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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구치 마도카 – 비익연리(比翼連理)(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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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07, 2021 14:02에 작성됨.

아 이거...? 평소와 커피 향 다른 거 금방 알아차렸어?

 

하즈키씨가 이번에 새로 들여온 커피인데 평소에 마시던 것보다 조금 더 진한 맛인데, 마도카도 한잔 타줄까?

 

...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괜찮습니다

 

그래? 탕비실 안쪽 선반에 있으니-...

 

대답을 하던 도중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고 남자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하면서 커피 잔을 내려놓고 통화를 하러 창가쪽으로 향하였다. 항상 이러하였다.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직접적으로 물어 볼 용기도 없었고, 물어보더라도 그 대답에 따라올 결과가 무서웠었다. 그리고 항상 이러하였다. 녹칠의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나는 그렇게까지 밝은 성격이 아니니까...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한 걸음 뒤에 서서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그게 아니 었는데.... )

 

잔뜩 토라진 기분을 안고서 남자가 통화하는 모습을 힐끔 힐끔 쳐다 보았다. 업무나 일 관계로 통화할 때는 전화 내용을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언제나 창문에 몸을 기대고서 등을 돌리며 통화를 하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따사로운 아침 햇빛이 휴대폰을 들고 있는 남자의 손에 내려 앉아 생기는 반사되는 반지의 존재감이 한층 더 두드러진다.

 

반지라... 왼쪽 손을 천장을 향해 올리고서는 남자의 손을 한번 보고 난 후에 내 손을 교대로 바라 보았다. 왼쪽 약지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나도 언젠가는 저런 반지를 끼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 시작하였다. 평소의 나라면 이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그래 아침에 꾼 꿈 때문이야 라는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법한 변명을 하며 남자를 계속 바라본다.

 

... 그래 식 날짜는 그때가 좋은거야? 알았어...

 

희미하게 들려오는 전화 내용에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거리가 멀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정확하게 들은 것은 저 한마디였다.

최근 들어 사무소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사무소 누군가가 결혼 준비 한다는 소문이었고 아무래도 이 녀석이 바로 그 당사자인 것 같았다.

녀석의 손에 껴있는 반지와 최근 들리는 소문을 통해 유추해보면 아마도 결혼식 날짜겠지...

그렇구나... 이 사람 결혼하는 거구나 하고 단정 지었다.

 

통화를 끝낸 남자의 표정에 한순간 그늘이 지어졌다가, 내게 다가올 때는 웃으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표정 변화를 알아 차려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거리감이 있었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멋대로 만들어버린 거리가... 그래서 나는 모르는 채 하였다.

 

마도카, 이제 갈 시간이야. 다른 애들은 오늘 의상 회의 때문에 오후에 오기로 했으니까

 

.... ....

 

오늘은 녹칠의 다른 멤버들도 사무소에 오는 날이지만, 일하러 오는 것은 나 혼자였다. 여성용 잡지에 게재될 립스틱의 광고사진, 그것이 오늘의 일이었다.

처음에 아이돌의 일이라고는 그저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부르는 일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이돌이라는 이미지의 대부분 이었다.

 

그저 웃기만 해서 팔린다니, 아이돌 이란건 생각보다 편한 장사네요

 

이것이 내가 이전에 첫 촬영을 하며 느낀 소감이었다.

이 말을 들은 남자는 다소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의견을 전력으로 부정하지는 않았었다.

 

마도카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나는 너희들을 장사 도구로써 취급하고 싶지 않아

 

앞으로 마도카를 비롯한 녹칠의 다른 모두가 가는 길이 언제나 순탄치는 않을 테지만, 나는 너희들을 한 사람의 파트너로써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줘

 

이것 만큼은 진심이야

 

이런 대화가 오갔던 것이 촬영 도중 기억이 났다. 그렇기에 나는 이 남자가 싫었었다. 매사에 진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이런 모습이... 나는 싫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스타일, 그래서 올드 타입이라고 불렀다. 나와는 정반대의 스타일.

 

저기-....

 

촬영이 모두 끝났기에 그 녀석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눈앞에는 이때까지 보지 못한 표정을 한 그 녀석이 있었다. 녀석의 옆에는 스커트 형식의 정장 차림에 굽이 높은 하이힐을 신은 미인이 서 있었고, 거리가 멀어서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는 않았지만 행복해 보였다. 나이는 남자와 비슷해 보였고, 긴 갈색의 롱 헤어와 어울리는 붉게 타들어가는 듯한 강렬한 색채의 붉은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촬영을 한 것은 나 자신이었지만 립스틱의 모델로는 저 사람이 더 어울리는듯한 그런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여자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 머리를 뒤로 넘기는 손동작을 취하였고, 여자의 왼쪽 손에는 그 녀석과 똑같은 모양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경악하였고, 나도 모르게 한 두 걸음 뒷걸음질 치며, 내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살짝 닦았다. 입술이 바짝 마른듯한 기분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였다.

끈적끈적하게 녹아 내리는 타르가 내 안을 채워 나가는 듯이, 거무틔틔하고 새까만 덩어리들이 내 안에 쌓여갔다. 하나 둘, 쌓여가니 순식간에 온몸이 굳어가기 시작하는 듯하였다.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누군가가 내 몸을 꽉 붙잡고 있는 듯하였다. 무리하게 움직였다가는 지금 서 있는 내 자신이 금이 가 무너질 것 같았다.

한 번 금이 가 버리면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불쾌하였다. 슬펐다.

그리고 화가 났다.

어째서.... 나한테 이런 감정을 가지게 한건데...

 

전부 당신의 탓이다.

우리는 만나지 않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만나서는 안 됬어야 했다.

 

나 같은 게 어째서, 당신 따위에게 이런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도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이런 마음을 당신을 향해 품게 되어버렸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이것이 연정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 해서는 안 됬었다. 이때까지 함께 해온 친구의 마음을 누구보다 알고 있기에 배신 해서는 안 된다. 할 수 없었다.

모두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진정한 내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항상 거리감을 두려고 했었다.

 

, 마도카 끝났구나. 잠시만 기달려 줄래?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알아 차렸는지 남자는 옆에 있는 여성과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였다. 서로 무언가를 메모하면서 이야기를 끝낸 그 녀석이 다가온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사무소로 돌아오고 난 후에도 다음 무대에서 입을 의상에 관한 회의를 할 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았고,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조차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다. 회의 도중에도 지금도 남자의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도카, 데려다줄까?

 

괜찮-.... 오늘만 부탁 드립니다.

 

...? 정말?

 

평소와 다른 내 대답에 놀랐는지 남자는 서둘러 데스크를 정리하고 짐과 차 키를 챙기고서는 사무소 불을 끄기 시작하였다. 나는 남자를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하였고, 평소처럼 뒷 자석에 타려고 문을 열까 하다가 조수석에 앉아 안전 벨트를 채웠다. 아마도 이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내 행동에 한번 더 놀랐는지 남자의 표정이 물음표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별일이네, 마도카가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서 조수석에 타다니

 

.......

 

한 동안의 침묵이 이어지다가 정지신호에 맞추어 속도를 줄이며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남자 쪽이었다.

 

저기-... 마도카 나 할 말이 있는데...

 

그 이후로 들려올 남자의 말이 무서웠다.

무슨 말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들었다가는 무심코 차 밖으로 뛰쳐 나갈 것 같기에 내가 먼저 말을 끊기로 하였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상대방은 아까 그 여성 분이시죠...?

 

...?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눈가가 축축해지면서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소리 내서 울지는 않았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참아왔던 이 감정이 통제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 계속 훔치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화장이 다 번지기 시작하여 묻어 나오고 있었다. 조수석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꼴불견이었다. 눈물로 인해 번진 마스카라가 눈가를 뒤덮었고, 번진 화장 때문에 얼굴 가득히 얼룩졌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에 당황하였는지 남자는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우고서는 황급하게 수건을 꺼내 내 얼굴을 닦아주려고 하였다.

 

만지지 마세요, 변태.

 

이런 말과는 달리 나는 남자가 내 얼굴을 닦아주는 것을 막지 않았다. 평소라면 바로 손을 쳐냈을 테지만 지금은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었다.

 

마도카, 일단 진정하고-...

 

이제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른다.

이상한 아이구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저 나이 대에 맞는 어린 아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남자는 이런 나를 그저 울음이 그칠 때까지, 진정될 때까지 어린아이를 다독이는 것처럼 안아주고 있었다.

울기 시작 한지 얼마나 됬을까, 이제는 지쳐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고 목도 말라서 갈라지기 시작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꿈 속에서 똑같이 남자의 품에 안겨있었다. 눈물로 인해 번진 화장 자국이 남자의 새하얀 와이셔츠에 깊게 자국을 남겼고 특히나 잡지 촬영 때 바른 새빨간 립스틱이 남자의 가슴 한가운데에 입술자국을 남겼다,

 

결혼 하시면 일 그만 두시는 건가요...?

 

멋대로 스카우트 하고 멋대로 최정상 아이돌로 만들겠다고 이곳저곳 열심히 뛰어 다니시더니... 나만 남겨놓고 이렇게 떠나가시는 건가요 


비익연리(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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