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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765프로? 극장, 중2라도 무도관에 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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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22, 2020 02:05에 작성됨.

-765프로? 극장-

중2라도 무도관에 가고 싶어!


[도쿄도 치요다구 일본 무도관 ------ 카츠라기 타로]


“타로 군! 신이치 군! 이쪽이야 이쪽~!”

“ㅇ, 우와아...”

“사람 엄청 많아...”

  나와 타도코로는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인파에 질린 듯이 이야기했다. 아직 입장이 시작되지 않은 건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정문은 물론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마저 꽉 막혀 있었다. 마치 퇴근시간의 시부야 한복판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적어도 시부야는 사람들이 움직이기라도 하는데, 이 사람들은 움직이지도 않으니 보고만 있어도 답답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입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던 중, 타도코로가 내 어깨를 톡톡 하고 건드렸다.


“카츠라기, 저기 봐봐.”

“응? 뭘... 어?!”


  타도코로가 가리킨 곳에는 커다란 배너에 치하야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오늘 공연에 출연한다던 다른 아이돌들의 사진도 있었다. 나는 평소에 아이돌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웠지만, 지난 며칠간 TV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보다 보니 출연진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다.

“치하야, 대단하네! 진짜 아이돌 같아!”

“아이돌 맞는데. 이쯤 됐으면 자각을 좀 가지라고.”

“아, 그런가?”

“저기저기, 둘이 뭐해? 나, 기념 티셔츠가 사고 싶은데, 저쪽으로 가 보자!”


  레이나는 우리를 끌고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 있는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 대충 살펴보니 사이리움이나 부채 같은 걸 파는 것 같았다. 치하야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부채를 산다고 생각하니 조금 오묘한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기념품이니까 하나 사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토는 결국 안 오는 건가...”


  나는 두 사람과 함께 천막 앞에 줄을 선 채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타도코로는 어깨를 으쓱 하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행기를 놓쳤다면 별 수 없지 뭐. 그 녀석, 우리 중에 제일 들떠 있었으면서.”

“저기, 타로 군. 아까 내가 티켓 맡긴 거, 잘 갖고 있지?”

“응? 응. 주머니에 넣어 놨어.”

“빠지면 어쩌려고! 다시 줘. 내가 가방에 넣어 놓을게.”


  나는 주머니에서 티켓 4장을 꺼내 레이나에게 내밀었다. [서머 시즌 아이돌JAM! 관계자 전용 입장권], 그저께 치하야가 직접 레이나네 집까지 찾아가 전해준 관계자용 입장권이었다. 나는 이런 규모의 콘서트나 라이브에 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출연진들한테는 가족이나 지인들을 초대할 수 있는 관계자석 입장권이 주어지는 것 같았다.

  타도코로의 말대로 우리 중에서 가장 기대하던 건 사토였다. 그런데 가족과 함께 미국에 놀러 갔다던 녀석은 이런 귀중한 기회를 비행기와 함께 놓쳐 버렸다. 하필이면 성수기라 다음 항공편까지 꼬박 하루는 기다려야한다고 해서, 결국 한 자리는 빈 채로 남아있게 됐다.


“저기, 레이나. 안에서 영상이나 사진 찍어도 돼?”

“공연 중에는 안 돼.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사토 녀석, 불쌍하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조금도 대기열이 줄어들지 않자, 나는 답답한 마음에 까치발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금방 싫증을 낼 것 같았던 타도코로는 의외로 덤덤하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타도코로. 이렇게 줄 서 있는 거, 질리지 않아?”

“그러냐? 나는 뮤 삼촌이랑 야구장 다니던 기억이 있어서. 줄 서는 거는 어느 정도 참을 만한데. 인내심 좀 길러. 카츠라기.”

“너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 않거든.”

  이 녀석, 뮤 형을 닮아서 야구광이었지. 그러고 보니 뮤 형은 치하야의 프로듀서니까, 이 공연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걸까? 프로듀서라는 사람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돌 활동을 도와주는 역할이라면 공연 기획 같은 일도 할 것 같은데. 아마 지금 여기에도 와 있겠지. 예전처럼 마주쳐버리면 또 모르는 척을 해야 되려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는 무언가 짤랑,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집 열쇠가 열쇠고리와 함께 떨어져 있었다. 레이나의 말대로 티켓을 계속 주머니에 넣어 놨었다가는 떨어져도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내가 허리를 숙여 열쇠를 집어 들기도 전에, 내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대신 열쇠를 주워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뒤로 돌아 열쇠를 받아들며 감사를 표하려다가,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덜컥 물었다.


“감사합니...어라? 혹시... 스이게츠 학원에 다니지 않으세요?”

“네?! 그건 어떻게...”


  열쇠를 주워 준 사람은 검은 장발의 소녀였다. 왠지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옆을 뒤로 묶은 머리, 치하야를 닮은 것 같은 차분한 분위기.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분명 서머 페스티벌 때 봤던 중등부의 여자아이였다.


“그때 치하야한테 사인을 받아갔던 중등부, 맞지?”

“네? 네. 맞는데요... 절 아세요?”

  중등부의 소녀는 나를 경계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분명 그때 옆에 같이 서 있었고, 사인 이야기까지 했으면 대충 알아채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무대도 같이 섰잖아. 치하야 말고는 안 보였다는 건가. 조금 섭섭할지도.


“뭐해, 카츠라기. 줄이 끊기잖아. 빨리 와.”

  타도코로는 뒤를 돌아보고는 나를 불렀다. 나는 얼른 타도코로와 나 사이에 비어 있던 공간을 채웠다. 중등부의 소녀는 타도코로를 보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아, 혹시 키사라기 선배랑 같은 밴드부의 분들이신가요?”

“응? 이쪽은 누구야? 나 알아? 우리 학교?”

“아, 네! 중등부의 모가미 시즈카예요. 고등부 밴드의 기타리스트, 맞으시죠?”

“응. 타도코로 신이치야. 잘 부탁해. 그보다 그냥 갑자기 여기서 만난 거야, 카츠라기?”

“응? 응. 어쩌다 보니?”


  뭐야, 타도코로 녀석은 알면서 왜 나는 모르는 건데. 치하야가 워낙 유명하니까 나머지인 우리는 모를 수 있다고 쳐도, 타도코로를 아는데 날 모르는 건 조금 상처받는데.


“줄리아 선배한테서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지난 공연, 좋은 연주였다고 생각해요.”

“줄리아가 내 얘기를? 무슨 얘기 했는데? 밴드부에 기타 못 치는 애가 자꾸 귀찮게 군다고?”

“푸흡. ㄴ, 네?! 아니요, 전혀요!”

“...됐어. 줄리아가 그렇지 뭐.”


  얘도 거짓말을 잘 못하는 타입이구나. 

  타도코로는 계속해서 모가미와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붙임성이 부쩍 늘어난 타도코로는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능력이 생겼다. 중등부 시절 내내 딱딱한 말투 좀 고치라고 잔소리했던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모가미라고 했지? 너도 치하야의 공연을 보러 온 거야?”

“네. 전부터 키사라기 선배의 라이브가 와보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시즈카라고 부르셔도 괜찮아요.”

  나는 이 커다란 인파 속에서 시즈카를 마주친 우연에 신기함을 느꼈다. 그보다 시즈카에게는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공연에 혼자 왔을 리는 없고, 어쩌면 나눠서 줄을 서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나는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시즈카. 혹시 혼자 온 거야? 다른 일행은?”

“네?! 아. 네... 혼자 왔어요. 학교 친구들은 제가 아이돌에 관심이 있는 걸 몰라서...”


  서머 페스티벌 때도 그렇고, 대충 보니까 친구가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게 그 숨덕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시즈카의 말을 들은 타도코로는 갑자기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러면, 너도 우리랑 같이 볼래? 마침 관계자석 티켓이 한 장 남거든.”

“네?! 아, 아니요! 말씀은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실례가 되니까...”

“타도코로, 그렇게 말하면 헌팅 같은 느낌이 들잖아.”

“에...? 아니, 아니야! 일단 레이나도 있으니까. 저기, 레이나. 아까부터 뭘 보고 있는 거야? 잠깐만 와봐.”


  타도코로는 잠깐 당황하더니 뒤로 돌아 레이나의 어깨를 톡톡 하고 건드렸다. 레이나는 아까부터 우리의 대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계속 굿즈를 판매하는 천막 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품절이 되지 않을까 살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왜 그래, 신이치 군?”

“인사해. 이쪽은 중등부의 모가미 시즈카 양. 시즈카, 이쪽은...”

“레나 선배시죠? 줄리아 선배한테서 이야기 들었어요. 전에 인디밴드를 하셨다고...”

“응, 반가워! 히야마 레이나야. 줄리아는 레나라고 부르지만.”


  줄리아, 내 얘기는 한 마디도 안 한 거야? 아니, 아니지. 레이나랑은 전부터 친한 것 같았고, 타도코로는 같은 기타리스트니까 이야기한 거겠지. 그렇겠지? 나만 관심 밖인 건 아니겠지? 다른 애들한테 베이스는 무슨 소리가 나냐는 말을 듣는 것도 서러운데, 이런 데서도 공기 취급하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그래서, 레이나. 시즈카는 혼자 왔다는데, 마침 사토 녀석 때문에 우리 쪽 티켓이 남잖아. 같이 들어가도 괜찮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네! 어때, 시즈카? 치하야가 준 관계자석 티켓인데, 엄청 잘 보이는 자리라구?”

“제가 끼어들어도 괜찮을까요...?”

“응응! 괜찮고말고! 괜찮지, 타로 군?”

“응. 나도 괜찮아.”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저기요, 죄송한데 앞으로 좀 가주시겠어요?”


  그 때, 시즈카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우리에게 말했다. 잠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사이, 대기열이 앞으로 움직이면서 레이나 앞에서 줄이 뚝 끊겨 있었다. 우리는 깜짝 놀라 황급히 사과했다.


“앗, 죄송합니다!”

[잠시 후.]


“으앙... 티셔츠 못 샀어...”

“그러게요...”


  줄을 너무 늦게 선 탓인지, 우리 차례가 되었을 때는 이미 기념 티셔츠가 다 팔린 후였다. 레이나와 시즈카는 치하야가 그려진 부채로 아쉬움을 달랬다. 타도코로와 나는 치하야의 이미지 컬러인 파란색 사이리움 세트를 샀다. 레이나는 전에도 이런 공연에 온 적이 있는지 무려 12가지 색이나 되는 사이리움 세트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대충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계단과 입구 앞을 잔뜩 메우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입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그러면, 이제 들어갈까?”

“관계자석도 줄 서야 돼?”

“아니, 관계자석은 전용 입구가 따로 있어. 일단 스태프 분한테 여쭤보자. 잠깐만 있어. 여쭤보고 올게!”


  레이나가 진행요원에게 관계자석 출입구를 물어보러 간 사이, 시즈카와 셋이서 남겨진 우리 사이에는 왠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나는 정적을 깨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져보기로 했다.


“저기, 시즈카. 아이돌에 관심이 있다고 했지? 그러면 이런 라이브에도 자주 오는 거야?”

“아니요. 라이브에 와본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리고 아이돌은...”


  시즈카는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조금 전에 친구들이 자기가 아이돌에 관심이 있는 걸 모르고 있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취미를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즈카는 잠시 쭈뼛거리더니, 왠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에?”


  타도코로의 입버릇이 옮았는지, 나는 순간 당황해서 ‘에’라는 짧은 소리를 냈다. 그러자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타도코로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치하야한테 관심을 보인 거구나.”

“네. 예전부터 동경하던 꿈이거든요.”

“뭐, 하고 싶다면 해보면 되지 않아? 일은 소속사나 프로듀서 같은 사람들이 도와주니까, 일단 도전해보면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데. 너도 꽤 미소녀고.”

“ㄱ, 감사합니다...”


  타도코로 녀석, 미소녀라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내가 가르친 거긴 하지만 화법이 너무 거침없는 거 아니야? 듣는 쪽에서 당황하잖아.

  한편으로는 타도코로의 말이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치하야의 담당 프로듀서인 뮤 형을 가장 가까이에서 봤을 테니까, 좋던 싫던 대충 어떤 식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타도코로의 말을 들은 시즈카는 시선을 내리고 왠지 고민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타도코로가 한 말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시즈카에게 말했다.


“타도코로의 말은 너무 신경 쓰지 마, 가끔 말을 좀 툭툭 뱉는 경우가 있어서.”

“네? 아, 아뇨. 그건 아닌데... 아이돌이 되는 거, 집에서는 반대하고 계셔서요...”


  그 말을 들은 타도코로가 말했다.


“흐음. 그렇다면 내가 함부로 뭐라고 해줄 수는 없지만, 일단 힘내.”

“네. 감사합니다.”


  대충 대화가 마무리되어가던 그 때, 길을 물어보러 갔던 레이나가 돌아왔다.


“관계자석 입구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있대. 가서 티켓을 보여드리면 안내해주실 거라고 하셨어.”

“그럼 슬슬 갈까?”

“그러자.”

“네!”


[잠시 후, 무도관 내부]


“엄청 넓구나.”

“탁 트여있네. 야구장이랑은 또 다른 느낌인걸.”

“후후, 뮤지션들의 로망, 무도관에 온 걸 환영하네!”

“와아...”


  안으로 들어온 우리는 지정된 좌석을 찾아 앉았다. 관계자석이어서 그런지 무대가 정면으로 보여서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무도관 안에 들어와 본 것이 처음인 나와 타도코로는 신기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즈카는 반짝이는 눈으로 말없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내부가 어두워지면서 모두의 시선이 무대로 쏠렸다. 남녀로 구성된 두 명의 사회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오자, 객석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아, 이거, 방송 때 말고 공연에서도 타카가키 카에데가 사회를 보던가?”

“유명한 사람이야? 아, 저 사람이 타카가키 카에데?”

“타로 군, 타카가키 카에데를 몰라?!”

“카츠라기, 세상이랑 단절된 채 사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나도 아는 걸 모르면 안 되지. 방송에서도 봤을 거 아니야.”

“좀 모를 수도 있지. 안 그래, 시즈ㅋ...”

“타카가키 씨는 아이돌의 정점인데...”

“미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연예 뉴스도 좀 챙겨볼게.”


  아니, 유명한 아이돌을 모르는 게 죄는 아니잖아... 아무튼, 지난 오디션 프로그램 내내 사회를 맡아왔던 그 사람이 바로 타카가키 카에데인 것 같았다. 이름이 익숙한 걸 보니 방송에서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대충 유명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딱 보기에도 예쁜 외모였고, 차분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귀에 잘 들어왔다. 아이돌에 문외한인 나도 방송을 볼 때마다 ‘사회자가 예쁘구나.’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오죽할까. 

  사회자들이 오프닝 멘트를 마친 후, 아이돌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치하야의 순서는 마지막이었기에, 우리는 치하야가 나올 때까지 다른 아이돌들의 공연을 즐겼다. 마지막 오디션 때 치하야를 도와줬던 아이돌도 나왔다. 솔직히 예전에는 아이돌은 음악보다 외모나 다른 어필로 승부한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치하야의 곡들을 들었을 때도 그렇고, 지금 나오는 아이돌들의 노래도 그렇고, 의외로 음악성이 뛰어난 곡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정도 흘렀을까, 앞선 네 명의 아이돌들이 모두 공연을 마치고, 어느덧 치하야의 차례가 되었다. 두 사회자는 다시 무대 위에 올라 다음 순서를 소개했다.


“그러면, 어느덧 마지막 아이돌의 무대를 만나볼 순서가 되었습니다. 최근 음악 차트에서도 자주 이름을 올리고, 한창 떠오르는 멋진 아이돌이죠! 카에데 씨,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그러면 소개합니다. 떠오르는 가희, 키사라기 치하야 씨의 무대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넓은 무도관 안이 함성으로 가득 찼고, 푸른 조명이 무대를 밝혔다. 치하야는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라왔다. 전보다 더 큰 함성이 치하야를 반겨주었다.

  평소에 밴드부실에서 노래하는 모습과 TV에서 나오는 치하야의 모습이 많이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큰 무대에 선 치하야를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TV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키사라기 치하야입니다. 오늘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객석 끝의 관객 분들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래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치하야의 노래는 멋있었다. 너무 표현이 단순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번지르르한 미사여구를 붙이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냥 멋있었다는 말 한 마디로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을 정도로, 치하야의 노래는 멋있었다.

  평소 베이시스트인 내 역할은 멜로디인 기타, 그리고 리듬악기인 드럼의 중간을 이어주는 다리와 같은 역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곡 전체의 흐름과 분위기를 파악해야 했고, 자연스레 전체를 중심으로 음악을 파악했다.

  하지만 객석에 앉아있는 지금, 나는 베이시스트로서가 아닌 평범한 관객으로 치하야의 무대를 보았다. 물론 반주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 위의 빛나는 치하야 한 명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오직 보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들은 치하야의 노래는, 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도 멋있었다.

  나는 옆을 살짝 돌아보았다. 레이나는 신나게 사이리움을 흔들고 있었고, 타도코로도 그런 레이나의 기세에 맞춰 조금 어색한 동작으로 사이리움을 흔들고 있었다. 그 때, 레이나의 옆, 그러니까 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 시즈카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 역시 사이리움을 양 손에 들고 있었지만, 레이나나 타도코로와 달리 그저 가만히 쥐고 있었다. 무대에 집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즈카는 사이리움을 흔드는 것을 잊어버리고 무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차마 다물지 못한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크게 뜬 눈에는 무대의 환한 불빛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예전부터 동경하던 꿈이거든요.’


  꿈을 보는 눈. 자신의 앞에 펼쳐진 꿈을 보는 눈이 바로 저런 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때 저런 눈을 하고 있었다면, 지금쯤 프로 베이시스트의 길을 걷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의사는 베이스를 연주할 수 있어. 하지만 베이시스트는 사람을 살릴 수 없지.’

‘난 네가 옆길로 새라고 베이스를 배우게 한 게 아니란다. 타로. 꿈과 현실을 구분하렴.’


  뭐가 옆길인가. 뭐가 현실인가.

  저렇게 빛나는 눈을 한 아이에게도, 현실이라는 잣대를 함부로 들이댈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멋있었어~!”

“현장에서 보는 것도 괜찮은걸? 기회가 되면 다음에도 와 볼까나.”

“신이치 군, 라이브의 매력에 눈뜬 거구나!”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출구로 나와 쏟아지는 인파로부터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치하야에게 인사를 하고 왔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현장은 엄청나게 바쁜 것 같아서 오늘은 문자만 남기고, 다음에 만났을 때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역시 치하야! 노래할 때가 제일 멋있어~! 있지, 시즈카, 오늘 공연, 어땠어?”

“엄청 멋있었어요. 역시 키사라기 선배...”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니까 좋네. 관계자석이란 거, 대단하구나.”

“아, 타도코로 선배.”

“응?”

  시즈카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타도코로에게 말했다.


“함께 보자고 해주셔서 감사해요. 제 원래 자리는 좀 구석진 곳이었는데... 덕분에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었어요.”

“에? 아니, 뭐... 감사라면 그 자리를 펑크 낸 녀석한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중에 전해줄게.”

“네. 정말 감사했습니다.”

“시즈카는 어느 쪽으로 가? 우리는 아키하바라 쪽에서 내려갈 건데.”

“저는 시부야로 가요. 집이 덴헨쵸후 쪽이라...”

“아, 그래? 그러면 이 앞에서 헤어져야겠네. 라인 아이디 알려준 걸로 연락해!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조심해서 가고.”


  시즈카는 인사를 한 뒤 몸을 돌려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멀어져가는 시즈카를 잠시 바라보다가, 레이나와 타도코로에게 말했다.


“잠깐만, 시즈카한테 전해줘야 할 게 있어서. 잠시만 기다려!”

“에? 갑자기? 뭔데?”

“다녀와, 타로 군!”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일순간의 충동이었는지, 아니면 전해주어야만 한다는 의무감이었는지. 거의 질주하다시피하며 시즈카의 뒤를 쫓은 나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하아, 저기, 시즈카!”

“네? 카츠라기 선배? 무슨 일로...”

“뭔가, 해줘야할 말이 있어서. 하아, 하아...”

  나는 가빠진 숨을 고르고 말했다.


“너, 아이돌을 꿈꾼다고 했지?”

“네? 네. 그런데요...”

“사실 난 아이돌 업계 같은 건 전혀 몰라. 오히려 그건 타도코로 녀석이 더 잘 알고 있어. 그리고 네 자세한 사정도 모르고, 집에서 어떤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지도 몰라.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이야기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


  시즈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짜고짜 처음 만난 선배가 이런 소리를 해대니 이상할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꿋꿋이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눈으로 바라볼 만큼 동경하는 꿈이라면, 도전해보기도 전에 포기하지는 말아줘.”

“네...?”

“네가 치하야를 보는 눈, 엄청 반짝이고 있었거든. 그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는 건 아까우니까.”

“,,,”

“나라도 괜찮다면, 응원할게. 그러니까 도전해봐. 진심이야.”

  시즈카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했지만, 마지막 말을 듣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사합니다. 선배. 꼭 노력해볼게요.”

“응. 조심해서 가. 힘내고!”

“네!”


  시즈카와 헤어진 나는 다시 레이나와 타도코로에게 합류했다. 타도코로가 물었다.


“무슨 일이었어? 전해줄 거라니?”

“아니야, 아무 것도.”

“에...? 뭐, 알아서 잘 했겠지.”

“시즈카는 예의가 바르네~ 반듯한 아이인 것 같아!”


  나는 두 사람과 함께 걸으며, 오늘도 내 오지랖이 또 저질러버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는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타도코로 신이치를 바라보았다.

  저질러버리면 어때. 오지랖이 좀 넓으면 어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시도조차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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