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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코토하 『beyond metaphor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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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8, 2020 21:43에 작성됨.

"있지, 코토하. 잠깐 괜찮을까?"


요 며칠 새에 코토하가 고민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걸까. 메구미가 대뜸 코토하를 시어터 내 휴게 라운지 쪽으로 이끌었다.


"자, 잠깐. 갑자기 왜....."

"왜 그러긴. 또 혼자 끙끙 앓고 있는 게 보여서 그렇지."

"그, 그랬어?"

"그렇다니까~"


라운지에 마련된 원형 테이블. 그리고 그와 세트를 이룬 색색의 의자. 메구미는 그 중 하나를 슥 끌어와서는 코토하를 앉혔다. 그리고는 자기는 그 맞은 편 자리에 앉았다.


"나한테는 말해줄 수 없는 거야?"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메구미의 걱정 어린 시선에 코토하는 어쩔 줄 몰라했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다. 더는 숨길 수 없어. 메구미는 그런 투로 코토하를 끝까지 기다렸다. 그 탓에 코토하는 차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는 없었다. 


"그, 실은 있지. 전에 프로듀서하고....." 


망설이고 또 망설인 끝에 코토하는 결국 고민하는 이유를 입에 올렸다. 프로듀서가 자신에게 센터를 맡겼다고. 하지만 뭘 위해 노래할 건지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이야기는 없는 걸로 하겠다고.


"에엣!? 프로듀서가 그런 말을!?"

"응. 그래서 지금까지 고민해봤는데.....아무리 생각해도 제대로 된 대답,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


가만 듣고 있던 메구미는 어라?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메구미? 왜 그래?"

"방금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없다고 했지?"

"응."

"그럼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닌 대답은?"

".....어?"


이게 무슨말인가하고 코토하가 의문에 휩싸였을 때였다. 메구미는 방금 질문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다시 말했다.


"대답, 아예 생각 안나는 건 아니잖아?"

"그건 그런데....."


그 말에 코토하는 고민의 수렁에서 한 발짝이나마 겨우 빼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메구미는 코토하를 완전히 그 안에서 건져내겠다는 듯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거라도 이야기 해보는 건 어때? 프로듀서가 제대로 된 대답으로 인정해준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야?"

"글쎄, 어떨까."

"적어도 지금처럼 끙끙거리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

"....."


침묵하고 있는 코토하에게, 메구미는 기운 내라는 듯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에 프로듀서가 인정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꼭 지금만 센터할 수 있다는 건 아니잖아? 다음 기회라도-"

"안 돼."

".....코토하?"


코토하가 무겁게 중얼거렸다. 일변하는 분위기. 메구미가 이상하다는 눈으로 코토하를 바라보았다. 코토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센터, 해내지 않으면 안 돼. 프로듀서가 믿고 맡겨주시려는 거니까."

"그, 그렇다는 건 알겠는데 말이지. 아, 아하하하....."


아아, 또. 코토하의 나쁜 버릇이 튀어나왔구나. 메구미는 친구가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강박적인 사고에 들어갔다는 걸 알아챘다. 조심스럽게 그런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유도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있잖아 코토하."

"응."

"분명 프로듀서는, 코토하를 믿고 있는 건 맞을 거야. 그렇지만 말야, 이런 식으로는....."

"달라?"


코토하가 떨리는 눈으로 메구미를 응시했다. 메구미는 마른 침을 삼키며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코토하를 믿어서 센터를 맡긴 것보다는, 센터를 하게 되면 뭘 위해 노래할 건지 대답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게 아닐까나 하고." 

"나를 믿어서 맡기는 게 아니라, 내가 대답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뭘 위해 센터에 서는지....."

"응! 아, 결국에는 같은 말인가? 대답을 해야 센터를 할 수 있다고 했으니까.....그치만 아주 조금은 다른 것 같아서."


말을 끝마친 메구미가 조금 불안한 눈으로 맞은 편을 살폈다. 맞은 편에 앉아있는 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왜, 왜 그래!? 내가 혹시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

"나, 나.....대답할 자신이 없어....."


코토하가 고개를 푹 숙였다. 메구미가 한 말로 인해 자신이 꼭 센터를 해야한다는 강박에서는 벗어났다. 그렇지만 새로운 두려움이 마음 속에 가득 차버린 것이었다. 자신은 프로듀서의 '너라면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거야' 라는 믿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는.


"코토하....."


자신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생각에 메구미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또 프로듀서가 휴게 라운지로 오는 게 코토하의 어깨 너머로 보였다. 하, 하필 이럴 때! 어떻게든 눈치채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메구미는 저 건너편을 향해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냈다. 여기 오면 안된다고. 제발 다른 곳으로 가 있으라고.


아무 생각없이 걸어오고 있던 프로듀서는 눈에 익은 붉은 장발과, 그 맞은 편에서 질색팔색하고 있는 메구미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신호에 맞게 그 자리에서 곧바로 유턴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였다.


"미안해. 걱정 끼쳐서. 상담해줘서 고마웠어. 여기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볼게."


생기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말소리와 함께, 코토하가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등 뒤를 돌아보았다. 메구미가 잠깐, 하고 불러세우는 것보다 더 빨랐다. 조금 탁해진 적갈색 눈동자에는 황급히 떠나가는 프로듀서의 뒷모습이 비쳤다. 앗차.....메구미는 속으로 혀를 차며 사죄를 입에 담았다.


"아, 그게.....미안. 마주치게 하면 안될 것 같아서."

"으응. 아니야. 오히려 더 잘된 걸지도 몰라."


끼기긱. 덜컥. 터벅, 터벅, 터벅. 코토하는 몸에 익은 동작으로 자신이 앉았던 의자를 탁자에 도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체념한 듯한 모습으로 터덜터덜 힘없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잠깐, 코토하!?"


붙잡으려는 메구미한테, 코토하는 억지로 짓는 듯한 미소와 함께 고했다.


"프로듀서한테 이야기하고 올게."

"코....."


메구미가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코토하는 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메구미는 결국 코토하를 막아서지 못하고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이걸 어쩌면 좋지."


혼자 남겨진 채 고민하던 메구미는 코토하의 뒤를 밟기로 했다. 지금 이 상황으로서는 안 좋은 결과만이 자꾸 자신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뒤따라간다고 해서 확하고 바뀌지는 않겠지만.....그래도 가만 내버려둘 수는 없으니까! 메구미는 숨을 죽이며 슬금슬금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


"하, 하아.....위험했다. 메구미가 알려줘서 망정이지 만약 그대로 서로 마주치기라도 했다간.....큰일 날 뻔 했네."


딱히 코토하와 마주친다고 해서 갑자기 칼빵을 맞는다던가 같은 일은 전혀 없겠지만, 프로듀서는 마치 십년 감수했다는 심정으로 시어터 내 사무실 의자에 털퍽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원래 휴게 라운지 자판기에서 뽑아 마시려고 했던 음료수 캔 대신 종이컵을 손에 들었다. 그 안에 든 차가운 물을 꼴깍꼴깍하고 마시며 숨을 정돈하고 있자, 돌연 똑똑- 하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렴."


프로듀서가 습관적으로 내뱉은 말에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코토하였다.


"푸커컵!!!"


어어어어째서 여기에!?!? 프로듀서는 그만 마시던 물을 뿜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코토하는 그 자리에서 어둡게 가라앉은 눈으로 서 있을 뿐. 프로듀서는 바닥에 흩뿌려진 물을 품 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후다닥 닦아냈다. 그러면서 코토하에게 일단 앉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제서야 코토하는 지시한 자리에 지나치게 바로 앉았다.


너무나도 꼿꼿하게 편 허리, 각이 선 자세.....그것만으로 프로듀서는 속이 불편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아니, 얘가 왜 저런담.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내가 너무 무거운 과제를 내려준 건가? 속으로 후회 기미까지 보이던 프로듀서는 일단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을 걸었다. 


"무, 무슨 일이니.....?"


그러기에는 이미 한참 늦은 것 같았지만. 덧붙여서 목소리마저도 잔뜩 떨려있었지만. 


"죄송합니다. 센터.....할 수 없습니다."


코토하는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사죄를 입에 담았다. 프로듀서는 그 말에 정신을 차렸다. 지금 겉으로만 봐서는 아주 무섭게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토하가 무서운 게 아니다. 코토하가 무서워하는 것이다. 꾸중 들을까봐 무척 두려워하는 아이인 것이다.


"숙제, 못하겠다는 거구나."

".....네."


코토하가 스러지기 일 보 직전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기간이 남았는데. 그래도?"

"네."


코토하는 고개 숙인 채 답했다.


"센터, 다른 애들한테 돌아가도 좋은 거야?"

"네."

"흐음. 알겠다. 다음 기회를 노리겠다는 거네."

".....네....."


코토하는 여전히 고개들지 못한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저렇게 침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프로듀서는 마음이 아팠다. 그렇지만 벌어진 틈을 이대로 봉합해버릴 수는 없었다. 프로듀서는 좀 더 강하게, 코토하의 속을 긁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어쩌지? 네 생각대로 되기에는 좀 힘들 것 같은데."


코토하가 움찔해도, 프로듀서는 계속 말을 자아내었다.


"숙제에 답하지 못하는 한, 기회가 돌아올 일은 없을 거야."


청천벽력 같은 선고에 코토하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프로듀서는 악당 같은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아무런 각오도 없는 애를 스테이지에 세울 수 없잖아. 안 그래?"

"그렇지 않아요! 저에게도, 나름 각오가.....앗."


코토하가 스스로를 검열하려는 순간, 프로듀서가 더 화를 돋구듯이 말했다.


"헤에, 각오라. 어떤 걸까?"


코토하는 애써 차분하게 자신의 각오를, 무대인으로서의 각오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는....순간의 광채를 보이겠다는 마음으로 스테이지에 섭니다."

"순간의 광채?"

"네. 수많은 연습 끝에 선보이는 한 순간의 연기. 잠깐 동안의 무대. 그렇지만 그 때만큼은 빛나고 있으니까. 앗 하면 사라지는 시간이지만.....그래도 저는....."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거다. 프로듀서는 코토하의 본심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 프로듀서는 가늘게 뜬 눈을 코토하에게 향하며 물었다.


"그 각오는, 누굴 위한 것? 팬 여러분? 친구들? 시어터 동료들? 연극부 고문 선생님? 아니면 부모님?" 


그 질문에 코토하는 순간적으로 프로듀서가 열거한 모두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렸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코토하의 상념 속에서 쏜살과도 같이 지나가버렸다. 그 대신 크게 자리잡는 건, 누군가의 뒷모습. 허리까지 내려오는, 붉은 기가 도는 긴 장발을 한 소녀. 소녀가 뒤를 돌아, 코토하와 마주한다. 그 소녀는 바로 자기 자신. 타나카 코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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