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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11장, 태양의 젤러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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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9, 2020 19:04에 작성됨.

[도쿄도 시부야구 시부야역 ------ 하세가와 미유키, 765프로 프로듀서]


-띠리릭, 프로듀서, 전화 왔어요! 프로듀서, 전화 왔어요! 띠리릭, 프로듀서-

“여보세요?”

“선배, 나 도착했는데. 어디야?”

“지금 막 출구로 나왔어. 츠바키는?” 

“난 이미 골목이야. 그러면 먼저 들어가서 자리 잡아놓을게.”

“알겠어. 금방 갈게.”


  오늘도 어김없이 방송국으로 출근한 뒤, 오후부터는 무도관으로 이동해 하루 종일 현장을 점검했다. 다행히도 슬슬 사전 준비는 마무리되는 분위기라, 다음 주 부터는 굳이 미나토구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한창 현장을 점검하던 중, 사장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신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오늘은 전체적으로 오후 스케줄이 비어 있으니까, 오토나시 씨와 서류 작업을 마치고 일찍 퇴근하신다며 나도 현장에서 바로 퇴근해도 좋다고 하셨다.

  갑자기 저녁 시간이 비어버린 나는 기왕 치요다구까지 나온 김에 대학 시절 후배이자 친구인 타다노 츠바키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지난번에 야구 티켓을 받은 건도 있고, 겸사겸사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원래는 한 명 더 해서 셋이서 볼 생각이었지만, 한 명은 회사 일이 바쁘다고 나오지 못했다.

  나는 퇴근시간의 붐비는 시부야를 거닐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대학 시절 1, 2학년을 보냈던 캠퍼스가 바로 이 인근이었고, 3학년이 되어 캠퍼스를 옮기고 난 뒤에도 우리 밴드의 거점은 항상 시부야였다. 길거리 공연을 할 때면 도쿄 전역을 무작정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결국 뒤풀이나 회식은 항상 시부야에서 했다. 

  나는 빛나는 간판들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대로변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몇 년째 변하지 않는 유럽풍의 작은 가게가 나를 반겨주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이 드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운터의 점원이 나에게 물었다.


“어서오세요. 몇 분이신가요?”

“안에 일행이 있습니다. 타다노라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타다노 님... 아,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점원은 나를 안쪽에 위치한 좌석으로 안내했다. 밖에서 볼 때는 소규모로 보이지만, 안쪽으로 꽤 깊게 들어가 있어서 좌석은 충분했다. 다 같이 올 때면 앉던 큰 테이블을 지나, 안쪽의 2인석에서는 츠바키가 나를 보며 손을 들었다.


“여기야, 뮤 선배.”

“오랜만이네, 츠바키.”

“퇴근하고 바로 온 거야? 웬일로 정장 차림?”

“응. 마침 미나토구 쪽에서 일이 있어서. 오늘 보자고 한 것도 그래서야.”

“헤에, 회사원 같아~”

“그러니까, 날 뭐라고 생각하던 건데...”


  츠바키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웨이터가 따라 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카즈키는? 바빠서 정 안 되겠대?”

“야마우치? 응. 걔도 회사원이니까. 얼마 전에 승진했다고 바쁜가 봐.”

“승진? 대단하네. 나한테는 그런 얘기 안 해줬으면서.”

“나도 일부러 캐물어서 알아낸 거야. 밴드 그만둔 이후로 바쁘다고 연락도 안 해.”

“그만 둬? 너희, 밴드 그만 뒀어?”


  나는 깜짝 놀라 츠바키에게 물었다. 카즈키와 츠바키는 나와 두 학번 차이나는 후배들이다. 츠바키는 내가 3학년일 때 세컨드 기타로 들어왔고, 이듬해 베이시스트 야마우치 카즈키가 결원을 메꾸기 위해 합류했다. 내가 졸업한 뒤로는 두 사람이 이어받아 유지해왔고, 둘은 졸업한 후에도 함께 인디밴드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었다. 둘이 나오는 것을 알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올해 봄에 치하야의 초대로 아카바네에서 보았던 라이브에 나온 그 밴드가 바로 이 둘의 밴드였다. 


“봄까지만 해도 잘 하고 있었잖아. 라이브도 하고.”

“아, 선배도 그 때 왔다고 했지. 그게 마지막 공연이었어. 야마우치도 나도 바빠서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겠더라고.”

“말이라도 좀 해 주지 그랬냐...”

“그 전까지 연락 하나도 안했으면서, 해체한다고 불쑥 보내기도 좀 그렇잖아? 그 때 선배가 먼저 연락해줘서 그 후로 가끔 하는 거지. 나도 바쁜 여자야~”

“그러면, 그 후로 음악은 아예 안 해?”

“밴드는 못 하고 있지.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어린 애들한테 기타를 가르쳐.”

“반년동안 어떻게 그런 얘기는 하나도 안 해주냐...”

“밴드는 그만 뒀습니다. 지금은 취업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닙니다~ 같은 이야기는 굳이 안 해도 괜찮잖아. 가끔 하는 연락인데 좋은 얘기만 해야지. 안 그래?”

“뭐, 그건 그렇지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웨이터는 전채 요리로 샐러드를 내어 왔다. 우리는 각자의 샐러드를 먹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 선배 말대로 진짜 얻어먹을 생각 하고 온 건데, 괜찮아?”

“괜찮아. 오늘은 내가 먼저 부른 거니까.”

“역시 정규직이구나. 월급이 빵빵한가봐?”


  츠바키는 양상추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나는 츠바키의 말에 나의 근로 환경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첫 직장이다 보니 비교대상이 될 만한 것들이 없었지만, 적어도 야근수당이 빠짐없이 나온다는 건 긍정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고되지만 분위기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프로듀서로서의 업무도 나름 즐기고 있고.

  그러다 나는 지난 며칠간 품고 있던 고민을 다시 떠올렸다. 샐러드에 들어 있던 케일의 쓴맛과 함께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뭐...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매일 일하다보면 정작 돈 쓸 일이 많지 않으니까. 너 밥 사줄 정도는 돼.”

“어머어머, 설레라. 회사는 다닐 만 해? 인생 선배로서 팁 좀 방출해줘. 연예계라고 했지?”

“응. 일단 직함은 프로듀서야. 담당하는 건 아이돌 쪽 업무고.”

“헤에, 아이돌? 선배, 보기보다 거물이었네.”

“거물은 무슨. 네가 생각하는 그런 큰 회사가 아니라니까.”

“왜, 연예계면 346프로랑 같은 업계 아니야? 그 쪽 음반 레이블이 유명하잖아.”

“346프로는 까마득하게 먼 대기업이잖아. 우리는 이 가게보다 작은 사무실이 전부거든.”

“조금 실망스럽네...”

“대놓고 실망하지 말아줄래? 실례거든!”

“헤헤, 미안미안. 농담하는 거지.”


  샐러드를 비운 우리는 수프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입 안에 남은 야채의 씁쓸함을 지우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사실 진짜 궁금한 건 따로 있기는 한데... 선배, 지금 하는 일도 즐거워?”

“응? 응. 나름 보람도 있고. 배우는 것도 많고.”

“그렇구나... 프로듀서면, 매니저 같은 건가? 막 스케줄 관리하고 그런 거?”

“응. 기본적인 틀은 그래. 그러다보면 아이돌이랑 유대감도 생기고, 신뢰도 쌓고 그러는 거지.”

“흐음...”


  츠바키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뭔가 깊게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왠지 부담스러워진 나는 시선을 피하고 계속 물을 들이켰다.


“나는 선배가 결국에는 어디 가서 메이저로 데뷔할 줄 알았거든. 선배, 졸업하기 전에 여기저기서 섭외 들어오고 그랬잖아.”

“푸흐, 언제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여기저기도 아니고 딱 한 곳이거든.”

“그래봤자 몇 년 안 된 일이면서 뭘 언제 적이야. 늙은 척 하지 말라구. 그리고 아무 데서나 온 것도 아니고 그 346프로였으면서.”

“...”


  나는 츠바키의 말에 잠시 그 때를 떠올렸다. 우리가 한창 라이브 하우스와 길거리 공연을 병행하던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어느 날, 평소보다 꽤 규모가 있었던 라이브를 마치고 나오는 우리에게 정장 차림의 남자가 다가왔다.


“방금 순서였던 밴드, 맞죠?”

“네? 네. 그런데 누구시죠?”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만.”


  남자는 나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받아든 명함에는 ‘346프로덕션 음반사업부’라는 글씨가 확실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고 명함을 여러 번 확인했다. 몇 번을 읽어 보아도 346프로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방금 공연이 인상적이어서, 혹시 나중에 미팅이라도 해볼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저희 밴드...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이쪽 기타리스트분만 따로.”

“네...?”

“이번에 저희 쪽 레이블에서 새로 준비하는 밴드 사업이 있는데, 기타리스트가 필요하거든요. 하세가와 미유키 씨 맞으시죠? 오늘 세트리스트에 있던 음악, 직접 만드신 거라고 들었습니다. 연주 실력도 괜찮고, 프로듀싱 능력도 있으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주십쇼.”


  내가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츠바키가 옆으로 다가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뭐야? 뮤 선배, 데뷔할 수 있는 거야?”

“잘 됐네요, 하세가와 선배!”


  카즈키도 츠바키를 거들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생각해보시고 그쪽 번호로 연락해주십쇼.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남자는 내가 시큰둥해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기타를 치는 게 좋았지만 그 전까지 음악에 생계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전공도 음악 쪽이랑은 거리가 멀었고, 밴드에도 열심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이었다. 

  가장 큰 것은 나에게만 온 단독 제안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지난 4년간 함께 한 몇몇 멤버들과, 새로 합류해 1, 2년을 함께 보낸 아이들을 팽개치고 혼자서 덜컥 346프로에 가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멤버들 중에는 진심으로 메이저 데뷔를 꿈꾸는 아이들도 있었다. 츠바키를 포함해서.

  그 츠바키는 지금 내 앞에 앉아 콘크림 수프를 즐기고 있었다. 츠바키는 살짝 맛을 본 뒤 후추를 넣고 천천히 저으면서 질문을 이어갔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 돼. 그때 왜 거절한 거야? 그것보다 좋은 기회는 없었을 텐데.”

“...”

“아, 혹시 옛날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아? 다른 얘기 할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괜히 마음이 무거웠다. 정작 나보다 정식 데뷔를 원하던 건 츠바키였다. 그 시절에도 틈만 나면 나에게 작곡 팁을 가르쳐달라며, 나중에 데뷔하게 되면 꼭 인센티브를 나눠주겠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진심으로 츠바키를 응원했다. 졸업한 뒤로 그녀에게 밴드를 맡겼고, 그녀가 졸업한 후 카즈키와 함께 인디밴드를 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도 착실하게 경험을 쌓아서 꼭 데뷔할 수 있기를 바랬다. 내가 받았던 것처럼, 그녀와 카즈키도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카즈키는 얼마 뒤 나보다도 먼저 취업해서 지금은 성실한 회사원이 되어 있었고, 츠바키마저 밴드의 꿈을 접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갑자기 둘의 실력을 썩히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저기, 츠바키. 혹시 지금도 데뷔해볼 생각 없어?”

“뭐?”

“얘기했듯이 나, 프로듀서 일을 하고 있으니까.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밴드 쪽으로도 캐스팅할 수 있을지ㄷ...”

“그만해, 선배.”


  츠바키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단호하게 내 말을 막았다. 나는 순간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미안. 함부로 이야기해서.”

“선배가 사과할 건 없어. 그래도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나도 옛날이야기 좀 할래. 괜찮지, 선배?”

“응. 괜찮아.”


  츠바키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숨을 들이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배도 알듯이, 처음에 데뷔를 꿈꿨던 건 맞아. 야마우치도 나도. 인디밴드를 시작할 때까지도 그랬어. 그런데 말이지, 그 전부터 선배를 보다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거든.”

“그게 뭔데?”

“아,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구나. 하는 거.”

“...뭐?”

“내가 1학년 때 바로 밴드에 들어간 것도 선배 때문이야. 원래는 학교 밴드 말고 외부의 인디 밴드를 알아보려고 했어. 그런데 신입생 환영회 때 한 공연에서 선배가 솔로 치는 거 보고 바로 입부신청서를 냈지.”

“그랬...구나.”

“선배는 346프로에 가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꿈을 꿨어. 나도 열심히 하다보면, 선배처럼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선배가 졸업한 뒤로도 여기저기 공연도 다니고, 오히려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했지.”


  츠바키는 입이 마르는지 말을 멈추고 와인을 살짝 마셨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라이브에 나가면 나갈수록, 다른 기타리스트들을 보면 볼수록, 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만 보이더라고. 저런 사람들도 무명인데, 내 수준으로 데뷔를 꿈꾸는 게 말이 되는 걸까, 하고.”

“츠바키...”

“끝까지 들어줘. 그래서 꿈은 포기하고 취업을 하렵니다, 라는 암울한 결말로 가려는 건 아니니까.”

“응. 미안. 계속해줘.”

“사실 좌절한 건 맞아. 결과적으로 데뷔를 포기한 것도 맞고. 아예 음악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어. 야마우치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갑자기 선배 얘기를 하는 거 있지?”

“카즈키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데?”

“하세가와 선배가 자기한테 얘기했대. 346프로에 안 간 건 음악이 좋아서였다고.”

“아...”

“프로가 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음악을 맘 편히 하고 싶어서였다고.”


  그 내용은 카즈키에게 적당히 둘러댄 내용이었다. 차마 제안을 거절한 게 너희 때문이다, 라는 핑계를 댈 수는 없었기에, 아마추어리즘을 지키고 싶다는 거창한 말로 둘러댄 게 바로 그 내용이었다.


“근데 나는 단번에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챘어. 이참에 다시 물어볼게. 선배, 야마우치한테 한 말은 거짓말이지?”

“에...?”

“푸흐, 예나 지금이나, 그 얼빠진 표정은 그대로네.”


  츠바키는 살짝 웃더니 와인 한 모금을 마셨다.


“선배, 우리 때문에 안 간 거잖아. 나랑 야마우치가 신경 쓰여서.”

“어떻게 알았어...?”

“매일 입에 발리도록 하신 말씀이잖아요, 뮤 선배. ‘밴드는 가족, 나아가는 힘은 신뢰! 그것이 낭만!’ 술 마실 때마다 매번 그 소리해서 얼마나 낯간지러웠는지 알아?”

“아하하...”

“아무튼, 정작 우리 때문이었으면서 야마우치한테는 그렇게 둘러댔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왠지 화가 나서 그만둘 수가 없겠더라고.”

“그건 무슨 소리야?”

“선배가 그 346프로를 거절하면서 선택한 게 그 가족이고, 그 신뢰고, 그게 선배가 가르쳐준 음악의 낭만인데, 단순히 데뷔를 못 한다고 그걸 져버리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

“...”

“그래서 그 후에 한 인디 밴드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했어. 음악 좋아하는 애들이면 대학생도 구하고, 중학교 3학년짜리도 구하고, 지금은 고등학생이지만. 걔는 잘 지내나? 연락이나 해봐야겠네.”


  나는 침묵하면서 천천히 메인 요리를 먹었다. 가족이네 신뢰네 하는 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하던 예전이 떠올라 부끄러운 것도 있었지만, 츠바키가 그걸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할 때 나의 낭만을 떠올렸다는 것이 기쁘면서도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앞으로 밴드는 어려울지 몰라도, 기타를 그만두지는 않으려고. 나도 선배처럼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취업하려고 노력 중이야. 선배는 아이돌 쪽이니까, 밴드나 음반 쪽 일을 원하는 나랑은 좀 다르지만. 직접 무대에 서지는 않더라도, 나처럼 음악에 꿈을 꾸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 혹시 모르지, 그러다 나도 우연히 기회를 잡을지도?”


  츠바키는 와인 때문에 취기가 올라오는지,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가 저런 이야기를 했으면 낯간지럽다고 태클을 걸었을 거면서, 정작 자기가 그런 말들을 하고 있었다.

  츠바키의 말들은 나의 고민을 조금 들어내 주기도 했다. 아이돌 업계의 전문가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이성적이고, 냉철하고, 요령도 경험도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두려웠다. 내가 부족하다는 게 두려웠고, 그런 부족함 때문에 치하야를, 아이돌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을까 두려웠다.

  츠바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꿈과 낭만을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주변의 뛰어난 이들을 바라보며 자기가 부족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고, 아름답게 품어왔던 낭만을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츠바키는 그만두지 않겠다는 결정을 했다. 다른 형태가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결정을 했다. 내가 스스로 의심하고 있는 나의 낭만을, 츠바키는 지켜나가겠다고 해주었다.

  나는 그런 츠바키를 보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요령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수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낭만마저 져버릴 필요는 없었다. 부족한 건 메꾸고, 필요한 건 배우면 되는 것이었다. 때로는 이상과 다를지도 모른다. 아니, 이상과 다른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낭만의 근간까지 부정해버릴 필요는 없다는 걸, 츠바키의 말을 통해 깨달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시부야역으로 나왔다. 퇴근시간이 지나간 뒤라 아주 혼잡하지는 않았지만, 번화가답게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츠바키, 취한 거 아니야? 데려다 줄까?”

“무슨 소리야? 얼굴 살짝 빨개진 거 가지고 취해서 헤롱헤롱 한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기억 안 나? 난 선배가 취해서 곯아 떨어졌을 때도 혼자 살아 있었다구.”

“뭐, 그건 그렇지만... 아무래도 걱정되니까.”

“정 걱정되면 들어가서 전화할게. 괜히 가는 길도 다른데 따라오지 마셔요.”

“알겠어. 꼭 전화해.”

“예, 예~”


  나와 츠바키는 승강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고마워, 츠바키.”

“갑자기 무슨 이상한 소리야? 와인은 내가 마셨는데, 선배가 취한 거야?”

“아니, 진심이야. 고마워.”

“몇 년이 지나도 버릇은 못 버리네... 오글거려, 선배.”

“사람은 쉽게 안 변하는 걸지도 모르지.”

“정말이지... 갈게.”

“응. 조심해서 가.” 


  츠바키와 헤어진 뒤, 나는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두 정거장쯤 지났을까, 휴대전화에서 문자 메시지를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문자는 치하야로부터 온 것이었다. 웬일로 첨부 파일도 있었다. 첨부 파일은 꽃병 사진이었다.


[치하야, 오후 7시 32분: 오늘은 미키와 쇼핑을 나갔다가 화병을 사 봤어요. 미키가 갑자기 저보고 프로듀서를 좋아하는 거냐고 물어 와서 당황했지만요. 미키가 말하는 이성적인 호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프로듀서를 깊게 신뢰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오늘도 제 라이브 때문에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치하야.]


  나는 휴대전화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내가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듯이,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치하야는 지난 반년동안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치하야의 변화는 나에게 더욱 의미가 컸다. 신뢰와 유대감, 내가 믿어온 그 낭만으로, 타카기 사장님이 가르쳐주신 그 낭만으로, 치하야는 변화하고 있었다.


  나의 낭만은 잘못되지 않았다. 

  765프로의 낭만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약간의 요령을 배워나갈 필요가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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