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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에필로그 2, 타도코로 신이치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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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5, 2021 02:25에 작성됨.

-에필로그 2-

타도코로 신이치의 경우


[도쿄도 분쿄구 도쿄돔 ------ 타도코로 신이치]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나는 투덜거리면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관계자 입구 쪽에 있었다. 치하야는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서서 웃는 얼굴로 뮤 삼촌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위기가 좋네. 방해해서 미안한 걸.”


  치하야와 뮤 삼촌은 깜짝 놀라 내 쪽을 돌아보았다. 나는 인사를 건네는 만화 캐릭터처럼 가볍게 오른손을 위로 들어보였다.


“치하야, 아키즈키 씨가 찾으셔. 대기실로 와 달래.”

“아, 그러면...”

“뮤 삼촌은 내가 맡을게. 먼저 가봐.”

“알겠어. 고마워, 타도코로 씨. 그러면 프로듀서, 이따가 봬요.”

“응. 어서 가봐.”


  치하야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뮤 삼촌은 그런 치하야의 뒷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뮤 삼촌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그래서, 좀 괜찮아? 아무리 외출 허가가 나오긴 했다지만, 다음 주까지는 되도록 쉬라고 했잖아. 오늘 온다고 말도 안 했으면서.”

“다음 주나 오늘이나 거기서 거기지 뭐. 하루 이틀 차이인데. 이제 슬슬 걸을 수도 있다고.”

“참... 걱정이다.”

  대체 사서 고생하는 버릇은 누구한테서 물려받은 걸까. 나도 조금 그런 면이 있으니까, 어머니 쪽 유전일지도 모르겠다.

  뮤 삼촌은 내 기타 케이스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생 많았어. 역시 무대에 세우기를 잘 했네.”

“갑자기 도쿄돔에 서라고 해서 깜짝 놀랐지만 말이지........에?”


  나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뮤 삼촌을 바라보았다. 우리보고 치하야와 함께 무대에 서라고 이야기한 사람은 아키즈키 씨였다. 그런데 왜 뮤 삼촌이 마치 자기가 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래, 신이치?”

“우리가 무대에 서는 거, 전부터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내 아이디어인데.”

“...뭐요?”

“리츠코가 이야기 안 해줬어?”


  뮤 삼촌은 엄청 뻔뻔한 태도로 이야기했다. 이 양반, 대체 어디서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병원신세인 사람이 괜히 걱정해봤자 회복에 악영향만 줄 것 같아서 숨기고 있던 건데...


“아니, 우리는 그냥 무대에 서라는 이야기만 들었어. 자세히 설명해줘.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흠. 거기까지는 얘기 안 해준 건가.”

“처음부터 다 알고 있던 거야? 우리가 곡을 만든다는 것도, 치하야의 상태에 대한 것도 전부 다?”

“리츠코도 딱히 이야기해주지는 않았어. 내가 캐물어서 알아낸 거야. 왠지 수상한 느낌이 들어서.”

“이제 와서 명탐정 같은 이야기 하지 마. 괜히 혼란스러우니까.”

“치하야가 몇 일째 문자에 답장을 안 했거든. 보통은 내 문자에는 답장을 잘 해주는데. 그래서 리츠코한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어. 치하야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그러면 나한테는 왜 얘기 안 했어?”

“너는 매일 곡 쓴다고 바빴잖아. 유이나한테 물어봤더니 다 이야기해주던걸. 오빠가 매일 저녁에 연습실 가서 늦게 들어온다고.”

“그 녀석이...”

“상황이야 대충 파악했지만, 치하야는 전화도 문자도 안 받으니까 내가 뭐라고 해줄 수가 없어서. 그러면 네가 알아서 잘 하겠거니 하고 맡겨뒀지. 라이브 준비만으로도 바빴거든.”

“병상에서 일을 하셨다?”

“그래봤자 세트리스트에 너희를 끼워 넣는 부분만 담당했어. 나머지는 리츠코가 알아서 해줬고.”

“...”


  아무리 내 외삼촌이라지만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 인간. 병상에 누워서도 일을 찾는 사람이라니. 워커홀릭의 선을 넘은 것 같은데.

  나는 화를 내려다 말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의 치하야를 떠올렸다. 치하야는 온 몸을 떠는 게 보일 정도로 긴장해있었다. 긴장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눈치 챌 정도였으면 분명 그 상태로는 무대를 망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와 구호를 외칠 때의 치하야는 훨씬 편안해보였다. 그 후의 무대도 완벽에 가깝게 해냈다. 그게 우리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좀 과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뮤 삼촌이 치하야가 밴드부에 대한 걸 신경 쓰고 있다고 했던 것에 연계해보면 아예 연관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다.

  순간 이게 프로듀서라는 사람의 수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아래에서 모든 힘을 다해 무대 위의 아이돌이 최상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하는 사람. 만약 그런 게 프로듀서라는 직업이라면, 하세가와 미유키라는 쓸데없이 친절하고 사서 고생하는 사람에게 그것보다도 잘 어울리는 일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피식, 하고 웃으며 뮤 삼촌에게 말했다.


“처음으로 뮤 삼촌이 멋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칭찬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프로듀서라는 직업은 대단하네.”

“신이치도 이쪽 업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거야? 보람 있기는 하지만, 추천 하냐고 물어보면 조금 망설여지는데.”


  뮤 삼촌의 말을 들은 나는 내 진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딱히 나중에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 음대에 가는 게 목표라던 레이나나 의사의 길을 걷고 있는 카츠라기와는 정 반대였다.

  프로듀서라. 비록 아이돌 업계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애초에 가장 가까운 곳에 업계의 대선배님이 계시니까, 이런저런 팁도 배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아이돌을 키워낸다는 것도 은근 보람찬 일일지도 모르고.

  잠깐, 노래라...


“아니. 딱히 프로듀서가 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아.”


  나는 뮤 삼촌에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따로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지금 당장 정한다고 그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는 앞으로 음악을 더 만들어보고 싶어. 기타를 좀 더 깊게 배워보고 싶기도 하고.”

“나도 나름 깊게 가르쳐준다고 가르쳐준 거기는 한데...”

“뮤 삼촌이 뭘 어쨌다는 건 아니야. 그래도 내 첫 스승님이니까.”

“그래도는 좀 빼주지 그래?”

“칭찬해줘도 그러네. 아무튼, 좀 더 이론이라던가, 작곡 스킬 같은 것도 배우고 싶어.”

“거기서부터는 확실한 전문가한테 배우는 게 좋겠네. 응원해줄게. 혹시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주기도 할 테니까.”

“감사하네요. 그 전에 회복이나 하셔요.”

“거의 다 나았다니까.”


  노래를 만든다.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Just be myself!!는 이미 멜로디가 완성된 원곡이 있었지만, 아마 맨땅에서부터 시작하는 작곡은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대 위에서 빛나던 치하야를 떠올렸다. 내가 만든 노래를 누군가가 불러주고, 내가 만든 노래와 함께 빛나는 누군가를 보는 것은 더없이 뿌듯했다. 그 감정을 떠올리며 노력해나가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뮤 삼촌과 티격태격하다말고 함께 하늘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스카이라인 아래로 떨어지면서 멋진 색감의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럴 때 어울리는 명대사 같은 게 있던 것 같은데. 뭐였더라. 대충...

  아아. 정말로, 멋진 노을이다.


  ...오글거리네.



[도쿄 스이게츠 학원 2학년 A반 ------ 타도코로 신이치]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그 다음 주 월요일, 학교는 치하야의 라이브로 떠들썩해져 있었다. 라이브에 다녀 온 아이들이건, 영상으로만 본 아이들이건, 다들 옹기종기 모여서 라이브에 대한 이야기를 떠들어대고 있었다.

  우리의 이름도 나올 법 했지만, 일단 우리가 다 함께 라이브에 나갔다는 걸 함구하기로 한 데다, 메이크업 때문인지 우리를 알아본 아이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애초에 밴드 라이브도 아니고 아이돌인 치하야가 메인인 무대였으니까, 굳이 배경에 있는 반주 담당 밴드를 유심히 쳐다보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평상시와 별 다를 바 없는 점심시간을 맞이했다. 카츠라기와 사토를 데리고 웅성거리는 교실을 빠져 나오자, 레이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열기가 대단하네~!”

“그 정도로 대단한 무대였나 봐. 우리가 섰던 곳.”


  카츠라기가 레이나에게 대답했다.


“당연하지, 타로 군! 도쿄돔이잖아.”

“으으, 아직도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려.”


  사토는 그렇게 말하며 왼쪽 배를 움켜쥐었다.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걸음을 옮겼다. 다 함께 밴드부실 앞에 도착하자, 레이나가 손잡이를 잡고 부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


  밴드부실 안을 확인한 레이나는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얼어붙었다. 나는 그런 레이나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선 뒤, 의자에 앉아 있는 치하야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어, 치하야.”

“어서 와, 다들.”


  사실 내가 별로 놀라지 않은 까닭은 뮤 삼촌이 스리슬쩍 오늘부터 치하야가 학교에 나온다는 걸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큰 행사가 일단 끝났으니까, 일주일 정도는 스케줄을 빼놓고 편하게 쉬게 한다고 했다.

  대충 분위기를 정리한 뒤, 나와 카츠라기는 케이스에서 각자의 악기를 꺼내 앰프에 연결했다. 레이나는 스틱을 꺼내들고 드럼 키트 앞에 앉았고, 사토 녀석도 악보를 들고 신디사이저 앞에 앉았다.

  치하야는 마이크를 들고 가운데 공간에 서서 우리의 모습을 쭉 둘러보았다. 왠지 치하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 첫 번째 곡부터 연습해볼까?”


  치하야의 제안에 우리는 모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스이게츠제 오디션까지는 몇 주 남지 않았지만, 두 곡 정도야 어떻게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이게츠제 무대에 서지 못한다고 해도 딱히 상관없었다. 이 밴드부실, 이 멤버들, 그리고 이 기타. 이 모든 것들 자체가 이미 내 편안하고 소중한 일상의 일부였다.

  비록 내가 살아온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짧은 시간동안 확실하게 느낀 것도 있었다. 행복에는 그다지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았다. 때로는 평범하다는 게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익숙하고, 그만큼 안정적이고, 그만큼 편안하다는 뜻이니까.

  나는 앞으로도 기타를 칠 것이다. 카츠라기는 앞으로도 저 자리에서 베이스를 칠 것이다. 앞으로도 사토 녀석은 저 자리에 있을 거고, 앞으로도 내 뒤에서는 레이나가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스네어를 때릴 것이다. 그리고 치하야는 앞으로도 저 자리에서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일상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안다. 당장 내년이 되고 부활동에서 은퇴하고 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문제다.


  지금 내게는 이 광경이 편안한 일상이고, 앞으로도 이 편안한 일상을 지켜나갈 생각이다. 음악,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하는 이 일상을.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에필로그 2, 타도코로 신이치의 경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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