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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13장, 똑바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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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9, 2021 00:50에 작성됨.

[도쿄도 고토구 신키바역 인근 ------ 아키즈키 리츠코]


“네, 코토리 씨. 야요이 쪽 말씀이시죠? 네. 바로 갈게요.”

“릿짱, 삐요짱 전화야? 야요잇치네 일 때문에?”

“응. 너희 내려주고 바로 가 봐야할 것 같아.”


  뒷좌석에 앉아 있던 마미가 물어왔다. 방금 받은 전화는 코토리 씨로부터 온 것이었다. 야요이와 히비키의 요리 방송을 진행하는 담당PD가 논의할 게 있다며 프로듀서님을 찾았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가 대신 가 봐야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미나토구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니까, 수도고속도로로 넘어가면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이 복잡한 구역을 어떻게든 빠져 나가야되겠지만...


“릿짱, 그러면 이 앞에서 내려 줘. 여기서부터는 걸어갈게.”

“뭐?! 스스로 갈 수 있어?”

“아미들을 너무 어린애로 보는 거 아니야?”


  아미는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얘들도 중학생이니까, 여기서 라이브 하우스까지 가는 것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둘에게 무언가를 맡기려고 하면 왠지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 아미, 마미. 어차피 차 돌리려면 거기까지 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치만, 라이브 때문에 차도 많을 거라구? 안 그래, 마미?”

“응응. 구글 지도가 엄-청 막힌다고 하고 있는 걸. 도로가 온통 빨간색이야.”


  마미가 휴대전화 지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둘의 말이 맞았다. 원래도 교통량이 많은 지역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라이브가 있기 때문인지 확실히 더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둘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알아서 갈 수 있겠어?”

“아미들도 이제 프로라구, 릿짱. 그리고 바로 앞이잖아. 괜찮아.”

“그리고, 오빠가 병원 신세라 요즘 릿짱 혼자 고생하잖아. 이 정도는 마미들이 알아서 해결할게!”

“마미...”


  자신감에 찬 표정을 짓는 둘을 보자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여름 때까지만 해도 천진난만에 툭하면 장난 칠 궁리만 하던 꼬맹이들이, 어느덧 각자 한 사람 몫을 해내는 아이돌이 되어 있었다. 둘이 함께 있을 때면 두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 이상의 몫을 해내기도 했다.

  나는 가장 가까운 건물 주차장에 잠시 차를 대고 문을 열어주었다. 여기서 라이브 하우스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러면 여기서 내려줄게. 중간에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해. 마스크랑 모자 꼭 쓰고.”

““옛서-””

“꼭 조심해야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코앞인걸. 걱정하지 마, 릿짱!”


  아미와 마미가 멀어지는 것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나는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미나토구의 방송국으로 설정한 뒤, 수도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차를 몰았다. 다행히도 예상하던 것보다는 차가 덜 막혀서, 30분 내로 도착할 수 있었다.

  건물 주차장에 차를 대고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담당 PD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765 쪽 분이시죠?”

“네. 아키즈키 리츠코입니다. 오늘은 하세가와 프로듀서를 대신해서 왔습니다. 논의할 게 있으시다고...”

“특별한 건 아니고요, 다음 편 게스트가 애매해서 765프로 소속 아이돌을 한 명 섭외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담당 PD는 손에 들고 있던 클립보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키사라기 치하야로 괜찮을까요? 여름 때 방송이 반응이 좋았거든요.”

“아, 치하야는...”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치하야는 그 날 이후로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도쿄돔 라이브 전까지 예정된 대부분의 스케줄을 취소하거나 대체해야 했다. 이대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도쿄돔 라이브마저 위태로워질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어려울까요?”

“...네. 스케줄 상 곤란할 것 같아서요.”

“흐음. 아쉽네요. 그러면 시죠 타카네는 어떤가요?”

“괜찮습니다.”

“그러면 그 쪽으로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관련 서류는 사무소 쪽 팩스로 보내겠습니다. 항상 신세지고 있네요.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방송 녹화가 끝난 뒤, 야요이와 히비키를 사무소에 데려다 준 나는 빠르게 아즈사 씨의 이벤트 현장으로 이동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라 모든 현장에 갈 수는 없었지만, 간단한 현장 업무 보조는 코토리 씨가 힘을 보태주고 계셔서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그 사이 사무소로 오는 업무 전화는 사장님이 맡으셨다.

 이벤트가 끝나자 어느덧 저녁 시간대가 되어 있었다. 사무소로 돌아가는 차 안,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즈사 씨가 프로듀서님에 대한 것들을 물어왔다.


“리츠코 씨, 프로듀서 씨는 어떠신가요?”

“괜찮으신 것 같아요. 회복은 순조롭다고 하셨어요.”

“다행이네요...”


  아즈사 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잠시 골똘히 무언가를 생각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씨도 걱정이지만, 리츠코 씨가 무리하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되네요.”

“저는 괜찮아요. 현장에 동행하는 건 조금 힘에 부치긴 하지만요. 하핫.”

“...”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아즈사 씨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프로듀서님이 같이 있었을 때도 밤늦게까지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아예 혼자서 하다 보니 굉장히 버거웠다. 서류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지만, 오늘처럼 현장에 나가야 하는 일이 몰려 있는 경우에는 물리적 한계에 맞닥뜨리고는 했다.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리츠코 씨. 아즈사 씨.”


 사무소에 도착하자, 하루카와 유키호의 악수회에 동행했던 코토리 씨가 먼저 돌아와 계셨다.


“코토리 씨도 수고하셨어요. 하루카랑 유키호는 돌아갔나요?”

“네. 조금 전에 먼저 도착해서, 간단하게 뒷정리하고 먼저 돌아갔어요. 악수회도 잘 마쳤답니다.”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코토리 씨.”

“아니에요. 현장업무라도 도울 수 있는 건 도와야죠.”


  그 후 집으로 돌아가는 아즈사 씨를 배웅한 뒤, 간단한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자, 화면에 띄워 뒀던 도쿄돔 라이브 관련 기획서가 눈에 들어왔다.


“올스타 라이브, 이대로 진행할 수 있겠죠?”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코토리 씨가 물어왔다. 나는 양손으로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대답했다.


“그러게요.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대비할 수는 있을 텐데, 역시 치하야가...”

  “역시 그렇죠...”


  프로듀서님이 입원한 이후로 도쿄돔 라이브 기획은 내가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이미 프로듀서님이 대부분의 틀을 잡아놓았기 때문에 대관 계약과 하청 업체 선정까지는 순조로웠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치하야의 출연여부였다.

  치하야는 소속 유닛인 TORICO와 함께 현재 765프로 내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지닌 아이돌이었다. 그만큼 관객 동원력도 가장 강하고, 라이브 성공에 미치는 영향력도 크다는 뜻이다. 애초에 이 기획이 진행될 수 있던 것 자체가 치하야를 포함한 12인 전원의 관객 동원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 치하야가 빠지게 된다면 라이브 자체를 취소해야할 위험성도 있었다.

  만약 라이브를 취소한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겠지만, 도쿄돔 수준의 무대를 억지로 강행했다가는 막대한 적자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객석이 잔뜩 비어버린다면 765프로에 대한 여론도 타격을 받을 위험성이 있었다. 그런 모든 것을 종합해봤을 때, 치하야 없이 이번 라이브를 진행한다는 건 이미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나는 순간 마음을 고쳐먹고 고개를 양 옆으로 저었다. 도쿄돔 라이브가 당장 급한 일인 것은 맞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치하야의 상태였다. 치하야가 이대로 아예 은퇴해버리는 상황까지 가 버리면, 도쿄돔 라이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어버릴 것이다.


“저기, 코토리 씨. 저는 잠시 치하야한테 다녀올게요. 혹시 저를 찾는 연락이 오면 전화해주세요.”

“네?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고 사무소를 나서려는 순간, 코토리 씨가 나를 불렀다.


“아, 리츠코 씨!”

“네, 코토리 씨.”

“그... 치하야짱한테 프로듀서 씨도 치하야짱이 돌아와 주길 바랄 거라고 전해주실래요?”

“네...? 네. 그럴게요.”

  나는 치하야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차를 몰면서 코토리 씨의 전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틀 전쯤에 나는 코토리 씨와 함께 프로듀서님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다른 아이들도 당연히 함께 가고 싶어 했지만,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나중에 다 함께 가자는 말로 말렸다.

  병상에 누워 있는 프로듀서님은 다행히도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비록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계시긴 했지만, 언제나처럼 차분한 미소로 코토리 씨와 나를 반겨 주었던 기억이 난다.


“프로듀서 씨, 몸은 좀 괜찮으세요?”

“네. 부러진 곳은 붙을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다른 데는 멀쩡한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이에요...”

“운이 좋았던 거겠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지 말아주세요!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데...”

“하하, 죄송해요, 오토나시 씨.”


  프로듀서님은 코토리 씨와 몇 마디를 나눈 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 리츠코. 모처럼 일을 벌여놓고는 이런 상태가 돼버려서.”

“아니에요. 일단은 회복에 집중해주세요. 프로듀서님의 빈자리는 어떻게든 메꾸고 있으니까요.”

“아이돌들은 어때?”

“울고불고 난리에요. 방금도 같이 오겠다는 걸 겨우 떼어놓고 왔어요.”

“아하하, 미안해라...”


  치하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일단 내 스스로도 치하야의 상태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했고, 회복 중인 프로듀서님께 치하야에 대한 이야기를 해봤자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토리 씨도 나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특별히 별다른 언급을 하지는 않으셨다.


“애들한테는 미안하다고 전해 줘. 최대한 빨리 돌아가겠다고.”

“괜히 서두르지 마시고, 일은 다 잊고 회복에만 집중하세요. 의사 선생님도 절대안정이 중요하다고 하셨으니까.”

“알겠어. 그래도 무슨 일이 있으면 신이치를 통해서 알려 줘.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건 할ㄱ...”

““안 돼요.””

“...에.”


  코토리 씨와 나의 단호한 대답에 프로듀서님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병상에 누워서도 일 생각이라니, 이 남자는 대체 사고회로가 어떻게 되어먹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치하야의 맨션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적어온 주소를 보고 계단을 오른 뒤, 치하야의 문 앞에 다다랐다. 이렇게 찾아오는 것도 벌써 세 번째였다. 그때마다 별다른 성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오늘도 이 문 앞에 서고 말았다. 


-딩동. 딩동.


  지난번처럼, 지지난번처럼, 인터폰은 한참동안이나 침묵했다. 내가 문을 가볍게 두드리려고 오른손을 들어올린 순간, 인터폰에서 치하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돌아가 줘.]

“치하야, 나야, 리츠코.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리츠코, 이제 그만해.]

“잠깐이면 돼. 스케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도쿄돔 건 때문에...”

[이제 그만 좀 하라고!]


  치하야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나는 순간 움찔, 하고 몸을 옴츠렸다. 치하야가 이렇게까지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세 번씩이나 찾아왔으니까, 충분히 질릴 수는 있겠지만... 다들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건 왜 몰라주는 걸까.


“...미안해. 하지만, 다들 걱정하고 있으니까. 프로듀서님도-”

[결국 나는... 모두에게 걱정거리만 될 뿐이잖아.]

“뭐?”

  [아무 것도 돌려주지 못하면서... 폐만 끼치고... 다들 희생해주는데...]

“치하야, 그렇지 않ㅇ-”

[이제 그만해, 리츠코. 나는 더 이상 노래할 수 없어. 그러니까... 이제 찾아오지 말아줘.]


  나는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강하게 저항하는 벽 말이다. 하지만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말했다.


“무슨 느낌인지 알아, 치하야. 나도 전에는 아이돌이었으니까.”

[...]

“너에게는 분명 내가 모르는 사정이 더 있을 거야. 그거까지 다 이해한다고 하면 분명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무대에 서는 건 폐를 끼치는 게 아니야. 아이돌이 무대에서 빛날 수 있게 하는 게, 나와 프로듀서님 같은 사람들의 몫인 걸.”

[...]

“잠깐 마음을 추스르고 잘 생각해줘. 나는 주말에 다시 찾아올게.”

[...]


  치하야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치하야를 달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전부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원래의 희망은 프로듀서, 입사 당시에는 사무 알바였지만, 어쩌다보니 아이돌로서 무대에 서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아이돌들이 하나 둘 입사하기 시작한 후로는 점차 활동을 줄이다가 결국 작년 말 정도에는 아예 프로듀서로 전향했지만, 무대에 서던 시절에는 사장님이나 코토리 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단순히 조력자 역할인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조력을 받는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에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았지만, 치하야는 자신에 대한 지원을 희생이라고 생각하고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는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었다. 프로듀서들이 온 힘을 다해 아이돌을 지원해주고, 이를 받은 아이돌이 무대에서 전력으로 빛나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아이돌과 프로듀서의 관계였다. 치하야가 그걸 깨달아준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며,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을 빠져 나왔다.


“저기, 아키즈키 씨?”

“꺄악?!”

“에엣?!”


  나는 갑작스럽게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내가 놀라는 바람에 상대 쪽도 놀란 것 같았다. 처음에는 대체 치하야의 집 앞에서 나를 알아볼 사람이 누구일까 했는데,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살펴보니 프로듀서님의 조카인 타도코로 씨였다.


“타도코로 씨? 여기는 무슨 일로... 아, 혹시 치하야를 만나러?”

“네. 잠깐 이야기할 게 있어서 왔는데, 아키즈키 씨도 치하야를 찾아오신 건가요?”

“네. 사실은 이미 이야기하고 돌아오는 길이지만요.”

“치하야는 어떤가요?”

“사실 문 앞에서 인터폰으로 이야기한 게 전부예요. 문을 열어줄 생각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가요... 역시 나중에 다시 오는 게 나으려나...”

“그럴 것 같아요. 지금은 아무래도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아, 아키즈키 씨. 잠시 여쭤볼 게 있는데, 괜찮을까요?”

“네. 괜찮습니다.”


  타도코로 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혹시 이대로면... 그 대형 라이브가 취소될 수도 있나요?”

“네?”

“치하야가 준비한다던 그 대형 라이브, 이대로는 역시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타도코로 씨는 치하야와 같은 학교라고 했으니까, 어쩌면 도쿄돔 라이브 건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프로듀서님에게 들었을 수도 있고.

  우선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이대로라면 도쿄돔은 무리였다. 공연장을 옮겨서 조금 더 소규모 라이브로 재구성할 수는 있겠지만, 치하야가 없는 상태에서 도쿄돔 라이브를 강행하는 건 확실히 무리였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주어야할지 고민했다. 프로듀서님의 가족이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외부인이니까. 그러다 치하야의 평소 학교생활을 보는 입장이니 어쩌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도 괜찮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네. 치하야가 출연이 어렵다면, 취소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저기, 그러면 치하야가 나올 수 있다면 괜찮은 거네요?”

“네? 네. 그건 그렇지만...”


  타도코로 씨는 갑자기 비장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눈빛은, 어딘지 모르게 프로듀서님과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은, 밴드부에서 곡을 하나 만들고 있어요. 치하야가 불러줬으면 하는 곡인데...”

“네?”


  그러고 보니 치하야는 학교에서 밴드부를 하고 있다고 했지. 밴드부의 동료였던 거구나. 타도코로 씨는.


“말씀드리자면 복잡하지만, 치하야와는 사연이 있어요. 지금 치하야가 저런 상태인 거에는, 저도 연관이 있기도 하고요.”


  타도코로 씨는 조금 망설이는 것 같다가도 호흡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사실 자세한 계획은 없이 무작정 만들고 있는 거라, 그 후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아키즈키 씨한테 상담해보려고 했거든요.”

“노래를 만들고 있다는 거죠?”

“네.”

“그 노래를 치하야가 라이브에서 불러줬으면 좋겠다?”

“네, 그렇기는 한데... 좀 터무니없을까요? 혹시 절차나 서류 같은 게 필요할까 해서 여쭤보려던 건데...”


  나는 상황을 이해하고자 머리를 굴렸다. 치하야가 소속된 밴드부의 동료들이, 치하야가 불러줬으면 하는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그걸로 치하야가 다시 복귀해줬으면 한다... 애초에 이 아이들이 만드는 곡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지녔을지도 미지수고, 그걸 치하야가 무대 위에서 선보일 수 있을지는 더더욱 불확실했다.

  하지만 몇 가지 확실한 부분도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이 소년은 진심으로 상황에 임하고 있다는 것. 단순히 학생들 수준에서 ‘한 번 만들어 보자!’가 아니라, 나에게 직접 절차를 상담해올 만큼 본격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는 순수하게 치하야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눈빛뿐만이 아니라 사서 고생하는 성격까지 프로듀서님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나는 가볍게 웃었다.


“ㅂ, 비웃으실 정도로 터무니없는 건가요?”

“아, 아니에요. 갑자기 웃어서 죄송해요. 후후.”


  나는 당황한 표정의 타도코로 씨에게 사과한 뒤, 웃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곡이 완성되면 꼭 악보랑 녹음된 샘플을 보내주세요. 메일 주소는 문자로 알려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네. 어떤 부탁이죠?”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제가 하기에는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치하야가 다시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그러니까 라이브는 취소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무책임한 소리였다. 타도코로 씨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쪽에서도 당연히 치하야가 복귀하는 걸 바라고, 라이브를 진행하는 걸 바라지만,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일처리의 시스템이라는 게 있었다. 여러 업체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계약이라는 게 존재했고, 당연히 그 과정에는 막대한 양의 돈이 오고갔다. 단순한 바람과 감성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네. 사무소에서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 곡.”

“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현실에 찌든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적어도 누군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결의를 다진 고등학생에게, 그런 김빠지는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세한 사정과 현실은 모르지만 일단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질러보는 모습. 그 모습에서 다짜고짜 765프로의 문을 두드린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절로 웃음이 나왔다.

  타도코로 씨와 헤어지고 사무소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코토리 씨는 잠시 나가셨는지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도쿄돔 관련 서류를 다시 체크하던 중, 내 휴대전화에서 라인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보낸 사람은 프로듀서님이었다.


[프로듀서님, 오후 7:22: 가능한 때에 최대한 빨리 통화 부탁해.]


  나는 라인을 닫고 바로 프로듀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꽤 급한 어투였기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프로듀서님?”

“응, 리츠코. 지금 통화 가능해?”

“네. 사무실에 있어요. 혹시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어쩐 일로...”

“솔직하게 대답해줘.”

“네...?”


  전화 너머로 약간은 심각한 분위기가 전해져왔다. 말투가 확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평소와는 미묘하게 다른 목소리 톤에서 그다지 유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내가 긴장하고 있는 사이, 프로듀서님이 말했다.


“치하야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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