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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에필로그 1, 키사라기 치하야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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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13, 2021 23:18에 작성됨.

-에필로그 1-

키사라기 치하야의 경우


[도쿄도 분쿄구 도쿄돔 ------ 키사라기 치하야] 


  함성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에 서면서 받아온 그 어떤 함성보다도 크고 대단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그 함성에 보답한 뒤, 간단한 감사 인사를 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치하야짱!”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건 하루카였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끌어안고 있는 하루카를 토닥였다.

  하루카의 뒤를 이어 765프로의 동료들이 하나 둘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고조된 분위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해주었는지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봐주는 미키와 아미, 마미. 그리고 미소를 짓고 있는 모두의 얼굴은 확실하게 보였다.

  

“후우, 어떻게든 됐네.”


  뒤를 돌아보았다. 타도코로 씨를 필두로 밴드부의 친구들이 나를 따라 무대에서 내려왔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전부 다.”


  나의 감사에 부원들은 다들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레이나는 생글생글 웃었고, 타도코로 씨는 가볍게 웃으며 볼을 긁적였다. 사토 씨는 양 손으로 주먹을 쥐며 기뻐했고, 카츠라기 씨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나.”

“응!”

“지금 떠올려보면, 아카바네에 초대해준 게 처음 시작이었던 것 같아. 고마워.”

“헤~ 그랬었지! 아니야, 치하야. 치하야 덕분에 엄~청 즐거웠으니까!”


  레이나는 언제나처럼 웃어보였다. 나는 시선을 돌리고 말을 이어갔다.


“사토 씨.”

“응?”

“마이크 연결이라던가, 항상 이것저것 알려줘서 고마웠어.”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치하야가 기계치를 탈출할 수 있다면야, 얼마든지.”


  기, 기계치... 아직도 앰프를 다루는 게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카츠라기 씨.”

“말씀하세요.”

“뭐야, 갑자기. 후훗. 밴드부의 중심을 잡아줘서 고마워. 덕분에 믿음직했어. 그리고 처음에 짜증낸 건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젠 기억도 안 나는 옛날이야기잖아, 그거.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카츠라기 씨는 언제나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역시,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타도코로 씨.”

“응. 내 차례구나.”

“카나가와의 밤바다에서 사진을 찍었던 사람. 역시 타도코로 씨였지?”

“......에?!”


  타도코로 씨는 진심으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다. 놀란 건 카츠라기 씨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ㅇ...어떻게 알았어?!”

“여름방학 전부터 어렴풋이 의심하고 있었어. 타도코로 씨가 달이 나온 사진을 한참동안 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여기서... 어두운 관객석에서 빛나는 사이리움을 보고 확신했어. 인상적이었지, 그 푸른빛의 파도.”

“......”


  타도코로 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카츠라기 씨는 그걸 보고는 가볍게 놀렸다.


“들켜버렸네, 타도코로. 어라, 왜 그래? 얼굴이 빨간데?”

“ㅅ, 시끄러...”

“그 사진, 나중에 보여줬으면 하는데, 아직 가지고 있어?”


  내 요청을 들은 타도코로 씨는 양손으로 앞머리를 위로 쓸어 넘기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잔뜩 인화해놨으니까.”

“푸흐, 고마워. 그거 말고도 전부 다.”

“얼마든지. 감사라면 내 쪽에서 얼마든지 해도 모자라니까.”


  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 나는 다시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학교에서의 나를 아껴주는 이들, 그리고 아이돌로서의 나를 아껴주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뿌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봐주고 있었다. 그 시선은 너무나도 포근했다. 이런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줘서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내가 얼마나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 누구보다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 내가 서 있을 수 있도록 해준 사람, 그 누구보다도 지금의 나를 봐주었으면 했던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없었다.


“감동적이네. 내가 만들었던 곡이랑은 딴판이 되어 있는 걸.”


  그런 나의 마음에 대답하듯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듣고 있기만 해도 편안해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바로 그 목소리였다.

  마치 연극 무대의 커튼이 열리듯이, 내 앞에 서 있던 동료들이 가운데 공간을 벌려 길을 내어주었다. 그곳에는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한 남자가 오토나시 씨가 밀고 있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언제나와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멋진 무대였어, 치하ㅇ...으헉?!”

“치하야짱?!”


  나는 그대로 달려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혹시라도 그의 몸이 아직 다 낫지 않은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는 했지만, 머리에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몸이 훨씬 빠르게 움직여버리고 말았다.

  프로듀서의 품에 안기자 눈물이 흘렀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기뻐서인지, 아니면 안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응석부리고 싶은 것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눈물이 도저히 멈추지를 않았다. 울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는데, 분명 웃는 얼굴로 마주할 거라고 다짐했는데, 눈치 없는 눈물은 그런 다짐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계속 흘러내렸다. 

  프로듀서는 당황한 것 같았다. 갑자기 내가 이런 짓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이내 프로듀서가 가볍게 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따뜻한 손으로 나를 토닥여주었다. 나는 여전히 프로듀서의 품에 안긴 채 흐느꼈다.


“프로듀서... 저...”

“응. 성장했구나. 확실하게.”


  이런 순간까지도 그 대사는 바꾸지 않는 거구나. 이 남자는.

  그 후로도 몇 분 동안이나 프로듀서의 품에 안겨 있었다.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 프로듀서가 말했다.


“그, 그런데 있잖아 치하야...”

“...네?”

“보는 눈이, 조금 많은데... 아하하...”


  나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얼굴을 붉힌 채 애써 내 시선을 피했다. 하루카는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봤고, 유키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미키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토나시 씨는 왠지 모르게 코피를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조금 다른 반응을 보인 건 아미였다. 유키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 마미와 달리, 아미는 흥미롭다는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깨달은 나는, 깜짝 놀라 프로듀서에게서 떨어졌다.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눈물은 이미 그친지 오래였다.


“ㅈ, 죄송해요, 프로듀서!”

“하하... 아니야, 괜찮아.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자리를 옮길까?”

“아, 네!”

“자, 나머지도! 다들 뒷정리 하고 돌아갈 준비 해야지! 자자, 다들 대기실로 가자!”


  리츠코가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정리하는 사이, 나는 프로듀서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관객석 출입구와는 정 반대편인 운영 본부 쪽 통로라,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해가 떨어지면서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톱 아이돌로 만들어주겠다던 약속,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네.”

“...”


  프로듀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 톱 아이돌. 분명 나는 지금 꽤나 이름을 알린 아이돌이 되어 있었다. CD도 많이 팔렸고, 도쿄돔이라는 커다란 무대에서 성공적으로 라이브도 마쳤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응원해주는 팬이 많아졌다는 것, CD 판매량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그 너머의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프로듀서, 첫 미팅, 기억하시나요?”

“응.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

“그때의 전 일류 가수가 되겠다고 이야기하면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하지 않았었죠.”

“그랬지. 낭비할 시간은 없어요! 라면서.”

“그, 그렇게까지 강하게 이야기했나요?”

“응. 그랬어.”

“부끄럽네요... 아, 아무튼!”


  프로듀서는 가볍게 웃었다. 나는 애써 얼버무리고 말을 이었다.


“그 후로도 한동안, 일류는 오직 실력으로만 쟁취하는 자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레슨 말고는 다 쓸모없는 거 아닐까, 노래가 아닌 일들이 가치가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어때?”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확실하게 깨달았어요. 저를 좋아해주는 팬 분들, 그리고 저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그 사랑에 보답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사랑의 의미. 나름대로 찾아낸 것 같네.”

“그런 것 같아요. 정말이지, 그때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네요. 후후.”


  프로듀서는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런 프로듀서에게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제는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 치하야는 확실하게 성장했어. 전설적인 아이돌로서도, 그리고 한 명의 인격체로서도.”

“미사여구가 붙어도 결국 성장했다는 대사는 영원히 바뀌지를 않네요. 그래도...”

“싫지 않아?”


  프로듀서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살짝 미소 지은 뒤, 시선을 하늘로 옮기면서 말했다.


“아니요.”

“에, 그러면...”

“좋아해요. 그런 프로듀서를.”

  

  저는 앞으로도 나아갈 거예요. 유우가 좋아해준, 당신이 가르쳐준 음악을 더 멀리 전하기 위해서. 소중한 사람들이 가르쳐준 따뜻함에 보답하기 위해서.

  언제까지고 나아갈 거예요. 모두의 아이돌, 그리고...


  당신의 아이돌, 키사라기 치하야로서.


-에필로그 1, 키사라기 치하야의 경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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