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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13장, 똑바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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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9, 2021 22:58에 작성됨.

[도쿄도 오타구 타도코로 자택 ------ 타도코로 신이치]


“으으... 머리 아프네...”


  치하야의 맨션 앞까지 찾아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워드프로세서의 빈 화면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Just be myself!!」의 가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가사는커녕 평소에 시 한 편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는 나였기에,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언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10분이 지나자,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노트북을 덮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러고는 휴대전화에 이어폰을 꽂고 줄리아가 단체 채팅방에 보내준 음원 샘플을 들어 보았다. 

  이 샘플은 오늘 학교에서 임시로 녹음한 것이었다. 아직 나머지 파트가 미완성이기도 했고, 나는 샘플을 녹음할 만큼 곡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줄리아가 멜로디를 연주하고 사토가 기본적인 코드를 넣은 뒤, 레이나가 드럼라인으로 마무리하는 임시 샘플을 만들었다. 

  곡은 전체적으로 밝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기본적인 틀밖에 만들어져있지 않았지만, 기타 멜로디만으로도 충분히 곡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빠른 템포에 날아오르는 듯한 하이라이트, 왠지 ‘비상’이라던가, ‘희망’ 같은 키워드를 갖다 붙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나는 잠시 이 곡의 제목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Just be myself. 이 제목은 우리가 임의로 붙인 게 아니라, 뮤 삼촌이 처음 이 곡을 만들 때 붙였던 그 제목 그대로다. 무슨 뜻이었을까. 뮤 삼촌은 왜 이 곡에 그런 제목을 붙였을까. 밝고, 희망차고, 날아오르는 듯한 분위기에 Just be myself. 정체성에 대한 고뇌? 자기 자신에 대한 희망...? 

  일단 myself가 들어가니까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가는 거겠지. 이걸 중심 키워드로 삼고 접근해볼까.

  내가 침대에 누운 채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라인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치하야를 제외한 밴드부원들에 줄리아와 시즈카가 함께 있는 단체 채팅방이었다.


[카츠라기, 오후 8:12: 늦은 시간에 미안한데, 간단하게 베이스 라인을 녹음해서 샘플에 합쳐봤어. 듣고 피드백 부탁해.]

[첨부파일: JBM_bass (12).mp3]


  JBM이 뭐야. 벌써 줄이는 거냐. 자동차 회사 이름도 아니고. 그리고 파일명 뒤에 12는 뭐야. 대체 몇 번을 녹음한 건데.

  나는 카츠라기가 보낸 파일을 열어보았다. 베이스야 녀석이 전문가니까 어련히 잘 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들어봤을 때도 꽤 나쁘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기타 멜로디와 잘 어우러지면서 사운드가 훨씬 풍성해진 기분이 들었다. 신디사이저 멜로디가 완성되면 조그만 부분만 가다듬으면 될 것 같았다. 


[나, 오후 8:15: 좋네.]

[시즈카, 오후 8:15: 저도 마음에 들어요.]

[사토, 오후 8:16: 신디가 들어가면 하이라이트 부분은 조금 바꿔야할지도 몰라.]

[카츠라기, 오후 8:16: 오케이.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하자. 나머지는 어때?]

[레이나, 오후 8:18: 좋아좋아!]

[줄리아, 오후 8:21: 베이스는 좋은데, 기타 솔로도 이대로 확정할 거야? 베이스도 솔로 멜로디에 맞춰서 가 줘야 하니까. 어때, 신치? 따라올 수 있겠어?]

[나, 오후 8:21: 따라올 수 있겠냐니, 무슨 뜻이야?]

[줄리아, 오후 8:21: 솔로, 저대로 할 수 있겠냐고. 난 악보대로 친 건데, 너무 어렵지는 않아?]

[나, 오후 8:22: 일단 노력해볼게.]

[줄리아, 오후 8:23: 무리인 것 같으면 말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난이도는 낮출 수 있으니까.]

[나, 오후 8:23: 알겠어, 고마워.]

[줄리아, 오후 8:24: 애초에 이런 걱정 하지 않게 연습 좀 많이 하라고.]

[나, 오후 8:26: 죄송합니다.]


  줄리아 녀석, 괜히 무안하게 하기는...

  그래도 겉으로는 저래도 잘 도와주는 걸 보면, 심성이 나쁜 건 아닌 것 같았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치하야만큼이나 진지해지기도 하고.

  나는 다시 샘플을 재생한 뒤,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가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아이들에게 가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오후 8:32: 저기, 혹시 Just be myself라는 제목을 처음 보면 무슨 느낌이 들어?]

[사토, 오후 8:32: 갑자기?]

[나, 오후 8:33: 가사에 참고하려고. 아무 느낌이나 툭툭 던져 줘.]

[사토, 오후 8:34: 인생은 마이웨이?]

[줄리아, 오후 8:34: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거.]

  인생은 마이웨이라니, 어감이 조금 그렇지 않아? 일탈하는 것 같잖아. 줄리아 쪽은... 좀 더 문장 자체의 뜻에 어울리는 내용이려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라. 분명 정체성에 있어서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 그러면 그걸 꿈이나 희망 같은 쪽으로 연결하려면...


[시즈카, 오후 8:36: 줄리아 선배랑 비슷한 이야기기는 한데, 주변 상황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믿는 거 아닐까요? 스스로의 꿈이라던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 같은 거...]

[레이나, 오후 8:36: 오오, 뭔가 멋있어! 시즈카는 어른스럽네!]

[시즈카, 오후 8:36: 아니에요... ///]

[줄리아, 오후 8:38: 괜찮은 대사였어, 시즈.]

[나, 오후 8:38: 다들 고마워, 참고할게.]


  스스로의 꿈. 자신을 믿는다... 괜찮은 느낌이네.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꿈을 밀고 나가는 식으로 묘사해보면 되려나. 그러고 보니 시즈카, 지난번에 아이돌을 희망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집에서는 반대한다고 했었지. 이 부분에는 시즈카 자기 자신의 이야기도 조금 들어가 있을지도.

  결국 이 노래를 불러주는 건 치하야니까, 치하야와 연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는데. 치하야에 대해서 잘 알지를 못하니까 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 말이지... 칫.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이것저것 물어볼 걸 그랬나.

  그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카츠라기였다.


“여보세요. 무슨 일이야, 카츠라기?”

“가사 쓰고 있는 거지? 잘 돼가?”

“아니. 대충 느낌은 알겠는데, 뭔가 부족한 기분이 들어.”

“부족한 기분이라면?”

“좀 더 치하야에 대한 내용을 넣고 싶어. 치하야 스스로가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내용. 그런데...”

“어려운 걸. 우리가 치하야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잖아.”

“그러니까. 그게 문제야.”

“흐음...”


  카츠라기는 잠시 고민하더니,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 뮤 형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아?”

“그건 최대한 피하고 싶어.”

“응? 왜?”

“전에도 말했듯이, 뮤 삼촌은 치하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피했으니까. 그리고 최대한 우리의 입장에서 치하야에게 전하는 느낌이 됐으면 좋겠어.”

“아...”

“그리고 그 인간, 분명 치하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걱정된다고 병원에서 뛰쳐나올지도 모르거든.”

“뮤 형이라면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분명 그럴 거다. 치하야가 활동 중단 상태인데다, 그 원인에 자기랑 내가 있다는 걸 알고도 병상에 가만히 누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 네가 본 치하야는 어떤데, 타도코로?”

“응?”

“네가 본 치하야는 어떤 느낌이야? 중학생 때나, 지금이나.”

“글쎄... 치하야 개인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치하야가 부르는 노래에는 뭔가 있는 느낌이 들어. 어딘가에 전하고 싶다고나 할까.”

“그걸 듣고 너는 기타를 배우고 싶다고 조른 거고 말이지.”

“조른 것 까지는 아니거든.”

“그렇다 치고, 그러면 그거에 집중해 봐도 되지 않아? 그리고 꼭 치하야가 아니더라도, 네 생각이 들어가도 괜찮은 거잖아. 너도 기타 치기 시작한 이후로 엄청 많이 변했다고.”

“그러면 내 이야기가 되어버리잖아.”

“상관없잖아. 치하야의 노래를 듣고 네가 느낀 것들, 그걸 통해 네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써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런가...”

“아니면 사무소에 직접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지난번에 말한 아키즈키 씨 말고도, 치하야의 다른 동료들도 있을 거 아니야? 아이돌 동료들이라던가. 가서 인터뷰 같을 걸 해봐도 되지 않을까?”

“아이돌 동료들을 상대로 인터뷰? 너무 터무니없지 않아?”

“그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은데.”


  나는 잠시 고민했다. 우리의 시선, 그러니까 평소 보는 친구이자 동료의 시선으로 치하야에게 전하고 싶은 내용이라면, 치하야의 아이돌 동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바쁜 아이돌들이 인터뷰에 응해준다면, 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했지만.


“좋아, 카츠라기. 그러면 음원 샘플이 완성되면 같이 사무소로 찾아가보자. USB로 전해드리는 걸 겸해서.”

“나도 가야해?”

“그, 혼자 가기는 좀 그렇다고. 상대는 아이돌이잖아.”

“이상한 데서 긴장하는구나, 타도코로.”

“시끄러. 같이 갈 거야, 안 갈 거야?”

“뭐, 알겠어. 같이 가 줄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만.”

“고마워. 그러면 일단 아까 말한 내용으로 초안을 써 볼게.”

“오케이. 뭔 일 있으면 연락하고.”

“오케-”


  전화를 끊은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치하야에 대한 내용들은 나중에 사무소로 찾아가 더 물어본다는 가정 하에, 우선은 다른 아이들과 카츠라기가 했던 말들을 토대로 초안을 적어 볼 생각이었다. 어차피 음악에 맞추고 이것저것 하다보면 계속해서 수정해야할 테니까, 지금은 마음 가는 대로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도 기타 치기 시작한 이후로 엄청 변했다고.’


  맞는 말이다. 나는 변했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를 딛고, 주변에 대한 시선을 바꿔나갔다. 그게 꼭 음악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날 밤 보았던 그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배경으로 노래하고 있던 치하야가 변화의 불씨를 지핀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훨씬 다양하고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았겠지만, 그 모든 것들의 시작에 치하야의 노래가 있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는 워드프로세서를 켠 뒤, 옆에 놓여 있던 지갑을 열어 보았다. 안에는 명함 크기로 인쇄 된 두 장의 밤바다 사진이 들어 있었다. 올해 여름방학 때 다시 그 바닷가에 다녀온 이후로, 이번에 찍은 사진과 함께 3년 전에 찍은 사진을 둘 다 인화하여 지갑에 넣어 다니고 있었다. 두 사진이 찍힌 그 사이의 기간 동안, 내가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했는지 되새겨보기 위한 일종의 증거품이었다.

  지갑 속의 두 사진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나는, 다시 지갑을 옆으로 치워두고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의 감정을 담아, 밴드부에서의 추억을 담아, 줄리아의 가치관을 담아, 그리고 시즈카의 꿈을 담아, 치하야에게 전하기 위한 가사를 적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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