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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13장, 똑바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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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6, 2021 23:02에 작성됨.


[도쿄 스이게츠 학원 고등부 밴드부실 ------ 히야마 레이나]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치하야와 신이치 군이 없는 밴드부실에는 나와 타로 군, 그리고 사토 군 셋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동그란 드럼 의자에 앉아 빙그르르 돌았다. 사토 군과 타로 군은 한참 전부터 이펙터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오버드라이브만으로는 느낌이 안 사는데. 디스토션을 더 먹여야하나?”

“사토, 아예 퍼즈를 확 올려 줘,”

“오케이.”


  사토 군이 이펙터를 조작하자, 앰프에서 강하게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둘은 지금 베이스로 일렉기타의 소리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베이스와 일렉은 역할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비슷하기 때문에 베이스에 드라이브 계통의 이펙트를 강하게 먹이면 일렉기타와 비슷한 음색을 내는 게 가능했다.


“흐음... 옥타브 자체가 낮아서 하이라이트 부분은 좀 어렵겠는데. 살짝 편곡해서 들어가야 되나?”

“아예 곡을 바꾸는 게 나을지도 몰라. 베이스에 드럼으로만 이루어진 곡들도 꽤 있으니까. 정 어려우면 보컬만 구해서 3인 구성으로 가도 되고.”

“그런가...”


  사토 군의 말을 들은 타로 군은 내 쪽을 살폈다. 나는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의자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원래대로라면 새 기타리스트를 구해야 했다. 기타는 중요한 멜로디 악기였기 때문에 기타리스트가 없는 밴드는 곡을 구성하기 쉽지 않았다. 프로 밴드들 중에는 사토 군의 말대로 기타가 없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커버곡 위주로 연주하는 스쿨 밴드에서 기타가 없다는 건 치명적이었다.

  그러면 당장 나가서 구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작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새 기타리스트를 찾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는 게 좀 더 적절한 표현이려나. 

  일단 우리 학교 내에 기타를 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고, 신이치 군이 그날 했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두 번째 문제였다.


‘너한테는 그거면 되는 거야? 그냥 무대에 설 수 있으면 그게 누가 되었던지 상관없다는 거야?’


  누가 되었던지 상관없다?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밴드는 단순히 업무적 관계가 아닌 또 다른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밴드마다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밴드 중에는 멤버 사이의 관계가 파탄 나더라도 뛰어난 곡들을 내놓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멤버들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어져야 제대로 된 화음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타츠 언니에게 배운 밴드의 정신이고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신이치 군의 말을 듣고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밴드의 멤버는 함부로 대체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치하야도 스이게츠제에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밀려온 초조함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치하야를 재촉하고, 압박하고 있었다.


‘사실 연습이 걱정이야. 이제 10월이니까, 진짜 본격적으로 해야 할 때인데...’

‘역시 그렇지...’


  치하야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건 신이치 군과의 사건 바로 전날의 저녁이었다. 그날도 나는 치하야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질문을 하다가, 밴드부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냐는 치하야의 질문에 솔직하게 현재의 걱정을 털어 놓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고민을 이야기하는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일종의 푸념 같이 되어버려서, 아마 치하야에게 부담을 주었던 것 같다.


‘저기, 레이나. 그러면 축제 때는 보컬리스트를 따로 구하는 게 어때?“

‘응?’

‘사실 11월 라이브 전까지는 학교에 나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그 후로도 상황이 확실하지 않으니까, 계속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해.’

‘...’


  나는 치하야를 말리지 않았다. 특별히 반박하지도 않았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애써 아니라고 부정하고 숨겨왔지만, 그게 내가 그 순간에 느낀 솔직한 감정이었다.

  그렇기에 신이치 군의 말이 더욱 아팠다. 내가 애써 외면했던 그 부분을, 신이치 군은 정확하게 꿰뚫어보았다. 결국 나는 신이치 군에게 감정으로 호소하는 것 외에는 제대로 된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치하야를 대체하려고 했던 건 사실이었으니까.

  타로 군도 그걸 알고 있기에 지금 저런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내가 기타고 보컬이고 새롭게 구할 의지조차 잃어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자신이 기타의 멜로디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타츠 언니와 옛 동료들에게 멋있는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스이게츠제를 발판 삼아 꿈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마음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이대로 서는 무대에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하야도, 신이치 군도 없는 무대. 올 한 해 동안 함께 만들어온 과정이 없는 무대가, 과연 나에게 있어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의자를 돌리는 것을 멈추고 몸의 방향을 드럼 키트 쪽으로 향한 뒤, 베이스와 하이햇 페달에 발을 올렸다. 그러나 스틱을 쥐는 감촉에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양손이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이 불편한 감각 때문에 박자를 절기 시작하면서, 지난 며칠간은 제대로 된 연주를 하지 않았다.  


“레이나, 괜찮아?”


  사토 군이 물어왔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변명했다.


“응. 아직 손목이 좀 덜 나은 것 같지만, 일단은 괜찮아.”

“흐음...”

-쾅!


  그 때, 밴드부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문 앞에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의 등 뒤로 햇빛이 쏟아져서 순간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잠시 후 나는 그게 신이치 군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타도코로!”

“허억, 헉. 휴우...”


  신이치 군은 급하게 뛰어 왔는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등 뒤로는 기타 케이스를 메고 있었고, 옆구리에는 파일이 끼워져 있었다.


“늦지, 않았네.... 다행이다.”

“잘 왔어. 들어와. 빨리.”


  타로 군은 신이치 군을 안으로 들인 뒤 문을 닫았다. 나는 여전히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영 좋지 않게 흘러갔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쉽사리 정하지 못했다.

  신이치 군은 기타와 파일을 내려놓더니,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일단, 뭔가 이야기하기 전에...”


  그러더니 갑자기 내 쪽으로 돌아서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신이치 군?!”

“갑자기 도게자?!”

“제멋대로 굴어서 미안했어!”

“일단 알겠어! 알겠으니까 일어나 줘!”


  엎드려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툭툭 턴 신이치 군은 잠시 밴드부실 안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아직 따로 구하지는 않았구나.”

“응...”

“저기, 타도코로?”


  사토 군이 물었다.


“그러면, 같이 스이게츠제 준비하는 거야?”

“아, 그거 말인데...”


  신이치 군은 사토 군의 질문에 잠시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갑자기 와서는 또 무리한 부탁을 해서 미안하지만...”

“무리한 부탁?”

“나랑 같이 완성해줬으면 하는 곡이 있어.”

“...뭐?”


  나는 어리둥절했다. 갑자기 완성해줬으면 하는 곡이라니, 신이치 군은 작곡이라도 하고 있던 걸까.


“일단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아. 굉장히 길고 복잡한 이야기인데, 괜찮다면 들어줬으면 좋겠어.”


  신이치 군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인데 나한테만 이야기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든 나는 신이치 군에게 되물었다.


“나한테만?”

“카츠라기는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야. 사토. 너도 들어줘.”

“응? 응. 알겠어.”

“타도코로, 내가 아는 이야기라면?”

“치하야와 뮤 삼촌에 대한 이야기야.”

“아...”


  치하야에 대한 이야기구나. 뮤 삼촌이라면 누구지? 신이치 군의 친척?


“어디 보자... 어디부터 이야기해야하지.”

“중학교 때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신이치 군이 쉽사리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자, 타로 군이 옆에서 거들었다. 잠시 분위기를 살피던 나는 이 이야기가 어떤 내용이건, 어떻게 흘러가건, 얼마나 복잡한 이야기건 상관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미 신이치 군을 도와 저 곡을 완성하겠다는 마음을 굳힌 뒤였기 때문이다.


“잠깐만, 신이치 군.”

“응?”

“길고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들을게. 일단 그 완성하고 싶다는 음악에 관련된 부분만 알려 줘.”

“그래...? 알겠어. 그러면 일단, 치하야가 몇 일째 사무소에 나가지 않고 있대.”

“뭐?!”

“어이, 타도코로. 그건 나한테도 얘기 안 해줬잖아?”

“방금 전에 사무소에서 연락을 받았거든.”

  이 이야기는 타로 군도 처음 듣는 눈치였다. 치하야가 사무소에 나가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 게스트로 나오기로 한 방송에 나오지 않았지. 단순한 스케줄 문제인 줄 알았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사토 군은 나만큼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학교에도 안 나왔잖아. 무슨 일이래?”

“이야기하자면 복잡하지만,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우리 외삼촌이 치하야의 담당 프로듀서야. 그런데, 지난 주말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치하야의 프로듀서가 신이치 군의 삼촌이라는 것도 놀랐지만, 그보다도 교통사고라는 말에 깜짝 놀란 나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 지금은 괜찮으셔?”

“응. 병원 신세를 지고 있기는 하지만, 나름 괜찮아.”

“치하야는 그 충격 때문에?”

“일단은 그래. 복잡한 사연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면, 완성하고 싶은 곡이 있다는 건 무슨 얘기야?”


  신이치 군은 나의 질문에 들고 온 파일을 가져왔다. 안에는 손으로 써진 악보들이 이것저것 담겨 있었다.


“삼촌이 대학 시절에 쓰던 악보집이야. 내가 처음 기타를 배울 때 물려받았어. 연습곡도 있고, 삼촌이 만들었던 곡도 있고.”

“그러면 완성하고 싶다는 곡은, 뮤 형이 만든 곡이야?”


  타로 군이 물었다.


“응. 맞아.”


  신이치 군은 중간쯤에서 페이지를 멈춘 뒤, 파일에서 악보 몇 장을 꺼내 타로 군에게 내밀었다.


“이 곡에 가사를 붙여서 치하야에게 전해주고 싶어.”

“치하야에게...?”


  나는 갑작스럽다는 생각에 조금 당황했지만, 신이치 군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솔직히 이게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치하야가 어떻게 반응해 줄지는 모르는 거니까.”

“그래도 너는 돌려주고 싶다는 거지? 그 음악.”


  타로 군이 말했다. 신이치 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돌려준다니, 뭘 의미하는 걸까.


“에? 돌려준다는 건 무슨 소리야, 타도코로?”


  나와 똑같은 의문을 가진 사토 군이 물었다.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게 치하야 때문이었거든.”

“너, 기타는 중학생 때부터 하지 않았어?”

“그래서 길고 복잡한 이야기라고 했던 거야.”

“에에... 복잡한 건 질색인데.”

“그러면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 줄게.”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자 신이치 군은 내 눈치를 살피고 물었다.


“이 곡은 원래 다른 세션까지 있던 곡이었는데, 지금 나한테는 기타 악보밖에 없어. 완성시키려면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대신 그러면... 아마 스이게츠제까지는 시간이 부족할 거야.”

“치하야의 라이브까지는 3주 정도 남았지?”

“어...?”


  내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신이치 군은 순간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레이나, 스이게츠제를 못 하게 돼도 괜찮아?”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신이치 군.”


  나는 피식, 하고 웃어 보인 뒤 말했다.


“치하야를 위해서 그 곡을 완성하고 싶다며? 조금 순수하긴 하지만, 그 곡을 들어준 치하야가 다시 힘을 내서 무대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거잖아?”

“응. 그건 그런데...”

“내가 굳이 그걸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

“하지만 레이나, 스이게츠제는 중요한 무대라고 그랬잖아.”

“슬슬 답답하네. 신이치 군, 애초에 내가 거절할 거라는 생각은 한 적 없잖아. 그렇지?”

“그건... 그렇지만.”

“왜 시선을 피하는 거야?! 날 의심했구나!”

“아니야! 오해야, 오해!”


  신이치 군과 내가 티격태격하는 사이, 악보를 훑어보던 타로 군이 처음의 몇 마디를 연주했다. 그걸 본 사토 군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카츠라기, 그거 기타 악보 아니야? 어떻게 봤어?”

“타브랑 오선 악보가 같이 표기되어 있어서, 대충 오선 악보를 보고 해봤어. 어이, 타도코로. 이거 뮤 형이 쓴 거라고 했지?”

“응? 응. 대학 때 만든 곡이래.”


  신이치 군이 대답했다.


“난 마음에 들어. 대단하네, 뮤 형.”

“그래? 처음 배울 때는 어려워서 결국 포기했던 곡이야.”

“풀 세션 곡으로 만들려면 꽤 난이도가 있겠지만, 일단 해 봐야겠지.”

“다른 악보도 있어. 같은 곡인데 멜로디가 두 개였던 걸로 기억해.”

“뭐?”


  신이치 군이 또 다른 악보를 꺼내 건넸다. 두 악보를 비교하며 쭉 읽어보던 타로 군이 잠시 후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하나는 피아노 악보인 것 같은데.”

“뭐?!”

“일단 이쪽은 타브 악보가 안 쓰여 있기도 하고, 멜로디 두 개가 다 일렉으로 나오면 소리가 섞일 테니까. 아마 신디사이저로 연주하던 파트 같아.”

“어쩌지. 우리는 신디사이저를 할 만한 멤버가 없는데... 편곡으로 어떻게 안 될까?”

“훗.”

““훗?””


  사토 군은 갑자기 후훗,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신이치 군과 타로 군은 물론, 나 역시도 그런 사토 군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신디사이저라면 안심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ㅇ...... 잠깐만. 설마?”

“후후훗. 그렇다네.”


  뭐야, 저 웃음소리. 말투도 그렇고. 만화에 나오는 악당 같아서 기분 나빠.


“지난 몇 달간 악기 하나 정도는 배우라던 타도코로의 갈굼에 못 이겨, 비밀리에 피아노를 배웠지.”

“...사토오!!!”


  신이치 군은 벌떡 일어나 사토 군에게 달려들어 꼭 끌어안았다. 타로 군은 피식, 하고 웃으며 사토 군에게 물었다.


“배운지는 얼마나 됐어?”

“으음... 5월 말부터니까, 5달?”

“그 정도면 좀 말을 하라고. 왜 굳이 숨기는 건데.”

“그거야 뭐, 아직 합주를 할 실력은 아니기도 했고,”


  나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왠지 잘 어울리는 세 명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 봤을 때도 그랬고, 밴드에 들어와 달라고 했을 때도 그랬고, 저 셋은 언제나 함께 있었지. 세 사람을 보고 있자면 저런 게 바로 타츠 언니가 말하던 우정과 동료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타로 군이 내려놓은 악보를 집어든 뒤, 음계를 보고 간단하게 멜로디를 떠올려보았다. 내 음감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밝고 활기찬 곡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멜로디 초안이 있는 곡이라고는 하지만, 적절하게 편곡하고 가사를 붙인 뒤 완성까지 하려면 한 달이라는 시간도 빠듯할 것 같았다. 치하야의 라이브가 끝난 뒤 스이게츠제까지의 시간도 한 달 남짓이니까, 신이치 군의 말대로 어쩌면 스이게츠제를 포기해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 그깟 무대, 지금까지도 서 왔고, 앞으로도 분명 더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치하야를, 신이치 군을, 소중한 멤버들을 대체한 채로 무대에 서는 것보다, 치하야를 위해 이 곡을 완성하는 게 훨씬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치 군의 설명을 완전히 듣지는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배경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치하야와 신이치 군, 그리고 ‘뮤 삼촌’이라고 불리던 신이치 군의 외삼촌 사이에는 어떤 복잡한 사연이 얽혀 있는 것 같았다. 그쪽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건 나중에 천천히 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은, 모두와 함께 이 곡을 완성하고 싶어.

  치하야를 위해서, 그리고 나 스스로를 위해서도.


  나는 악보를 다 훑어본 뒤, 신이치 군에게 물었다.


“이 곡, 제목은 그대로 갈 거지?”

“응. 그러려고 생각 중이야.”

“가사를 쓰는 것도 쉽지 않겠네... 그래도 노력해보자!”

“기타 멜로디는 줄리아한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야. 그런데, 가사도 맞추고 전체적으로 연습하려면 보컬이 필요하기는 할 텐데...”


  그 말을 들은 타로 군이 입을 열었다.


“보컬이라면 적당한 인재가 있지.”

“응? 누구 말하는 거야, 카츠라기?”

“중등부의 시즈카. 기억해?”

“아, 무도관에서 만났던 걔?”

“응. 줄리아한테 들었는데, 꽤 실력이 있댔어.”

“좋아. 그러면 시즈카한테는 네가 부탁해 줘. 나는 줄리아한테 이야기할게.”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그저 흐뭇하게 듣고 있었다. 지난주에 신이치 군이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모든 게 복잡하게 꼬여 제대로 돌아가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신디사이저에 대한 고민은 사토 군이, 편곡에 대한 걱정은 줄리아짱이, 연습을 위한 보컬에 대한 걱정은 시즈카가 단번에 해결해주었다. 모든 게 착착 맞아 떨어지는 걸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 그러면 힘내서 만들어보는 거야!”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세 사람에게 말한 뒤, 악보를 보고 다시 곡의 제목을 확인했다.


“「Just be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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