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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 츠바사 『괜찮아, 날개는 또 자랄 테니까』 -2-(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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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7, 2020 16:57에 작성됨.

그리하여 도착한 곳은.....시민 공원이었다. 어디에 가도 흔히 있을 법한.


"에- 고작 여기?"

"후후후, 츠바사는 아직 애라서 잘 모르는 구나. 일상 속에서 작은 여유를 즐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데이트란다."

"거짓말!"

"자, 자. 너무 화내지 말고. 이거라도 먹으렴."


한참 장광설을 내뱉던 프로듀서는, 벤치에 앉아있던 츠바사에게 딸기 생크림 크레이프를 건네줬다. 근처에 있던 노점 트럭에서 사온 것이었다. 실망하는 티를 팍팍 내던 츠바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사합니다! 하고 그 크레이프를 받아 먹었다.


"와, 이거 맛있네요."

"그래? 다행이다. 어디 보자, 내 것도.....오- 괜찮네."

"프로듀서 거는 뭐에요?"

"나? 이거."


츠바사가 자기 몫을 먹다 말고 프로듀서에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프로듀서는 츠바사 옆에 나란히 앉고서는, 손에 들려있는 크레이프를 보였다. 한 입 베어문 흔적이 역력한 그것의 안 쪽에는 녹색 크림과 짙은 빛깔의 단팥소가 함께 들어가 있었다.


"할머니 같네요."

"뭐, 뭐 어때. 나는 이런 게 좋다고." 


츠바사가 자기 취향을 놀리거나 말거나. 프로듀서는 크레이프를 꾸역꾸역 먹어치우려고 했다. 그런데 그 때. 츠바사가 외쳤다.


"저 한 입만 주세요! 네?"

"아깐 할머니 같다며."

"프로듀서 씨가 좋다고 하니까 궁금해졌어요."


안 돼? 츠바사가 반칙기술을 썼다. 프로듀서는 못 이기는 척 크레이프의 아직 베어물지 않은 쪽을 츠바사에게 내밀었다. 츠바사는 크게 한 입 베어물고는 오물거렸다. 프로듀서는 그 모습이 병아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 층 포근해진 시선으로 츠바사가 맛보는 과정을 가만 지켜보았다. 녹차 단팥 크레이프를 한참 음미하던 츠바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음....역시 제 취향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달라고 하지 말던가."


꽁해있는 프로듀서에게 츠바사가 자기 크레이프를 내밀었다.


"저만 먹는 건 불공평하니까 프로듀서 씨도 한 입 어때요?"

"난 그런 거 싫어해."

"그래요?"


츠바사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민 것을 거두지 않았다.


"생크림 싫어한다니까."

"그럴수록 트라이하고 챌린지 해야하는 거에요."


츠바사의 완강한 권유에 프로듀서는 결국 눈 앞에 있는 크레이프를 조금 베어물었다.


"어때요?"

"음....생각보다 먹을 만하네."


프로듀서가 중얼거리자 츠바사는 에헤헤, 하고 웃어보였다. 수족관에 있을 때보다는 기분이 좀 나아진 듯 보여서, 프로듀서는 조금 안도했다.


.....


...


어느덧 해질 무렵이 되었다. 공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프로듀서와 츠바사는 호수를 가로지르는 다리 한 가운데 멈춰섰다. 그리고는 난간에 몸을 기대어 아래를 가만 내려다보았다. 잔잔하게 펼쳐진 오렌지빛 물결 위로, 오리 몇 마리가 두둥실 느긋하게 몸을 맡기는 게 보였다.


"하아.....지쳤다."

"거의 한 바퀴는 돌아봤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야."

"네에. 그렇네요."


짧은 대화 뒤로는 긴 침묵이 찾아왔다. 츠바사는 조용히 오리들을 지켜봤고, 프로듀서는 그런 츠바사의 옆얼굴을 주시했다. 석양과의 경계선이 흐릿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놔두면 사라져버릴지도 몰라. 프로듀서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프로듀서는 급히 츠바사를 불렀다.


"츠바사."

"네?"

"그, 저기. 오늘 말야.....재밌었어?"

"이상했어요."

"아, 그래."

"그리고 즐거웠어요."

".....하하. 그렇다면 다행인데."


뒤이어진 대답에 프로듀서는 입가가 느슨해지면서도, 동시에 어딘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츠바사. 프로듀서가 옆에 있는 이를 다시 부르려는 순간이었다. 아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불그스름한 두 눈동자가 프로듀서에게 똑바로 향했다. 프로듀서는 말하려던 걸 멈추고 가만 그를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맑고 투명했을 눈동자에서, 무언가가 일렁거리는 게 보였다. 프로듀서가 무심결에 손을 뻗자, 츠바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하는 거지? 초조해진 프로듀서가 츠바사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 때.


"그치만.....역시 분해~!"


츠바사가 두 손 모아 크게 소리질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오리들이 퍼드득 하늘로 날개짓하며 자리를 떠냈다. 프로듀서는 동그랗게 커진 눈을 한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동안에도 투덜거리는 말소리가 이어졌다.


"프로듀서 씨하고, 어른의 데이트하면, 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아니야." 


볼멘소리에는 울먹임이 섞여들어가있었다. 빨간 두 눈에 고이기 시작하는 눈물. 프로듀서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츠바사에게 다가갔다. 훌쩍거리던 츠바사는 프로듀서의 손을 꼭 붙잡아 자기쪽으로 쭉 끌어당겼다. 어어!? 균형을 잃어 휘청거리는 프로듀서의 품 안에, 츠바사가 파고들어 샛노란 앞머리를 부볐다.


"프로듀서 씨, 저.....분해요."

".....그러니."


프로듀서는 츠바사의 등에 한 손을 얹어 느릿하게 도닥였다. 이번 '데이트'로 기분이 풀렸으면 좋았을텐데. 결국 그러지는 못한 것 같았다. 프로듀서는 얼마 전 츠바사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자신 있게 도전한 오디션. 그렇지만 그 결과는.....탈락. 근소한 차이로 떨어진 것도 아니었다. 츠바사는 도중에 퇴장당했다.


-동작이 틀리지 않았다. 음정이 어긋나지 않았다. 그걸로 다가 아니에요. 설렁설렁 하면서 틀리지 않는 것보다, 틀려도 진정성 있는 게 훨씬 낫습니다. 참가번호 16번, 그만하고 돌아가세요.


그 때 심사위원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고 했었지. 확실히, 뼈 아픈 지적이었다. 프로듀서도 이를 반박할 수 없었다. 처음 시어터에 왔을 때보다는 나아졌긴 해도, 츠바사는 여전히 자신의 재능을 지나치게 믿는 쪽이었다. 그렇기에 요령은 쉽게 파악해도, 숙달은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인 순간에, 재미없다고 홱 등을 돌려버렸다. 츠바사의 고질적인 문제점. 언제나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오디션 탈락 소식을 들은 뒤, 프로듀서는 고민했다. 한 번 진지하게 면담해보는 게 좋을지. 아니면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는 게 먼저일지. 프로듀서는 후자를 골랐다. 츠바사 같은 아이는 기분에 따라 의욕이 정해진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뭘 하려고 해도 할 마음이 들지 않겠지. 바람이라도 좀 쐬게 하면 기분전환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다시 할 마음이 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건, 안일한 판단이었나. 실패를 실감한 프로듀서는 자신의 품 안에서 어깨를 잘게 떠는 츠바사를 내리살폈다. 생각보다 상처를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점퍼 자락을 꼭 붙잡은 손. 그 손등에는 방울방울 눈물이 져있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뭐라 달래주는 게 좋을까. 말해봤자, 이 아이에게 닿을 수 있을까? 괜히 상처만 헤집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프로듀서가 말을 얹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였다.


".....싶지 않아요."


작게 웅얼거리는 말소리가 품 안에서 새어나왔다. 프로듀서가 주의를 기울이자, 그 말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지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지 않아요, 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말에 등을 쓰다듬던 손이 멈칫했다. 츠바사는 훌쩍이면서도 계속, 말을 토해냈다.


"이제는 대충대충 안할게요. 열심히 할게요. 레슨 안 빼먹을게요. 힘들고, 지치고, 귀찮아도." 


.....그런 거 였나. 프로듀서는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 얼굴에는 어렴풋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츠바사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분해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더 위로 날아오르기 위한 날개로 바꿔낼 수 있었다.


"크흥, 훌쩍.....프로듀서 씨."

"응."


점퍼 자락을 꼭 쥐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츠바사. 고개를 들어 아직 눈물이 주렁주렁 매달린 얼굴을 보였다. 하두 울어서 시큰거리는 두 눈을 프로듀서에게 똑바로 향했다. 전해져오는 결의. 프로듀서는 진지한 얼굴로 그와 마주했다.


"이대로 지고 싶지 않아요. 강해지고 싶어요. 저도 다른 애들처럼.....빛나고 싶어!"


그러니까! 감정이 말을 앞질러버렸다. 츠바사는 또 한 번 울먹였다. 괜찮아. 알겠어. 프로듀서는 안심하라는 듯 옅게 미소지어보였다.


"잘 되었네."

".....네?"

"안 그래도 오퍼가 하나 들어온 게 있거든. 라이브의."


프로듀서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요령 좋은 츠바사는 금방 알아챘다. 그리고, 요령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도. 츠바사는 팔로 넘쳐흘렀던 눈물을 슥슥 닦아냈다. 선명해진 시야. 프로듀서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츠바사는 한 숨 크게 들이쉰 뒤 말했다.


"전력을 다할게요."


그거면 충분했다.


.....


...


"저, 어땠나요?"


공연이 끝난 직후였다.  무대 뒷편에 서 있던 프로듀서에게, 츠바사가 조금 지친 듯한 모습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프로듀서는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지었다. 고작 몇 분전의 상황은 어렵지 않게 머리 속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소리. 열렬한 콜. 회장을 휘황찬란하게  수놓는 조명. 꽝꽝 울려퍼지는 음악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도 가장 반짝였던, 어느 한 소녀.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이. 


765 프로덕션 시어터 밀리언 스타즈 소속, 이부키 츠바사.


"잘했어."

"정말요?"

"그럼. 츠바사가 제일 빛났어."

"와아!"


어땠는지는 자기자신부터가 잘 알지만, 그래도 다른 누구의- 프로듀서의 대답이 듣고 싶어. 담당 아이돌의 소원에 프로듀서는 담담히 응해주었다. 무대가 진행되는 내내 우리 츠바사가 달라졌어요! 하고 안밖으로 한참 주접을 떨어댔던 건 비밀로 해두기로 했다.


"수고 많았어. 이만 옷 갈아입고 쉬러 가자."

"에헤헤.....프로듀서 씨."


프로듀서가 츠바사의 등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발걸음을 재촉했을 때였다. 츠바사가 프로듀서의 한 팔을 끌어안고는 찰싹 달라붙었다.  왜 그러니? 프로듀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츠바사는 배시시 웃으면서 답했다.


"저 잘했으니까 상 주세요, 상!"

"상? 어떤 걸 받고 싶은데?"

"데이트!"

"전에 했잖아. 또?"

"이번에는 제대로 어른의 데이트 하는 거에요. 아침부터 밤까지!"

".....구,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에 가고 싶어요! 전에 리오 씨한테 이야기 들었는데-"

"아직 일러!"

"에에- 안 돼?"

"안되고 말고! 자자, 허튼 소리 말고 가서 쉬기나 해."


츠바사의 얼토당토않은 요구에 프로듀서는 짐짓 버럭 화를 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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