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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리] 聖夜イリュージョ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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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2, 2020 19:24에 작성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잠깐 오다 멈추고, 그리고 다시 오다 멈추기를 반복하며, 불빛 가득한 거리에 모래성과도 같은 흔적을 차곡차곡 쌓아올렸다. 끝나가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멋진 마무리이자, 곧 다가올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향한 선포이기도 했다. 수증기가 얼어붙은 얼음의 결정체에 불과한 그 작은 덩어리들은, 어째서 그렇게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손에 닿으면 바로 녹아 찬 기운만을 남기고 사라져가는데, 왜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일까. 모치즈키 히지리는 빨갛게 얼어버린 양손을 비비며 생각했다. 무작정 나온 탓에 외투는 얇고 귀마개도 없었다.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 다시 준비를 하기에는, 모처럼 각오를 하고 추운 바깥에 나온 용기가 따뜻함에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각오.

그것이 무엇인지는 히지리 본인도 몰랐다. 다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졌을 뿐이다. 부모님이 깰까봐 불도 못 켠 깜깜한 방 안에서 커튼을 살짝 열어 바깥을 보다가 떠올린 작은 바람. 빛이 나는 거리에서, 장식으로 가득한 가게들을 구경하고 싶어. 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걷기가 힘들면, 저 공원에 소복하게 쌓인 눈밭에 발을 밀어넣어보고 싶어. 그리고... 눈을 직접 맞으면서, 크리스마스의 소원을 빌어보고 싶어. 분명히 밖에서는 캐롤이 흘러나오고 있을거야. 듣는 것만으로도 모두를 즐겁게 만들어줘서, 따라부르고 싶어지는... 그런 캐롤이. 소녀는 소박한 소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되새겼다. 

크리스마스를 열두번이나 맞이하고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하고 싶었으나 할 수 없던 것들이었다. 히지리의 부모님은 엄격하기보다 다정하고 유하셨지만, 유독 히지리가 바깥에 나가는 일만큼은 쉬이 허용하지 않았다. 학교를 가는 일, 그리고 특별한 날 외식을 하는 일을 제외하면 히지리가 밖에 나가본 적은 손에 꼽았다. 스스로 원해서 밖에 나가본 적은 돌이켜보면 한번도 없었다. 친구들과 학교를 마치고 노는 일 같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권유를 받은 적은 있었지만 어쩐지 부모님께 죄를 짓는 느낌에 쉽게 허락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서서히, 히지리는 스스로를 덮었다. 원래부터 내성적이고 대화를 어려워했었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걱정시키기 싫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런 이유들을, 가족 행사가 있다는 이유로, 감기 기운이 있다는 이유로, 시험 공부를 해야한다는 이유로, 어쨌거나 시간이 안 된다는 이유로 포장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권유도 발길을 끊었다. 학교에서의 대화에 제 3자로서일지언정 끼어있고, 밥을 먹을 때 같이 먹을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상한 시선은 받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조용한 히지리를 모범생으로 생각하고 특별히 관여하지 않았다. 아주 즐겁지는 않지만,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가끔씩 덮쳐오는 외로움만은 덮을 수 없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생긴건 언제부터였을까. 히지리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마 그 고독하고 평화로운 나날들이 지속되면서였던 것 같다. 외로워서 마음이 답답해질 때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데워지는 것 같았다. 노래는, 내 안의 외로움이 소리라는 형체를 찾아 바깥으로 떠나는 것 같은게 아닐까. 히지리는 그렇게 납득해두었다. 그것만으로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다만, 히지리에게 크리스마스는 각별했다.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일 뿐만 아니라 모치즈키 히지리라는 존재가 태어난 날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로 치면 정체가 아버지로 밝혀졌던 산타클로스의 방문이 있었다. 태어난 날로 치면 부모님의 축하와 생일 선물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무엇을 받고싶냐는 말을 부모님에게 들을 때마다, 준비된 생일케이크 앞에서 소원을 비는 시늉을 할 때마다 가슴이 찌릿거렸다. 친구에게 학교가 끝나고 같이 놀러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듣고, 그것을 만들어낸 핑계로 거절했을 때. 그 때와 같은. 

죄책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히지리를 짓눌러왔다.

물론 그 거짓말은 누구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니. 하지만...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송이들과, 눈이 부신 크리스마스 장식들에 시선을 빼앗기면서... 사실은, 받고 싶었던 크리스마스 선물은 다른 것이었다고. 

말을 하게 될 수 있게 된 이후로 말해왔던 그 어떤 선물도, 그 선물을 바라는만큼 바라지 않았다고. 

그렇게 히지리의 첫 외출은 막을 연 것이었다. 차디 찬 칼바람의 환영을 받으며. 

***

해보고 싶었던 것 첫번째, 가게들을 구경하기. "어서오세요"라고 맞이해주는 직원과 함께하는 어색한 대화는 히지리의 상상속에서만 이루어졌다. 실상은 밤이라 불빛조차 꺼져있는 가게들이 태반이었다. 그런다고 해도, 가로등의 빛과 나무에 걸쳐진 반짝거리는 스트링 라이트에 의지해 구경하는 가게들의 외관들만으로 히지리는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원하던대로 거리의 눈밭을 거닐면서, 신발 밑창이 뽀드득 소리를 내며 밀려들어가는 사치를 즐기는 것만으로 모자람이 없었다. 다음 가게는 어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을까. 세일을 한다는 문구를 적어두었을까, 아니면 산타와 루돌프 스티커를 유리창에 붙여뒀을까. 이런 저런 예상을 하며 한걸음을 내딛으면, 그 둘 중 아무것도 아닌, 눈꽃 장식을 줄로 걸어둔 것이 보였다. 그런 것도 나름의 재미였다.

두번째는 뭐였더라. 사실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다. 목록조차, 목차조차 중요하지 않았다. 이 모든 요소 하나 하나가 즐길 것으로 가득한데, 그것들을 따지는 것이 뭐가 소용있겠는가. 사람 구경이 전부라도 상관없었다. 걸으면서 무언가를 먹고 있는 사람도 흐르는 인파 속에서 꼭 껴안고 있는 연인도 전부 히지리에게는 새로운 광경이었다. 거리에 나와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구경하고, 행복해보이는 얼굴을 본다. 그리고 웃고 있는 자신 또한 발견한다. 홀로 나와서,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곤 눈 뿐인데도. 

히지리는 문득 멈춰 서서 목도리를 꼭 끌어안고 웃었다. 손가락은 여전히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마음은 점점 채워지는 것 같았다. 가게 불은 전부 꺼져있건만 캐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섞여 저 멀리서 들려왔다. 눈도 멈추지 않아 소리없이 도시에 착륙한다. 그렇게, 히지리는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걸어들어간다. 그 광경으로. 지켜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한 부분이 되어... 

"....아."

생각에 잠겨 잠시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에만 집중하던 히지리의 앞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보였다. 그렇지, 이것도 있었지. 창문 안에서, 실제로 보면 어떨까 생각하던 것 중에....

트리에 걸린 반투명한 오너먼트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스팽글이 반짝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예뻐서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불현듯 트리의 거대함이 실물로 느껴졌다.

그 크기만으로 심장을 강타한 것만 같은 묵직함에 히지리는 옷깃을 부여잡았으나,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어....?"

그리고는.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쥐가 난게 아니었다.

부모님이 본다면 더럽다며 빨리 일어나라고 했을텐데, 그런 간섭을 생각하면서도 일어날 수 없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제 갈 길을 가고, 트리 맨 위에 장식된 별은 변함없이 반짝이고, 가로등의 불빛도, 조금 거세다 싶은 눈발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세상은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어... 

히지리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린 귀에 끊임없이 들려오던 사람들의 대화소리와 캐롤의 소리도 조금씩 잦아들었다. 귀가 얼어붙은걸까. 그래서 소리에도 둔감해진걸까. 

하늘에는, 별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어라, 별이라고?

별은 가끔씩 보이지만....

이렇게... 쏟아질 것처럼... 눈처럼, 잘 보였던걸까?

아니, 쏟아질 것처럼, 이 아니라... 정말로....

"...읏."

별이 쏟아졌다. 

별빛이 쏟아졌다고 해야할까. 하늘에서 눈과 같이 빛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바람이 부는 것 이전에 지나치게 눈이 부셔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히지리는 눈을 감지 않았다. 놀라 커진 눈에 성광이 들어차 윤슬처럼 일렁이고, 그 성채들은 작은 조각들로 나뉘어져 눈덮인 바닥으로 사라졌다. 머리카락은 물 속으로 뛰어든 것처럼 굽이쳐 이 곳이 거리 안인지도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상함을 눈치챈 히지리는 하늘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히지리가 압도당했던 웅장한 트리만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우주공간에 나온 것처럼, 까마득한 밤하늘에 별빛들이 수놓아져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처음 봤을 때와 같이 바람에 흔들리는 오너먼트들....

"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을 보며 웃고 있던 히지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으로 일그러트려보는 것이었다.

"....아....!"

노래가 아닌, 노래를 불렀다.


모치즈키 히지리는 노래하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서. 가슴 안의 모든 것을 입 밖으로, 생명을 깃들게 한 것처럼. 힘껏 소리쳤다. 

외로움에. 쓸쓸함에 사무쳐. 

솔직하게.

그 감정에만 충실하게.


별세계에 온 것만 같은 풍경에 공포심이 든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동안의 죄책감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했을 뿐이다.

자신이 무엇을 숨겨왔는지를.

지금도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를.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을- 아니, 어떤 생일 선물을 원했는지를.


가쁜 숨을 달싹이며 히지리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생일 케이크, 그 앞에서도 내내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소원이 왜 이런 기묘한 꿈 같은 상황에 떠올랐는지를 히지리는 몰랐다. 어째서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해 히지리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곧 악마가 나타나 목숨을 앗아간다고 해도 이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에 대한 자각 없이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히지리는 태연했다.

그저, 소원을 빌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는..."

더는 별빛이 히지리의 얼굴에 파고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쏟아지는 것은 여전해, 머리카락은 하늘을 향해 출렁이고 푹 숙인 머리는 작은 몸과 함께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저는, 제 노래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소녀는 자신의 첫 소원을 빌었다.


그렇게 얼마나 웅크리고 앉아있었을까. 댕, 댕. 하고, 시계에서 정각을 가리키며 내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그렇게 큰 시계가 있었던가, 그렇다면 혹시 이 트리에 달려있는 걸까... 히지리는 눈을 꾹 감았다. 앞으로 다가올 상황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상한 공간에 홀로 던져져있고, 바람이 끝없이 불어오고... 아니, 바람은 더이상 불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손에 냉기가 느껴진다. 그런 감각이 느껴져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기, 괜찮니?"

".....네...?"

누군가가 히지리를 불렀다.

히지리는 어리둥절한 눈빛을 하곤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단정한 머리카락에 정장 차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다. 부모님께 철저히 모르는 사람을 경계하라는 교육을 받은 히지리이기에 그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하게도 꺼려졌다. 물론 소녀가 길바닥에 앉아있으면 누구라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기야 하겠지만.

가만, 길바닥이라면.

히지리는 벌떡 일어섰다. 아까는 일어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일어나고자 하니 의외로 쉽게 일어날 수 있었다.

".....돌아왔구나..."

히지리의 앞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었다. 하지만, 하늘에서는 눈이 내려올 뿐 아까와 같은 불가사의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캐롤 소리도, 사람들의 소리도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람만 불어올 뿐 전혀 춥지 않았었는데 다시 손이 얼음장같이 느껴졌다. 방금 그건 무엇이었을까. 히지리는 안도하면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겪었다는 감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와줄 수 있는게 있다면 도와줄게."

이 사람, 아직도 안 갔었나...? 지금은 길바닥에 앉아있지도 않은데... 히지리는 멀뚱멀뚱 눈을 깜빡였다.

"도움.... 이요...?"

"응."

"왜.....?"

"아.. 그야... 울고... 있으니까?"

".....아......"

그러고보니, 눈을 깜빡이는게 어쩐지 더 쉽더랬다. 울고 있었던 거였구나. 

"저기 말이야. 그... 나는 번듯한 직업도 있는 사람이니까.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아. 저, 명함이라도 줄까? 나는 아이돌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하고 있는데..."

"아, 아뇨.. 괜찮아요... 의심하는게 아니라...."

"....그럼, 괜찮다면... 무슨 일인지 얘기를 들어줄까?"

"제, 얘기를.."

"응. 물론... 아까 왜냐고 물어본 걸 봐서 도움은 필요하지 않은 상태일 수도 있겠지만."

"........"

"그래도, 역시 울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지. 무언가 얘기하고 싶은게 있는거 아냐?"

"...누구에게...?"

"누구에게라도 말이야. 전하지 못하면 모르잖아. 듣는 사람도, 자기 자신도."

그 순간 히지리는 보았다.

은은한 달빛을 지나 날아가는 무언가를.

그건, UFO는 절대 아니었다.

"......산타 클로스.... 진짜 있었어...."

"으, 응?"

"저, 저기...!"

그렇다면, 이것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성야의 끝에 시계에서 울린 종소리. 별세계, 그리고 돌아온 현실의 세계. 끝내 말하지 못했던, 하지만 이제 와서야 말할 수 있게 된 소원. 

그리고, 때마침 나타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사람.

그렇다면...

이것은, 그동안 맞이하지 못했던 크리스마스의....

"혹시, 당신은.... 제 노래를... 들어줄 수 있나요....?"

***

눈이 그쳤다.

눈이 오는 것은 순간이고, 쌓였던 것이 녹는 것은 금방이라 설여의 여운을 즐기는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 소중한 시간이겠지.

모치즈키 히지리는 눈을 볼 때면 그 밤을 기억한다. 라이브가 끝나고, 프로덕션 내의 정원에서 눈으로 토끼 눈사람을 만들며 노는 지금도 열심히 그 밤을 돌이켜보고 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었고, 어디까지가 상상으로 채워진 기억의 보완이었는지, 혹은 그냥 꿈을 꾼 것과 혼동해버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프로듀서에게 처음으로 노래를 했을 때의 가득 채워진 감정이었다. 처음으로 남에게 자신이 노래하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긴장했던 탓일까, 퍽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눈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노래를 부르던 때만큼은 손이 조금도 차갑지 않았다. 눈물을 흘렸던 것도 잊어버릴만큼 노래에 열중해있었다. 밤하늘은, 빨려들어갈 것처럼 깊었고.... 그리고, 프로듀서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던 것 같다.

"....노래로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건.... 프로듀서 씨가 가르쳐준걸지도 몰라..."

"응? 갑자기?"

"토끼 눈사람을 만들면서 할만한 얘기는... 아닌가요...?"

"아니, 그렇진 않지만... 과분한 소리를 들으니까 좀 민망해져서... 하하. 그래서, 라이브는 어땠어?"

"...오늘도... 즐거웠어요.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듣는 모두가 행복한 기분이 들었으면 좋겠다, 하고... 불렀는데, 끝에는 다들 웃고 있어서..."

"응... 그랬지."

"....기분 좋았어요... 후후. 그치만, 산타클로스의 의상은 입어본 적이 없기도 하고... 으음.."

"왜, 잘 어울렸는데."

"정말...요? 기뻐요... 아, 그치만 그런게 아니라... 그냥... 제가 산타의 의상을 입어도 되는걸까... 해서."

"음? 누구나 입을 수 있는거잖.... 아, 잠깐. 혹시 히지리는... 산타를 믿는 쪽?"

갑자기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프로듀서를 히지리는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야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지만, 히지리는 딱히 프로듀서가 걱정하는 것처럼 '순진해서' 산타를 믿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응."

".....그, 그렇구나."

"저기, 프로듀서 씨...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선물을 주는건 대개 분장한 아빠라는 건 알고 있어요... 우리 아빠도 그러셨고...."

"응? 그, 그렇구나... 어? 잠깐, 그걸 알고 있는건.. 어어?"

놀려주려한 것은 아니었지만 늘 자신보다 어른이라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프로듀서를 봐왔기에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히지리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래, 이왕 이런 주제가 나온 겸, 기억이 더 흐릿해져 늦어지기 전에 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할까. 눈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자리에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토끼 눈사람을 올려둔 뒤, 히지리는 장갑을 벗었다.

"저기... 프로듀서 씨, 잠깐만.. 걸을래요?"

"....응. 그러자."

그렇게 두 사람은 프로덕션을 빠져나와 한적한 골목을 걸었다. 한적하고 사람도 별로 지나다니지 않는 골목이지만 그래도 시즌이 시즌이라고 나무에 색색의 스트링라이트를 걸어두었다. 눈도 아직 완전히 녹지 않아 폭신하게 쌓여있었다. 

"어쩐지... 따뜻하다는 느낌...."

"정말, 역시 크리스마스구나."

".....응...."

"....히지리, 아까 산타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거야?"

역시 프로듀서 씨는... 내가 제대로 말을 할수 있도록, 해주시는구나. 

나를... 봐주시는구나. 

히지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프로듀서와 발을 맞춰 걸었다.

프로듀서는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히지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 날 밤, 히지리를 안내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몰래 집을 나선 것부터 우주와도 같은 공간으로 가는 문을 연 것이나 마찬가지였던걸까. 히지리도 줄곧 생각해왔지만, 대답은 얻지 못했다. 애초에 산타클로스는 선물을 주는 존재지, 다른 차원으로의 문을 여는 초월적인 신은 아니다. 그 때 누렸던 자유와 행복이 하루 밤의 꿈으로 끝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겠지. 그 두려움이 환각을 보여준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환각이 그렇게 한번 나타났다 사라지는 간편한 것이라곤 생각지 않지만. 

확실한 건, 히지리는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의 소원을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트리 앞에서 소원을 빌었을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용기를 내어 프로듀서를 붙잡고, 그 자리에서 노래를 들어준 프로듀서의 표정을 보고, 그 감정을 느끼면서... 

"산타가... 아닐지도.... 아니, 이젠... 산타가 아니어도 괜찮을지도."

히지리는 잠시 침묵하다가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괜찮으면... 들어줄래요?"

"물론이지."

잠깐의 고민도 없었던 프로듀서의 대답에 히지리의 얼굴에 포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프로듀서 씨. 그 때, 처음 프로듀서 씨를 만났을 때 말이에요..."

그렇게, 소녀는 밤을 비추는 노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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