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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코토하 『beyond metaphors!』 -1-

댓글: 1 / 조회: 689 /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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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3, 2020 18:45에 작성됨.

"코토하! 이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음....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다고 생각해. 무리해서 동작을 크게하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움직임을 전달하는 것에 집중하자."

"응! 알았어!"

"저기저기! 의상 체크 도와줄 사람~?"

"도와줄게!"


시어터 정기 공연 도중이었다. 아무리 사전에 연습을 거듭했어도, 리허설까지 했다 하더라도. 실전이 되면 항상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고, 아이돌이 연습해온 성과를 온전히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 프로듀서가 해야할 일들 중 하나. 그렇지만 때로는 그 일의 무게가 상당 부분 줄어드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이런 식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이상은 없어보이네. 불편하지는 않지?"

"엄청 그런 건 아닌데, 팔 부분이 조금 끼는 것 같아. 어쩌지? 춤추다 팍 뜯어지거나 하지는 않을려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 그래도 만약의 경우가 있으니까, 격한 안무를 할 때는 주의를 부탁할게."

"응!"


프로듀서가 겨우 음향 기재 쪽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돌들이 대기하는 장소로 급하게 뛰어 왔을 때였다. 원래 자기가 했어야 할 일을 누군가가 대신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누군가는 주변의 다른 765 아이돌과 같이 화려한 무대 의상을 입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길이의, 가지런한 적갈색 장발이 인상적인 그 누군가. 765 프로덕션 시어터 밀리언 스타즈 소속, 타나카 코토하였다.


"앗, 프로듀서!"

"어때? 아까 그건 고쳤어?"


프로듀서를 발견한 두 아이돌이 탓탓하고 발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역시 같은 밀리언 스타즈 소속, 나가요시 스바루와 마이하마 아유무였다. 어어. 프로듀서는 그 둘에게 대답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시선은 여전히 코토하에게 머물러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태도에 스바루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프로듀서를 불렀다.


"어-이-! 프로듀서!"

"어, 어어! 응!"

"왜 그래? 혹시 코토하한테 할 말이라도 있어?"

"그런 건 아니야."


프로듀서의 대답에 스바루도 일단 호기심 어린 시선을 거두기로 한 모양이었다. 프로듀서는 황급히 모니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무대에서는 토크에 열중하고 있는 사요코의 모습이 보였다. 프로듀서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스케쥴 앱을 실행해 이번 공연의 세트리스트를 확인했다. 이번 MC 파트 다음으로는, 역시. 프로듀서는 머리 속의 정보와 휴대폰에 저장해둔 정보가 일치함을 확인했다.


"너희들, 곧 있으면 나갈 차례 아니야?"

"응. 안 그래도 코토하하고 마지막으로 점검해봤어."

"코토하 말야, 의상 체크도 도와줬다구!" 

"그러니."


프로듀서가 스바루와 아유무를 돌아보았다. 아까 봤듯이 코토하가 도와준 덕분에 무대 진행에 큰 차질은 없는 듯 했다. 그렇다면. 프로듀서는 망설임 없이 두 사람에게 go 신호를 보냈다.


"갔다올게!"


프로듀서는 조용히 무대로 달려가는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토크를 마치고 무대 뒷편으로 돌아온 사요코를 맞이해주려고 했다. 그런데. 프로듀서는 발걸음을 멈췄다. 자신보다 먼저 사요코에게 타올과 마실 걸 건네는 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토하였다. 


"사요코, 수고했어."

"아.....감사합니다, 코토하 씨."


프로듀서는 그 뒤로도 바쁘게 무대 뒷편을 여기저기 다니는 코토하를 지켜보았다. 코토하는 프로듀서 없이도 척척 트러블을 해결해나가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코토하는 학교에서도 위원장이라고 했었나. 다른 누군가를 챙기고, 돌보고, 이끄는 능력.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네. 프로듀서는 마음 속으로 코토하를 평하기 시작했다. 코토하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듯이, 최대한 무대 뒷편의 어둠에 녹아들 듯 서서.


타나카 코토하는, 우수하다.   


전천후. 팔방미인. 남을 잘 돌본다. 리더쉽이 있다. 책임감도 강하다. 그리고, 단순히 위원장 역에 충실한 것만이 아니다. 개인적인 기량도 무척 뛰어나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는 진지한 아이. 착하다. 복습은 물론이고 예습도 잘해온다. 가끔 너무 진지한 게 탈이지만. 그래도 앞에서 열거한 장점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게 예능계. 그렇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으로서는 잘 나가는 아이돌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앞으로도 순조롭게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런데.


프로듀서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시선으로 이리저리 흩날리는 적갈색 장발을 바라보았다. 다 좋은데. 나무랄 바 없는데. 오히려 잔뜩 칭찬해줘야할 정도인데. 어째서일까.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만 같았다.


.....


...


시간이 흘러, 다음 정기 공연이 돌아왔다. 프로듀서는 시어터 내 사무실 책상에 앉아, 한참 데스크를 손 끝으로 툭툭 두들기고 있었다. 이번에는 누구를 센터로 세울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


"누가 좋을까....."


센터.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 모두의 주목을 받는 위치. 이것만 봐서는 기량이 뛰어난 아이돌을 세우는 게 바람직했다. 허나 센터는 동시에, 기회의 창이기도 했다. 인기가 그다지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숨겨졌던 재능의 꽃을 활짝 피어나게 할 수 있는 장소.  그러니 무작정 실력 있는 이만을 센터로 고집할 수는 없었다. 


프로듀서는 미간의 주름을 더욱 깊게 했다. 머리 속에서 52인의 아이돌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이 많은 아이돌.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별들. 이들의 장점과 단점. 앞으로 고쳤으면 하는 부분과 전반적인 활동방안 같은 걸 프로듀서는 차근차근 되짚어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타나카 코토하'에 이르렀을 때. 불현듯 지난 날의 정기공연에 있었던 일이 불쑥 떠올랐다.


"흠....."


프로듀서가 한 손으로 턱을 몇 번 매만졌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그러다 결심했다는 듯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번 공연의 센터는, 코토하로 하기로 정한 것이다. 그 때 코토하가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아니었다. 이건 승부수였다. 코토하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프로듀서는 그 때 느꼈던, '코토하에게 부족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코토하에게는 뭔가 부족하다. 아니, 정확하게 하자면. 안에 감춰두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타나카 코토하는, 타나카 코토하만의 반짝임을 숨기고 있었다. 이걸 끌어내야해. 


프로듀서는 바지 주머니를 더듬어 휴대폰을 찾았다. 물은 99도까지는 끓지 않다가 100도가 되어 끓는다. 새는 알껍질이 깨져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지금은 그 1도를 보태줘야할 때. 단단한 알껍질을 한 번 쪼아주어야할 때. 프로듀서는 코토하에게 라인 메세지를 보냈다.


그로부터 대략 30분 정도 지났을까. 


똑똑-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렴. 방문객이 누군지 알고 있는 프로듀서는 경계심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끼익하고 조금 열리는 문. 프로듀서가 예상했던 대로, 코토하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로듀서는 자기 맞은 편 자리에 마련해둔 의자를 가리켰다. 코토하는 지시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프로듀서는 코토하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앞으로 있을 정기 공연에서 센터를 맡아줬으면 해. 할 수 있겠니?" 

"네."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믿음이 갔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넌지시 코토하를 떠보기로 했다.


"다른 일도 많을 텐데 맡아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오히려 제쪽이야말로 감사할 일이죠. 프로듀서가 그만큼.....절 믿고 계시다는 거니까."

"그럴까."


프로듀서는 빙긋 웃음짓는 코토하에게 일순 날카로운 눈초리를 보냈다. 저 빈틈없는 우등생의 가면을 벗겨내야해. 그래서 프로듀서는, 직구를 던져보기로 했다.


"궁금한 게 생겼는데,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아?"

"네. 말씀하세요."

"센터 공연에서 넌 어떤 걸 보여줄 거니?"

"그건."


코토하는 곤란하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 너무 갑작스러웠지. 프로듀서가 사죄를 입에 담으면서, 또 새롭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여기에는 답해줄 수 있을까?"

"어떤 건가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코토하는 한층 더 진지해진 눈빛을 프로듀서에게 향했다.


"코토하는 말야, 이번 공연에서 뭘 위해 노래할 거니?"

"그거야, 모두를 위해.....저를 응원해주는 팬 여러분들을 위해서요."


코토하는 질문을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납득가지 않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래. 그것도 있지. 틀린 건 아니고.....정답이지. 아주 모범적인 정답."


하지만 코토하에게는, 그것만 있는 거야?


프로듀서가 재차 발한 질문에, 코토하는 섬찟함을 느꼈다. 자신의 깊은 곳까지 침투하는 듯 했다.


"저, 저는....."


제대로 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리는 코토하를, 프로듀서는 끈기있게 지켜보았다. 코토하에게는 모두를 위한 마음 외에 다른 게 분명 있는 듯 했다. 다만 코토하는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떤 이유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붙들어매어 꽁꽁 감춰두고 있었다.


"코토하."

"네, 네에."

"다음주까지는 뭘 위해 노래할 건지 생각해왔으면 해."

"저어, 그....."

"만약 그 때 가서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아쉽지만 센터는 맡기겠다는 말은 취소로 할게."  


대답하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는 코토하에게 프로듀서는 숙제를 내주기로 했다. 코토하는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 겨우 알았다는 대답을 했다. 그래. 프로듀서는 코토하에게 이만 일어나도 좋다고 손짓했다. 그대로 일어난 코토하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사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소리없이 닫히는 문. 


프로듀서는 한참동안 문짝을 바라보았다. 코토하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코토하가 지금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야. 프로듀서는 약해지려는 마음에 재차 채찍질을 가했다.


.....


...


- 코토하는 뭘 위해 노래할 거니?


- 저는, 저를 위해서 노래해요. 한 때 제가 다른 연극이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것처럼, 저도 다른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싶어요. 동경의 대상이 되고 싶어요.


- 헤에, 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네. 너무 욕심 부리는 게 아니니? 네가 그럴 만한 존재는 아닌 것 같은데.


".....읏! "


너무나도 실감나는 상상 속의 한 장면에, 코토하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자신이 생각한 건 결코 프로듀서가 원하는 '제대로 된 대답' 이 아닌 것 같았다. 코토하는 아직 어두운 상념이 남아있는 머리를 다시 한 번 굴렸다.  프로듀서가 원하는 대답을 찾기 위해서. 상상 속의 프로듀서가 내뱉었던 매서운 말은, 사실 자신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안감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우선은 정보수집일까나." 


생각 끝에, 코토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해도 혼자서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럴 때는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법도 한 방법이야. 너무 민폐를 끼치지는 않도록, 짧게. 코토하는 노트와 펜을 챙겼다. 그리고는 시어터 내를 돌아다니며, 만나는 아이돌마다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어떤 마음으로 센터에 섰냐고. 혹은 어떤 마음으로 센터에 설 거냐고.


- 뭐야. 기자 흉내라도 되는 거야? 나는 말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라이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냐하하~ 다행이었지. 정말로 그런 무대였으니까. 그치만 이걸로 만족하면 안되겠지?


첫번째로 들은 건, 친한 친구였던 메구미의 대답이었다. 모두가 즐거운 무대. 그 모두에는 분명 '자기 자신'도 포함되어있겠지. 코토하는 작게 감사인사를 하고는 계속 다른 이들의 대답을 찾아 헤맸다.


- 극장은 재밌는 곳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모두, 잘 알아준 것 같아서 좋았지요~


- 제 노래를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힘껏.


- 무리해서 특별한 것을 하기보다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한다는 마음으로 했어요.


- 엣, 저요? 으음....언제 센터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제가 그리는 이야기를 모두에게 전했으면 좋겠어요.


나온 대답들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공통점들이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 자신이 느낀 점을, 모두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내보였다. 그날 밤, 코토하는 자신의 방에서 노트를 펼쳤다. 그 안에 빼곡하게 적힌 모두의 대답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코토하는 그들이 부러웠다. 자신은 그럴 수 없다는 마음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속 안을 마치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아픔이 내달렸다. 


이래서야. 이래서야 센터, 할 수 없어. 해야하는데. 프로듀서가 맡겨준 거니까. 기대에 부응해야하는데. 강박관념에 휩싸인 코토하는 노트의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넘기고 넘겨서, 새하얀 빈 페이지가 보였을 무렵. 코토하는 옆에 있는 필통에서 샤프를 꺼냈다. 달칵, 달칵. 안에 심이 나올 때까지 몇 번 뒤에 달려있는 꼭지를 누르고는 빈 페이지에 글씨를 적었다. 


자신은 어떤 마음으로 센터를 설 것인가. 자신은 뭘 위해 노래할 것인가. 


이제 그 다음을 적어야하는데. 샤프를 꼭 쥔 코토하의 손이 뗠렸다. 몇 번 쓸까 말까 망설이던 코토하는 자신감 없는 글씨로 뒷부분을 마저 적어보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아니야. 그럴 수 없어. 코토하는 급하게 지우개를 찾아 적었던 글씨를 지웠다. 그리고는 다시 샤프를 놀려 글씨를 적었다.


나를 위해서. 


안 돼. 코토하는 다시 지우개에 손을 댔다. 북북. 원래 새하얗고 정갈했던 페이지에는 글씨가 있었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았다. 코토하는 이번에야말로, 하는 마음으로 샤프를 움직였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나는, 내게는, 그럴 자격이.....무서워. 코토하는 또 한 번 지우개로 글씨를 지웠다. 아까보다 더 확실하게 남은 글자의 흔적. 코토하는 그것을 못 본 척 하며 노트를 덮었다. 그러고는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가만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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