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화음의 저편. -제12장, 새까만 숲의 노래- (5)

댓글: 1 / 조회: 619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12-27, 2020 20:07에 작성됨.

[도쿄도 오타구, 치하야의 자취방 ------ 키사라기 치하야]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탁.


  새벽 5시 30분, 언제나와 같은 알람 소리에 눈을 뜬 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혔다. 여름이었다면 벌써 하늘이 어느 정도 밝아져있었겠지만, 슬슬 일출 시간이 늦어져서인지 태양은 이제 막 떠오르는 중이었다.

  나는 세수를 하고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장을 봐 두었던 과일들을 꺼내 적당히 자르고, 믹서기에 넣은 뒤 전원을 켰다. 예전에는 우유 한 잔과 영양제로 아침식사를 마무리했지만, 적어도 과일이라도 먹으라는 리츠코의 잔소리에 못 이겨 과일 주스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했다.

  주스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유키호가 선물해준 앞치마를 꺼내 둘렀다. 귀여운 강아지 캐릭터가 그려진 앞치마였다. 전에는 조그만 강아지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던 유키호였지만, 요즘에는 많이 나아진 것 같았다. 물론 가나하 씨가 키우는 이누미랑은 여전히 친해지지 못한 걸 보면 대형견은 아직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다들 많이 변했구나. 유키호도 나도.’


  앞치마를 두른 나는 선반과 냉장고에서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 왔다. 밀가루, 설탕, 소금, 우유, 버터, 베이킹파우더, 달걀. 그리고 홍차 티백까지. 전에 라디오에서 만들었던 스콘을 만들기 위한 재료였다. 밀가루의 종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서 하루카에게 물어보았다.

  우유와 계란을 미리 섞어둔 뒤, 재료들을 넣고 반죽을 만들었다. 전에 미리 연습해보기도 했고, 타카츠키 양과 가나하 씨의 요리 방송 때나 라디오 때 이후로 간간히 이런 걸 만들어봤더니 이제는 조금 익숙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반죽은 동그랗게 모양을 잡은 뒤, 팬에 받쳐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30분 정도는 저대로 두어야 하니까, 그 사이에 런닝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트레이닝복을 갖춰 입은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는 날이 갈수록 차가워졌다. 지난겨울에도 아침 런닝을 할 때면 차가운 공기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있었다. 조금 달리다보면 몸에 금방 열이 나서 괜찮았지만, 왠지 피부가 건조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오늘의 런닝 루트는 조금 짧게 잡았다. 사무소로 가기 전에 집에 돌아가서 스콘을 구워야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가까운 공원을 찍고 돌아오기로 했다. 운동 효과는 적겠지만, 일 년 내내 하던 걸 쉬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목적지였던 공원에 도착한 나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뒤,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기로 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빠르게 뛰어 왔기 때문에 조금 숨이 차는 느낌이 들었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태양이 완전히 떠올라 주변이 환해졌다. 나는 시계를 확인한 뒤, 다시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환한 방이 나를 반겨주었다. 커튼을 열고 나가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빠르게 샤워를 마친 뒤,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앞치마를 둘렀다.

  오븐을 먼저 예열시키고, 그 사이에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반죽을 꺼내왔다. 전에 음표 모양을 만든 적이 있으니까 쿠키 틀로 찍어서 모양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째선지 틀이 하트 모양밖에 없어서 관두기로 했다. 제대로 풀지 않았던 이삿짐에 오븐이나 쿠키 틀이 있었다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다. 어머니가 쓰시던 것들이었을까.

  적당히 삼각형으로 반죽을 자른 뒤, 팬에 올려 달걀물을 발랐다. 잡지에서 읽은 바에 따르면 달걀노른자의 색소 때문에 구웠을 때 황금빛이 난다고 한다. 자세한 원리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요리가 굉장히 과학적이라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던 기억이 났다.

  스콘이 구워지는 사이에 사무소로 갈 준비를 했다. 11시쯤에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이 있다고 했으니까, 일찍 나가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 사이에 스콘도 나눠 먹고. 요즘 들어 사무소에 다 함께 모이는 일이 줄어들어서 몇 명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넉넉하게 구웠으니까 최대한 많이 있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치마를 풀어두고 주방을 나온 뒤, 옷장을 열고 적당한 셔츠를 하나 꺼내 입었다. 새삼스럽지만 옷장 한가득 너무 셔츠만 가득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생 때부터 사복은 단순하게 입는 편이기는 했지만, 가끔은 블라우스나 원피스 같은 색다른 것도 괜찮을지도...? 아니야, 역시 관두자. 하루카나 유키호같이 하늘하늘한 옷은 분명 어울리지 않을 거야.

  ...그래도 프로듀서한테 상담해볼까.

 

 20분 정도가 지나자 맞춰둔 타이머가 울렸다. 타이머를 끄고 오븐장갑을 낀 뒤, 조심스럽게 팬을 꺼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스콘을 옮겨 담았다. 지난번에는 오븐 다이얼을 잘못 돌려서 새까맣게 타버렸지만, 다행히도 이번에는 예쁜 색깔이 나와 주었다. 은은하게 나는 향긋한 홍차 향도 좋았다.

  나갈 준비를 마치자 7시 30분이 조금 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잊어버린 게 없는지 확인하고, 집 안을 전체적으로 정리했다. 정리를 마친 뒤 현관 앞에 서서 환한 방을 쭉 둘러보았다.

  나는 창문에서부터 침대를 지나 시선을 옮기다가 오디오 위에 놓인 두 개의 액자에서 멈춰 섰다. 하나는 유우의 사진이었고, 하나는 여름에 밴드부 동료들과 찍었던 사진이었다. 나는 잠시 두 액자를 바라보다가, 다시 유우의 사진을 보며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


“다녀오겠습니다.”


  해가 뜬 후여서 그런지, 몇 시간 전보다는 공기가 조금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완전히 추워질 날씨는 아니었기 때문에 얇은 코트를 걸치고 있지만, 조금만 더 지나면 두꺼운 다운재킷을 꺼내 입어야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전철역을 향해 걸으며 밴드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며칠 전 연습 시간 때문에 고민하던 레이나에게 축제 무대를 위한 새 보컬리스트를 뽑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해두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했다. 2학기가 시작되고 학교를 거의 나가지 못했으니까, 계속 기다려달라고 붙잡아두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축제가 끝나고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밴드부를 그만두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새로운 보컬리스트가 있으니까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상황이 애매해질 것이다. 또 이번 라이브가 끝나고 스케줄이 한가해진다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학교를 나가지 못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밴드부를 그만두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밴드부 이전에 학교생활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질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도 밴드부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전에는 학교에 나가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수업은 열심히 들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학교생활에서 얻을 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 노래를 위해 합창부에 가입하기도 했지만 노래는커녕 선배들이랑 다투느라 바빴다.

  하지만 밴드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조금씩 학교에 나가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붙이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시계를 보며 점심시간을 기다리는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랐던 기억도 났다.

  처음에는 밴드부실에서 노래하는 것이 좋았고, 그 다음은 부원들에 대한 소중함을 느꼈다. 점심시간마다 해맑은 얼굴로 찾아오던 레이나가 있었고, 이것저것 배려해주던 카츠라기 씨가 있었고, 가끔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워주던 사토 씨가 있었고, 평소에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친절했던 타도코로 씨가 있었다. 나는 그다지 살가운 편이 아니었음에도, 항상 먼저 다가와주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밴드부를 시작으로 점점 시야를 넓혀가자 다른 동급생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아이돌로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지만, 전에는 별로 말을 걸지 않았던 아이들도 하나 둘 인사를 해 오고는 했다. 가끔 사인이나 악수를 요청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라서 잠깐 당황하기도 했는데, 결국 다들 내 노래를 들어주고 응원해주고 있다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웃는 얼굴로 응해주었다. 딱히 의식적으로 웃은 건 아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레이나가 나에게 즐거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처음으로 내가 미소 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기에 학교에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신경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라이브에 집중할 때라는 프로듀서의 말이 맞았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올해 초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노래를 들어주고 있고, 응원해주고 있다. 학교생활도 밴드부도 모두 소중했지만, 지금은 더욱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때였다. 이어지는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가수, 톱 아이돌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니까. 수많은 팬 분들도, 친구들도, 동료들도, 아버지도, 이런 나를 봐주고 있으니까. 프로듀서가 누구보다 노력해주고 있으니까.

  혹시라도 밴드부를 그만두게 되면 제대로 인사를 해야겠지.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는 게 좋을 거야. 뭐가 좋을까...

  ...아니지. 그런 생각은 할 필요 없겠지.

  작별이 아니니까. 그동안 쌓아 온 추억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도 쭉 이어 갈 소중한 인연이니까. 그렇...겠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사무소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익숙한 계단을 올라 문 앞에 섰다. ‘연예기획사 765프로덕션’, 문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전에는 도저히 믿음이 가지 않았던 이곳, 내 꿈을 이런 곳에 맡겨둬도 될까 하고 생각했던 이곳, 처음부터 뭔가 착오가 생겨서 와 버린 이곳. 지금은 집, 교실, 그리고 밴드부실과 함께 소중한 일상의 일부가 된 이곳의 문을, 나는 천천히 열어젖혔다.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걸린 큰 거울, 왼쪽에 있는 사장실 문, 조금 더 안쪽에 있는 TV와 소파, 그리고 그 안쪽의 사무용 책상들과 응접실 구역. 1년 가까이 그대로인 익숙한 풍경이 나를 반겨 주었다.


“어서와, 치하야짱!”

“일찍 왔네, 치하야.”

“안녕하세요.”


  리츠코와 오토나시 씨는 의자에 앉은 채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TV 앞 소파에 앉아 커피테이블에 스콘을 내려놓고 탕비실에서 접시를 꺼내 왔다.


“리츠코, 오토나시 씨, 스콘을 구워 왔는데, 괜찮으시면 드셔보세요.”

“어?! 치하야짱이 직접 만든 거야?”

“네. 예전에 라디오에서 만들었던 게 생각나서 만들어봤어요.”

“고마워, 잘 먹을게. 치하야짱.”

“대단하네, 치하야.”

“별 건 아니야. 하루카가 여러모로 도와줬어.”


  나는 두 사람의 자리에 접시를 하나씩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프로듀서의 자리를 바라봤다. 오늘은 조금 늦게 출근하는 건지, 아니면 타루키 정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중인 건지, 프로듀서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프로듀서는 아직 인가요?”

“응. 아직 출근을 안 하셨는데... 이상하다. 보통 8시 전에는 오시는데.”

“치하야, 오늘 11시에 스케줄 있었지?”

“응. 유닛 음반 레코딩.”

“괜찮아, 그 전에는 오실 거야. 이따가 전화해볼게.”

“고마워, 리츠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오늘은 내가 평소보다 조금 일찍 오기는 했지만, 여름 이후로 사무소에 나올 때면 거의 매번 프로듀서가 나를 반겨 주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8시가 한참 지났는데도 프로듀서가 자리에 없었다. 요즘 들어 매일 바빴으니까, 어쩌면 늦잠을 자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월쯤에 자다 깬 듯한 머리를 하고 허둥지둥 사무소에 들어오던 프로듀서가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프로듀서한테 처음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럴 때는 분위기를 영 못 맞춘단 말이야. 평소에는 온갖 오글거리는 대사를 날려대면서.

  나는 소파에 앉아 스케줄이 적힌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하루카와 유키호는 10시 반 정도에 온다고 했고, 다른 사람들도 주로 오후 스케줄이라서 오전에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넉넉하게 만들었는데, 아쉽네... 메모를 남기거나 오토나시 씨한테 맡겨 두면 괜찮겠지.

  프로듀서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한 나는 평소처럼 이어폰을 끼고 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몇 달 전부터 프로듀서가 ‘업계 참고 자료’라는 명목으로 사무소 쪽으로 이런저런 음악 잡지를 잔뜩 구독해놓아서, 읽을거리는 굉장히 많았다. 가나하 씨나 하루카가 가끔씩 사 오는 요리 잡지도 쌓여 있었다.

  잡지를 두 권 정도 읽었을 때, 리츠코가 오토나시 씨에게 말했다.


“프로듀서님은 아직도 전화 안 받으시나요?”

“네. 휴대전화가 꺼져 있네요.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죠?”

“에이, 괜찮으실 거예요. 조금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해보죠.”


  나는 오토나시 씨와 리츠코의 대화를 듣고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각은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조금 많이 늦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거겠지. 사장님한테 혼나려나...?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가 사장님에게 혼난다거나, 오토나시 씨나 리츠코와 갈등하는 모습은 딱히 본 적이 없었다. 765프로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것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사장님이 그다지 엄격하거나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사장님에 대한 걸 떠올리다보니 처음 765프로의 아이돌 후보생이 되었던 때가 생각났다. 워낙 중요한 일이어서 기억도 생생했다. 작년 7월, 여름방학을 앞둔 1학기 말의 주말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CD샵에 가기 위해 상점가로 나갔다. 큰 이유는 새로 나온 앨범을 사기 위해서였지만, 사실은 집에 앉아 있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모님이 거의 이혼을 앞두고 있었던 때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집안의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럴 때면 나는 늘 가던 CD샵에서 하루 종일 음악을 듣다가 저녁때쯤 집에 돌아가고는 했다.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악보집을 사서 돌아가는 길에 마주쳐버린 액세서리 가게에서 봉제인형을 구경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작은 인형이나 열쇠고리를 마주치면 눈길을 사로잡히고는 했다. 다시 떠올려보면 부끄럽지만, 지난번에는 프로듀서한테 인형 뽑기를 부탁했던 적도 있었다.

  아무튼, 액세서리 가게를 나서던 나는 중년의 남성과 부딪히고 말았다.


“앗?! 죄송합니다!”

“어이쿠, 다친 곳은 없나?”

“네, 전 괜찮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다네, 아, 이걸 떨어뜨렸군.”


  남자는 내가 떨어뜨린 악보집을 주워 주었다. 나는 악보집을 받아들고 감사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흐음, 브람스...?”


  남자는 나의 악보집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나는 적당히 인사를 하고 빨리 가게를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그럼 전 이만.”

“아, 자네, 잠깐만 기다려주게나!”

“네...?”


  나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뭔가 확신에 찬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자네, 음악 좋아하나?”

“네? 네. 그건 그런데요...”

“역시, 그랬군. 팅 하고 왔다! 자네, 무대 위에서 노래해볼 생각 없나?”

“네...?”

“아, 소개가 늦었군. 나는 이런 사람일세.”


  ‘연예기획사 765프로덕션 사장 타카기 준지로.’ 건네받은 명함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스카우트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무대 위에서 노래할 수 있다는 말에 덥석 승낙해버렸다. 나중에는 가수가 아니라 아이돌이라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장님의 ‘그러면 노래를 위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 주겠네!’라는 말에 결국 아이돌 후보생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반 년 정도의 시간을 후보생으로서 보내고, 겨울이 된 어느 날 갑자기 하루카와 함께 사무소로 들어오던 낯선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당황스러워하며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기, 코토리 씨...?”

“응, 하루카짱, 무슨 일이ㅇ...어라? 이쪽 분은 누구...?”

“그게요, 사장님을 찾아오셨다고 하시는데...”


  하루카는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 때, 사장실에서 나온 사장님이 그 남자를 반겼다.


“오, 자네, 와 주었군! 들어오게나!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네.”

“아, 네!”


  그렇게 젊은 남자가 사장님과 함께 사장실로 들어간 뒤, 나는 하루카에게 물었다. 그 때는 아직 내가 하루카를 아마미 씨라고 부르던 때였다.


“아마미 씨, 누구야? 저 남자 분은.”

“응? 글쎄? 요 앞에서 마주쳤는데, 765프로를 찾아왔다고 하셔서. 누구실까? 아, 혹시 프로듀서 씨라던가!”

“프로듀...서?”

“응! 설마 아이돌일리는 없겠지?”

“혹시 모르지, 사장님의 스카우트 기준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에이~ 농담도!”


  결국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나중에 프로듀서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프로듀서 역시 나처럼 ‘팅 하고 왔다!’는 멘트를 듣고 입사제의를 받았다는 것 같았다. 사장님의 ‘팅!’하는 감은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프로듀서 같은 사람을 스카우트한 건 뛰어난 판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듀서가 온 이후 긍정적인 변화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말이다. 765프로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나는 고개를 돌려 사무소 문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저 문을 열고 들어와 그 때처럼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을 프로듀서를 상상하니 조금 즐거워졌다.


  그러나 9시 30분이 넘어도, 10시가 되어도, 프로듀서는 오지 않았다.

  10시 정각이 되고도 1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오토나시 씨의 자리에 놓여 있는 업무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네, 765프로덕션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아, 프로듀서 씨의... 네, 무슨 일이시죠? ...네?”


  오토나시 씨는 갑자기 심각한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소파에 앉은 채 목을 쭉 빼고 오토나시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리츠코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오토나시 씨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탁.

“코토리 씨? 무슨 전화였나요? 프로듀서 씨의 가족 분?”

“아, 네... 리츠코 씨, 잠시만...” 


  오토나시 씨는 전화를 끊고 힘겹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내 눈치를 살피고 리츠코와 조용히 속닥였다. 나는 어느새 잡지를 들고 있던 손을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당연히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조금 늦는 거겠지. 늦잠을 자는 거겠지. 하고 생각했다.


‘네, 키사라기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네, 맞습니다. 네?!’

‘아버지, 무슨 일이에요?’

‘...’


  8년 전 그날, 장을 보러 나갔던 유우와 어머니가 이상하리만큼 늦던 날. 어디선가 온 전화를 받은 뒤 수화기를 떨어뜨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오토나시 씨와 겹쳐 보였다. 그 날 이후로 자주 악몽에 나오던 그 순간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중학생 때 이후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애써 극복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애써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저기, 치하야.”


‘치하야.’


  리츠코는 나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미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잡지를 든 손을 더욱 강하게 떨며, 쉽게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리츠, 코... 설마...”


‘아버...지?’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줘. 아직 상황은 파악하고 있으니까.” 


‘일단 옷을 챙겨 입으렴. 아빠랑 가 봐야할 곳이 있단다.’


  아니야, 그러지 마, 리츠코.

  말하지 말아줘. 제발, 나의 의심을 확신으로 만들지 말아줘.


“프로듀서님이...”


‘유우가...’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닐 거야.

  제발, 그러지 말아줘, 아니지? 다른 이야기를 할 거지? 그렇지, 리츠코?

  유우에 대한 것들도 극복해왔어. 아버지에게도 응원 받고 있어. 학교를, 밴드를 포기하면서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러니까 제발... 


“오늘 아침에 교통사고를 당하셨대.”


‘병원에 있다는 구나.’


  나의 소중한 것들을, 더 이상 빼앗지 말아줘.



새까만 숲의 노래 (まっくら森の歌)

원곡 타니야마 히로코 (谷山浩子)

커버 키사라기 치하야

THE IDOLM@STER MASTER ARTIST 05 수록


ひかりの中で 見えないものが

빛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이

やみの中に うかんで見える

어둠 속에서 드러나더니 보여

まっくら森の やみの中では

새까만 숲의 어둠 속에서는

きのうはあした まっくらクライクライ

어제는 내일 새까맣게 어두워 어두워


さかなはそらに ことりは水に

물고기는 하늘에 작은 새는 물 속에

タマゴがはねて かがみがうたう

알이 헤엄치고 거울이 노래해

まっくら森は ふしぎなところ

새까만 숲은 신기한 곳

あさからずっと まっくらクライクライ

아침부터 계속 새까맣고 어두워 어두워


ふと気がつくと私は一人きり

문득 정신차려보면 나는 혼자

何を求めているのかもわからず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ただ夢中でもがき続けている

그저 꿈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어

どこまでも広がるこの暗闇はいつしか晴れる時が来るのでしょうか

계속해서 펼쳐지는 이 어둠은 언젠가 걷힐 때가 올까요?

誰か私を救い出してくれるのでしょうか

저를 구해줄 사람은 있는 걸까요?


みみをすませば なにもきこえず

귀를 기울이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とけいを見れば さかさままわり

시계를 보면 거꾸로 돌고 있어

まっくら森は こころのめいろ

새까만 숲은 마음 속의 미로

はやいはおそい まっくらクライクライ

빠른 것은 느린 것 새까맣고 어두워 어두워


どこにあるか みんなしってる

어디에 있는지 다들 알고 있어

どこにあるか だれもしらない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라

まっくら森は うごきつづける

새까만 숲은 계속해서 움직여

ちかくてとおい まっくらクライクライ

가까우면서 먼 곳 새까맣고 어두워 어두워


ちかくてとおい まっくらクライクライ

가까우면서 먼 곳 새까맣고 어두워 어두워



-제12장, 새까만 숲의 노래. Fin.-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