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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키 츠바사 『괜찮아, 날개는 또 자랄 테니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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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12-15, 2020 10:26에 작성됨.

"프로듀서 씨~!"

"응?"

"데이트 해요, 데이트!"

".....에엑!?"


시어터 내 대기실. 프로듀서는 난데없이 날아들어온 폭탄 발언에 깜짝 놀라 그쪽을 쳐다보았다.


"얘, 얘는 참!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 거니."

"그치만 하고 싶은 걸요!"

"누구하고?"

"프로듀서 씨하고요!"


조금 전보다 구체성을 띤 발언이 프로듀서의 마음을 한 차례 더 폭격했다. 프로듀서는 폭격의 진원지, 이부키 츠바사를 위아래로 살폈다. 생글생글 장난기 서린 웃음을 짓고 있는 게 언제나하고 똑같아보였다. 하지만. 프로듀서는 그저 마음 놓을 수만은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굴지만 분명.....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프로듀서는 속으로 결단을 내렸다.


"저랑 데이트 해요~ 네?"

"갑자기 그런 말을 해도 말이지."


츠바사는 프로듀서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리고는 거듭 데이트 해달라고 졸랐다. 프로듀서는 딱 잘라 거절하지는 않았다. 어라? 이상한데. 평소와 다른 모습에 츠바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순간이었다.


".....정말 하고 싶니?"

"네?"


예상 못했던 질문에 츠바사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프로듀서는 히죽하고 떠보는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YES? 아니면 NO?"


애매한 건 NO와 같아. 그렇게 직감한 츠바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YES를 골랐다.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가 좋겠냐며 일정을 물었다. 어라라? 웬일이래 프로듀서 씨. 조금만 이런 말을 해도 곤란해했으면서.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인 태도에 츠바사는 우물쭈물거렸다.


"프로듀서 씨, 꼭이에요. 잊으면 절~대 안돼요!"

"다른 누구도 아닌 츠바사하고 데이트하는 건데. 그럴 리 없지. 걱정은 붙들어매렴."

"저, 저 그럼 이만! 가볼게요!"

"오호호, 그래. 잘 가렴. 그 때 보자."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원하는 대로 약속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 뒤로 도망치듯 등을 돌리는 츠바사에게, 프로듀서는 한참 대조되는 모습으로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주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츠바사의 뒷모습. 그런지 잠시 후.


"하아....."


대기실에 혼자 남은 프로듀서는 긴 한숨소리와 함께 대기실 책상에 무너져내리듯 엎어졌다. 지금까지 쓰고 있던 '여유로운 어른'의 가면이라는 건, 한순간에 훌렁 날아가버렸다.


"데이트.....데이트라."


동성끼리도 데이트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프로듀서는 새삼스럽게 데이트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다. 그러고보면 미사키 씨가 전에 로코하고 데이트 했다고 막 자랑하던데. 프로듀서는 지난날 사무원 아오바 미사키가 신나게 재잘거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같이 거리를 걸으면서, 맛있는 걸 먹고, 옷 구경하고.....으음, 그래. 그런 느낌이려나. 거창한 건 절대 아니고. 


조금 용기를 얻은 프로듀서는 추욱 늘어졌던 신체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었다. 싫다면 처음부터 거절하면 되었을 텐데. 왜 굳이 승낙했느냐. 여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츠바사'에게는 그런 시간이 좀 필요할지도. 프로듀서가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


그리하여 데이트 당일. 10분 먼저 약속장소에 도착한 프로듀서는 어색하게 서 있었다.


"괜찮으려나....."


저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에 프로듀서는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역 근방이었던 만큼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아, 혹시라도 자기 말소리를 들었을까 신경 쓰였던 것이다. 프로듀서한테는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폰을 보거나 누군가와 이야기하거나 하는 등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바빠보였다. 


휴. 프로듀서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야구점퍼 자락을 매만졌다. 점퍼 안에는 심플한 흰색 셔츠와 짙은 빛의 청바지 차림. 아주 오랜만에 입는, 양복이 아닌 옷. 언제나와 같은 것보다는 좀 더 친근한 느낌이 좋지 않을까하는 판단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잘 먹혀들어가면 좋을텐데. 프로듀서는 걱정하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살폈다. 약속 시간까지는 7분 정도가 남았다. 


약속대로 나타나주는 걸까, 그 녀석. 그렇게나 잊지말라고 당부했으니 당연하겠지만. 그래도 말이지.....프로듀서가 벌써부터 초조해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을 때였다. 조금 멀리서 양쪽으로 삐죽하고 튀어나온 샛노란 옆머리가 프로듀서의 눈에 쏙 들어왔다. 그만 츠바사! 하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프로듀서는 꾹 눌러 참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그 뒤를 쫒았다. 샛노란 머리카락의 주인되는 소녀는 찾는 게 있다는 듯 자주 걸음을 멈춰서며 좌우를 살폈다. 덕분에 프로듀서는 큰 어려움 없이 소녀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 소녀가 자신이 기다리던 츠바사라는 것도 금방 알아냈다.


"여기야, 여기."


프로듀서가 츠바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깜짝 놀란 츠바사가 뒤를 돌아보자 익숙한 얼굴을 한, 조금 다른 차림을 한 사람이 보였다. 츠바사는 곧 경계를 풀고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물었다.


"프로듀서 씨?"

"맞아."


프로듀서는 어색하게 나오려는 웃음을 애써 능숙한 미소로 바꿔서 지었다.


"어쩐지 신선한 느낌이네요."

"데이트하는 건데 평소와 같으면 재미없잖아."

"에헤헤, 그렇겠네요."


프로듀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반응하며 오늘 츠바사가 입고 나온 차림새를 살폈다. 밝은 색깔의 티셔츠와 청자켓. 무릎 위로 올라오다 못해, 허벅지 반절 정도를 아슬하게 가리는 길이의 미니스커트. 그리고 산뜻한 색깔의 캔버스화. 딱 그 나이대 아이다운 패션이었다.


"츠바사도 신경써서 왔네. 그런데 조금 춥지 않아?"

"데이트니까요♪ 이 정도야 괜찮아요."

"좋네, 젊음이란."

"에이. 꼬부랑 할머니 같은 소리 하지 마세요."

"아하하 이 녀석, 갑자기 너무한 소리를 해대네."

"프로듀서 씨는 치마 없어요?"

"치마? 훗.....그런 건 말이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같이 졸업했어."


돌연 날아들어온 질문에 프로듀서는 같잖은 폼을 취하며 답했다. 츠바사는 짝짝 박수까지 쳐가며 화답했다.


"아하핫, 스바루 군 같네요."

"음, 그러려나. 그건 그렇고 슬슬 이동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게 좋겠는데....그런데 프로듀서 씨. 제대로 생각해오셨나요?"

"뭘?"

"오늘의 데이트 코스."

"물론이지."


자신있는 대답과는 반대로, 프로듀서는 속이 뜨끔했다. 왜냐면 프로듀서는 여중여고라는 훌륭한 솔로부대 코스를 밟아왔기 때문이었다. 대학교는 그나마 여대가 아니었지만, 여초과였던 관계로 역시 이성과는 별 연관없는 삶을 살아왔다. 프로듀서에게 있어서 데이트란 책이나 영화로만 접하는 문물. 하지만 츠바사의 경우라면 어떨까. 자신과는 다르게 남녀공학이고, 또 성격 자체가 누군가와 어울리기 좋아하는 스타일이니.....어쩌면.


"츠바사, 잠깐만."

"네?"


프로듀서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츠바사를 불러 세웠다. 프로듀서를 앞서가기 직전이었던 츠바사는 그 자리에 딱 서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프로듀서는 부담감을 느끼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전에도 이런 거.....데이트 한 적,있니?"

"네! 엄청 많아요!"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는 해맑은 즉답. 거기다 덧붙여서 풍부한(?) 경험을 자랑한다는 말까지. 프로듀서는 포효하다시피 외쳤다.


"안 돼!!!!!! 중학생이!!!!!! 벌써부터!!!!!!!!"

"히, 히야악!?"


비명과 함께 그만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뻔한 츠바사의 두 손을, 프로듀서가 덥썩 붙잡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언제부터? 상대는? 지금까지 몇 명이랑?"

"아야야야....프로듀서 씨, 아파요. 놔주세요."

"아, 그래그래. 그래서?"

"그게 그러니까요....."


프로듀서의 지나친 추궁에 츠바사는 지금까지의 데이트 사정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데이트라고 해서 프로듀서가 생각하는 그것은 아니었다. 츠바사가 칭하는 데이트의 범위는 상당히 넓었다. 그냥 친구들끼리 같이 우르르 몰려가 군것질한다던가, 놀러간다던가, 여기저기 구경하고 다닌다던가 같은 것들을 모조리 데이트라는 범주에 집어넣고 있었다.


"어, 어흠. 그랬단 말이지."

"흐흥~ 대체 뭘 생각한 거에요?"


다시 냉정함을 되찾은 프로듀서는 부끄러운 마음에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프로듀서와 지근거리에 있게 된 츠바사는 키득거리며 팔꿈치로 프로듀서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그, 그게! 네가 오해할 말을 하니까!"

"아하하하, 아직도 얼굴이 새빨간데요."

"그그극....."


이대로 얕보일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프로듀서는 한 걸음 성큼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보내는 츠바사에게, 괜히 멋진 척 포즈를 취하며 말했다.


"하여튼 알겠어. 네가 지금까지 해왔던 데이트라는 것은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는 거네."

"헤에.....재밌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프로듀서 씨? 그렇다는 건 자신이 있으시다는 거겠죠?"

"무, 물론이지. 기대하렴."


이 때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데이트 경험을 선사해줄테니까! 프로듀서가 호기롭게 외쳤다.


.....


...


프로듀서가 호언장담한 끝에 츠바사를 데려간 곳은, 근방에 있던 수족관이었다.


"오호호홋, 어떠니. 참치가 맛있어보이지?"

"아, 여기! 전에 친구들하고 와봤어요!"

"겍."


수족관이라면 데이트의 정석. 그렇게 믿고 실행한 결과는 중복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프로듀서는 등 뒤로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면서도, 겉으로는 최대한 평정을 하려고 했다.


"이, 이왕 온 김에 구경은.....하고 가자....."

"네~"


잘 안되었지만.


"프로듀서 씨! 저거, 저거!" 

"오-떼로 몰려다니니까 멋지네."


그래도 츠바사는 별다른 불평 없이 파란 빛으로 가득 찬 수족관 내를 거닐었다. 프로듀서는 열대어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츠바사의 몸짓이며 표정을 살폈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츠바사의 얼굴은 분명 들떠있는 모습일텐데. 푸른 조명 탓일까, 어쩐지 슬퍼보였다. 어렴풋하게 보이는 우울감을 눈으로 쫒아가보는 프로듀서. 대신 두 다리가 그 자리에서 멈춰서버린다.


"프로듀서 씨?" 


한참 앞서나가고 있던 츠바사가 뒤를 돌아보며 프로듀서를 불렀다. 프로듀서는 일순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 몸을 들썩이더니, 츠바사에게로 바짝 다가섰다.


"어, 그래. 무슨 일이니?"

"프로듀서 씨야말로 왜 그러세요? 재미없어요?"

"그런 건 아닌데.....츠바사는? 왔던데 또 와서 별로지 않아?"

"음.....괜찮아요. 엄청 재밌다는 건 아니지만."

"하하, 그러니."


프로듀서가 적당히 웃음을 흘리며 매끄러운 유리창을 손 끝으로 매만졌다. 유리창에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츠바사의 모습이 다시 흐릿하게 떠올랐다.


"저기, 츠바사."

"네?"


정말 괜찮니? 프로듀서는 튀어나오려던 질문을 급하게 집어삼켰다. 지금 그걸 물어보면 안될 것 같았다. 함부로 상처를 들춰내는 꼴이 될 것 같았다. 지금은 덮어둬야할 때. 알아서 아물 수 있도록. 그렇게 생각한 프로듀서는 츠바사가 이상하게 생각하기 전에 급히 다른 질문을 내보냈다.


"돌고래 쇼 볼래?" 

"괜찮아요."

"흐음. 그래. 그러면 슬슬 다음 코스로 이동해볼까."

"와아- 정말요!? 어디에요?"

"그건 도착하고나서의 즐거움이라고 해둘게. 자, 가자."


프로듀서는 기대에 찬 츠바사를 이끌고 서둘러 수족관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같이 지하철을 타고 얼마 안 가.....목적지에 도착했다.


"후후.....어떠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지?"


프로듀서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확실히, 이곳은 데이트 코스라고 하기에는 꽤 참신한 곳에 속했다. 주위를 슥 둘러보던 츠바사는 이윽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왠지 수학여행 온 것 같은 느낌....."

"그, 그러니. 그래도.....그, 재밌을 것 같지....."

"아니요! 엄청 지루할 거라고요!"


그, 그럴 수가! 칼 같이 날아온 불만이 프로듀서를 직격했다. 프로듀서는 마음의 피를 줄줄 흘리며 가늘게 뜬 눈으로 전경을 보았다. 저기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전체적으로 갈색 빛을 띈 고풍스러운 기와 건물. 이곳이 어디인지를 아주 잘 알려주는 지표였다.


확실히 여기.....박물관은, 데이트 코스라고 하기에는 좀.....무리야!


교양있고 지적이며 학구열에 불타는, 그런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우리네 같은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지루함과 피곤함만 얻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프로듀서. 점퍼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한참 화면을 두닥거리기 시작한다. 그런지 얼마나 되었을까. 기다리다 지친 츠바사가 프로듀서를 보채려는 순간. 프로듀서가 대뜸 츠바사의 손을 꼭 붙잡았다.


"와앗!?"

"그러면 여기로 가자!"

"어, 어딘데요?"

"가보면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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