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미래에의 날개. -프롤로그, 백일몽-

댓글: 3 / 조회: 735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1-18, 2021 23:41에 작성됨.

-프롤로그-

백일몽


[도쿄도 오타구 765프로덕션 ------ 모가미 시즈카]


“반가워. 여기서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하세가와 미유키야. 모가미 시즈카 양이지?”

“네. 모가미 시즈카, 14살입니다.”


  소녀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765프로덕션. 소녀의 우상인 키사라기 치하야와 그녀의 유닛 TORICO를 비롯해, 프로젝트 페어리 등 한창 업계의 정점에 있는 아이돌들이 소속된 연예기획사다.

  하지만 소녀가 앉아 있는 응접실은 물론이고, 많이 쳐 줘야 편의점 수준의 넓이인 사무소는 그 명성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온라인 지도의 스트리트뷰에서 건물 외관을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실제로 찾아온 765프로덕션의 내부는 어딜 봐도 번듯한 회사로는 보이지 않는 수준이었다.

  사무소의 모습에 실망한 소녀는 조금 경계심이 담긴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을 하세가와 미유키라고 소개한 남자는 소녀의 인적사항과 지원동기 등이 적혀있는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츠바사랑 같은 양성소에서 지냈다고 들었는데, 맞니?”

“네. 맞아요. 작년 말부터 세 달 정도 같은 양성소에서 훈련받았습니다.”

“음. 그렇구나.”


  남자는 다시 서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소녀는 점점 초조해지는 마음을 애써 붙들고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하세가와 씨?”

“호칭은 미유키면 돼. 미유키 프로듀서, 같은 식으로. 왠지 성은 딱딱하니까.”

“그러면, 미유키 프로듀서.”

“응.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도 있어? 질문 같은 것도 편하게 해줘.”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도 되는 건가요? 한시라도 빨리 활동 계획 같은 걸 수립하는 게...”


  미유키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어쩌면 자신이 조금 무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보다도 활동 계획 수립을 요구한 것에 놀란 반응을 보이는 미유키가 못마땅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프로듀서라면 당연히 아이돌의 활동을 우선적으로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미유키는 이내 피식, 하고 웃어 보였다.


“왜 비웃으시는 거죠? 제가 뭐라도 잘못 말했나요?”

“아니, 아니야. 혹시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미유키는 가볍게 웃으며 사과를 건넸다. 소녀는 그런 그가 점점 더 못마땅하다고 느꼈다.


“시즈카가 얼마나 아이돌 활동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잘 알았어. 하지만 첫 미팅이니까, 지금은 가볍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우리 사무소에서는 항상 활동 개시 전에 미팅을 거치거든.”

“그런가요.”

“응. 시간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는 쪽이 앞으로의 활동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야. 톱 아이돌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려면, 이쪽에서도 아이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니까.”


  소녀는 톱 아이돌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미유키의 말에 조금은 안심했다. 여전히 누군가의 개입을 받는 것은 불만족스러웠지만, 적어도 아버지와 달리 이 남자는 자신의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들어주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항상 활동 개시 전에 미팅을 거친다’는 부분도 신뢰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말은 즉 키사라기 치하야나 다른 765프로의 아이돌들도 이 과정을 거쳤다는 걸 의미했다. 만약 이게 톱 아이돌로 향하는 과정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전력을 다해 협력할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필요한 질문은 해 주세요.”

“좋아. 시즈카는 지금 중학생이지?”

“네. 올해 3학년이 돼요.”

“조금 뻔한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돌을 지망한 자세한 이유를 들려줄 수 있을까?”

“그거라면...”


  아이돌을 지망한 이유. 

  특별히 꾸며서 말할 것도 없었다. 소녀의 양성소 동기들 중에서는 오디션 지원서를 낼 때 지원동기를 적느라 끙끙대는 이들도 있었지만, 소녀는 그럴 때마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소녀가 아이돌을 지망하는 이유는 확고했다. 굳이 꾸미거나 만들어내지 않아도, 소녀의 마음속에 깊게 새겨진 확고한 동기가 있었다.


“...오랫동안 동경해온 꿈이니까요.”



[9년 전, 치바현 우라야스시 D모 테마파크 ------ 유치원생 모가미 시즈카] 


  소녀가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6살 때의 일이다. 6번째 생일을 맞아 부모님과 함께 테마파크를 찾은 소녀는 하루 종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저녁시간이 가까워질 때쯤, 소녀는 부모님과 함께 미니 라이브에 입장하기 위한 줄을 서 있었다. 소녀는 어머니와 손을 잡고 세 번째 줄에 서 있었고, 아버지는 바로 옆줄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티켓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른 한 명이랑 아이 한 명이요.”

“네, 입장해주시면 됩니다.”


  티켓을 확인한 뒤 안으로 들어서던 소녀는 순간 인파에 섞여 어머니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소녀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부모님을 불렀지만, 이미 두 사람 다 시야에서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한참을 제자리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소녀의 눈높이가 낮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인파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인지, 부모님의 모습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소녀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울면 안 돼, 시즈카. 이를 때는 도움을 구하러...!”


  다른 아이들 같았으면 당황한 채 그 자리를 맴돌거나 울음을 터뜨렸겠지만, 소녀는 침착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장의 직원이나 진행 요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기열 담당 직원은 티켓을 확인하느라 바빠 보였기 때문에, 소녀는 무대 옆에 있는 진행 부스로 향했다.


“ㅈ, 저기...”


  천막 안에는 처음 보는 음향 기기들이 가득했다. 무대 시작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음향 스태프들은 정신없이 움직이며 무전기에 대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어찌나 현장의 분위기가 바빴는지 소녀가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어린애가 있는데...?”


  뒤를 돌아보자 세 명의 아이돌들이 무대의상을 입은 채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녀는 순간 당황해서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 혹시 길을 잃었나?”

“그러게. 어쩌지?”


  소녀가 여전히 당황스러워하자, 그 중 리더로 보이는 한 멤버가 눈높이를 낮추고 소녀와 마주 보았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모가미 시즈카예요.”

“그렇구나. 시즈카, 부모님이랑 떨어진 거니?”

“...네. 입구 쪽에서 손을 놓쳐 버려서...”

“그랬구나. 그러면 언니들이 어른들께 부탁드려서 부모님을 찾아볼게.”

“ㄱ, 감사합니다...”

“카즈사, 어떻게 하려고 그래? 바로 무대 올라가야 되잖아?”


  뒤에 서 있던 다른 멤버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카즈사라고 불린 멤버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스태프 분들은 정신이 없으신 것 같은데, 프로듀서한테 말씀드리면 괜찮을 것 같아.”

“그렇지만, 어딘가에는 데리고 있어야 하잖아.”

“무대 옆에 의자 있잖아.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면 되지. 두 번째 곡은 너랑 우라라랑 부르는 듀오 곡이니까, 내가 첫 곡 끝나고 내려와서 해결할게.”

“뭐, 네가 그렇게 이야기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잠깐 따라와 줄래, 시즈카?”

“네? 네...”


  소녀는 카즈사의 손에 이끌려 무대 바로 옆까지 걸어갔다. 무대 옆에는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카즈사는 그 중 하나를 가리키며 소녀에게 말했다.


“언니가 무대 올라갔다 내려올 때까지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줄래? 부모님은 바로 찾아줄게.”

“네. 감사합니다.”


  카즈사는 소녀를 앉혀놓은 뒤 바로 인근에 서 있는 스태프에게 가서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카즈사의 말을 들은 스태프는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딩동.

[잠시 후, 무대가 시작됩니다. 모든 관객 분들은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작 전 안내말씀 드립니다. 무대 좌측 진행 부스에서 모가미 시즈카 양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모가미 시즈카양의 보호자 분께서는 첫 곡이 끝난 후에 진행 부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말씀 드립니다-]


  소녀는 커다란 스피커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시즈카, 방송 들었지? 부모님은 곧 오실 테니까, 여기 얌전히 앉아 있으면 돼.”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언니는 노래 한 곡만 부르고 바로 내려올게.”

“네!”


  카즈사와 동료들은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에게 웃으며 손을 흔든 뒤, 무대 위로 올라갔다. 소녀는 그런 세 사람을 신기한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꺅?!”


  소녀는 순간 터져 나오는 큰 음악소리에 깜짝 놀라며 귀를 막았다. 오히려 귀를 막고 나서야 음악의 볼륨이 적당하다고 느껴졌다.

  양쪽 귀를 손으로 막은 채 놀란 가슴을 추스르고 다시 무대를 바라본 소녀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에 자신에게 친절하게 이야기해주던 카즈사는 무대 위에서 환한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고 있었다. 카즈사뿐만 아니라, 세 사람 모두가 안무와 함께 노래하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관객들은 그런 세 사람에게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소녀는 자신이 지금 미아가 되어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고 무대에 집중했다. 마치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빛나고 있는 세 사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소녀는 그 분위기에 흠뻑 젖어 주변의 상황도 잊은 채 빛나는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감사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첫 곡이 끝나자, 엄청나게 큰 환호성이 세 명의 아이돌들에게 쏟아졌다. 소녀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었다. 비록 어린아이의 시선이었지만, 소녀는 그 환호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느꼈다.

  카즈사는 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두 명의 동료들을 무대 위에 남겨놓은 채 소녀가 앉아있는 쪽으로 내려왔다. 나머지 두 명이 다음 곡을 부르는 사이, 카즈사는 소녀에게 다가와 말했다.


“잘 앉아 있었구나, 시즈카.”

“엄청 멋있었어요, 언니!”

“그랬니? 고마워. 다행이다.”

“저기, 와카미야 씨! 아까 말씀하신 어린아이, 보호자분들이 오신 것 같은데...”

“아, 네! 감사합니다!”


  카즈사는 스태프에게 감사인사를 한 뒤, 소녀를 보고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부모님이 오신 것 같은데, 같이 갈까, 시즈카?”

“네!”


  카즈사의 손을 잡고 다시 천막을 지나 관객석 쪽으로 나오자, 소녀의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아빠!”


  소녀는 카즈사의 손을 놓고 부모님께 달려갔다. 부모님은 그런 소녀를 꼭 끌어안았다.


“시즈카!”

“어디 갔었어! 얼마나 걱정했는데!”

“죄송해요... 갑자기 손을 놓쳐버려서...”

“괜찮아, 시즈카. 무사하니 정말 다행이구나.”


  소녀의 아버지는 그러더니 앞에 서 있는 카즈사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네요. 정말 큰 신세를 졌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전 그냥 잠시 의자에 앉혀 주었을 뿐인 걸요.”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


  소녀의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도 카즈사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카즈사는 볼을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그러면 저는 다음 무대를 준비해야 해서 가 보겠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세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시즈카, 너도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렴.”

“정말 감사합니다, 언니!”

“괜찮아. 만나서 반가웠어, 시즈카. 잘 가!”


  카즈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무대 쪽으로 달려갔다. 소녀는 그런 카즈사의 뒷모습을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시즈카? 많이 놀랐지?”


  소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소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괜찮았어! 엄청 멋있는 아이돌 언니가 도와주셔서!”

“그랬구나. 정말 다행이야... 앞으로는 엄마 손 꼭 잡으렴. 절대 놓치지 않게.”

“아빠 손도 꼭 잡으렴. 양손을 잡고 다녀야겠구나.”

“응! 헤헤...”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소녀의 부모님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시 현재, 765프로덕션 ------ 모가미 시즈카]


“그 후로 계속 아이돌을 동경해왔어요. 무대 위에서 빛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랬구나. 잘 알았어.”

“저기... 미유키 프로듀서?”

“응. 말해.”


  소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역시 확실하게 이야기해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에게는 시간이 없어요.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돌 활동을 그만둬야 해서요.”

“...에?”


  미유키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아이돌을 하는 걸 반대하세요.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돌을 그만두게 한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아낸 거거든요. 그래서 전 반드시 올해 안으로 성과를 내보여야 해요.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도...”

“...”


  소녀는 고민하는 미유키를 보며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이 사람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면 어쩌지, 이 사람도 아버지랑 다를 바 없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소녀를 엄습했다.

  그때였다. 사무소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들어왔다.


“다녀왔습니다.”

“어서 와, 치하야짱! 수고했어.”

“안녕하세요. 오토나시 씨.”


  소녀는 순간 반가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야 자신이 키사라기 치하야와 같은 사무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프로듀서는 안 계신가요?”

“미안, 치하야! 잠깐 미팅 중이라. 조금만 기다려줄래?”

“아, 네. 알겠습니다.”


  미유키는 고개를 들고 사무소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녀는 순간 아는 척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했지만, 일단은 미팅 중이니까 인사는 나중에 하기로 했다.


“미안, 시즈카. 아버지가 반대하신다는 것까지 이야기했지?”

“네.”

“으음... 일단 무슨 이야기인지 알았어. 그리고 시즈카, 치하야랑 아는 사이였지? 지난번에 치하야의 곡 샘플을 녹음해준 게 시즈카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

“네. 맞아요.”

  소녀는 순간 깜짝 놀랐다. 고등부 밴드 선배들의 부탁으로 치하야의 곡 샘플을 녹음해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프로듀서가 기억해주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면 시즈카는 보컬에 가장 자신이 있는 거겠네. 참고해서 전달하도록 할게. 나도 성과를 내는 기간에는 확답을 줄 수는 없지만, 최적의 프로듀스 방향으로 나아가면 그만큼 성과도 따라올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소녀는 약간 마음을 놓았다. 조금 전 치하야의 반응과 다양한 맥락을 따져봤을 때, 분명 이 남자가 키사라기 치하야를 키워낸 프로듀서일 것이다. 치하야는 예전에 소녀에게 작년 초쯤에 데뷔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치하야의 무도관 라이브가 작년 8월, 그리고 도쿄돔 라이브가 11월이었으니까, 그녀는 데뷔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업계의 정점에 다다른 것이었다. 

  자신과 치하야의 역량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1년 내로 그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미유키에게 자신의 꿈을 믿고 맡겨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좋아. 그러면 물어볼 것들은 이 정도쯤이네. 혹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줘. 전달해놓을 테니까.”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미유키 프로듀서.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그러다 소녀는 순간 미유키의 말에서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전달해놓는다? 어디로?

  그때, 사무소의 문이 열리면서 또 다른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정장 차림에 넥타이를 맨 그 남자는 미유키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야마모토 씨.”

“아, 키사라기인가. 수고가 많아.”

“어서오세요, 야마모토 씨. 수고하셨어요.”

“네. 수고하십니다. 오토나시 씨.”


  야마모토라고 불린 그 남자는 치하야, 그리고 사무원 오토나시 코토리와 차례대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는 응접실 쪽으로 다가와 미유키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다녀왔어. 미유키 씨.”

“어서오세요, 야마모토 씨. 마침 잘 됐네요. 시어터 조 아이돌이랑 미팅을 하던 중이었거든요.”

“응? 아, 이쪽이?”

“네. 맞아요.”


  미유키는 그러더니 소녀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시즈카, 인사드려. 시어터 조를 담당해주실 야마모토 다이스케 씨야.”

“네...?”


  소녀는 깜짝 놀라 손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자신과의 미팅을 진행하던 미유키가 아니라, 이 야마모토라는 남자가 자신의 담당이라는 말인가?


“야마모토 다이스케, 너를 포함한 시어터 조 업무를 담당할 예정이야. 잘 부탁해.”

“모가미... 시즈카입니다.”


  소녀는 강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야마모토가 어떤 사람일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키사라기 치하야를 키워낸 유능한 프로듀서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이미 큰 실망감을 느낀 뒤였다.


“야마모토 씨. 시즈카는 개인 사정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돌을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고 해요. 그래서 올 한해 내로 성과를 내는 쪽으로 희망하고 있다고 하네요.”

“음? 올해 내로?”

“네. 더 자세한 내용은 따로 정리해드릴게요.”


  야마모토는 미유키의 말을 듣고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소녀의 불안감은 자꾸만 커져갔다. 

  야마모토는 프로필을 가볍게 훑어보더니 말했다.


“모가미?”

“네...”

“지금 중3?”

“올해 3학년이 돼요.”

“흠. 뭐, 중학생인데 어때. 열심히 해보자. 시어터는 큰 사업이니까, 잘 자리 잡으면 분명 상황이 좋아질 거야.”

“...”


  ‘중학생인데 어때?’


  ‘중학생인데 어떠냐고?’


  ‘어린애 취급하지 마.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지 마. 난 진심이란 말이야.’


‘누구보다 간절한데, 애써 용기내서 여기까지 온 건데, 도망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건데. 왜 그 간절함을 어린애의 백일몽을 대하듯이 이야기하는 건데.’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녀의 내면은 이미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하세가와 미유키라면, 치하야 씨를 키워낸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거구나.’


  소녀는 어금니를 꽉 물며 고개를 숙였다. 꼭 쥔 두 손은 가볍게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 사람, 내 담당 프로듀서가 될 사람, 야마모토 다이스케라고 했지.’

 

  ‘결국, 이 사람도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어.’


  ‘내 꿈을... 내 소중한 꿈을, 이 사람에게 맡겨도 되는 걸까?’


  꿈을 꾸는 소녀의 마음은, 하염없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프롤로그, 백일몽. Fin.-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