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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13장, 똑바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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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03, 2021 02:21에 작성됨.

[도쿄도 오타구 타도코로 자택 ------ 타도코로 신이치]


  뮤 삼촌이 사고를 당한지도 닷새가 지났다. 걱정되는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상태가 상태다보니 되도록 병문안 횟수를 줄이는 것이 좋다고 해서 수술이 끝난 다음 날에만 짧게 다녀왔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자꾸 누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어수선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하게 하루 일과를 마친 뒤, 4시 30분쯤에 집에 도착했다. 예전 같았더라면 밴드부 연습이 끝나고 거의 6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겠지만, 이미 밴드부를 박차고 나와 버린 나는 다시 귀가부 시절의 생활패턴으로 돌아와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나는 습관적으로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 대충 가방을 던져둔 뒤, 교복을 입은 채로 의자에 앉아 빙그르르 돌았다. 그러자 책장 옆 스탠드에 세워 둔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푸른색이 칠해진 솔리드 마호가니 바디에 메이플 넥, 로즈우드 지판으로 구성된 내 기타는, 뮤 삼촌이 대학 시절에 쓰던 것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이 녀석을 처음 사려고 했을 때, 뮤 삼촌은 최신형이라면 다른 모델도 좋은 게 많고, 좀 더 저렴한 걸로 입문하고 나중에 고급형 모델을 사는 게 좋다는 식으로 나를 말렸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한두 푼씩 모은 통장을 들이밀며 똑같은 걸로 해달라고 떼를 쓰자 마지못해 승낙했다. 대신 바디가 빨간색이었던 뮤 삼촌의 것과 달리 나는 진한 파란색을 골랐다.

  그래도 아무 것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고른 것 치고는 소리가 좋은 녀석이었다. 애초에 뮤 삼촌이 고른 녀석이니까 당연하겠지만.

  의자에서 일어선 나는 기타를 들고 다시 앉아 가볍게 줄을 튕겨 보았다. 밴드부를 뛰쳐나온 뒤에 기타에 손을 안 댄 지도 일주일이 한참 넘었기 때문에, 튜닝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할 수준이었다. 나는 휴대전화의 튜너 어플을 켠 뒤, 맨 위의 6번 줄부터 차근차근 조율해나가기 시작했다.

  줄을 튕기고, 화면을 확인하고, 헤드머신을 조이고. 다시 튕기고, 확인하고, 조이고. 조금 과하면 풀고. 튜닝은 모든 현악기의 기본 중의 기본이었지만, 나는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숙했다. 처음 뮤 삼촌의 기타로 튜닝을 연습했을 때 1, 2번 줄을 한 번에 끊어먹은 기억이 있어서, 그 후로도 헤드머신을 돌릴 때면 왠지 모르게 긴장하고는 했다. 첫 단추가 이래서 중요하다는 걸까.

  튜닝을 하면서 처음 기타를 배울 때를 떠올리자, 카츠라기가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이제 그만 뮤 형으로부터 널 분리해.’


  분리.

  처음 들었을 때는 대체 무슨 소리인가 했다. 분리라는 건 애초에 뭐가 결합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보니 어쩌면 가장 정확한 관찰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잘 따르던 아들이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꿔준 삼촌에게 강한 애착을 보인다. 제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꽤나 명확하고 단순한 상황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아버지와 가까이 지내며 자랐다. 꼬꼬마였던 당시의 나에게는 믿음직한 성인 남성이라는 존재가 동경의 대상과도 같았기 때문에, 나중에 크면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잃고 난 뒤에는 우리 집으로 이사 온 뮤 삼촌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 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뮤 삼촌도 때때로 아버지와 닮은 듯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동경의 대상은 자연스레 뮤 삼촌으로 바뀌었다. 물론 처음 같이 살기 시작했던 중등부 1학년 때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2학년 여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점점 명확해졌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지금의 내 성격을 구성하고 있는 큰 부분이 뮤 삼촌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중학생 시절을 지나면서 나를 변화시킨 요소들은 사진, 음악 등등 다양한 것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 과정에서 보고 자란 어른이 뮤 삼촌이다 보니 자연스레 말투나 행동거지가 닮아가고는 했다. 

  일단 선호하는 장르나 연주 습관 등 기타에 관한 부분은 9할이 넘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고, 사소한 것들을 배려하거나 나도 모르게 가끔씩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는 것도 뮤 삼촌의 영향이었다. 스스로는 그게 싫어서 좀 츤츤거리는 식으로 덮어버리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여전히 카츠라기가 했던 이야기에는 의문거리가 남아 있었다. 분리. 분리라. 그렇다면 카츠라기는 지금의 내가 뮤 삼촌에게 강하게 종속되어있다거나, 혹은 뮤 삼촌의 뒤를 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건데, 단순히 성격이 닮은 것 가지고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내가 아는 표본이라고는 나 자신과 유이나밖에 없으니 다른 아이들의 사례는 잘 모르더라도, 대충 다른 아이들도 성장기에 보고 자라는 부모님의 모습을 닮게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은 해볼 수 있었다. 누구에게는 그게 선생님이나 다른 친척이 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 시기에 자주 보는 보호자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여전히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아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나는 1번 줄까지의 튜닝을 모두 마쳤다. 정작 튜닝을 해놓고 나니 연주할만한 곡이 없어서, 적당히 악보라도 찾아볼 생각으로 기타를 내려놓고 책장을 뒤졌다.

  기왕 추억이 떠오른 김에 옛날에 배웠던 곡들을 연주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악보 파일을 꺼내려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아키즈키 리츠코’라는 글자가 찍혔다.


“네, 여보세요. 타도코로입니다.”

“여보세요, 타도코로 씨? 아키즈키예요. 765프로덕션의.”

“네, 아키즈키 씨. 무슨 일이시죠?”

“치하야랑 같은 학교라고 하셨죠?”

“네. 맞는데요.”

“혹시 치하야가 오늘 학교에 나갔나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2학기 들어서는 치하야가 등교하는 게 더 큰 이슈가 될 정도였기 때문에, 아마 학교에 왔다면 내가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요, 나오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오늘도 스케줄이 있는 거 아니었나요?”

“네, 그렇긴 한데...”


  아키즈키 씨는 말끝을 흐렸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뭔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프로듀서님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그럼 이만...”

“잠시만요, 아키즈키 씨!”


  나는 전화를 끊으려는 아키즈키 씨를 멈춰 세웠다. 단순히 등교여부를 물으려고 한다면 학교 측에 연락하는 게 훨씬 빨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나에게 전화해서 치하야에 대한 것을 물을 이유가 없었다. 분명 뭔가 다른 용건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아키즈키 씨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네...?”

“혹시, 치하야한테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아키즈키 씨는 또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더니, 충격적인 사실을 말해주었다.


“사실은, 그 날 이후로 치하야가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라서요...”

“네?!”

“그 날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스케줄을 취소하고 쉬라고 했는데, 그 다음날에는 아예 사무소에 나오지 않았어요. 연락도 없이.”

“집에는 찾아가 보셨나요?”

“네. 인터폰에는 대답해주는데, 그냥 돌아가 달라고만 해서요.”

“그러면... 스케줄은 아예 못 하고 있는 건가요?”

“네. 이번 주 내의 스케줄은 일단 미루거나 취소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라서... 아, 죄송해요. 걱정을 끼쳐드리려던 건 아닌데, 혹시 친구 분들이라면 연락이 될까 해서 여쭤봤어요.”

“괜찮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따로 연락해보고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뚝.


  나는 전화가 끊기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그저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혼란에 그 무엇도 제대로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치하야가 사무소에 나가지 않고 있다.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라고 한다. 이유를 알아내야 한다. 이유를 알아내고, 해결해야 한다.

  아마 나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뮤 삼촌에 대한 것을 숨겨왔다는 것. 지금까지 프로듀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입을 닫고 있던 것. 뮤 삼촌과 내가 합작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는 것. 분명 그게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치하야의 표정에 그렇게 쓰여 있었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게 상황을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원인을 제공했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 정도의 이유가 아이돌 활동을 중단할 정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모르는 어떤 배경이 있다는 뜻이다. 뮤 삼촌과 치하야 사이의 관계라던가, 치하야의 개인적인 사정이라던가,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던가...


  과거.

  과거에 있었던 일.

  치하야는 과거에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다. 아마 동생이 아닐까 하고 추측할 뿐이었지만, 그 대상은 누가 되더라도 큰 상관은 없었다. 확실한 건 중학생 시절의 나처럼, 치하야도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경험 때문에 마음에 벽을 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자꾸만 인과관계가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뮤 삼촌의 사고가 누군가를 잃은 트라우마를 자극했다고 가정하면, 뮤 삼촌이 무사히 회복 중인 지금까지도 사무소에 나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뮤 삼촌과의 관계를 숨겼기 때문이라고 가정하면, 그건 그거대로 앞뒤가 조금 이상했다. 그걸 숨긴 게 과거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나는 양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린 채 이마를 감싸 쥐었다. 사고회로가 꼬이면서 이제는 스스로도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일단 정보가 너무 흐릿했다. 정확한 이유를 알아내려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서 논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내가 치하야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이 너무 적었다.

  그제야 나는 뮤 삼촌이 집에 가져다 놓아달라고 맡긴 소지품 중에 항상 들고 다니는 수첩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그 안에 치하야에 대한 것들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한 과거사 같은 내용은 없을지라도, 평소에 치하야가 뮤 삼촌에게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알 수 있다면 이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의자를 박차고 내 방을 빠져나와 뮤 삼촌의 방으로 향했다. 삼촌의 수첩은 책상 위에 내가 놓아둔 그대로 놓여 있었다.

  책상 앞으로 다가가 수첩을 집어 들고 표지를 넘기려던 순간,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어 손을 멈췄다.


‘내가 이걸 열어봐도 되는 건가?’


  애초에 이 수첩 안에 내가 원하는 내용이 있을지 없을지도 확실치 않았다. 게다가 평소 뮤 삼촌이 치하야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에게 보였던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삼촌은 ‘여고생 키사라기 치하야’와 ‘아이돌 키사라기 치하야’를 최대한 분리하려고 노력했다. 처음부터 나에게 자신과의 관계를 숨기라고 했던 이유도 그런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 뮤 삼촌은 나에게 평소 학교에서의 치하야의 모습을 묻는 것도 최대한 조심스러워했고, 반대로 나에게도 치하야가 자신에게 보이는 모습을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면 지난번에 치하야가 학교에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걸 신경 쓰고 있다며 나에게 평소 밴드부에서의 모습을 물어온 것 정도다.

  그러나 나는 뮤 삼촌이 지켜온 그 벽을 이 수첩을 펼치는 것으로 허물어버리려고 하고 있었다. 스스로의 호기심과 치하야에 대한 걱정 때문에 애써 지켜온 그 선을 넘으려고 하고 있었다.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수첩을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생각을 했는지, 완전히 지쳐버린 나는 주방으로 나와 찬물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처음부터 천천히 상황을 파악해보았다.

  치하야가 갑작스럽게 아이돌 활동을 중단했고, 나는 지금 그 원인을 찾아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왜?’


  왜일까. 내가 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걸까. 그걸 찾아서 뭘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던 걸까. 애초에 치하야가 무슨 일을 하건 말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카츠라기처럼 오지랖대마왕인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치하야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걸까. 중학생 시절에 찍은 그 사진 때문일까.

  잠깐만. 사진?


‘그 밤바다 사진에 나온 키사라기 치하야는 아이돌이 아니었잖아. 처음부터 넌 뮤 형이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치하야에게 신경 쓰던 게 아니야. 헛소리하지 말고 솔직해지란 말이야.’


  처음부터.

  그랬다.

  처음 들었을 때는 ‘뮤 형으로부터 너를 분리해’라는 말에 너무 신경을 쏟은 나머지, 뒤에 이야기한 내용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카츠라기가 했던 ‘분리’의 진정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맨 처음 치하야를 제대로 알게 된 그날의 점심시간. 생물부의 실험 코트가 떨어진 틈 사이로 보았던 치하야의 모습. 이어폰을 낀 채로 먼 곳 어딘가를 바라보던 그 모습을 본 나는 그 후로 치하야에 대해 이상하리만큼 신경을 쓰고 있었다.

  첫눈에 반한 건 결단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뮤 삼촌의 담당 아이돌이기 때문이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뮤 삼촌이 프로듀서를 한다는 건 그날 저녁에야 알았으니까.

  

  그랬다.

  그게 바로 ‘분리’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밤바다 사진에 나온 소녀가 치하야였다는 사실을 알아챈 뒤로도 자꾸만 뮤 삼촌을 통해서 치하야를 보았다. 치하야를 떠올릴 때면 뮤 삼촌을 같이 떠올렸고, 방금 전에 수첩을 들춰보려던 것처럼 뮤 삼촌과의 연결고리를 통해서 키사라기 치하야라는 인물을 해석하려고 들었다. 이제 와서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가끔은 나 자신을 뮤 삼촌의 관점에 대입해버리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치하야와 뮤 삼촌의 관계는 아무래도 좋은 부분이었다. 중요한 연결고리인 것은 맞지만, 그걸 완전히 떼어놓고 보더라도 상황은 성립된다. 치하야에 대해서 알게 되고 함께 밴드부로 활동하는 그 과정 속에서는 뮤 삼촌이라는 존재가 나와 분리되더라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 뮤 삼촌과의 연결고리가 없더라도 나는 치하야의 밴드부 동료였고, 치하야는 나에게 음악이라는 활로를 가르쳐 준 그 때의 그 소녀였다.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복잡한 이유 따위, 애초에 내가 신경 쓸 영역이 아니었다. 치하야의 아이돌 활동은 프로듀서인 뮤 삼촌의 영역이었고, 소속사의 직원인 아키즈키 씨의 영역이었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아까 꺼내려다 말았던 악보 파일을 꺼내들고 페이지를 넘겼다. 찾으려던 악보를 확인한 뒤, 얌전히 눕혀져 있던 기타를 케이스에 넣어 들쳐 메고 파일을 옆구리에 낀 채 급하게 현관을 나섰다.

  집을 빠져나온 나는 최대한 빨리 전철역을 향해 뛰었다. 시계를 확인해보니 5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뮤 삼촌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생각했던 게 어리석었다.

  아키즈키 씨의 역할을 해보려고 생각했던 게 어리석었다.


  치하야의 소중한 일상, 밴드부의 일원으로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치하야가 가르쳐준 그 음악을 되돌려주는 것.

  그게 바로, 치하야의 학교 친구 타도코로 신이치의 영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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