대단하잖아?! 저기, 이 영상. 잠깐 봐 줄래? 혹시 따라할 수 있으면 안무를 보여줄 수 있을까?”
“네? 그렇다면...”

  남자 분은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스마트폰 화면을 저에게 내미셨어요. 화면에는 TV에서 봤던 아이돌의 공연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습니다. 잘 알고 있는 음악은 아니었지만, 지나가면서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저는 평소처럼 화면에 나온 아이돌의 움직임을 자세히 보고, 그 과정을 하나하나 머릿속에 정리했습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네. 그러면 조금만 춰볼게요.”

  다소 갑작스러운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저는 천천히 방금 전에 보았던 안무를 떠올려 재현해보았습니다.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지만, 크게 틀린 부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조금 어려운 안무네요.”
“네 말이 맞아. 일부러 난이도가 있는 걸로 골라봤어.”
“그래도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

  남자 분은 잠시 동안 말없이 저를 빤히 바라보셨습니다. 저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저기, 무슨 일이라도...?”
“너, 아이돌 해보지 않을래?”
“네...?”
-휘잉.

  갑작스러운 질문과 함께, 어제처럼 또 한 줄기의 봄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머리가 눈을 찌르지 않았습니다. 제 오른쪽 눈을 반쯤 가리고 있던 앞머리는, 봄바람을 타고 가볍게 흩날렸습니다.
  그러자 저는 저를 바라보는 남자 분의 진지한 눈빛을 조금 더 확실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눈빛은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처럼 지나가는 식으로 칭찬의 말을 건네는 이들과는 다른 눈빛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이돌이라니, 당치도 않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무도 그저 본 대로 따라했을 뿐이고, 게다가... 전해들은 이야기뿐이지만, 아이돌이라는 건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분명 거절해야겠지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지금까지 무언가를 도전했을 때 느껴지던 즐거움과는 전혀 다른, 이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은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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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조라 코하쿠, 「가려진 절반의 베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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