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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의 저편. -제11장, 태양의 젤러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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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7, 2020 15:50에 작성됨.

[도쿄도 오타구 무사시닛타역 ------ 프로듀서]


  2차 심사가 끝나고 무도관 라이브가 확정된 후로 눈 깜짝할 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매일같이 방송국으로 호출되어 회의에 불려 다니고 있었다. 라이브 당일까지 남은 시간은 10일 정도. 적어도 이번 주까지는 세트리스트와 연출 관련 합의를 끝내야 순조롭게 라이브를 진행할 수 있었다.

  나는 요즘 아침 일찍 방송국으로 출근해 저녁때가 되어서야 사무소로 돌아오고 있다. 체력에 부담이 있을 법도 했지만, 방송국으로 출근하나 사무소로 출근하나 크게 다를 것은 없었기에 체력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히려 신경이 쓰이는 건 다른 쪽이었다. 346과 82프로의 아이돌도 이번 무대에 서게 되어 있기에 매일같이 나루세 씨와 야마모토 씨를 마주쳐야 했다. 연합 라이브를 0부터 기획하는 것이 처음인 나는 상황을 따라가는 것도 벅찼지만,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둘과 다른 프로듀서들은 능숙하게 회의를 진행해나갔다. 그들을 바라볼 때면 자꾸만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 날 처음 느꼈던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 자꾸만 나를 조여 왔다.

  사장님께 상담 드릴까 고민도 해보았다. 하지만 최근의 살인적인 스케줄로 인해 사무소로 돌아가면 간단한 서류 정리를 마치고 바로 퇴근하는 것이 패턴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또 한 가지 걸렸던 점은 내가 의심하고 있는 그 낭만이, 사장님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타카기 사장님은 나나 아이돌들에게 성과를 강하게 요구하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단결을 회사의 모토로 삼고, 예전에 치하야를 담당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신적인 부분을 받쳐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이 낭만주의는 대학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부분도 있지만, 분명 연수를 받던 시절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게 나의 결론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이를 사장님께 상담할 수는 없었다. 그건 제자가 스승에게 찾아가 스승님의 가르침이 의심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나를 765프로의 희망이라 이야기했던 사람에게, 스스로 찾아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쪽 길은 나에게 맞지 않는 걸까. 이제 막 당당히 날개를 펴기 시작한 치하야를 가로막느니, 차라리 그만 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며, 사무소 계단을 올라 문을 열었다.

  

-달칵.

“다녀왔습니다.”

“프로듀서 씨,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오토나시 씨. 리츠코는 없나요?”

“리츠코 씨는 펑키 노트 쪽 현장에 나가 있어요.”

“그런가요...”


  오토나시 씨는 복잡한 마음으로 돌아온 나를 언제나와 같이 맞아주었다. 내가 무도관 일로 하루 종일 사무소를 비우는 일이 잦아지자, 프로젝트 페어리와 펑키 노트를 비롯해서 아이돌들의 스케줄 관리는 리츠코가 전적으로 맡아서 해 주고 있었다.


“프로듀서 씨! 다녀오셨어요~!”

“다녀왔어, 하루카.”


  응접실에 앉아 있던 하루카도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한편으로 조금 의아해했다. 내 기억 상 오늘 TORICO의 스케줄은 오후 2시에 끝났다. 유키호가 3시쯤에 사무소로 돌아왔다고 문자로 보고해왔기에, 나는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 좋다고 답장을 보내 놓았다.

“저기, 하루카. 오늘 스케줄은 이미 끝나지 않았어? 한참 전에 유키호가 연락해줬는데.”

“네. 그건 그런데...”

“응?”


  하루카는 왠지 쭈뼛거리며 시선을 흘렸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고 배시시 웃어 보이며 말했다.


“프로듀서 씨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헤헤.”

“나를?”

“프로듀서 씨, 이제 저녁식사 하러 가실 거죠? 괜찮으시다면 저랑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응? 나랑 하루카랑, 저녁 먹으러?”

“네. 혹시... 안될까요?”

“아니, 전혀. 하루카가 괜찮다면 나도 좋아.”


  나는 그렇게 하루카와 인근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타루키 정에서 적당한 백반정식으로 때웠겠지만, 모처럼 하루카와 함께 나왔는데 타루키 정에 갈 수는 없었으니까.

 

“여기는 분위기가 편안해서 좋아요. 예전에 마코토랑 같이 와본 적이 있는데, 음악도 좋고 의자도 푹신해서-”


  하루카는 들뜬 표정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하루카의 이야기를 천천히 들었다. 


“치어리더부에서 라이브 영상을 봤다고 해 줬거든요!”


  그러나 잠시 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내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웃고 있는 하루카가 어딘지 모르게 초조해보였다. 금방금방 주제를 바꾸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하루카는 평소의 편안하고 밝은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아, 그리고 그 부분에서 아키짱이...”

“저기, 하루카?”

“네?”

“혹시, 나한테 특별히 할 말이라도 있어?”

“네?!”

“별 건 아니고, 오늘 일부러 기다려줬다는 것도 그렇고, 하루카의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조금 달라서.”

“아...”


  하루카는 말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첫 출근 때 보았던 표정과 닮아 있었다. 갑자기 사무소를 찾아온 낯선 남자에게 보였던 경계와 당혹감을 나타내던 그 표정. 그날 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지금의 하루카가 하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하루카에게 말했다.


“괜찮다면 이야기해줄래? 하루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들켜버렸네요. 헤헤...” 


  하루카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기, 프로듀서 씨.”

“응. 하루카.”

“저... 아이돌을 계속해도, 괜찮은 걸까요?”

“...에?”


  잠깐, 잠깐만. 하루카? 하루카 맞지? 치하야가 리본 단 거 아니지? 뭔가 대사가 이상하지 않아? 캐릭터성이 뒤바뀐 거 아니야?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하루카는 나의 반응을 살피더니 말을 이었다.


“아,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서 죄송해요! 프로듀서 씨가 요즘 바쁘신 건 알지만... 그렇지만, 오늘 카메라맨 씨한테 좀 더 자연스럽게 웃으라는 이야기를 들어버렸거든요. 미소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사진을 봤더니...”

“봤더니?”

“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마치 억지로 웃는 것 같은 표정...”

“그랬구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

“아, 그게... 요즘 들어서 말이죠...”


  내가 이유를 묻자, 하루카는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지난 며칠간 하루카를 마주치는 일은 많지 않았지만, 그 때마다 본 하루카에게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밝은 하루카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미키가 했던 이야기가 나의 뇌리를 스쳤다.


‘프로듀서, 요즘 계속 어디 있다 오는 거야? 자꾸 늦게 와서 못 보니까 싫은데...’

‘응? 그야 방송국에서 회의가 있으니까 그렇지.’

‘치하야 씨의 라이브 때문인 거야?’

‘응. 준비할 게 이것저것 있거든.’

‘프로듀서, 미키도 커다란 무대, 서고 싶어!’

‘에?! 그건 갑자기 이야기해도...’

‘그렇지만, 미키도 얼른 치하야 씨랑 나란히 하는 멋~진 아이돌이 되고 싶은걸. 그러면 프로듀서도 미키를 더 봐주겠지?’

‘하하. 미키는 지금도 멋진 아이돌인 걸. 이대로 가다보면 분명 괜찮을 거야.’

‘우우- 프로듀서, 또 얼렁뚱땅 넘기려고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래도...’


  나는 여전히 말을 흐리고 있는 하루카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루카, 치하야의 무도관 라이브가 신경 쓰이니?”

“네?!”


  하루카는 정곡을 찔렸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솔직하게 이야기해줘. 그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오늘 날 기다려준 거잖아?”

“...네. 신경 쓰여요.”

“하루카가 기획에 뽑히지 않아서?”

“아뇨! 그런 건 아니고요. 치하야짱이 무도관에 선다는 건 기뻐요. 그건 기쁜데...”


  하루카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치하야짱과 다른 아이돌들이 저렇게 큰 스테이지에서 노래하는 걸 봤더니, 왠지 위축되어버려서... 저도 저렇게 할 수 있을지, 스스로가 아이돌로서 충분한지 잘 모르겠어요. 저, 유닛 안에서 아이돌 랭크도 가장 낮고...”


  각자의 랭크, 신경 쓰고 있었구나. 하루카의 랭크가 TORICO 안에서 가장 낮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까지 큰일은 아니었다. 치하야는 셋 중에서 솔로 데뷔가 가장 빨랐기 때문에 그만큼 랭크를 올릴 시간이 길었을 뿐이고, 유키호와 하루카의 갭은 그렇게까지 크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하지만 하루카는 아무래도 그 부분이 신경 쓰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저, 왠지 평범한 타입이니까요. 치하야짱은 노래를 엄청 잘하고, 유키호는 차분하고 우아한 부분이 있는데, 저는 그런 눈에 띄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해서... 노래가 좋다는 거 하나만으로 계속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하루카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나는 천천히 하루카의 말들을 곱씹어보았다. 하루카가 한 이야기가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확고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신인들이 범람하는 요즘의 아이돌 업계에서 중요한 부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떠오르는 가희’ 키사라기 치하야, ‘순백의 천사’ 하기와라 유키호, ‘비주얼 퀸’ 호시이 미키 등등. 각자의 개성에 따라 따라붙는 수식어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타카가키 카에데처럼 아예 인지도 자체가 수식어가 되어 ‘아이돌의 정점’ 같은 거창한 별명이 붙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카가 개성이나 매력이 없다는 말에는 굉장한 어폐가 있었다. 하루카가 보기에는 주변의 치하야와 유키호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 같지만, 일단 하루카 본인도 C랭크 하위에 해당하는 입지 있는 아이돌이었다. 수많은 지하 아이돌들이 E랭크를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D랭크에서 정체되는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하루카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했다.

  게다가 하루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중대한 부분은 또 있었다.

  

‘아이돌다운 거라면, 좀 더 활발하고, 여유롭고... 말하자면 아마미 씨. 하루카 같은 쪽이라고 생각해요.’

‘하루카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좋다고 생각해.’

‘자신을 비추는 태양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그런 태양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아끼게 되는 법이지요.’


  태양. 전에 계곡에서 타카네가 태양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어쩌면 내가 그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후로 천천히 아이돌들을 봐 오면서 느낀 것은 조금 달랐다. 모두가 서로를 도와나가는 것도 맞지만, 765프로라는 집단 안에서 가장 태양의 역할에 가까운 건 하루카라고 생각했다.

  그런 하루카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아이돌답고, 지금의 TORICO를 있게 하는 데 중대한 지분을 지닌 하루카가, 자기 자신의 기량을 의심하고 있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당연히 ‘그런 걱정은 무의미하다, 하루카가 주변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이 중요하다, 하루카가 이끌어주기 때문에 다들 빛날 수 있는 거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줬겠지만, 이상하게도 함부로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하루카의 고민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카가 개성이 없다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었지만, 자신을 의심하게 된 과정, 믿어왔던 꿈에 대한 회의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꿈과 희망,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단순한 이유로 달려온 골목길은, 어느덧 8차로에 달하는 대로가 되어 있었다. 그 위에서 치열하게 달려 나가는 수많은 이들을 보며, 우리는 골목길에서 첫 발을 내딛었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 크고 치열한 대로 위에서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 소박한 꿈으로 출발한 우리가 이 위에서 저들과 맞부딪힐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였다. 나조차도 의심하고 있는 그 낭만을, 지금의 하루카에게 번지르르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적당히 포장한 말들을 해 줘봤자 지금의 하루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정한 나는 조심스럽게 하루카에게 말했다.


“하루카, 일단 나는 하루카가 평범하다던가, 개성이 없다던가 하는 거에는 동의할 수 없어.”

“네...?”

“하루카는 분명 아이돌에 어울리는 아이야. 미소녀인 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거고.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너무 밀어붙이지 마.”

“그런가요...”

“하지만 하루카, 그렇다고 하루카의 고민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야.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든.”

“프로듀서 씨도...?”

“치하야도 그렇고, 하루카도 유키호도,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조만간 메이저 아이돌이 될 거야. B랭크가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전국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니까. 솔직히 나도 너희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어.”

  하루카는 대답 없이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나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이번 아이돌 JAM에 나가면서, 아이돌이라는 일이 얼마나 치열한 건지, 다른 프로듀서들이 어떻게 일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보게 됐어. 그러면서 내가 프로듀서로서 얼마나 미숙한지도 느꼈거든.”

“그렇지 않아요!”


  하루카는 갑자기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내 말을 막아섰다. 순간 주변의 시선이 느껴져서 나도 하루카도 깜짝 놀랐다. 지금의 하루카라면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었기에, 우리는 잠시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주변이 다시 조용해지자, 하루카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아무튼, 프로듀서 씨는 충분히 힘이 되어주고 계시니까, 그런 부분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하루카도 그런 거라면 765프로에 충분한 힘이 되어주고 있어. 주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하루카는 방금 전에 자기 자신에게 의심이 들었다고 했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렇...네요.”

“바로 그걸 이야기하는 거야. 하루카가 노래를 좋아하는 감정, 그리고 내가 너희들을 톱 아이돌로 만들어주겠다는 그 꿈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래도 의심스러운 거잖아? 주변을 보니 다들 치열하게 노력하고, 뛰어나 보이는 아이돌도 잔뜩 있고. 저 아이들과 부딪혀 이길 수 있을까, 정말 톱 아이돌이 될 수 있을까. 그게 두려운 거잖아. 맞지?”

“맞아요... 훌쩍”

“아...?!”


  이야기가 너무 직설적이었던 걸까, 하루카는 고개를 숙이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하루카를 진정시켰다. 


“저기, 하루카? 훈계하려던 게 아니야, 그러니까 울지 말아줘?!”

“훌쩍, 저도 알고 있는데... 왠지 눈물이 나서...”

“그, 그러면! 일단 밖으로 나갈까? 오늘은 평소보다 시원하니까, 조금 바람을 쐬면 괜찮아질지도 모르니까!”

“네...”


  나는 황급히 하루카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일단 눈물은 그쳤지만, 잠시 걷는 사이 하루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도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루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나는 적잖게 당황한 상태였다.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두 블럭 앞에 있는 공원을 발견한 나는 하루카에게 말했다.


“하루카, 잠깐 공원에서 쉬었다 갈까?”

“네, 그래요.”


  다행히도 하루카는 아까보다 조금 안정된 것 같았다. 나는 하루카와 함께 벤치에 나란히 앉아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하루카도 그런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하루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다.


“죄송해요, 프로듀서 씨. 울어버리려던 건 아닌데, 갑자기 눈물이 나버렸네요. 헤헤.”

“아니야. 나도 너무 직설적으로 이야기한 것 같아서... 하루카. 혹시 위로가 받고 싶은 거였다면, 미안해.”

“네? 아니에요! 애초에 제가 멋대로 나오자고 부탁드린 거고, 조언해주시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나도 평소 같았더라면, 따뜻하고 좋은 말들을 해 줬을 거야. 하루카는 괜찮아, 지금처럼 하면 돼, 같이. 하지만 나도 요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하루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래서 하루카한테 그저 번지르르한 말을 해줘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프로듀서 씨...”


  나는 슬슬 주황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루카가 비슷한 고민을 한다고 해서 한편으로는 안심했어. 다들 잘 나아가고 있는데, 내가 부족해서 너희들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나보다 유능한 사람이 프로듀서를 맡는 게 맞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했거든.”

“프로듀서 씨, 그건 안 돼요!”

“푸흐, 그렇게 이야기해주니까 기뻐. 아무튼, 이런 이야기는 어디 가서 상담할 곳도 없었거든. 사장님한테 가기는 좀 껄끄럽고, 치하야는 요즘 한창 라이브를 준비하느라 바쁘니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분명 분위기가 다운될 것 같아서.”

“그런 와중에, 제가 프로듀서 씨한테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한 거네요.”

“응. 처음에는 하루카가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깜짝 놀랐는데, 이유를 듣고 나니까 아이돌로서 성장하는 와중에 생기는 성장통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더 신중했어. 나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건 무책임하니까.”


  하루카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나를 올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놀이터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프로듀서 씨의 말대로, 성장통 같은 걸지도 모르겠네요.”

“응. 나도 프로듀서로서는 아직 풋내기니까. 뭔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해 미안해.”

“아니에요. 오히려 안심했어요.”


  하루카는 그러고는 내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어깨에 기대왔다.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던 나는 깜짝 놀라 하루카를 내려다보았다.


“잠깐만 기대 있어도 괜찮죠, 프로듀서 씨?”

“응?! 응... 괜찮아.”


  하루카는 나에게 기댄 채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평소에는 덜렁대고 웃고 떠드니까, 다들 하루카짱은 밝아서 좋아~ 하루카짱은 힘이 넘치네~ 같은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그래서 뭔가 고민이 있을 때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늘도 카메라맨 씨가 미소를 지적하지 않으셨다면, 프로듀서 씨한테 상담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


  나는 순간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역시도 하루카를 그저 밝고 활기찬 성격으로만 생각해왔다. 다른 아이들이 가끔 고민이 생기면 하루카에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치하야도 하루카에게 기대는 일이 많다보니, 정작 하루카 본인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혹시 힘들어하지는 않는지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었다.


“위로받고 싶었던 것도 맞지만, 혹시 프로듀서 씨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했어요. 내 고민은 그게 아닌데, 걱정하는 건 그게 아닌데... 그냥 평소처럼 밝은 아마미 하루카로 있으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조금 두려웠거든요. 헤헤...”


  하루카의 웃음에서는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안도감과 쓸쓸함,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이 섞여 들어가 있는 듯한 웃음이었다.


“아까 눈물이 났던 건 슬퍼서라기보다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프로듀서 씨가 내 고민을 완벽하게 이해해주고 있구나, 하는 안심이 들었어요.”

“다행이네... 비록 좋은 답변은 해주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에게 기대어 있던 하루카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이 아, 하는 소리를 내더니, 벤치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마주보고 섰다. 그러고는 나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프로듀서 씨.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같이 생각해볼까요?”

“응?”

“저는 저대로, 프로듀서 씨는 프로듀서 씨대로 열심히 생각해서, 뭔가 좋은 게 떠오르면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공유일기 같이! 아, 프로듀서 씨는 공유 일기 같은 거, 써보신 적 없으신가요...?”


  들떠 있던 하루카는 순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하루카의 반응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써본 적은 없지만, 어떤 느낌인지는 알겠어. 같이 고민하다보면 혼자보다는 훨씬 낫겠네.”

“네! 그러니까 혹시라도 그만 둔다거나, 다른 프로듀서가 더 낫다거나 하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아시겠죠? 저희한테 프로듀서 씨는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으니까요!”

“...”


  하루카는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다행히도 이제 기분이 완전히 풀렸는지, 조금 전에 남아 있던 쓸쓸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고마워, 하루카. 앞으로도 노력해보자. 같이.”

“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프로듀서 씨!”


  하루카는 드디어 평소에 지어 보이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 사이에 해가 지면서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벤치 위에 있던 가로등이 여전히 하루카를 비추고 있었다.

  나의 고민은 현재진행형이었지만, 적어도 계속 나아가야할 이유를 얻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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