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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지리] Summer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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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7, 2020 07:56에 작성됨.

해님이 방긋방긋 웃으며 내려주는 햇살의 시간이 왔다.그 어떤 것보다도 따스한 감각에 천천히 눈을 뜨는 남자가 있다. 무엇보다도 포근할 이 순간. 남자는 또 하나의 따스함에 눈곱 가득한 눈으로 옆을 쳐다본다. 침대 한쪽 구석에는 소녀 한 사람이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금색 장발의 소녀는 남자의 팔베개를 벤 채로 잠들어 있다. 그 모습이 천사 같다. 모든 사람에게 천국의 노랫소리를 들려줄 자그마한 천사. 


「후에...?」


남자가 움직인 탓에 소녀의 머리가 몇 번 흔들리더니 두 눈이 조금씩 떠진다. 붉은 루비 두 개가 박혀있는 소녀의 눈. 아직 잠이 덜 깬 탓인지 조금은 흐리멍텅하다. 그 두 개의 보석을 쳐다보던 남자는 이내 한 손을 들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살랑거리는 금색 머리카락이 손가락을 비단결처럼 훑고 내려온다. 입가에는 살짝 미소를 띈 채다.


「에헤헤...♬」


기분 좋은 쓰다듬. 소녀의 하얀 얼굴이 행복함을 가득 머금는다. 햇빛이 소녀를 비추다가 이내 사라진다. 방 안에는 빛이 가득하다. 하지만 햇빛은 아니다. 빛의 근원지는 소녀다. 놀랍게도 소녀가 내는 기운찬 빛이 온 방을 휘감고 있다. 신기한 일. 하지만 남자는 이런 일에 익숙한지 그저 미소만 짓고 있다. 그 미소에 소녀도 행복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본다. 행복.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 좋은 것.


소녀를 표현하는 말은 많다. 성야의 아이돌, 신비한 소녀, 크리스마스의 선물. 몇몇 사람들은 소녀를 최종보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비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그에게 그녀는 그런 거창한 별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소녀를 히지리라고 불렀다. 모치즈키 히지리. 분명한 이름을 가진 열세 살 소녀. 신기한 것 많고 사람의 온기를 좋아하는 평범한 소녀. 겨울의 하얀 빛이 잘 어울리지만 여름의 파란 바다같은 빛도 잘 어울리는 소녀.


「프로듀서 씨, 오늘 일 말인데요..」


그렇게 행복한 미소를 짓던 히지리가 이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남자에게 묻는다. 프로듀서라고 불린 남자는 대답 없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무슨 의미일까.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친다. 성스러운 소녀의 눈을 대한 프로듀서는 이내 솔직하게 오늘의 일정을 고한다. 오늘은 오프, 아무런 일도 없다.


「오프...?」


프로듀서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띈 얼굴이 돌아온다. 분명히 어제 들었을 때에는 댄스 레슨과 기초체력 레슨이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몸을 움직이는데에 익숙하지 않은 히지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겠지. 하지만 프로듀서의 대답은 확고했다. 오프. 아무런 스케쥴도 잡혀 있지 않다. 히지리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프로듀서를 똑바로 보며 입을 연다.


「저 때문에...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히지리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신이 기초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다른 아이돌들이 잘 하지 않는 기초체력 따위가 레슨으로 들어가 있는 거다. 힘들긴 하지만, 아이돌로서 필요한 일이기에 히지리는 군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러지 않았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어째서...?」


다시 한번 묻는 히지리. 그 물음에 프로듀서의 짧은 대답이 들어왔다. 히지리, 오늘 정도는 쉬어도 괜찮아. 히지리는 어째서냐고 다시 물었다. 프로듀서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히지리는 뚱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프로듀서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호의의 역효과. 프로듀서는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입을 연다. 내가 오늘 정도는 히지리랑 있고 싶었어. 조금은 낯간지러운 고백을 하는 프로듀서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에..?」


안 될까? 프로듀서의 솔직한 진심이 흘러나온다. 밀려드는 흐름에 히지리는 멍하니 있다 이내 그의 손을 잡는다. 따스한 손. 히지리가 좋아하는 따스한 체온이 담겨있는 손. 프로듀서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 손을 맞잡는다. 따스한 체온이 그에게로 흘러든다. 그와 함께 햇빛이 히지리를 비춘다. 히지리의 빛이 밝게 더욱 밝게 빛난다. 해보다도 빛난다. 달보다도 빛난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빛난다.


「에헤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히지리보다 빛나는 것이 있을까. 히지리의 머리카락을 살랑이게 하는 초여름의 바람이 불어온다. 간지러운 하얀 바람이 불어온다. 두 사람을 포근히 덮어주는 바람. 그리고 초여름의 바람이 불어온다. 프로듀서의 체온같은 따뜻한 바람. 그 온기를 좋아하는 히지리를 보며 프로듀서도 함께 웃는다. 언제까지나 놓지 않을 두 손과 함께 충실할 하루를 보낼 두 사람이 있다. 간지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소녀가 있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행복한 날이 있다. 특별하지만 곧 익숙해질 행복한 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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